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에오포니아의 황성이 있는 대도시.. 에른하이의 가장 큰 신정에서 이번 마물퇴치를 위해 여러신관들과 함께 크로멜성으로 온 하이 프리스트 가네샤는 깜짝 놀란 얼굴을 했다. 아름다운 귀족숙녀의 몸으로 위험한 전쟁터까지 가신들을 직접 이끌고 온 라이에이드가의 영애 에리카가 말해준 것때문에 새하얀 신관복이 전신에 감도는 긴장으로 흠칫, 놀랄만큼 평소의 진중함을 잃고 흥분한 가네샤가 서둘러 말했다.
"어,어찌 그가 마족이라고 확신할수 있겠습니까. 에리카님. 증거도 없이 레오포드가의 아르휜님이 사악한 마족과 손을 잡았다고 몰아부칠 수는 없습니다."
"사악한 마족이 인간과 더불어 살아갈수 없다는건 신관님들도 잘 아시지 않나요? 마족은 얼마안가 스스로 그 사악한 본성을 드러낼 거예요. 제가 궁금한것은 그때 여기 계신 신관님들의 힘만으로 그 마족을 소멸시킬수 있는지 하는 겁니다."
에리카의 말에 가네샤와 마찬가지로 놀란 얼굴을 숨기지 못하고 있는 신관들중 하나가 입을 열었다.
"인간세상에 나온 마족을 소멸하는 일은 신관들의 당연한 의무겠지만.. 만약 그 마족이 우리들의 생각보다 강하다면 완벽하게 소멸하기는 힘들겁니다. 단, 마족이 봉인진에 잡혀있는 동안에 공격한다면 어느정도 승산이 있겠지요. 그러기위해서는 마법사님들과 다른 분들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마족.마족이라... 크로멜성을 끊임없이 공격하는 마물들의 수가 전혀 줄지 않고 있는것은 그 뒤에 마물들을 조정하는 뭔가가 있기 때문이라는 가설은 이미 군사회의때마다 빈번히 나온 사안이지 않았던가. 실마리가 잡히지 않았던건 왜 공격하는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마물들을 조정하는가, 그리고 인간이 어떻게 마물들을 조정할수가 있는가, 라는것.. 그러나, 마족이라면, 인간을 공격하고 더러운 마물을 뒤에서 조정하는게 사악한 마족이라면, ..... 신이시여. 신의 자녀들을 악으로부터 구원하소서. 신관의 말에 뒤이어 가네샤가 침착을 되찾고 말했다.
"하지만 도움을 얻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그가 마족이라는 사실을 증명하는게 우선입니다. 에리카님. 아니길 말하지만 진실은 어느곳에서 찾아올지 알수 없는것. 우리도 대비책을 마련해 두도록 노력하겠습니다."
뭔가 생각해둔게 있는듯 에리카의 입가에 천천히 차디찬 미소가 번졌다.
"염려하지 마세요. 프리스트 가네샤님. 제가 말씀드리지 않았습니까. 사악한 마족은 그 스스로 본성을 드러낼 거라고 말이에요."
아르휜... 기대해도 좋을거야. 당신도 그 마족도 펠릭스도, 철저하게 부서버릴테니까.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도록!!
구불거리는 푸른 머리카락을 어깨근처에서 천으로 질끈 동여맨 프란은 그 얄미운 입만 가만히 놔둔다면 꽤 분위기있는 미남이다. 거기다 마족 아시리안은 푸른빛이 도는 검은 머리카락을 허리아래까지 길게 휘날리며 차갑고 오만해보이는 카리스마까지 더해져서 지나치는 누구라도 한번씩 돌아볼법한 신비한 외모의 소유자. 물론 그 속이 예민하고 신경질적인데다가 화만 버럭내는 쪼잔한 변태라는건 나만 아는 사실.
내면이 외모에는 전혀 드러나지 않아서인지 외모야 잘생긴 귀족이지만 실상은 얄미운 말만 일삼는 왕푼수 프란과 아름다운 미모로 시종일관 잘난척 굴지만 실제모습은 화나면 머리카락괴물이나 휘둘러대는 변태마족인 아시리안.. 그리고 그들과 함께 다니는 죄로 내게 역시 사람들의 시선이 민망할 정도로 와장창 쏟아지고 있었다. 식사도중이라 식판에서 스프를 떠서 입가에 가져가다가 우리를 보고 수저에서 스프가 흘러내리는데도 못보고 멍하게 보는 사람까지 있었다.
원래 귀족들은 성안에서 식사를 하지만 그 불편한 예의범절에 대해서 유감스럽게도 전혀 기억에 없는 나로서는 배식을 받는 병사들 틈에 껴서 식사를 하는게 오히려 더 편했다. 아시리안은 마족이라 제외하고 친구따라 강남 온 프란과 내가 식판에 빵과 스튜처럼 생긴 멀건 죽을 배급받아 앉을 자리를 둘러보고 있을때 어딘가에서 내이름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어이, 아르휜!!"
엉? 그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병사들 틈에서 단연 돋보이는 금안의 눈동자가 햇볕때문에 유달리 반짝반짝 빛을 내며 나를 손짓으로 부르는게 보였다. 화..황금벌레...아니, 야나카황자님??
병사들과 똑같은 식판을 들고 아이처럼 즐겁게 웃고있는 남자쪽으로 다가가 그쪽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와 프란은 야나카황자옆에 앉았지만 아시리안은 팔짱을 끼고 내뒤에 서서 나를 꽤 불편하게 만들었다.
[저기..아시리안, 앉지그래?]
[됐으니 신경쓰지마.]
[하지만... ..]
[ 그 황.금.벌.레.하고 얘기나 나누시지. 아르?]
으휴우우....쪼.잔.해. 아시리안.... 이 잘난척 대마왕, 왕거만덩어리. ...
나를 제외한 모든 인간들을 완전 투명인간 취급하는 아시리안에게 어느정도 적응이 된 프란은 아시리안이 서있어도 아무말도 하지 않았지만 야나카황자는 앉으라고 서글서글 웃으며 권했다가 대답없고 쳐다도 안보는 아시리안에게 무안을 당해야만 했다. 왕자라면서 무시당하는게 기분나쁠텐데..., 전혀 표도 안내고 여유를 잃지 않는걸 보면 보이는것보다 더 대단한 사람일지도 몰라. 그렇게 생각하고 스튜를 떠서 입안으로 가져가는데 야나카황자가 묘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있는게 보였다. 에? 하고 눈을 의아하게 뜨자 묘한 황금빛눈동자가 쿡, 웃는다.
"자네들 형제는 참 이상하군. 펠릭스도 평민의 음식을 아무렇지도 않게 먹어서 나를 꽤 감탄하게 하던데.. 아르휜, 자네도 이 맛없는걸 자진해서 먹다니 말이야."
나야.. 그냥 이게 편하니까. 그리고 다른 사람들도 모두 아무렇지도 않게 먹는데..., 귀족음식, 평민음식 가려있는건가.뭐.. .. 사람은 다 똑같은걸. 뭔가 말을 걸고있는것 같긴 한데 어떤뜻인지는 파악을 할수가 없어서 애매한 표정을 짓는사이 대답은 옆에 있던 프란이 했다.
"그러시는 야나카황자께서도 맛없는 식사를 함께 드시고 계시지 않습니까?"
대답이 아닌 질문처럼도 보이는 의뭉스런 말의 요지는 황자씩이나 되서 병사들의 음식을 함께 먹는데는 다 이유가 있겠지? 이런 뜻같고.. 또 조사하면 다 나와. 이런 시선이다. 프란의 말에 야나카황자가 즐거운듯이 웃음을 터트리며 입을 열었다.
"나는 다르지. 프란시스 하워드, 그대의 짐자가처럼 여러모로 점수를 따야하는 입장이기 때문이랄까"
점수를 따? 누구에게?
"그건 참 이상하군요. 점수를 따시려면 귀족들과 식사를 하시는게 더 유리하지 않으시겠습니까?"
"글쎄, 지혜로운 왕을 만드는건 귀족이 아니라 백성이라고 생각하네만?"
아...또 저눈이다. 번쩍번쩍 빛을 내는 황금빛 눈동자이 진지한 시선이 프란을 향했다. 그때 펠릭스형님에게 휼룡한 인재가 어쩌고 하면서 보냈던 시선과 같은건, 아니 조금 다른것 같기도 하고.. 같은것도 같고 다른것도 같은 시선의 의미.....
그리고 그때 야나카황자님과 함께 걸어가던 펠릭스형님의 뒷모습에서 원치 않았지만 보게된 기억의 편린.. ....까만 어둠속에서 붉게 휘날리는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의 뒷모습을 쫒던 내가 아닌 아르휜의 두눈동자... ......심장이 부서질것 같던 격통, ....울부짖는 울음소리.. 그건 아르휜의 기억..내가 아닌 아르휜의 감정....
아르휜에게 펠릭스형님은 어떤 의미였을까, 왜 뒷모습을 바라보면서 그렇게 아파했을까...를 생각하며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흐트러뜨리는 바람을 쫒아 시선을 들자 눈이 부실만큼 푸른 하늘이 아득하게 멀리 보였다. 그리고 까마득히 높은 곳에서 빙글빙글 맴도는 새한마리도 보이고.. 새한마리,새두마리,새세마리.....어???, 어라라?
순식간에 불어나는 새들을 보고 저게 어디서 갑자기 날아온 새떼들이지..라고 생각하고 있는 귓가에 누군가가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와,와이번들이다!!!!!!!!!!!!!!!!"
"와이번이 습격해온다!!!!!!!!!!!!!!!!!!!!!"
습격=공격. 새떼가 공격을 한다고??? 어안이 벙벙할만큼 기하급수적으로 순식간에 불어나 하늘을 깜깜하게 채운 새떼들이 곧 우리가 있는 쪽으로 빠른속도로 하강하는것을 보며 나는 입을 크게 벌렸다. 희번득한 눈알과 날카로운 발톱.. 그리고 귀를 양손으로 막고 싶을 만큼 째지는 끼아아아아아- 하는 기괴한 비명소리들을 지르며 벌린 입엔 예리해보이는 날카로운 이빨이 번득인다.
날개가 달렸다고 새라고 할수는 없을만큼 흉폭해보이는 거대한 와이번들이 식사중이던 병사들이 허둥지둥 대열을 정열하기도전 마구잡이로 공격하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날카로운 발톱으로 움켜쥐어 소름끼치는 이빨로 목을 물어뜯고 도망치는 병사의 가슴을 찢어 내장을 끄집어내고 새로운 희생자를 찾아 희번득한 눈알을 빛내며 주위를 두리번 거렸다..
평화로운 식사시간에서 와이번들의 서식지로 변해 아수라장으로 변한 성의 앞마당.. 인간과 커다란 새떼들사이의 대혈투를 얼이빠져 보고있는 귓가에 비명소리들을 뚫고 누군가가 내지르는 커다란 소리가 들려왔다.
"오크,오크들이 성문을 부수고 있다아!!!!!!!!!!!!!"
"성문을!!! 성문을 지켜라!!!!!!!!!!!"
감히 상상조차 해보지 않았던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파괴와 살육의 현장에서 눈을 감고 싶었지만 눈이 감기지가 않는다. 대신 심장이 크게 요동치는 소리만이 비명소리들마저 사라진 귓가에 이명처럼 들려왔다. 악몽을 꾸고있는것만 같아서 온몸을 꼼짝달싹 할 수가 없다.
쿵....쿵....쿵....쿵..................속에서 망치질하듯 뭔가를 깨부수는 소리......두근.........두근............울리는 커다란 심장소리........이건....뭐지?......뭐........지?...............싫............어.....................싫..................어.....................싫어!!!!!!!!!!!!!!!!
[아무리 하찮은 존재라도 살기위해 버둥거리고 누구라도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너는 말했지..]
........아...........아시리안? 전음으로 들리는 말에 그제야 나는 와이번들이 내게는 달려들지 않고 있다는것을 알아챘다. 아니, 감히 아시리안이 있는쪽으론 덤벼들지 못하고 있는것을.... 그러나 아시리안과 내가 있는 바로 몇미터밖에서도 와이번의 발톱이 병사의 몸통을 찢고 있었다. 그 아우성속에서 검을 빼들고 싸우는 야나카황자와 프란의 모습이 보였다.
[지금 이순간 살 권리를 가진것은 어느쪽이냐. 아르.. 내게는 인간이나 와이번이나 똑같아. 그러니.. 너를 위해서 인간들을 도와달라고 말해. 네부탁이라면 인간들의 편에 서주지.]
.......아시리안..왜, 어째서.....
두발을 딛고 있는 지층이 마치 지진이라도 일어난 것처럼 크게 흔들린다. 싫어,싫어,싫어..라고 외치면서도 무엇을 향해서인지 알수가 없다. 단지 알수 있는건 두려울정도로 혼란스럽다는것.. 쿵.쿵..거리는 게 점점 더 커져갈수록 .... .... 견딜수 없는 혼돈이 더 커져간다는것..
한덩어리로 얽혀 와이번과 싸우는 사람들의 무리들중에서 내시야에 붉은 머리카락을 휘날리는 누군가의 모습이 들어왔다. 차갑고 짜증난다는 표정으로 누군가의 피인지 모를 핏물이 뚝뚝 떨어지는 붉은 검을 휘두르는 ...........펠릭스.................나의..............나........의.............형.....
[너를 위해서 도와달라고 내게 부탁해. 아르..]
..........나를 위해서? 아시리안.. 네가 말하는 '나'는 누구지? 아나이스야.. 아니면.. 하은준이야.. 아니면.. 아르휜이야..?
한치의 흔들림도 없이 와이번들의 공격을 막고는 있지만 몇 마리인지 모를 와이번들에게 둘러싸여 있어서 그 모습은 위태로워보이기만 했다. 앞에서 달려드는 와이번의 목을 쳐내는 사이 그의 뒤에선 다른 와이번을 공격을 하려한다. 발톱에 금방이라도 찢겨나가버릴것 같은 불안감에 심장이 걷잡을수 없이 쿵쾅거린다. 머리가 깨질것처럼 아파왔다.
“...............도......와..줘........펠릭스를.....그를.......도와줘...”
아시리안은 정신을 놓아버린 아르를 품에 안은채 와이번 세 마리와 싸우고있는 펠릭스쪽을 무시무시한 시선으로 노려보았다.
단지 신경쓰이는 귀찮은 벌레라고만 생각했는데.. 이제 보니 그 이상이셨군.
[펠릭스]라는 이름의 인간을 특별하게 보는건 멍청한 꼬마녀석이 집착하고 있는 가족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허용하는건 거기까지 였다. 그런데....[펠릭스를...그를 위해서]란 말이냐. 아르? 감히..내게 그따위 말이나 해놓고 태평하게 기절인가...
오만한 다크블루의 눈빛이 숨길수 없는 분노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네가 싫다고 해도 이미 넌 내것이다. 이 내가 아닌 다른 곳을 쳐다보는건 용서할수 없어. 용서할수 없단 말이다!!!!!!
짜증과 분노로 불타오르는 시선을 하늘로 돌린 아시리안이 와이번떼들에게로 시선을 두었다.
[하찮은 것들이 감히 누구앞에서, 썩 꺼져라!!!!!]
펠릭스는 미친듯이 달려들다가 갑자기 하늘로 솟구쳐오르는 자신을 둘러싼 와이번들을 보고 의아해졌다.. 주위를 둘러보자 마치 공격하라는 명령을 받고 살육을 자행하던 와이번떼들에게 새로운 지령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일시에 공격을 멈춘 와이번들이 한꺼번에 허공으로 솟구쳐오르고 있었다. 누군가의 조종에의해 움직이고 있는것 같다. 마치..마법에 걸린 것처럼............마........법?!!!!!!!
펠릭스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크게 치켜뜨고 무참한 살육으로 피가 흐르는 현장에서 유일하게 호흡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서있는 한 존재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마법, 마법이라면... !!! 저자...인가..?
헬라이드시에서 사악한 마법에 걸려 공격해오던 언데드시체들을 단숨에 날려버릴만한 가공할 파괴력을 소유한자. 그리고 지금 펠릭스의 에상대로라면 와이번떼들의 정신을 조종해 물러가게 했을지 모를 검푸른 머리카락의 정체모를 사내는 지금 아르휜을 뒤에서 부축하듯 껴안고 있었다.
여태껏 이런 힘은 본적이 없었다. 기묘한 두려움으로 몸속이 떨리는 것같은 인정할 수 없는 느낌은 펠릭스가 처음 겪어보는 것이었다. ....당신의 정체는 뭐지? 도대체 정체가 뭐길래 이런 힘을 가질수가 있는가. 인간에게 이런 힘이 가당키나 한 일인가.....!!
창백한 얼굴로 기절한 아르휜을 소중한것을 보듯 부드럽고 기묘한 눈길로 내려다보던 아시리안이라는 남자가 펠릭스의 시선을 눈치챈듯 오만하게 시선을 들어 펠릭스를 바라보았다. 어두운 검은바다에 일렁거리는 푸른불꽃처럼 차갑고 거만한 시선에 가라앉아 일렁거리는 비웃음에 발끈할 여력을 찾지 못할만큼 몸이 흠칫, 굳은 펠릭스는 정신을 잃고 그에게 반쯤 안겨있다시피한 아르휜을 바라보았다.
........아르휜때문이라고... 아르휜때문에 한 거라고.. 그걸 말하고 있는건가. 저 자는...
누구에게도 주지 않는다는듯 조심스럽게 아르휜을 안아올리는 검푸른 머리카락의 존재에게서 간신히 시선을 거두며 펠릭스는 와이번에게 당했던 어깨의 상처가 새삼스럽게 욱씬욱씬 저려오는걸 느꼈다.
와이번과 오크들속에 섞여있는 처참한 병사들의 시체속에서 더 끔찍하고 소름끼치게 다가오는 진실... 스스로에게 단호하게 빗장을 걸어 감추고 차가운 증오로 위장했던 진실이 차디찬 가슴속에서 꿈틀거리듯 고통스런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아르휜은, 그녀석은....................내것이다, 내것이다............라고 그렇게 말하고 있는건가.. 저자는. 아니, 아르휜은 당신 것이 아니다. 아르휜은.. 그녀석은..............!!
무언가가 얼굴을 핥고 간지럽히는 이상한 기분에 눈을 뜨자 처음 눈에 보인건 핏빛으로 물든 창밖이었다. 흠칫, 놀라버린순간 그것은 저녁이 되기전 마지막 태양이 빛을 발하고 있기 때문이란걸 깨닫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얼굴을 간질이던 존재인것 같은 아시리안에게로 시선을 향했다.
“아시리안...?”
대답없이 내이마에 살짝 입술을 눌러오던 아시리안이 미끄러지듯 얼굴을 내려 관자놀이에 다시한번 키스를 하고 귓불에 다시 키스..
“저...아시리안?”
"나는 너의 부탁을 들어주었다.“
귓가에 가만히 속삭이는 말에 그제야 정신을 잃기전의 상황이 머릿속에 생생하게 떠올랐다. 난폭하게 공격하던 잔인한 와이번들의 공격.. 필사적으로 싸우던 사람들.. 그리고....무섭고 두려운 뭔가로부터 정신없이 도망치듯 ....마지막에 아시리안에게 했던 말... -도와줘...부탁해..펠릭스형을 도와줘...-라고..
“이번엔 네차례야.“
귓가에서 나직하게 속삭여지는 말에 가만히 고개를 끄덕이자 아시리안이 그제야 내얼굴을 바라보며 정면으로 시선을 응시해왔다. 내가 베고있는 배게를 사이에 두고 양손으로 침대를 짚은채인 아시리안에게서 검은 커튼처럼 머리카락이 아시리안과 내주변에 흘러내려 어둠에 사로잡혀있는데도 아시리안의 눈빛은 형형하게 빛나며 묘하게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그럼...같이 가자..아르.."
조용하고 나직하고 부드럽기까지 하지만 묘하게 협박하는것도 같은 목소리에 두려워져서..안돼..그건..그럴수 없어..라고 대답하기전에 먼저 시선을 피하는 내게서 대답을 알아챈건지 아시리안의 입술이 비웃듯이 비틀렸다.
“안된다고? 왜 안된다는거지?”
차가운 손이 시선을 돌리고 있는 뺨을 부드럽게 감싼다. 나를 감싸는 손은 부드럽기 짝이 없는데 나는 정작 겁에 질려있었다. 아시리안은 지금 내게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었으니까.
“ 그 붉은 머리카락을 가진 인간때문이냐? 펠릭스라는? 아니면 푸른 머리카락을 가진 남자라던지..?”
내게서 상체를 일으킨 아시리안이 시선을 내리깔고 나를 내려다보며 거부할수 없을만큼 조용한 목소리로 말했다.
“좋아, 그럼 너를 데리고 가는 대신 네 몸을 안겠다. 이것도 안된다고는 못하겠지?.”
화가 난것 같기도 하고 상처받은거 같기도 하고...아시리안의 저런 눈빛은 처음본다. 그때 숲속에서 아시리안이 산적들의 팔을 눈깜짝할새에 베어내고 그것 때문에 충격받아서 나도모르게 겁먹은 눈빛으로 바라봤을때도 이러지 않았었는데..왜..무엇 때문에 화가 난거지? ..나에게 화를 내고 있는거니까 나때문인것은 분명한데.. 이유를 알수가 없다. 내가..가지 않겠다고 해서..그래서 그래?
침대에 눕혀진 내몸에서 덥혀진 시트자락을 걷어내고 옷을 벗기는 손길에 단지 옷이 벗겨지는것 뿐인데도 화끈, 얼굴이 달아올라 내반응을 응시하는것도 같은 아시리안에게서 피하려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아시리안의 손에 단추가 모두 풀어진 상의 옷자락이 어깨가 훤히 드러나게 양쪽으로 벌려지는 순간 두려움때문인지.. 긴장인지 알수없게 가슴속이 부르르 떨려온다.
부드럽게 쓸어내리는 손에도 움찔 몸을 굳히는 내몸위에 천천히 덮어내리며 뜨거운 입술이 이마를 콧등을 눈꺼풀을 뺨을 가벼운 깃털이 스치듯 키스해왔다. 긴장을 풀어주려는듯한 가벼운 키스였지만 입술을 살짝 부딪치고 턱끝, 목, 쇄골, .. 아래로 아래로 내려갈때마다 심장은 걷잡을수 없는 긴장감으로 두근,두근,두근 떨려왔다.
"저런저런...아르. 가엾게도 겁탈당하는 숫처녀처럼 떨고있군? 아니, 강간당하는 소년 쪽이 맞는 표현이겠지..?"
초조한것도 같은 조급한 불꽃이 일렁거리는 눈빛과 달리 비틀린 말이 얼음처럼 차디차다.
“아시리안........”
결코 서두르지않고 침착하게 맨살갗을 여러번 쓰다듬는 아시리안의 손은 기묘한 열기를 품고있었고 입술이 살갗에 부딪쳐올때마다 델것처럼 뜨거워져서 나는 왜..하는 슬픈 마음과는 반대로 하악, 하는 뜨거운 숨을 바깥으로 토해냈다.
"두려움에 벌벌 떨어대는게 꽤 귀엽군. 이쪽의 맛은 어떤지 볼까."
뜨거움을 견디려 바스락거리는 시트를 양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내 허리를 한손으로 받쳐올려 허공으로 부웅 띄운 상체에 아시리안이 거머리처럼 달라붙어 붉은 돌기를 입에 물자 움찔, 몸을 떨고 상체를 비틀었다.
"시.......싫....................!!......하...ㅅ...으으.............시............싫어......."
배고픈 새끼사자처럼 물자마자 세게 빨아올려지는 느낌에 받쳐올려진 등허리쪽이 찌르르르 울린다. 그 느낌에서 벗어나려고 버둥거리자 몸을 쓰다듬던 다른 손으로 나머지 돌기를 잡아온다. 입속에서 빨려지던 돌기를 혀로 핥아올리며 반대쪽돌기를 벌주듯 세게 비트는 심술궂은 손에는 일부러 나를 괴롭히고 있다고밖에는 볼수없는 아시리안의 마음이 담겨있는 것 같다. 이런건 싫어...아시리안.......바스락거리는 시트를 꽉 움켜쥐던 손으로 아시리안의 어깨를 원망스럽게 붙잡았다.
"시..싫..어.......!!! .싫어...........이런건....시..싫다고.............아하.............ㅅ..!!..............."
집요하게 달라붙어 있는 거머리같은 아시리안의 입술에서 피하려고 진저리치듯 몸부림치자 떼내려는 손이 귀찮았는지 어느새 스멀스멀 길어진 머리카락들이 내양손목을 휘어잡아 머리위쪽으로 묶듯이 고정시켰다.
".....식사도중 방해하는건 예의가 아니지. 아르?"
“내가, 내가 왜 식사거리야!!!이..이 변태!!”
들어올린 허리를 쓸어올리는 손에 바르르 떨며 쏘아부치자 욕얻어먹은게 뭐가 좋다고 즐거운듯이 웃어댄다.
"반항하고 싶으면 좀 제대로 해봐. 아르. 그렇게 울것처럼 노려보면 더 심술부리고... 더 괴롭히고... 더........"
키스하고 싶어진다고..를 중얼거리며 아시리안이 입술을 맞춰온다. 차가운 목소리에 비해 울고싶을만큼 부드러운 키스다. 화가 나서 벌주고있으면서..괴롭히고 있으면서...다정하게 대하는건..반칙이야...반칙이라고..... ... 싫어....싫어...이런건...싫.............어.....
입술이 세게 빨려지고 벌려진 입속을 드나드는 혀에 막혀버린 목구멍으로 나오는 울음대신 감은 두눈에서 물기가 뺨을 타고 주르륵 흘러내렸다.
"......드디어 우는군. 내가 말하지 않았나. 내가 너를 괴롭히는 것처럼 굴면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서 얼마든지 괴롭혀주겠다고."
왜..........저렇게 차갑게 말을 하는지 왜.. 화를 내는 건지 알수가 없어서 나는 우느라 일그러진 눈으로 아시리안을 올려다보았다. 지금까지 화를 버럭버럭내고 온갖 짜증과 신경질은 다 부리고 나를 들들 볶긴 했어도 진심으로 화를 내고 있다..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적이 없었다. 아시리안은 한번도 인정하지 않았지만 여행을 함께 한뒤부터 언제나 친절했고 나를 많이 배려해줬고 지켜줬다는것을 나는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지금 푸른 불꽃이 타오르는 무시무시한 눈빛은 아시리안이 나를 상처입히려고 이런일을 하는것만 같아 가슴이 아팠다. 아니, 아시리안이 왜 화가났는지도 모르는 상태여서... 나 때문에 화가 난것 같긴 한데 왜 화를 내는지 모르겠어서.. ...더 슬퍼졌다. 이 안타까운 마음의 이름은 뭘까..
"인간의 몸은 허약하고 부드러워서 고통을 주기에 적절하지. 얼마든지 망가지고 부서뜨려도 죽이지 않는이상 치유가 가능하니 갖고 놀기에 그만한 장난감도 없고.. 일부러 인간을 사냥해 신을 닮았다고 오만을 떠는 한심한 인간을 무너뜨리는걸 유희로 생각하는 마족도 있다는걸 아나?... 약간의 고통을 주면 인간은 그 고통에 쉽게 굴복해 대단한 자존심을 스스로 짖밟고 기꺼이 노예로서의 본성에 충실해지니까. ......아르.....내가.....너를 그리 대하길 원해?.“
..이 서글프고 아픈 감정의 이름은 뭘까...뭐랄까.. 좋아한다는 말로 표현하기에 부족한것 같아.. 나를 괴롭히고 싶어서 이따위 말이나 해대는데도 ..나...아시리안이 너무 좋거든...
“하긴, 그동안 하찮은 인간인 너를 너무 말랑하게 대했어. 반성해야겠군. 너를 강제로 끌고갈까? 싫다고 해도 소용없다. 감히 싫다고? 건방지게 굴면 무릎꿇고 잘못했다고 빌때까지 벌을 주면 그뿐이야. 등가죽이 벗겨질만큼 채찍을 쳐주지. 따끔하게 호된꼴을 당하면 너따위는 쉽게 항복해버릴꺼다. 시험해보고싶나?“
머리위쪽으로 잡아올리듯 묶여진 손목을 놓아주지않은채 가슴팍을 여기저기 키스하고 돌아다니며 줄줄 쏟아내는 아시리안의 무시무시한 말을 듣고있자니 문득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왜 ... 왜 아시리안은 이렇게 화를 내고 있는걸까. 내가..가지 않게다고해서.. 같이 가지 않겠다고 해서?....왜 아시리안은 지금의 내가 하은준이라는것을 알면서...내게 함께 가자고 보채는 걸까..
-너를 위해서 인간들을 도와달라고 내게 말해-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던걸까..
[너를 위해서 인간의 편을 들어달라고 내게 부탁해. 아르..]
...왜 그런말을......왜...........나를 위해서....라는건 무슨 뜻...? 무슨..뜻이야..아시리안?
"저..저기.....아시리안.... 혹시... 나를...좋아..하는....거야..?“
말을 하면서도 에이, 설마 했다. 그래서 나는 아시리안이 버럭 소리를 지를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너따위 멍청한 놈을!! 이러면서....하지만.......어라라라... 이 긴 침묵.. 이거... 어떻게 생각해야하는거야?
거짓말....이런거...거짓말이야...........아시리안이 나를 좋아할 리가........좋아할 리가.. ...없다고.. 그러면서도 마음이 기대감으로 두근두근 거린다.
거... 거짓말... 너저분한 검은 머리카락에 볼품없는 녀석이라고 흉봤으면서...........아시리안이 정말..나를....좋아하는걸까.....아르휜도 아니고.. 아나이스도 아닌.....나를.....??
아시리안이 못마땅한듯이 젠장, 이라고 중얼거리며 내손목을 묶고있던 머리카락들을 풀어주자 나는 양손이 만세하는 그 자세로 그대로 눕혀진채 뭐가뭔지 실감이 안나서 한참동안 눈을 깜박거리다가 천천히 얼굴이 빨갛게 달아올랐다.
아시리안이....아시리안이..............나를.......................나를...................그..그랬구나....
............그래서... 아나이스라고 노래부르던것도.. 언젠가부턴 안하고.. 꿈속에서 헤매고 있을때.. 나를 건져줬고.........꿈속에서 내가 만난 친구들한테까지 신경질을 부리고..... 그래서 그때도 그런말을........그래서..아까도 그런말을....
뭔가 정말 기쁜데도 머릿속이 뒤엉켜서 멍하게 더듬거린건 정말이지 한참뒤의 일이었다.
"고....고...고....고마워............"
"고맙다고?"
그뒤에 그건 또 무슨 헛소리냐.라는 말이 생략된것 같긴 했지만 나는 아시리안을 차마 올려다보지 못한채 중얼거렸다.
"나를...좋아해줘서.."
마족도 경악이라는걸 하긴 하나보다. 마치 생각지도 못한 것을 들켜서 허둥지둥 하는 당황한 얼굴? 아니.. 소름이 와다다닥 붙는다는 그런 얼굴로 아시리안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누.누.누가 너같은 멍청한 놈따위를!!!!!!!!"
저렇게 굉장한 반응을 보이는거...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거야..
... 아시리안.. 귀가 빨개. 이랬더니 서둘러 귀를 가리는게 엄청 수상하다. 엄청 변태에 엄청 부끄럽고 야한 말도 곧잘 하고.. 못된 말은 아주 수준급이고.. 그러면서.. 좋아해줘서 고맙다고 하는 말에는 뭘 저렇게 부끄러워한단 말인가... 정말 이해할수가 없다. 아니면.. 정말 저렇게 펄쩍 뛸정도로 싫어하는걸까? 그러면 슬픈데....
"......나는......아시리안을 좋아하는..데..."
키스해주는게 싫지 않을만큼.. 화를 내도 욕을 얻어먹어도 옆에 있어주는게 좋을만큼.. 함께 있으면 외롭지 않을만큼.. 못되게 굴고 괴롭히고 심술피우는게 밉지 않을만큼.. 안보면 보고싶고.. 너무 보고싶어 마음이 아플만큼............................
만세를 부르는 자세로 누워 혼자서 중얼거리듯 말하자 머리위에서 아시리안이 한참동안 침묵했다. 그리고 잠시뒤 의뭉스런 시선으로 나를 흘겨보며 내가 한말이 의심스럽다는듯 취조가 들어왔다.
"..그 푸른 벌레는 어떻게 생각하지?"
푸른벌레?? 야나카황자님을 황금벌레라고 부른걸 보면 프란을 얘기하는건가?
"프란?.. 친구니까 당연히 좋아하지."
"...................붉은 벌레는?"
아르휜의 형님인데 붉은 벌레....가 뭐야.....아무튼 펠릭스형님은...........딱히 한마디로 설명하기가 좀 복잡하다. 하지만.........
".. 형이니까 좋아할수밖에 없잖아."
".........................그, 황.금.벌.레.는?"
"야나카황자님? 처음엔 이상한 사람인줄 알았는데.. 친절한것 같아"
따박따박 대답하던 나는 불길한 기운이 뭉실뭉실 솟아나는 분위기에 아시리안을 올려다봤다가 화가 극에 달한 아시리안의 표정에 허걱 놀라서 입을 다물수밖에 없었다. 검푸른 머리카락들이 성을 내는듯 허공에서 미친듯이 넘실넘실거리고.. 이마엔 여러개의 힘줄이 툭툭 튀어나와 붉어져있고.....아시리안이 이를 가는듯 한마디한마디 천천히 내뱉었다.
"감히 나를 그 벌레같은 것들과 같은 위치에 놓다니!!!! 결론은 하나군. 네놈이 아무나 다 좋다고 하는 멍청이에다가 바보라는 거다. 하긴, 네놈은 팔다리들이 잘려나간 그것들도 가엾다고 좋아할 멍청이였지!!!"
숲에서 만난 산적들? 여기서 왜 그사람들 얘기가 나오는데..
"그..그야...싫어할 이유는 없......에에엑......뭐...뭐야........아시리안은 ..틀리다고.."
"틀리긴 뭐가 틀려!!! 아무나 다 좋다고 하는 바보놈 주제에!!!!!!!"
버럭,버럭 고함을 있는대로 지르는 통에 귀가 쩌렁쩌렁 울린다. 왜 내가 프란을 좋아하는것과 펠릭스형님을 좋아하는것과 야나카황자님을 생각하는것과 산적들을 생각하는것과.........같다고 생각하는거지? 프란을 좋아하는 마음과 펠릭스형님을 좋아하는 마음과 다른 사람들을 생각하는 마음이 모두 틀린데... 어째서 그게 아무나 다 좋아한다는 결론이 되는거야...게다가 아시리안은...아시리안은.............
".....아시리안은 아무나가 아니잖아..."
"....퍽 고마운 말이군. 아무나가 아니어서 참 다행이라고 해야하나?!"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다가 내가 더듬거리며 말하자 무척이나 티껍다는 표정을 하고있긴 해도 일단 입을 다문다. 일단 계속해, 라고 명령하는듯한 시선이 무척 잘난척하는 그 특유의 거만한 표정이라 기분이 살짝 나빴지만 오해하게 만들기는 싫어서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진짜 나를... 알고있는건 아시리안 뿐인걸, 하은준으로 내 존재를 인정해준것도 아시리안 뿐이고... 옆에 없을때는 정말 많이 보고 싶었고... 내가 사라지면 다시 못보게 되는게 슬플만큼..........좋아한다고......"
"..........다시 말해봐"
뭘? ...아.......정말 사람말, 아니 유령말 못믿는 의심많은 마족이다. 아시리안은...
"....좋아해."
"...........다시."
...........똥개 훈련시키나.. 다시, 라고 말하면 시키는대로 왈왈 짖어대는 강아지가 된 기분이긴 했지만 왠지 좋아한다는 말을 엄청 좋아하는것 같은 얼굴을 보면서도 안해줄수가 없다. 여러번 좋아한다고 말하자 그제야 하늘하늘거리는 머리카락을 가라앉히고 아시리안이 나를 조용히 응시했다.
"그럼, 네가 이쪽으로 와"
천천히 내쪽으로 손을 내미는 아시리안의 눈빛에 왜? 라고 묻지 않아도 다가가면 무슨일이 벌어질지 알것같아서 심장이 두근...두근...두근...떨렸다. 내가 벌떡 일어나서 다가가서 않아도 기다려주는 아시리안쪽으로 무릎을 세워 푹신한 침대위를 무릎으로 걸어서 다가가자 그 긴 시간동안 기다린 아시리안이 내밀었던 팔로 내 어깨를 감싸안았다.
아까 옷을 벗기다말아서 어깨에 반쯤 걸쳐져있던 상의자락을 어깨아래로 마저 벗겨내리며 뜨거운 입술이 인두를 찍듯이 어깨를 지진다. 으학, 하는 신음을 삼키며 움찔, 어깨를 움추르자 허리를 한팔로 받쳐안으며 옷자락이 끌려내려가면서 드러나는 팔꿈치까지 키스를 하며 내려온다. 그 반대쪽 옷자락 역시 같은 방법으로 벗겨내리며 드러난 등의 오돌톨하게 솟아난 등뼈를 손으로 천천히 쓰다듬는 느낌에 움찔거리며 고개를 아시리안의 어깨에 파묻었다.
아까처럼 나를 괴롭히는것처럼 굴지도 않고 심술궂은 말을 하지도 않고 그저 처음 날것을 준비하는 새가 파득파득 날개짓을 하는것처럼 진지하게 움직일뿐이라 살갗에 입술이 부딪치는 소리가 .. 옷자락이 사그락거리며 부딪치는 소리가 ..내가 내뱉는 뜨거운 숨소리가 고요한 침실안을 민망할만큼 가득 메웠다.
쇄골을 깊숙히 빨아들이고 가슴의 골을 따라 내려온 입술이 붉은 유두를 할착거리자 나는 꽉 주먹쥐고있던 양손으로 아시리안의 목에 팔을 둘러 매달렸다. 허리를 쓰다듬던 손이 골반의 골짜기로 들어올듯한 움직임에 깜짝놀라서 욱,하고 몸을 잔뜩 움추리자 오므라든 어깨를 감싸안는다. 바지를 고정한 가죽벨트를 푸르는 철커덕,하는 소리에 다시 흠칫,하고 매달리는 내턱아래로 손을 넣어 아시리안이 고개를 들게 했다.
".. 무서워하지마. 등가죽이 벗겨질만큼 채찍으로 치겠다는 소리엔 눈하나 깜짝안하고 멀뚱거리던 녀석이... 뭐가 그렇게 무섭지?"
"...읏...!!..그..그거야...진심으로...말하는게 아니라는걸 알고있었으니........아앗.........!!"
"..........훗........그런가..........그래.....그랬었지. 너는...이상하게..........."
말을 채 끝내기도전에 앞섬이 풀어헤쳐진 바지속으로 미끄러지듯 아시리안의 손이 들어왔다. 각오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닥치자무서워진건 어쩔수없어서 부들부들 떨리는 눈을 질끈 감자 대담하게 분신을 단숨에 쥐어온다. 짐작했던 것보다 훨씬 더 생경히 느껴지는 이 야한 접촉에 안절부절 할수가 없어서 어떻게든 이 기묘한 감각을 참아보려 이를 악물자 귀를 살짝 물며 자극해오던 아시리안이 웃음기가 있는 목소리로 속삭였다.
"놀고있는 두손으로 바지라도 좀 벗지? 바지속이 좁은데.."
타이트한 바지가 좁아지는 이유에 대해 은근히 놀리며 하는 말에 화끈 얼굴에 열이 올랐다.
"이,이 바보변태!!!"
화끈, 열이 달아올라 작게 소리지르는 나를 보고 아시리안이 심술궂게 웃으며 바지속을 좁게 만드는 움직임을 계속했다. 좁은 곳에서 커져가는 페니스와 부딪치는 고환을 한꺼번에 움켜쥐고 흔드는 그 강렬한 자극에 뱀에게 붙잡힌 작은새처럼 온몸이 파들파들 떨린다. 좁다면서 등허리를 타고 내려온 손이 바지속의 골반을 움켜쥐어 들어올리자 팽팽하게 조여진 앞쪽이 더 자극되서 으악, 하는 무드없는 비명소리가 터졌다.
저절로 상체가 활처럼 둥그스름하게 한껏 휜다. 변태영감처럼 엉덩이를 쓰다듬던 손가락이 깊은 골사이로 슬슬 들어와 들어올곳을 확인하듯 그 주변을 문대자 두려움으로 떨리는 심장만큼이나 그곳이 움찔거리는게 느껴졌다. 그대로 뚫고 들어올것 같던 손을 빼내고 앞을 자극하던 손을 그대로 둔채 아시리안이 바지를 엉덩이아래로 벗겨내렸다.
앉은채로 여서 벗기는게 불편할까봐 엉덩이를 조금 들자 아시리안이 나를 힐긋 쳐다본다. 발갛게 달아올라 있을 나와 똑같은 열을 품은 서로의 시선이 부딪친 순간 그 열기에 자석처럼 이끌리듯 다시 입술이 부딪친다. 숨쉴 여유를 갖지 못할만큼 깊숙이 혀가 섞어지고 있는 사이 아시리안의 손은 느릿하고, 때론 격정적으로 처음당하는 쾌감에 어쩔줄 모르는 내분신을 쓸어올려주고 있었다. 처음 노출되는 이 무력한 쾌락앞에서 내가 할수 있는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키스에서 놓여나는 때때로 열에 들뜬 신음소리를 정신없이 내뱉는것 이외에는..
"아핫.........아..ㅅ..............아아아앗!!!!!!!!!"
빠르고 격해진 움직임만큼 움찔,움찔.. 하체를 흔들며 비명을 지르는 입속에 뭔가가 쑥 들어온다. 입안을 자극하는 손가락이 혀안쪽의 움푹 들어간곳을 누르자 나도 모르게 혀로 휘어감은채 정신없이 빨았다. 아시리안의 손가락은 내 입안에서 오래 머물지않았다. 타액이 듬뿍 묻혀진채 빠져나가더니 노리는곳은 처음부터 그곳이었다는듯 엉덩이의 갈라진 틈새에서 조금전 만져댄 곳을 찾아내 단숨에 스윽 밀고 들어온다. 열에 들떠있다가 찬물을 뒤집어쓴듯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떳다.
"아!!!!......"
남자끼리할 때 어디를 사용해서 어떻게 어떻게 한다더라..라는것은 숲을 내려오면서 외팔이가 된 산적대장이 이를 뻑뻑 갈면서 생생히 강의를 해준덕분에 알고있었지만.. 알고있는것과 당하는 것의 차이는 이렇게 엄청난 갭이 느껴지나 보다. 나도 모르게 무릎을 세워 엉덩이를 치켜올리자 도망은 어림없다는듯 아시리안의 손가락이 집요하게 따라온다.
"겨우 손가락 한개인데.. 벌써 도망이냐?"
내가 무릎꿇고 서있는 자세라서 웃으면서 나직하게 묻는 아시리안의 얼굴은 내 시선아래에 있었다. 시선이 마주친다.
시선을 피하고 싶지만 사로잡혀 버린것처럼 움직일수가 없어 열에 들뜬 몽롱한 시선으로 홀린듯이 바라보자 아시리안이 내머리를 잡아내렸다.
서로의 입술이 겹쳐지고 뜨거운 혀가 맞물린다. 숨이 찰만큼 강렬한 키스에 숨을 헐떡거리며 키스에 열중하는 사이 잊고있던 아시리안의 손가락이 내안에서 꿈틀, 움직이기 시작했다.
“읍..!!..”
흠칫, 하고 놀라서 눈을 뜨자 깊은 다크불루의 눈동자가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입술을 떼려하자 아시리안이 다시 혀를 얽어왔다. 숨막힐때까지 놓아주지 않던 아시리안의 입술은 이내 턱끝, 목을 할짝, 거리며 내려가 뼈가 오돌하게 튀어나온 쇄골의 움푹 들어간 살갗을 입술로 빨아들이며 자극해왔다. 정신을 차릴수가 없을만큼 이런 저런 애무를 당하면서도 내신경은 내가 겁먹은걸 달래듯이 조금씩 조금씩 내벽을 쓰다듬는 아시리안의 손가락을 향해 있었다..
“아.................으흣..!!.......”
할짝,할짝, 유두를 젖은 혀로 핥고 이끝으로 물어 살짝 잡아당긴다.
“윽..”
예민해진 부분에 와닿는 자극에 몸을 안쪽으로 움츠리는 사이 안에 있던 손가락이 다시 꿈틀, 움직인다. 앗, 하는 소리와 함께 나도 모르게 아시리안의 어깨를 꽉 붙잡았다.
“....아픈가?”
내얼굴을 올려다보며 말하는 아시리안의 허스키보이스가 낮게 가라앉아 마치 부드럽게 속삭이는 것처럼 들려왔다.
"아.........아...니.........하....하지만...좀..이...이상.............아앗.......!!"
더듬더듬 대답하며 고개를 이리저리 비비적거리는 사이에도 안을 더듬고 있던 손가락은 내벽의 주름까지도 꼼꼼히 어루만질듯 집요해지고 있었다.
“윽...으윽.....!!..............아..??!!!”
그리고 어느 한곳이 쿡 찔러지자 한순간 숨을 멈췄던 나는 곧 몸부림치며 자지러질듯한 비명을 내질렀다.
"아.........으.....으아아아앗.....!!!...하..하지...마.....!!"
눈앞이 새하얗게 될만큼 격렬한 자극에서 도망치려 바르작거리자 아시리안이 다시 괴롭히고 싶어진건지 심술궂게 그곳을 다시 찔러올렸다.
“거짓말.. 하지마..가 아니잖아? 아르”
거짓말, 이러면서 벌주듯이 찔러올리고 낮은 목소리로 속삭이듯이 이름을 부르면서 다시한번.
그 굉장하다고밖에 말할 수 없는 자극에 금방이라도 버티고 선 두다리가 허물어져버릴듯 정신없이 후들거린다.
“하앗!!........아..아시리아......ㄴ............그...........그만.....”
반쯤 울음섞인 목소리로 내뱉는 말에 아시리안이 낮게 웃었다.
“바보같은.. [그만]이 아니야. 솔직하게 원하는걸 말해보시지?”
“아..아냐..........아냐........나는..저...정말로..........아아앗..!!!!!............아핫..!!”
용서없이 다시 그곳이 찔리자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는 반대로 몸은 아시리안에게 허물어져버렸다. 그럼에도 무릎꿇은채 설수 있는건 더 이상 내 의지가 아니었다. 어느새 아시리안의 검은 머리카락이 후들후들 떨릴뿐이어서 버티고 서있는데 쓸모없어진 두다리대신 내허리를 휘감아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주고 있었다.
앞쪽의 분신을 희롱하는 손놀림과 뒤를 자극하는 손가락이 박자를 맞춘다. 아무에게도 만져지지 않던 것이 아시리안의 손에 만져져 잔뜩 커진채 눈물을 흘리고 누가 만질거라고 예상치 못했던 부분이 아시리안의 손가락에 정복당해 내가 뭐라고 하는지도 모르는채 패닉상태로 아시리안에게 애원하고 있었다.
"..........아..아시리안....제..제발.......그..........그만...........아....“
정신없이 휘몰아쳐오는 태풍앞에서 이리저리 휘둘리는 연약한 갈대처럼 몸도 머릿속도 흔들린다. 아시리안이 내게 주는 강렬한 자극은 이게 고통인지 쾌감인지 분간할수 없을만큼 뜨겁기만 했다.
“그....그만.........하아앗.........!! ..아아아..ㅅ!!!!..아...시..리안........으으.....아시...........리......!!”
뜨거워.........아시리안........몸도, 머릿속도...심장도.. 타벌리것처럼.....너무.....뜨거워..
“아...으...이.....이제...그만.........못참...........하..!!..............아아아아앗........!!!!!"
비명을 지르듯 눈부신 절정을 토해놓고 나는 아시리안의 품에 축.. 늘어졌다. 하악...하악... 입에선 거친 숨이 토해지고 사정의 여운으로 가늘게 떨리는 등줄기를 아시리안의 손이 부드럽게 쓰다듬어 내린다. 머릿속에 뿌연 안개가 낀것같고 몸이 허공에 붕 뜬것도 같고 몽롱하다.
“... 괜찮아?”
아시리안의 목소리가 들리고 나서야 흠칫, 정신이 든다. 방금전까지 아시리안에게 매달려서 신음하고 울면서 애원하다가 아시리안의 손에 욕망을 토한게 현실로 인식이 되자 견딜수없는 부끄러움, 창피함, 당혹스러움에 아시리안을 향한 원망섞인 울음이 터져나왔다.
“우흐흑...그러니까...그만...하라고, 그만두라고 했잖아.....”
“아르..”
엉엉 울어대는 나를 눈앞에 두고 곤란한건지 난감하다는건지 황당하다는건지 알수없는 목소리로 내이름을 한숨쉬듯 부른 아시리안이 턱아래로 손을 집어넣어 보기흉하게 눈물범벅인 얼굴을 들게하더니 혀를 끌끌 차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이래서야.. 더 할 수가 없겠군.”
"..........흑..................미.....미.....안.............."
울먹거리며 말하자 무릎아래까지 내려졌던 바지를 끌어올려 주면서 아시리안이 물었다.
"..뭐가?"
"..미......미안................흐으윽...미..안..............."
나도 뭐가 이렇게 미안한지는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아시리안에게 엄청 미안한 짓을 한것 같은 기분은 어쩔수가 없었다.. 지금.. 이런 일에 서투른 나를 위해서 아시리안이 뭔가를 참아주는것도 그렇고...아시리안이 같이 가자고 하는곳에 따라가겠다고 할수 없는 것도 그렇고........... 내옆에 있기때문에 아시리안이 감수해야 하는 상황들에 대한것도 그렇고.....
여러가지가 뒤죽박죽 섞여서 제대로 설명하기가 힘들어서 한참동안 울기만 하는 내게서 대답을 듣기가 무리라고 생각해서인지 아니면 내 복잡한 마음을 짐작해서인지 아시리안은 더 이상 묻지 않은채 새가 부리로 쪼는것처럼 울고있는 얼굴의 여기저기에 가벼운 키스만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