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2/33)

2화

“얘 어디 갔어?”

“누구?”

“유하진 말이야.”

“아까 이태가 데리고 나가던데? 한… 15분 정도 됐지? 완전 술에 떡이 돼서는….”

씨발….

장현우는 거친 숨을 내쉬며 술집 내부를 가볍게 훑었다. 이미 빈 술잔과 병들로 어질러진

테이블 위에 들고 있던 검은색 봉지를 내려놓고, 다급히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뭐야… 너 걔 주려고 숙취 음료까지 사러 갔다 왔냐?”

“그거 너네 다 마셔. 술값 계산은 너네끼리 하고 톡으로 보내줘라.”

***

욕실 벽에 다닥다닥 붙은 타일들이 등에 닿아 차갑게 느껴졌다. 아까부터 틀어져 있던

샤워기에서는 뜨거운 물이 쏟아지고 있고, 욕실 거울엔 뿌옇게 김이 서렸다. 나는

어딘가에 홀린 사람처럼 샤워기 앞에 서서 샤워부스 벽면에 이마를 찍었다. 나는 침착한

척 숨을 골랐고, 칫솔에 치약을 잔뜩 짠 채 입에 물었다.

나는 방금 5년 만에 만난 짝사랑 앞에서 진탕 술을 마시고, 추태를 부린 것도 모자라 그의

셔츠에 토까지 했다.

술에 취한 사람이라기엔 욕실에 들어오자마자 거짓말같이 술이 깨버렸다. 역시 술은

토하고 나면 깬다는 말이 맞았다.

나는 어딘가에 화난 사람처럼 무서울 정도로 세게 이를 닦았다.

“…쪽팔려.”

나는 벽장에서 마른 수건을 꺼내 아래만 대충 가렸다. 그리고는 손등으로 김 서린 거울을

한번 슥 훑었다. 뜨거운 물로 샤워한 덕인지 아직 몸엔 열이 오른 상태였다. 분명 다

씻었음에도 불구하고 욕실 밖을 나갈 자신이 없었다. 나는 손으로 문고리를 잡았다

뗐다를 반복했다.

그래. 나가자마자 사과하자.

나는 눈을 감고 욕실 문고리를 꽉 잡았다. 그리고 마음속으로는 사과를 되새기며 문을

열어 재꼈다.

“하진아. 여기 있는 옷 입어도 돼?”

“어?”

만나자마자 진상 부려서 미안해.

머릿속으로 계속해서 할 말을 반복한 게 무색하게도, 강이태의 나체를 본 순간 말문이

막혀버렸다 그의 몸을 보자마자 시선이 흔들리고 있다는 게 스스로에게도 느껴질

정도였다. 나는 목각인형이라도 된 것처럼 고개를 옆으로 획 돌렸다. 귀 끝부터 목까지

점점 열이 올라 뜨거워지고 있었다. 보지 않아도 지금쯤 얼굴이 벌겋게 달아오르고 있을

게 분명했다.

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나는 그를 잊기 위해 나름대로 갖은 노력을 했다 생각했는데, 그

노력이 물거품 되는 기분이었다.

나는 고개를 푹 숙이며 목에 걸려있던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털어냈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들키지 않으려 노력했다. 그저 시선을 바닥에 고정한 채 떨어지는 물만 쳐다볼

뿐이었다.

“…유하진?”

“어어… 입어도 돼.”

수건을 머리에 뒤집어쓰고 이태가 들고 있는 티셔츠를 흘끗 쳐다봤다. 내가 대충 보고

대답한 게 티 났는지 이태는 미간을 좁히며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작아 보이는데. 다른 건 없어?”

“…잠깐만 기다려봐.”

미안하다고는 해야 되는데 언제 하냐….

깊은 한숨을 내쉬며 옷장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그리고는 서랍을 열어 쌓여있는

티셔츠를 하나씩 꺼내 바닥에 펼쳤다. 차마 나체상태의 강이태를 쳐다볼 순 없을 것 같아

시선을 바닥에 펼쳐진 티셔츠에 고정했다. 나는 최대한 무심한 표정으로 내가 가진

티셔츠 중 가장 커 보이는 옷을 건넸다.

“미안. 내가 깨끗이 빨아서 다음 주에 갖다 줄게.”

“….”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머리로는 다른 생각을 하며 최대한 그에게 신경을 안 쓰려

노력했다.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싱크대 옆에 위치한 세탁기 앞으로 몸을 돌렸다.

그리고는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세탁기 버튼을 눌렀다.

사실 강이태가 나한테 옛날얘기를 한다거나, 그동안 어디 있었냐고 캐물으면 그것만큼

곤란할 질문이 없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난 강이태에게 죄인인 셈이다. 멀쩡한 정신이었다면 죽어도 그의 어깨를 빌릴

일은 없었을 것이다.

“세탁기에 돌리면 안 지워지겠지.”

“내일 세탁소에 맡기는 게 나으려나….”

“우리 진짜 오랜만이네. 5년 정도 됐나?”

갑작스러운 강이태의 목소리에 나도 모르게 어깨를 움찔했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살짝 돌렸고, 이태는 다행히도 내가 건네준 티셔츠를 입은 상태였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은 척. 속으로는 수만 가지의 대본이 뽑혀 나오고 있었다.

“벌써 그렇게 됐어? 시간 빠르네.”

뻔하면서도 진부한 대답이지만 이 정도면 무난하겠지. 다시 고개를 돌려 머리에 올려둔

수건을 세탁기 안으로 집어넣었다. 무슨 얘기를 이어야 할지 감이 안 왔다.

나는 무난하게 군대생활을 마치고 2학년으로 복학신청을 했다. 그리고 오늘 오랜만에

연락 온 현우 형이 날 술자리로 불렀다. 내 예상대로였다면 지금쯤 술자리에서 동기들과

헤어져 나 혼자 집으로 돌아왔어야 했는데.

동기들과의 술자리엔 우리 과로 편입한 강이태가 있었고 나는 그 자리에서 도망치기 위해

혼자 술을 진탕 마셨다.

결과적으론 피하고 싶었던 강이태가 날 집까지 데려다줬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가장 최악이라 생각한 레퍼토리로 이야기가 흘러가고 있다는 것.

“너 몸은 괜찮아? 술이랑 담배 둘 다 하는 거 같던데.”

“아….”

침대에 걸터앉아 있던 그의 시선은 테이블 위에 놓인 담배에 가 있었다. 나는 괜히 멋쩍은

듯 뒷목을 만지작거리며 식탁 의자에 앉았다. 또다시 정적. 조용한 원룸 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곤 혼자 열심히 돌아가고 있는 드럼세탁기 소리뿐이었다.

“너 고등학생 땐 완전 약골이었잖아. 운동장 몇 바퀴만 돌아도 뻗어서는….”

“그래도 열심히 했거든? 농구부에서 한 달 동안 체력운동만 했지만….”

“공부만 열심히 하던 애가 갑자기 농구부 든다니까 담임쌤이 너랑 상담했잖아.”

뭐가 그렇게 재밌는지 그는 혼자 실실 웃으며 헝클어진 시트 위로 누워버렸다. 나는

앉아있던 식탁 의자에 몸을 기댔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괜히 거슬리게 들려왔다.

강이태가 말한 고등학생 시절은 내가 가장 피하고 싶던 얘기면서도 들으면 반가운

얘기였다. 부끄러운 사실이지만, 고등학생 때 친구는 이태가 전부였다.

이태가 편하게 말을 걸어준 덕분인지 나도 모르게 긴장을 풀었고, 그제서야 침대에

누워있는 그를 천천히 훑어볼 수 있었다.

펑퍼짐하지도 그렇다고 딱 달라붙지도 않는 청바지. 보통 자취생들은 삼선 슬리퍼나

맨발로 운동화를 끌고 다니는 편인데 그는 하얀색 양말까지 신었고, 운동화는 새로 산

것처럼 깨끗해 보였다. 이태는 동기들끼리의 가벼운 술자리임에도 불구하고 나름 신경 쓴

티가 났다. 동기들은 그를 친하다 생각할지 몰라도 이태가 상대방을 먼저 친하다

생각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는 편이 서로에게 편할 거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너 집에 안 갈 거야? 벌써 한 시 넘었어.”

“한 시간이나 지났어?”

“내일 수업 없어?”

“…오후 수업이라 상관은 없는데.”

난 오전 수업이라 자야 될 것 같거든?

아까에 비하면 훨씬 가벼워진 공기다. 어느 정도 풀린 긴장감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히며 그의 팔을 잡아당겨 억지로 일으켰다.

그는 내 힘에 못 이긴다는 듯 쉽게 일어났다. 그는 살짝 어리광부리듯 현관문에 기대 입을

비죽 내밀었다. 나는 그런 그의 애교에 얼굴을 잔뜩 구기며 질색했다.

“뭐야…. 갑자기 안 어울리게 웬 애교?”

“오랜만에 만난 건데 아쉬워서.”

이런 말을 표정 하나 안 변하고 내뱉는 게 당연한 건가? 아님 내가 면역이 없는 건가?

가까스로 가라앉은 얼굴이 다시 뜨겁게 달아올랐다. 나도 모르게 손등을 뺨에 갖다 대며

그에게서 시선을 돌려버렸다.

그런 내 반응이 재밌었는지 그는 피식 웃었다.

“너 아직도 술기운 안 가셨나보다.”

“…시끄러워. 빨리 나가기나 해.”

이런 말에 면역 있는 사람이 이상한 거잖아….

그는 한 손으로 현관 문고리를 잡아 밀었다. 괜한 서운함에 나가려던 그를 불러 세웠다.

“내일 수업 겹치면 또 보겠네.”

“…그땐 모르는 척하지 마.”

“…내가 언제 모르는 척했다고 그러냐.”

이태는 그런 날 게슴츠레 뜬 눈으로 쳐다보더니 긴 팔을 뻗어 내 머리를 두어 번

쓰다듬어줬다. 길고 큰 손가락 사이로 젖은 머리카락이 쓸리는 느낌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그의 손이 움직일 때마다 옅고 은은한 겨울 향이 코끝에 퍼졌다.

하진아.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너가 먼저 말해줄 때까지 참을게.”

“…….”

“나 지금 진짜 궁금한데 참고 있는 거야.”

아주 잠깐이었지만 가벼웠던 분위기가 한껏 가라앉은 걸 느낄 수 있었다. 기분 좋게 웃고

있던 그의 표정이 살짝 씁쓸한 듯 바뀌었다.

나는 아무 말 없이 곤란한 표정을 지으며 이태를 쳐다볼 뿐이었다. 가만히 있는 것밖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건 없다고 생각됐기 때문이다. 그는 술자리에서 날 보자마자 궁금했을

것이다. 왜 자길 피했는지, 왜 말없이 전학을 갔는지.

잠깐만 물어보고 싶은 게 뭔데?라고 물어볼 만큼 내 간은 크지 못했고, 속으로는 이태가 뭘

궁금해하는지 분명 알고 있었다.

“내일 봐.”

이태는 씁쓸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현관문을 닫았다. 어두운 회색계열의 철문이 무거운

소리를 내며 닫히자 방 안은 항상 그랬던 것처럼 조용해졌다. 혼자 있는 건 생각보다

외롭고 계속해서 과거를 떠오르게 한다.

괜히 찝찝한 마음에 나는 주인 기다리는 개 마냥 현관 앞을 왔다갔다 했다.

이 텅 빈 집 안에 더 오랜 시간 혼자 있을 수 없었다. 당장에라도 숨이 막힐 것 같아 창문을

끝까지 열어 재끼고 숨을 크게 들이마셨다. 나는 헝클어진 시트 위에 던져 놨던 핸드폰을

들고 어딘가로 전화를 걸었다.

***

“술은 좀 깼어?”

현우 형은 날 항상 친절하게 대해준다. 지금도 내가 울 것 같은 목소리로 전화를 거니 10분

만에 자취방까지 찾아왔다. 형은 방 안을 가볍게 슥 훑어보더니 익숙하다는 듯 냉장고를

열어 들고 있던 검은 봉지를 넣었다. 나는 옷장 안에 쌓여있던 옷들 중 하나를 꺼내 입으며

형에게 말했다.

“해장 아이스크림이에요?”

“내가 볼 땐 너 아직 술 안 깼어.”

그의 큰 손바닥이 내 이마 전체를 덮었다. 투박하면서도 차가운 손이 기분 좋게 느껴졌다.

익숙한 사람에게서 느껴지는 익숙한 체온. 무거워진 눈꺼풀을 느리게 감았다 뜨자 입에선

저절로 하품이 나왔다.

형은 그런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보더니 손끝으로 내 입꼬리를 위로 삐죽 올렸다. 나는

미간을 구기며 마주 보고 서 있는 형을 빤히 쳐다봤다. 아무 이유 없이 내 얼굴을

장난스럽게 가지고 놀던 그의 손을 쳐내며 말했다.

“아깐 어디 갔었어요? 제가 술 취해서 정신 없긴 했는데… 형 갑자기 뛰어나갔잖아요.”

“…….”

그는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날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러더니 표정을 찌푸리며 자기 머리를

거칠게 헝클었다. 분명 나한테 뭔가 할 말이 있는 사람처럼 뜸 들이는 게 내 눈엔 너무나도

잘 보였다.

“…아니다. 됐어.”

“맨날 제대로 말해주지도 않고 됐대.”

나는 입을 비죽 내민 채 투덜거렸다. 두 팔을 벌리고 그대로 헝클어진 침대 시트 위로

다이빙하듯 누워버렸다. 침대 왼쪽 구석 편에 엎어져 있던 폰을 잡아 시간표 어플을

눌러봤다. 당당하게 적혀있는 월요일 오전 수업에 멀쩡한 교수님까지 미워지기 시작했다.

나는 고개를 베개에 묻은 채 우는 시늉을 했다.

“월요일부터 오전 수업이라니… 차라리 날 죽여줘.”

“무슨 생각으로 오전 수업을 넣었어? 너 1학년 때도 지각을 밥 먹듯이 했잖아.”

“…제가 넣고 싶어서 넣었겠어요.”

베개에 묻고 있던 고개를 비스듬히 들어 형 쪽을 쳐다봤다. 형은 안쓰러운 표정으로 날

쳐다보더니 자연스럽게 내 옆에 누웠다.

어색할 정도로 조용해진 방 안 분위기에 나는 헛기침을 하며 몸을 일으켰다. 때마침 울린

세탁기 음악이 그렇게까지 경쾌하게 들린 적은 아마 없었을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묘한

분위기의 침대에서 벗어나 드럼세탁기를 열었다.

“…얘는 왜 하얀 티셔츠를 입고 와서는.”

나는 두 손으로 강이태의 셔츠를 쫙 펼쳐 유심히 살폈다. 살짝 남아있는 자국을

들여다보자 아까의 악몽 같은 기억이 다시 떠오르는 것 같았다. 더 보고 있다간 다시 한 번

속을 게워낼 것 같아 셔츠를 다시 세탁기 안으로 처박아버렸다.

침대 헤드에 기댄 채 내 모습을 보고 있던 형은 살짝 퉁명스럽다는 듯 말을 걸었다.

“걔가 너네 집까지 들어왔어?”

“제가 완전 인사불성이었거든요.”

“그 새끼 웃통까지 깠나보네.”

“말 참 예쁘게 하시네.”

현우 형은 가끔 말을 험하게 할 때가 있다. 지금은 뜻하지 않은 나의 노력으로 많이 나아진

편이지만 처음 만났을 때는 이렇게까지 가까운 사이가 될 줄 몰랐다.

“…아 맞다. 형.”

“왜.”

나는 세탁기 옆 싱크대에 등을 대고 기댄 채 무심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살짝 뜸

들이는 모습에 형은 왜?라는 말을 줄지어 말했다. 그도 내가 입에서 무슨 말이 나올지

꽤나 궁금했던 모양이다. 괜히 멋쩍어진 나는 습관처럼 뒷목을 손으로 만지작거렸다.

“…걔랑은 어쩌다 알게 된 사이예요?”

“걔?”

아아….

내가 누굴 말하는지 알고 있으면서 꼭 저렇게 모른 척 반응하지.

나는 못마땅한 표정으로 형을 쳐다봤다. 형은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싱크대에 기대고

있던 내 앞까지 다가왔다. 이런 분위기엔 면역이 없는 편이라 괜스럽게 불안해진다. 나는

반사적으로 시선을 돌리고 웃음을 지었다.

“알잖아요. 누군지….”

“…그러면 너는?”

말렸다. 그는 내 턱을 잡아 눈을 마주하도록 했다. 나는 곤란하다는 표정을 지으며 입술을

꽉 깨물고 그에게 최대한으로 웃어 보일 뿐이었다.

“내가 먼저 물어봤는데….”

“강이태 눈빛이 아주.”

“…아주?”

“…널 잡아먹을 듯이 쳐다보던데.”

나는 어깨를 움찔하며 형을 쳐다봤다. 잡아먹어? 강이태가 날?

무슨 의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이태가 날 쳐다보고 있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었다. 나는

호랑이 앞에 겁먹은 토끼가 된 마냥 안절부절못했다. 긴장한 탓인지 식은땀이 등을 타고

흐르는 게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에 말했던 고등학생 때 짝사랑이 강이태였어?”

“….”

나밖에 없던 방 안은 언제나 조용했다. 지금은 세탁기가 돌아가는 소리도, 사람의 떠드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말을 이었다.

“맞아요. 걔가 강이태예요.”

이럴 줄 알았으면 가볍게 입 놀리는 게 아니었는데. 강이태가 우리 학교로 편입할 줄 누가

알았겠어.

나는 팔을 뻗어 형의 어깨를 살짝 밀었다. 못마땅한 표정을 짓고 있던 그는 내 예상과는

다르게 순순히 뒤로 물러났다.

그리고는 꽤 깊은 한숨을 내쉬더니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물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어떻게 알았어요? 강이태가 전에 말했던 짝사랑인지?”

“완전 티 났어. 술집에서 처음 강이태 봤을 때 너 표정 장난 아니었거든?”

“…그거 표정관리 한 거였는데.”

“너가 표정관리 해봤자 뭘 얼마나 한다고…. 내 눈을 속일 수 있겠냐?”

실온에 놓여있던 500ml짜리 생수를 남김없이 들이켠 형은 손등으로 입가를 닦으며

테이블에 기댔다. 뚝뚝 끊기는 대화에 불안감을 느낀 나는 냉동실을 열어 형이 넣어뒀던

바닐라 맛 아이스크림을 꺼냈다. 그리고는 싸구려 플라스틱 재질의 아일랜드 식탁 앞에

앉아 아이스크림 뚜껑을 열었다.

적당히 녹아있는 아이스크림을 수저로 뜨며 식탁에 기대고 있던 형에게 말을 걸었다.

“해장 아이스크림 고마워요. 내가 바닐라 맛 좋아하는 건 또 어떻게 알아서….”

현우 형의 표정은 금방이라도 눈에서 레이저가 나와 내 눈앞에 놓인 아이스크림을 모두

녹여버릴 것 같았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형을 쳐다봤다. 팔짱을 끼고 다리를

느슨하게 꼰 채 의자에 앉아있는 날 내려다보고 있었다.

괜한 헛기침을 하며 목을 가다듬던 그때.

형은 그 크고 투박한 손으로 내 뒷목을 감쌌고, 능숙하면서도 익숙한 키스를 했다. 입 안을

맴돌던 바닐라 향이 시원하면서도 나른하게 퍼지는 것 같았다. 형도 완전히 술이 깬 건

아니었는지, 맞닿은 입술은 생각보다 뜨거웠고 자극적인 술 냄새가 코끝을 맴돌았다.

“하아… 하….”

익숙한 자극임에도 저릿해지는 혀끝이 낯설게 느껴졌다. 살짝 불편한 자세로 키스를 하던

그는 내 팔을 잡아 자기 어깨에 두르도록 했다. 가쁘게 숨을 내쉬며 형의 높이에 맞춰

천천히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기다렸다는 듯 일어선 내 허리를 감싸 안았고, 멀지 않은

곳에 위치한 침대 위로 몸을 눕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조용했던 방 안은 거친 숨소리로 가득 메워졌다. 호흡이 가빠질수록

나는 형의 옷깃을 꽉 잡았다.

처음 키스했을 땐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크게 뛰었었다. 오죽했으면 키스

중에 웃어버린 형이 나에게 사과했을까 싶다.

그때만 해도 현우 형이랑 섹스를 밥 먹듯이 할 사이가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 못 했는데.

“하아… 읍….”

남의 타액에 젖어 섞이고 있다는 건 생각만으로도 야하다. 특히 현우 형과 하는 키스는 날

항상 기분 좋게 만들었고, 머릿속을 마비시켰다.

아무 생각 못 하도록. 혹시라도 허튼 생각을 하려 하면 내 시선을 자기 쪽으로 돌려

집중시킨다. 그는 능숙하면서도 내가 도망치지 않게끔 어르고 달래준다.

“형. 지금 두 시 다 돼가요….”

“미안. 근데 지금 관두긴 힘들 것 같아.”

“그게 뭐예요.”

나는 짧은 한숨을 내쉬며 힘없이 웃었다.

또다시 짧은 입맞춤.

열어뒀던 창문에서 찬 공기가 바람을 타고 들어왔다. 겨울이 지나 초봄이 왔지만 아직은

온도 차가 심한 것 같았다.

나는 얼굴이 빨개진 채 기침을 하며 고개를 돌렸다. 타액이 턱선을 타고 흘러 손등으로

서둘러 닦아냈다.

그 키스는 너무나도 중독성이 강해서 나도 모르게 그다음을 기대하게 된다.

나는 용기를 내 형의 목을 감싸 안았고, 코끝이 닿을 정도로 가까이 당겼다.

귀까지 새빨개진 꼴이 우스워 보인다는 건 나도 알지만… 뭐 어때. 볼 거 다 본 사이인데.

“첫날부터 수업 늦으면 형 책임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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