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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아, 하아.
코이는 숨을 헐떡거리며 이마의 땀을 훔쳤다. 아무리 찾아도 애슐리는 보이지 않았다. 그의 집을 샅샅이 뒤지고 사무실도 찾아봤지만 허사였다. 혹시나 하고 코이가 살던 셋집도 가 봤으나 텅 빈 채였다. 결국 어둠이 깔린 거리에서 코이는 넋을 잃고 선 채 막막한 기분으로 서 있었다.
대체 어딜 간 거지.
더는 떠오르는 게 없었다. 지끈거리는 머리를 감싸는데, 갑자기 휴대 전화의 진동이 느껴졌다. 황급히 발신자를 확인한 그는 한숨을 내쉬고 통화를 연결했다.
- 무슨 일이니? 전화했었지?
버니스였다. 코이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하고 나서 대충 애슐리가 페로몬 발작을 일으켰는데 행방을 알 수가 없다는 말을 한 뒤에 재빨리 덧붙였다.
“집에도 가 봤는데 없었어요. 도어맨이 들어오는 건 봤다는데 아무리 뒤져도 없어서…… 그 사람이 안 본 새 다시 나간 것 같은…….”
- 옷장은 확인했니?
불쑥 버니스가 물었다. 코이는 말을 하다 말고 멈칫했다.
“옷장이요?”
- 그래. 드레스룸 안의 벽장.
버니스는 전혀 동요하지 않고 평소처럼 사무적인 음성으로 덧붙였다.
- 주니어는 거기에 있을 거야.
곧 전화가 끊어지고, 잠시 멍하니 서 있던 코이는 뒤늦게 정신을 차리고 황급히 왔던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애쉬는 진심으로 널 사랑하는 게 아냐.〉
달리는 와중에도 머릿속에는 에리얼의 말이 떠올랐다.
〈그렇게 강하게 부정하는 이유가 뭐겠어? 왜 네가 극오메가라는 걸 인정하지 않는지, 답이 나오지 않아? 네가 자신의 우위에 있는 걸 견딜 수 없는 거야.〉
〈애쉬는 줄곧 위에서 널 내려다보고 있었으니까.〉
〈그런 감정을 사랑이라고 말할 수 있어?〉
정신없이 달려가던 발걸음이 점차 느려졌다. 길 한복판에 서서 숨을 헐떡이며 코이는 잠시 갈등했으나 곧 고개를 내젓고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지금은 애슐리를 찾는 게 먼저다. 생각은 그 뒤에 하자.
애쉬가 원하는 게 그런 거라면…….
저 멀리 보이는 낯익은 건물을 올려다보며 코이는 생각했다.
얼마든지 그렇게 해 줄 수 있어.
그는 이를 악물고 건물로 뛰어들어 갔다. 도어맨이 놀라 그를 보았으나 아랑곳하지 않고 엘리베이터까지 직진으로 넓은 홀을 가로질렀다.
그러니까, 내게서 달아나지만 말아 줘.
*
“하아, 하아.”
간신히 엘리베이터에서 내려섰을 때, 코이는 넘어갈 것처럼 가쁜 숨을 몰아쉬며 휘청거리고 있었다. 현관의 이중문을 지나 안으로 들어서자 무거운 적막감이 일시에 들이닥쳤다. 코이는 심호흡을 한 뒤 발을 떼 2층으로 향했다. 지금까지와 달리 느려진 걸음으로 침실을 향해 걷는 동안 심장은 가라앉기는커녕 더 요동치며 불안하게 가슴을 두드려 댔다.
침실의 문을 열자 아까와 마찬가지로 휑한 실내가 시야에 들어왔다. 그는 그대로 방을 가로질러 드레스룸으로 향했다. 연결 된 방의 문을 열었지만 마찬가지로 그곳엔 아무도 없었다. 여기까지는 아까와 같았다.
하지만 이번엔 다른 것이 느껴졌다. 가만히 그 자리에 서서 신경을 곤두세우자 등줄기가 오싹하게 떨리며 작게 오한이 일어났다.
여기 있어.
코이는 본능적으로 알아챘다. 냄새를 맡을 수는 없지만 그의 온몸이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바로 애슐리의 페로몬에.
후우, 다시금 깊은숨을 들이켠 후 그는 발을 내디뎠다. 한 발, 또 한 발 다가갈수록 그것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마침내 벽장의 손잡이를 잡고 힘껏 밀었을 때, 코이는 그만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애슐리는 거기에 있었다. 버니스가 말한 대로, 벽장 안에 혼자서.
“애…….”
멈칫했던 코이가 황급히 그를 부르며 손을 뻗었을 때, 문득 다른 것이 시야에 들어왔다. 애슐리의 주변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이 뭔지 알아챈 순간 코이는 그대로 모든 움직임을 멈춰 버렸다.
동부 최고의 변호사,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한이라는 거구의 남자는 볼품없는 인형에 둘러싸여 의식을 잃고 있었다. 누가 봐도 싸구려에 못생긴, 돈과 권력의 절정에 오른 남자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인형들. 그리고 그가 소중히 안고 잠든 분홍색 코끼리 인형을 본 순간 코이는 그만 왈칵 눈물이 솟고 말았다.
앨리핑.
〈너한테 주고 싶어, 가져가.〉
〈이거, 코끼리였어?〉
〈자, 이건 개미핥기야.〉
자신이 주었던 인형들이 모두 거기에 있었다. 분명히 버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텅 비어 있던 그날의 대저택이 기억 속에 되살아났다. 이제 모든 게 끝났다고, 자신은 혼자가 되었다고 주저앉아 울었던 그때.
하지만 틀렸다. 혼자인 건 코이만이 아니었다. 그리고 애슐리를 이렇게 만든 건 자신이었다.
“애쉬.”
코이는 울음이 치밀어 꽉 막힌 음성으로 간신히 속삭였다. 천천히 몸을 숙여 떨리는 손으로 애슐리의 어깨를 붙잡은 그는 힘껏 눈물을 참으며 입을 열었다.
“왜 혼자 여기서 이러고 있어…….”
애슐리는 여전히 눈을 뜨지 않았다. 무심한 말투로 애슐리가 여기 있을 거라고 했던 버니스의 말이 생각났다. 잠이 든 건지 의식을 잃은 건지 알 수 없었으나 한 가지만은 확실했다. 이런 일이 생길 때마다 애슐리는 여기서 혼자 이렇게 남아 있었을 거라는 점.
황급히 눈물을 훔친 코이는 서둘러 버니스에게 전화를 했다. 그녀라면 알고 있을 것이다.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 내버려 둬.
전화를 받은 그녀는 간단히 대답했다.
- 페로몬에 취해서 그런 거야. 시간이 지나면 의식이 돌아올 거야.
그게 언제인 걸까? 불안해하는 코이에게 버니스가 덧붙였다.
- 주니어에게 묻고 싶은 게 있다면 질문해 보렴. 지금이라면 대답해 줄 테니.
전화를 끊은 코이는 다시 애슐리를 내려다보았다. 여전히 그는 의식이 없었다. 코이는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그의 이름을 불렀다.
“애쉬.”
으흠, 헛기침을 하고 잔뜩 가라앉아 있던 목소리를 좀 더 키워 말을 했다.
“애쉬, 나야. 코이야.”
자꾸만 목소리가 떨려 그는 중간에 심호흡을 해야 했다.
“눈 좀 떠 봐.”
애쉬, 하고 다시 부르며 슬며시 어깨를 흔들자 몇 초의 공백을 사이에 두고 기적처럼 애슐리가 눈을 떴다. 반쯤 들어 올린 눈꺼풀을 천천히 깜박이는 그의 모습을 코이는 숨을 죽이고 지켜보았다.
“……코이?”
취한 것처럼 나른한 음성으로 애슐리가 중얼거렸다. 코이는 또다시 눈물이 나려는 것을 참고 황급히 고개를 끄덕였다.
“응, 나야. 정신이 들어?”
서둘러 묻자 그는 잠시 대답이 없더니 낮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코이가 왔어……? 정말로?”
“응, 나 여기 있어. 정말로 왔어.”
코이는 서둘러 애슐리의 손을 잡아 자신의 뺨으로 가져갔다. 안고 있던 인형을 툭 떨어뜨린 애슐리가 천천히 시선을 들어 올렸다. 눈이 마주치고, 둘은 서로를 마주 보았다. 한동안 코이를 바라보던 애슐리의 얼굴에 서서히 미소가 피어올랐다.
“……코이, 왔구나.”
애슐리가 팔을 뻗고, 코이는 즉시 몸을 숙여 그를 끌어안았다. 하아, 깊이 숨을 들이켠 애슐리가 넋두리하듯 중얼거렸다.
“기다렸어, 계속.”
“알아, 미안해.”
코이가 재빨리 사과하자 애슐리는 여전히 몽롱한 음성으로 말을 이었다.
“이상한 꿈을 꿨어…… 내가 기차역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네가 오질 않는 거야. 기다려도, 계속 기다려도…….”
코이는 눈을 크게 뜨고 굳어 버렸다. 애슐리는 코이의 허리를 끌어안은 채 눈을 감고 계속해서 속삭였다.
“이상하지, 네가 날 버릴 리가 없는데. 이렇게 왔잖아, 그렇지? 이제 우리 둘이 떠나는 거지? 단둘이서.”
애슐리가 물었으나 코이는 선뜻 대답하지 못했다. 머뭇거리는 그의 반응에 이상함을 느꼈는지 애슐리가 고개를 들었다.
“코이?”
여전히 몽롱한 그의 눈동자를 확인한 순간 코이는 깨달았다. 버니스가 했던 말과 함께.
기억 장애.
지금 애슐리는 착각하고 있다. 그는 기차역에서 코이를 기다리고 있었고, 마침내 둘이 만나게 되었다고. 10여 년 전의 그날로 애슐리는 몇 번이나 되돌아갔을까. 기다리고, 기다리고, 또 기다리고.
오지 않는 코이만을 기다리며.
“……그래, 맞아.”
코이는 간신히 대답했다.
“늦어서 미안해, 애쉬.”
이렇게 늦게 와서 미안해.
널 버려서 미안해.
버니스가 말한 게 이것이었다. 페로몬에 취할 때마다 이렇게 기억의 혼란을 겪는다면 깨어났을 때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눈을 뜨고 나면 애슐리는 이 순간을 기억하지 못할지도 모른다. 아니, 기억하지 못하는 건 이것만이 아니다. 그보다 더 많은 것을 잃어버리겠지. 매번, 매순간마다.
한결같이 그날로 되돌아가며.
코이는 입술을 물었다 놓고 심호흡을 했다. 떨리는 손으로 애슐리의 뺨을 감싼 그는 고개를 기울여 그에게 키스를 했다. 차가운 입술이 맞닿았다. 애슐리가 눈을 감더니 다시 코이의 허리를 안고 품으로 파고들었다. 코이는 그런 그의 머리를 끌어안고 가만히 자신을 다독거렸다.
“애쉬, 물어볼 게 있어.”
지금이라면 애슐리는 솔직히 말해 줄 거야.
코이는 숨을 들이켰다 내쉬며 어렵게 말을 꺼냈다.
“내가 극오메가면 안 되는 이유가 뭐야?”
잔뜩 긴장하고 대답을 기다리는데, 눈을 감고 잠든 것처럼 규칙적인 숨을 내쉬던 애슐리가 입을 열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니까.”
“어째서?”
졸린 것처럼 가라앉은 음성에 코이는 서둘러 물었다.
“앨은 네가 내 우위에 서고 싶어서 부정하는 거래. 아니지?”
“뭐라고?”
여전히 나른한 말투로 애슐리는 어이가 없다는 듯이 대답했다.
“코이, 난 단 한 번도 네 우위에 선 적이 없어.”
그럼 왜.
코이는 참지 못하고 그를 다그쳤다.
“솔직히 말해 줘, 애쉬. 넌 뭘 두려워하고 있는 거야?”
심장이 두근거리며 뛰어 대는 게 느껴졌다. 애슐리가 왜냐면, 하고 속삭이듯 말했다.
“네가 극오메가라면, 일부러 페로몬 향기를 내지 않는 거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