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화
코이는 잠시 멍하니 상대방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런 그의 표정을 본 남자가 아름다운 미간을 일그러뜨리더니 팔짱을 끼고 의자에 등을 기댔다.
“그 표정은 뭐야? 내가 널 상대로 사기라도 치고 있다는 거야?”
“아, 아뇨, 그런 의미는 아니지만…….”
내가 극오메가라니, 대체 이게 무슨 소리지?
도통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냥 오메가도 아니고 극오메가라니, 그런 게 정말 세상에 있단 말이야? 그게 나라고?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질 않았다. 눈앞에 있는 남자라면 어느 정도 그럴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 정도로 남자의 외모는 비현실적이었고, 교과 과정에서 스치듯 배웠던 아주 희귀한 종이라는 게 이 남자라면 이해가 갔다.
하지만 내가 그거라니?
여전히 말을 잇지 못하는 코이를 보고 남자가 갑자기 손을 들었다. 곧바로 다가온 직원에게 그는 차가운 맥주를 주문했다. 잠시 뒤 글라스에 담긴 맥주를 한 번에 다 들이켠 남자는 잔을 테이블 위에 탁, 소리가 날 정도로 거칠게 내려놓은 후 입을 열었다.
“넌 너한테서 페로몬 향기가 났을 때 아무 생각도 안 들었어? 설마 지금까지 섹스를 한 번도 안 해 본 건 아니지? 누구랑 잤으면 분명히 개화를 했을 텐데, 네 오메가 향이 사방에 철철 흘러넘쳤을 거 아냐? 그런데도 네가 베타라고 믿고 있었다면 넌 머리가 어떻게 된 거든가 아니면 모자란 거야. 내가 틀렸어?”
거침없이 험한 말을 쏟아 낸 남자가 어서 반박해 보라는 듯 무서운 시선으로 코이를 바라보았다. 코이는 이 남자가 왜 이렇게까지 화를 내는 건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내가 꼭 극오메가여야 할 이유라도 있는 걸까?
말없이 그를 보기만 하자 한동안 코이를 노려보던 남자가 갑자기 후, 한숨을 내쉬었다. 돌연한 변화에 멈칫한 코이에게 그는 다소 누그러진 태도로 입을 열었다.
“네가 날 못 믿는다고 하면 알았어. 그럴 수도 있지.”
곧이어 남자가 자리에서 일어섰다. 놀란 코이가 바라보자 남자는 그를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잘 지내, 이제 다시 만날 일은 없겠지만. 어쨌든 반가웠어.”
그는 미련 없이 돌아섰다. 갑자기 코이의 심장이 덜컹 내려앉았다. 그를 그냥 보내면 안 될 것 같았다. 처음 느꼈던 기묘한 친밀함이 갑작스레 허망함으로 다가왔다. 긴 코트를 입은 은발의 남자가 멀어질수록 코이는 안절부절못했다. 자신도 모르게 자리에서 일어난 코이는 황급히 그의 뒤를 쫓았다. 머릿속에는 그를 잡아야 한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저기!”
절박하게 소리친 코이가 손을 뻗었다. 거의 동시에 팔을 붙잡은 그는 돌아본 남자의 얼굴을 바라보며 다급히 말했다.
“저, 저는 냄새를 맡지 못해요.”
남자의 눈이 놀란 듯 커졌다. 코이가 계속해서 말을 이었다.
“어릴 적에 머리를 다쳐서 그 뒤로 냄새를 잘 맡지 못하게 됐어요. 그래서 당신의 향기도 전혀 느끼지 못했어요. 제게서 어떤 향을 느껴 본 적도 없어요…….”
쏟아 내듯 말한 코이가 숨을 몰아쉬었다. 남자는 한동안 코이의 얼굴을 바라보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
둘은 아무 말 없이 마주 앉아 서로를 보기만 했다. 코이는 쩔쩔매며 눈치를 봤고, 엔젤은 심각한 표정으로 팔짱을 낀 채 그를 관찰했다.
후, 먼저 경계를 푼 건 상대쪽이었다. 남자는 아직 뜨거운 커피에 각설탕을 다섯 개나 넣은 뒤 입으로 가져갔다. 코이는 그가 에스프레소 쿼드러플(Quadruple)을 주문하는 걸 봤기 때문에 이번에는 그다지 놀라지 않았다.
“그러니까.”
찻잔을 내려놓은 뒤 남자가 말문을 열었다.
“넌 지금까지 어떤 페로몬 향도 맡아 본 적이 없단 말이지? 네가 아니라 다른 사람 것도?”
“네.”
코이가 고개를 끄덕이자 다시 생각에 잠긴 듯 턱을 쓰다듬었던 남자가 좋아, 하고 말했다. 이내 몸을 일으킨 그는 코이가 급히 일어서려 하자 한 손을 들어 제지했다.
“넌 기다려. 곧 돌아올 테니까.”
단호한 명령에 코이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왠지 그가 코이에게 거짓말을 하고 달아나지는 않을 거라는 믿음이 생겼다.
엉거주춤 다시 자리에 앉은 코이는 초조해하며 그를 기다렸다. ‘곧’이라는 말과는 달리 남자는 좀처럼 나타나질 않았다.
설마, 속은 걸까?
의심이 확신으로 굳어질 즈음 남자가 돌아왔다. 당당하게 얇은 코트 자락을 펄럭이며 걸어오는, 늘씬하게 키가 큰 남자를 확인하는 순간 코이는 무심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말았다.
“내가 도망이라도 간 줄 알았어?”
자리에 앉자마자 남자가 한 말에 코이는 민망해져 얼굴을 붉혔다. 하지만 남자는 관심 없다는 듯이 들고 온 물건을 테이블 위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이걸 파는 데가 잘 없어서 말이지. 겨우 샀네.”
남자가 가져온 것은 캔이었다. 처음 보는 캔의 라벨을 코이가 의아해하며 보는데, 주머니에서 따개를 꺼낸 그가 캔과 함께 그것을 코이 쪽으로 밀어냈다. 얼떨결에 두 개를 각기 손에 쥔 코이에게 그는 턱짓을 하며 명령했다.
“그걸 따 봐. 걱정 마, 그냥 음식일 뿐이니까.”
코이는 머뭇거리다 곧 그가 시키는 대로 캔을 땄다. 캔 안에는 생선이 들어 있었다. 고개를 들자 잔뜩 얼굴을 일그러뜨린 남자가 의자에 등을 바짝 붙이고 최대한 멀찍이 떨어져서 입을 열었다.
“냄새 맡아 봐, 가까이해서.”
고개를 갸우뚱했던 코이는 이번에도 그의 말을 따라 캔을 코로 가져갔다. 뭔가 약하게 불쾌한 냄새가 나는 듯도 했지만 못 견딜 정도는 아니었다. 보란 듯이 코를 벌름거리며 연거푸 냄새를 맡았던 코이가 얼굴을 들자 남자가 물었다.
“어때?”
코이는 잔뜩 일그러진 그의 얼굴을 보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조금 안 좋은 냄새가 나는 거 같기도 한데 잘 모르겠어요. 이게 뭔가요?”
“청어야.”
대답을 하자마자 남자가 손을 들었다. 선뜻 다가왔던 직원이 순간 멈칫하자 남자는 코를 쥔 채 코이가 들고 있는 캔을 가리켰다.
“좀 버려 줘요. 고마워요.”
직원은 아무 말 없이 캔을 들고 돌아섰으나 발걸음은 마치 경보라도 하듯 빨라졌다. 여전히 어리둥절해하는 코이를 이리저리 살펴본 남자가 슬그머니 코에서 손을 뗐다. 아직도 주변에 남아 있는 냄새를 확인한 그는 오만상을 찡그리더니 작게 욕설을 뱉었다.
“나가서 얘기하자.”
먼저 일어선 남자가 코이의 팔을 잡아 끌어당겼다. 황급히 일어난 코이는 왠지 모를 안도감을 느끼며 그의 뒤를 따라 건물을 나갔다. 얼마간 떨어진 거리에 멈춰 선 남자는 크게 심호흡을 하더니 그제야 얼굴을 펴고 코이를 돌아보았다.
“날 속이려는 놈들이 하도 많아서 말이지.”
그에게서는 아까의 공격성이 완전히 사라져 있었다. 코이가 뭐라고 말할 틈도 없이 그가 입을 열었다.
“미안해, 아깐 내가 말이 심했어.”
순순히 사과하는 그를 보고 코이는 깜짝 놀랐다. 남자의 말투엔 여전히 다정함이나 부드러움이라고는 전혀 없었으나 아까처럼 상대를 비난하며 몰아세우려는 느낌도 존재하지 않았다. 평온한 음성으로 그는 말을 계속했다.
“그런 이유면 착각하는 것도 당연하지. 우린, 그래…… 종을 알아내는 게 쉽지 않으니까.”
뒷말은 혼잣말처럼 낮게 흘러나왔다. 코이는 잠자코 그를 바라보다 용기를 내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기, 아까 그 얘기는…… 정말인가요? 제가, 그러니까…….”
“나와 동류냐고? 맞아.”
그는 너무나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검사로도 나오지 않는다면서 어떻게 저렇게 자신만만할까? 코이의 생각을 들여다본 것처럼 그는 말을 이었다.
“말했잖아? 우린 서로를 알아볼 수 있다고. 넌 아냐? 날 보면서 아무 느낌도 오지 않아?”
아까와는 비교도 되지 않을 정도로 조심스럽게 그가 물었다. 코이에게 장애가 있다는 걸 확인한 뒤로 그의 태도는 눈에 띄게 달라졌다. 코이는 안도감을 느끼며 솔직하게 대답했다.
“저, 저도…… 느꼈어요. 아까 당신이 날 봤을 때, 왠지 편안하고 친숙한 감정이…….”
그러자 남자의 입가가 풀어지며 서서히 미소가 번져 갔다. 보석처럼 반짝이는 초록 눈동자와 부드럽게 휘어지는 입꼬리에 코이는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그는 너무나 아름다워 한편으로는 성스러움마저 느끼게 했다.
멍하니 서 있는 코이에게 그가 먼저 손을 내밀었다. 머뭇거리다 그것을 맞잡자 남자는 가볍게 악수를 하며 코이의 손을 꼭 쥐었다.
“만나서 반가워.”
“……저도요.”
서로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데도 끈끈한 유대감이 둘 사이에 맴돌았다. 코이는 벅찬 감동을 느끼며 입을 열었다.
“전 코너 나일즈, 코이라고 해요. 당신은…… 저, 이름을 물어봐도 될까요?”
조심스러운 질문에 그는 입을 열었다. 속삭이듯 낮은 음성이 흘러나왔다.
“남들은 모두 날 엔젤이라고 불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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