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릭 미 업 이프 유 캔-180화 (180/216)

180화

“뭐? 아!”

놀라 그만 스테이크를 썰던 손이 미끄러져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내질렀다. 나이프가 접시를 긁는 불쾌한 소리에 무심코 얼굴을 일그러뜨렸던 코이가 당황하며 맞은편에 앉은 애슐리를 바라보았다. 애슐리는 아무렇지 않아 하는 기색으로 스테이크를 썰며 말했다.

“잘 해결했어, 앞으로 네 앞에 나타날 일은 없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어떻게…….”

어리둥절해했던 코이는 이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설마 애쉬, 그 턱은 그래서…….”

“걱정 마, 나도 때렸어. 내가 더 많이 때렸을걸?”

애슐리는 코이가 했던 말을 흉내 내어 농담처럼 말했으나 명백한 진실이었다. 넬슨은 그야말로 죽기 일보 직전까지 맞았으니까.

하지만 그런 사실을 알 리 없는 코이는 그가 자신을 안심시키기 위해 허세를 부리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는 흔들리는 눈동자로 애슐리를 바라보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많이 아파? 아니, 당연히 아프겠지. 어떡해.”

턱에 붉게 남아 있는 흔적에서 눈을 떼지 못하는 코이에게 애슐리는 스테이크를 입으로 가져가며 대답했다.

“참을 만해.”

고기를 씹기 시작한 그가 미간을 찌푸렸다. 어떡해, 많이 다쳤나 봐. 코이는 사색이 되고 말았다. 애슐리는 와인을 마신 뒤 말을 이었다.

“아무튼 이제 넬슨은 신경 쓰지 마, 앞으로 네 앞엔 나타나지 못할 거야.”

“그래…….”

코이는 작게 중얼거렸다. 지금 넬슨 따위가 문제가 아니었다. 애슐리의 턱만 쳐다보며 식사를 하는 둥 마는 둥 했던 코이는 식사가 끝날 때쯤 입을 열었다.

“저, 애쉬. 내가 뭐 도와줄 일이 없을까? 뭐라도 말해 줘,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 다 할게.”

와인 글라스를 비운 애슐리가 코이를 향해 미소를 지었다. 괜찮다는 뜻일까? 코이는 의기소침해져 어깨를 늘어뜨렸다. 애슐리는 빈 글라스에 와인을 따르며 말을 이었다.

“하나 있긴 해.”

“어, 응. 말해 줘, 얼른.”

코이는 귀를 바짝 곤두세우고 몸을 긴장시켰다. 애슐리는 당장 시키고 싶은 뭔가를 미루고 대신 다른 요구를 했다.

“당분간은 내 일을 도와줬으면 좋겠어. 괜찮을까?”

“물론이지, 할게, 뭐든 다.”

코이는 생각할 틈도 없이 대답했다. 애슐리는 무심코 미간을 찌푸렸다. 저렇게 바로 대답하는 버릇은 없애야 하지 않을까. 애슐리에게만이라면 얼마든지 좋지만 아무 데서나 저런 태도라면 아주 곤란하다. 에리얼의 얼굴이 머리에 스친 애슐리는 생각했다. 역시 감금하는 쪽이 좋겠어. 누구한테든 저러는 건 아주 안 좋지만 자신에게 저러는 코이는 무척 귀여우니까 버릇을 고칠 필요는 없었다. 코이를 감금해 버리면 모두 해결되는 문제였다.

그런 애슐리의 머릿속은 전혀 알지 못한 채 코이가 조심스럽게 물었다.

“설마 넬슨이 먼저 널 찾아와서 해코지를 한 건 아니지……?”

애슐리는 대답 대신 와인만 마셨다. 곧바로 코이는 사색이 되어 어쩔 줄을 몰라 했다. 그런 코이를 내버려 둔 채 애슐리는 여유 있게 답했다.

“괜찮아, 어쨌든 전부 해결했으니까.”

어차피 코이가 확인할 방법은 없다. 넬슨은 영원히 입을 열지 못할 테니까.

애슐리가 다시 말을 꺼낸 것은 테이블을 정리한 뒤 함께 티룸으로 옮겨 차와 케이크를 먹기 시작했을 때였다.

“코이, 다음 일할 곳은 알아봤어?”

“어? 아, 아니.”

언제까지고 여기서 지낼 수는 없다. 코이는 곧 나갈 거라는 점을 어필하기 위해 서둘러 덧붙였다.

“몇 군데 찾아보긴 했는데 아직 면접은 못봤어. 메일을 보내 놨으니까 곧 답이 올 거야.”

쓸데없이 부지런해서는.

애슐리는 내심 혀를 찼으나 모른 체하고 말을 이었다.

“실은 내가 아는 곳에 자리가 생겨서 널 소개할까 하는데, 어떨까?”

“뭐?”

코이는 생각지 못한 제안에 깜짝 놀랐다. 애슐리가 계속해서 말했다.

“실내 실외 인테리어를 전문으로 하는 회사야. 마침 경력자가 필요하다고 해서 널 소개하고 싶은데, 괜찮을까?”

“어, 어, 응. 물론이지.”

애슐리가 소개하는 회사라면 충분히 믿을 만하다. 고개를 끄덕인 코이는 두 눈을 빛내며 오랜만에 환한 웃음을 지었다.

“고마워, 애쉬. 내 일자리까지…….”

어떻게 이 은혜를 전부 다 갚을 수 있을까? 애슐리에 비하니 터무니없이 작아지는 자신에 무심코 한숨이 나왔을 때였다. 그런데, 하고 애슐리가 대뜸 말을 꺼냈다.

“조건이 있어.”

“어?”

순간 긴장한 코이에게 그가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

“그렇게 걱정할 건 없고, 신체검사를 해야 돼.”

“신체검사?”

코이는 어리둥절해져 눈을 깜박거렸다. 애슐리가 무심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입사 전에 건강검진을 받아야 한다고. 그렇게 놀랄 거 없어, 일상적인 거니까. 검진비도 회사에서 부담하는 거고.”

애슐리가 눈을 가늘게 접으며 미소 지었다.

“이 기회에 공짜로 건강 검진을 할 수 있다니 오히려 잘됐지 않아?”

“어, 응…….”

코이는 얼떨떨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건강 검진이라니, 평생 병원 문턱도 넘어 본 적 없었던 코이로서는 너무나 생소한 단어였다.

“굉장히 큰 회사인가 봐, 그런 거까지 해 주고…….”

코이가 중얼거리자 애슐리는 회사의 조건을 나열했다. 보험은 물론이고 급여도 상당한 데다 출퇴근을 할 차까지 지급한다는 얘기에 코이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거기다 차에 기름을 넣으면 기름값도 내 주고 아파서 병원 치료를 받으면 그것도 회사가 내 주었다.

“그런 회사가 다 있어?”

하나씩 이어질 때마다 벌어지던 코이의 입에서 급기야 높은 소리가 나오고 말았다. 애슐리는 느긋하게 커피를 마시며 대답했다.

“그런 정도는 웬만한 회사라면 전부 해. 내 로펌 직원들도 받는 기본 혜택이니까.”

그건 네 수준에서나의 얘기지.

코이는 얼떨떨하면서도 한구석이 씁쓸해졌다. 애슐리에게는 이런 조건이 기본인 건지 몰라도 코이는 보험이 있는 직장을 찾는 것조차 어려웠다. 잠깐 침울해질 뻔했으나 곧 그는 어깨를 폈다.

“고마워, 애쉬. 그런 좋은 회사는 처음이야. 저, 나한텐 그런 조건이 절대 기본이 아니거든.”

다시금 감사의 말을 하자 애슐리는 미소를 짓더니 말했다.

“나한테도 좋은 일이니까 그렇게 감사해할 필요 없어.”

“어?”

어리둥절해하는 코이에게 애슐리는 두 손을 가볍게 들었다 놓았다.

“네가 안전해야 나도 안심이 될 테니까.”

“아.”

이번에도 그의 도움을 받았다는 걸 떠올리자 그냥 지나칠 수 없었다. 코이는 붉어진 얼굴로 작게 알았어, 하고 중얼거렸다. 그 얼굴을 본 애슐리가 가만히 시선을 고정하더니 불쑥 말했다.

“코이, 이리 와.”

“어? 응.”

저녁 식사를 하며 했던 대화를 떠올리고 즉시 몸을 움직인 코이가 그에게 다가가자 갑자기 애슐리가 손을 뻗었다.

“아!”

갑자기 끌어당겨져 코이는 짧게 비명을 질렀다. 애슐리는 그런 코이를 허벅지 위에 앉혔다. 넓게 벌린 한쪽 허벅지에 걸터앉고 만 코이가 당황해 눈을 깜박이자 애슐리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말했다.

“내가 지금 너한테 키스하면 넌 성추행으로 고소하는 게 가능해.”

“뭐? 그런 짓을 내가 왜 해…….”

코이는 생각했다. 숨결이 느껴질 정도로 가까워진 애슐리의 얼굴에 이렇게나 심장이 뛰고 있는데.

키스하고 싶은 건 나야.

코이의 그런 생각을 들여다보기라도 한 듯 애슐리가 속삭였다.

“네가 나한테 한다면 얘기가 다르지.”

쿵, 요란한 소리를 내며 코이의 심장이 내려앉았다. 두근, 두근, 두근, 두근, 미친 듯이 맥박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애슐리는 여전히 코이를 바라보며 기다리고 있었다. 코이가 먼저 그에게 입을 맞추기를.

홀린 것처럼 얼굴을 가져가던 코이는 문득 떠올렸다. 이렇게 되면 내가 애쉬한테 하는 거니까 애쉬가 날 성추행으로 고소하는 게 아닐까?

애슐리는 아직 기다리고 있었다. 코이는 마른침을 삼킨 뒤 결심을 굳혔다.

괜찮아, 이건 애쉬가 허락한 거니까.

코이는 떨리는 마음으로 고개를 기울였다. 애슐리의 긴 속눈썹이 천천히 내려오는 게 보였다. 코이가 입을 벌리고, 긴장으로 억누른 숨결이 입술에 닿았다.

“해도 되지……?”

막 키스를 하기 직전에 코이가 물었다. 더 이상 기다려 주지 않고 애슐리가 그의 뒤통수를 잡아 곧바로 입술을 겹쳤다. 코이는 자신도 모르게 숨을 들이켜며 애슐리의 목을 끌어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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