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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3/33)

3화

“하아… 읏….”

형은 날 달래주기라도 하듯 몸 곳곳에 짧은 키스를 남겼다. 형의 입술과 살갗이 맞닿는

소리는 달콤하면서도 듣기 좋았다. 나는 내 손가락을 깨물며 신음을 삼켰고, 천천히

다리를 벌렸다. 티는 나지 않았지만 형은 꽤 급한 손길로 내 바지 버클을 풀었다. 그 손은

거칠게 움직이면서도 내가 놀라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내 등을 쓸어내렸다. 그리고는

허벅지를 들어 자신의 어깨 위에 얹도록 했다. 나는 침대 시트 자락을 꽉 쥐며 신음을

삼켰다.

베개에 고개를 묻자 형은 다시 한 번 내 입술에 키스를 했다.

“…입술 트겠어요.”

“소리 내도 돼.”

“방음… 여기 방음 하나도 안 되는 거 알잖아요….”

난 떨리는 목소리로 겨우 말끝을 맺었고 고개를 젖히며 입술 끝을 꽉 깨물었다. 형은

옅어진 키스 마크 위로 다시 쪽 소리 나게 키스를 했다. 다시 짙어진 키스 마크에 나는

소리를 질렀고, 형의 어깨를 양손으로 잡으며 밀어냈다.

“형…!! 이런 거 남기지 말라니까.”

“뭐 어때?”

“…이제 봄이잖아요. 목 다 내놓고 다닐 텐데.”

현우 형은 그 특유의 여유로운 미소를 짓더니 내 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왜. 강이태가 볼까봐?”

“…….”

그 이름을 듣자마자 나도 모르게 형의 시선을 피해버렸다.

지금 뜨겁게 달아오른 몸은 아마도 아직 가시지 않은 술기운 때문일 것이다.

“저는… 그러니까….”

나는 말을 잇지 못했다. 예전부터 내 감정을 설명하기만큼 힘든 것은 없었다.

강이태.

그 이름만 들어도 5년 전이 생생히 기억나 날 힘들게 했다. 힘들다는 말을 이런 곳에

붙이는 게 맞는 걸까.

난 그 애를 생각하면 그리우면서도 왜인지 모르게 슬픔이 찾아왔다. 잊지 못했냐는 말은

아직도 좋아하냐는 뜻이겠지.

창문 밖에서 부는 새벽바람 소리가 더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열어둔 창문으로 들어오는

바람이 차갑게 느껴졌다.

옷은 다 벗은 채 오로지 앞에 있는 사람의 체온에 의지하고 있는 내 꼴이 괜히 초라해

보였다. 울컥한 마음에 고개를 푹 숙여버렸다.

양손은 이유 모를 눈물을 닦아내느라 바쁘게 움직였다.

불편한 분위기. 뿌옇게 가려진 시야 때문에 형의 표정을 제대로 볼 수 없었다. 그는 항상

그랬던 것처럼 날 안쓰럽게 쳐다보고 있겠지.

“…그냥 대답하지 마.”

묘하게 낮아진 그의 목소리가 낯설게 느껴졌다. 차가운 손끝이 가장 뜨거운 안쪽으로

조금씩 들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젖히며 옅은 신음을 뱉었고, 팔을 형의

목 뒤에 둘러 끌어안았다. 이번에는 내가 먼저, 눈을 감은 채 입을 맞췄다. 입술 사이로

혀를 넣어 천천히 치열을 훑었다. 내 어색한 키스에 살짝 미소를 짓던 형은 손끝으로 내

입술을 쓸어 더 깊게 혀를 섞었다.

타액이 턱선을 타고 흘렀고, 아까보다 거친 숨이 서로에게 닿았다. 혀끝과 끝이 맞닿을

때마다 나도 모르게 몸을 움츠렸다.

겁먹은 고양이처럼 움츠린 내 등을 손바닥으로 만져주며 다독여주는 것 같았다.

긴 손가락이 애널 깊은 곳을 누를 때마다 허리는 꼿꼿이 펴졌다. 거친 숨소리가 일정하지

않게 내뱉어졌고, 형의 어깨를 꽉 잡아 매달리게 되었다. 뼈마디가 하나하나 느껴져

내벽을 눌렀고, 차가웠던 그 손가락은 얼마 지나지 않아 뜨거운 액체로 뒤덮였다.

“하아….”

나는 눈을 감은 채 몸을 맡겼다. 그의 쇄골 언저리에 얼굴을 묻었고, 천천히 숨을 고르며

힘을 풀었다. 형은 손가락을 움직이며 내 흥분을 돕듯 몸 곳곳에 키스했다.

내 몸은 그의 노력에 만족한 건지 다리 사이를 적셔 반응해줬고, 형도 만족한 듯 손가락을

빼냈다. 형은 자신의 페니스를 내 다리 사이에 문지르고, 등을 끌어안으며 느리게, 내가

놀라지 않게 천천히 넣기 시작했다. 뜨거운 체온이 온몸에 퍼지자 한껏 달아오른 몸이 더

뜨거워지는 것 같았다. 나는 그의 목을 양손으로 두른 채 더 밀착했다.

교성에 가까운 신음이 터져 나오자 발끝을 오므리며 모든 감각을 억제하려 했다.

오랜만에 하는 삽입에 내 몸도 놀란 건지 그의 페니스를 꽉 잡고 놔주려 하지 않았다. 형은

내가 익숙해질 때까지 더 이상 움직이지 않고 가만히 있어주었다.

나는 가쁜 숨을 천천히 내쉬었고, 꽉 깨물어 잔뜩 부어오른 입술로 그의 목덜미에 짧게

키스를 했다.

“으읍….”

“하아… 이제 괜찮아?”

가까스로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을 대신했다.

적당히 익숙해질 때쯤 조심스럽게 허리를 움직이며 내 몸 곳곳을 탐했다. 질척거리는

소리와 억눌러진 신음 소리, 꽤 오래된 침대의 삐걱 소리가 방 전체를 울렸다. 잔뜩 상기된

얼굴을 팔로 가렸지만, 그럴수록 형은 내 양팔을 그 큰 손으로 잡고 모든 걸 보이게 했다.

허리가 깊숙한 곳까지 밀착되자, 교성 섞인 신음 소리가 입 밖으로 터져 나왔다. 점점

격해지는 허리짓에 나는 그의 등을 꽉 끌어안았고, 다리로 허리를 감쌌다. 선선했던 방

안의 공기가 한순간에 더워지는 것 같았다. 그의 가쁘게 내쉬는 숨이 얼마나 흥분된

상태인지를 알려주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그의 빨라지는 숨소리와 움직임이 내 몸 곳곳을 탐했고, 기분 좋은

쾌감이 머릿속을 차지했다.

형과 몸을 섞을 때면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었다. 분명 10일 전까지만 해도 그랬는데….

절정에 다 달했을 때 형은 나에게 짧은 입맞춤을 했다. 살짝 떨리는 입술이 내 불안감을

들킨 것 같아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순간 나도 모르게 이기적인 생각이 떠올라 표정을 굳혀버렸다.

강이태랑 자도 이런 기분일까….

형은 그런 내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와락 끌어안으며 침대에 누웠다. 이 이기적인 생각을

숨기기 위해, 나는 침대 위에 이미 헝클어진 이불 안으로 몸을 숨겼다.

***

“아… 머리 아파….”

나는 겨우 상체를 일으켜 주변을 둘러봤다. 열려있는 드럼세탁기 밖으로 눅눅한

빨랫감들이 널브러져 있었고, 침대 밑으로 어제 입었던 옷이 잔뜩 구겨진 채 뒤집혀

있었다. 방을 천천히 훑어보자 원치 않게 어젯밤의 사건들이 순서대로 떠올랐다.

분명 옆에 있어야 할 현우 형이 없다는 사실을 그제서야 알아차렸다. 나는 뻐근한 허리를

한 손으로 두드리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차라리 필름이 끊길 정도로 마셔댈걸.

나는 늘어져라 하품을 하며 죽어있던 폰을 충전기에 연결했다. 가까스로 켜진 핸드폰이

기다렸다는 듯 알림을 울려댔다.

[아침 수업 때문에 먼저 나갈게. 일어나면 전화해.]

“헐….”

11시 20분. 지금 일어나 달려가봤자 수업은 이미 마무리된 후일 것이다. 나는 반쯤 포기한

상태로 다시 침대에 누워 현우 형에게 통화를 걸었다. 신호음은 얼마 지나지 않아 끊겼고,

곧이어 형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 여보세요.

“형! 왜 저 안 깨워주고 혼자 나갔어요?”

― 내가 안 깨운 줄 아냐? 10분 동안 깨웠거든…?

통화를 하면서도 주변 사람들과 대화 중인 건지 시끄러운 잡음이 핸드폰 너머로

들려왔다. 나는 찌푸린 표정으로 핸드폰에서 귀를 살짝 뗀 채 말했다.

“…수업은 끝났어요?”

― 수업 이미 끝났으니까 오후 수업 들어.

“…벌써요?”

짐작은 했지만 더럽게 일찍 끝나네….

― 이번 주 수강 신청 정정 기간이잖아. 그냥 오전 수업 빼고 오후 수업 넣어도 되지 않아?

“아….”

나는 베개에 고개를 푹 묻으며 한껏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그럼 형이랑 팀플 못하겠네요. 그 교수님 팀 과제 엄청 내주시잖아요….”

― …뭐 어쩌겠어. 왜? 나 아니면 친구 없어서 걱정이야?

“아닌데요… 3학년이랑 2학년 공통수업 그거밖에 없잖아요. 이거 빼면 형이랑 겹치는

수업 교양 빼고 없는데….”

― 나랑 같은 수업 못 들어서 서운한 거구나~

“…갑자기 무슨….”

현우 형은 특유의 통쾌한 웃음소리로 대답했다. 나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됐어요. 나중에 수업 끝나면 연락할게요.”

아무도 없는 방 안은 오늘따라 더 외롭게 느껴졌다.

뭔가 이런 아침 익숙해질 때도 됐는데 기분이 묘하단 말이지.

대충 옷을 추스르고 검은색 후드티를 입었다. 어젯밤 꽤 격한 운동을 한 탓인지 허리부터

등까지 쭉 뻐근한 느낌이 기분 나쁘게 느껴졌다. 술 때문에 속도 느글거리고 입 안은 바짝

타들어 가 컨디션이 영 좋지 않았다. 나는 올라오는 헛구역질을 물로 진정시키며 잔뜩

헝클어진 머리를 쓸어넘겼다. 그리고는 작은 원룸 바닥에 던져 놓았던 옷가지와 쓰레기를

대충 손으로 집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붕 뜬 머리가 마치 어젯밤을 대신 말해주는 것 같았다. 나는 서랍장 위에 얹어져 있는

검은색 모자를 머리에 눌러썼다. 밖으로 나가자 살짝 선선한 바람이 불어 다소 춥게

느껴졌다. 연한 청색의 반팔 셔츠와 검은색 5부 바지 차림이 나 혼자 여름을 맞이한 것

같았다.

개강 첫날부터 너무 대충 입고 나왔나… 어차피 수업 하나 들으러 가는 거니까 누굴

만나겠어….

어차피 개강 첫주니까 수업도 오래 안 하겠지.

***

생각보다 일찍 도착해버린 나는 강의실을 쭉 한번 둘러봤다. 그리고는 언제나 그랬듯

강의실의 맨 뒷자리에 앉았다.

전학년 필수과목이라 그런지 강의실 자체는 엄청나게 넓었다. 상대적으로 높은 천장에

계단식의 강의실은 작은 기침 소리도 크게 울렸다.

아직 점심시간이라 그런지 복도에서 들리는 어수선한 소음이 날 긴장하게 만들었다.

대학 생활은 어떻게 하는 거더라….

어제 그렇게 뻗어버리는 게 아닌데….

그 자리에 있던 후배들의 얼굴이 기억나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끝나갈 때쯤 강의실 뒷문으로 학생들이 한두 명씩 들어왔다. 그 중엔 익숙한

얼굴들도 있었는데, 사실 먼저 인사해주지 않는 이상 나서서 아는 척할 정도로 난 넉살이

좋지 못했다. 갈 곳을 잃은 시선은 괜히 책상 위에 펼쳐진 노트로 향했다. 어느새 그 넓은

강의실은 학생들로 가득 찼다.

나는 깊은 한숨을 쉬며 턱을 괴었고, 무심한 표정으로 펜을 들었다.

사회성 제로에 남들이 말 걸어주면 어색하게 대답하고 대화도 이끌어가지 못하는 터라

정말 어디를 가든 아웃사이더가 되기 딱 좋은 케이스였다. ‘대학교는 친구 필요 없어’라고

말했던 현우 형은 말과 다르게 친구가 넘쳐났고, 나는 형을 이용해 이번 수업을 편하게

들을 생각이었다.

시곗바늘이 칼같이 수업시간을 가리키자 굳게 닫혀있던 강의실 앞문이 다소 큰소리를

내며 열렸다.

작은 키에 삐뚤어짐 없이 딱 맞게 갖춰 입은 회색 정장 차림. 5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이는

교수님은 딱 보기에도 점수를 짜게 주실 것 같은 인상이었다. 이 교수님은 작년 2학년들

사이에서 일명 ‘걸어 다니는 팀플’로 불렸었다. 중간고사와 기말고사는 물론이고, 평소

내주시는 과제들도 하나같이 팀 과제였기 때문이다.

교수님은 금속의 반테 안경을 손끝으로 올리더니 강의실을 쭉 한번 훑어봤다.

“출석 부를게요.”

학생 수는 눈으로 봐도 100명은 족히 넘어 보였다. 이름 한자씩 느긋하게 부르시는

교수님의 목소리에 점점 눈꺼풀이 무거워지는 것 같았다.

“유하진.”

“네.”

출석 체크만 10분째. 딱딱한 강의실 의자 때문인지 벌써부터 허리가 아파 왔다. 이렇게

한자리에 가만히 앉아있는 건 거의 2년 만의 일이었다.

“강이태.”

“강이태 학생 없어요?”

피곤한 표정으로 아파 오는 허리를 두드리고 있던 나는 익숙한 이름에 서둘러 주변을

둘러봤다.

설마 강이태랑 같은 수업을 듣겠냐는 생각을 어제 아주 잠깐 동안 하긴 했었는데….

첫 수업부터 겹칠 줄은 꿈에도 생각 못 했다.

강이태도 이 수업이라니… 강의실에 없는 거 보면 수강 취소하지 않았을까라는 기대도

잠시.

“죄송합니다.”

강의실 뒷문을 열고 강이태가 들어왔다. 특유의 넉살 좋은 웃음을 지으며 강의실 자리를

둘러보던 강이태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내 옆에 앉았다. 누가 봐도

훈훈한 인상이라 그런지 강의실에 있던 애들이 한 번쯤 훑어보며 수군거렸다.

나는 서둘러 고개를 푹 숙였고, 크게 뛰고 있는 심장 소리를 감추기라도 하듯 괜히 펜을

달칵거렸다.

어색하게 굽히고 있던 허리가 나에게 경고라도 주듯 찌릿거렸다. 나는 입술을 깨물며

허리를 꼿꼿이 펴려고 노력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파스라도 가져올걸….

지금쯤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집으로 가고 있을 현우 형을 떠올리니 저절로 미간이

좁혀졌다. 강이태는 언제 이렇게 친구가 많아진 건지 내 주변에 앉은 애들과 인사하느라

바빠 보였다.

제대로 씻지도 않은 꼴이 괜히 초라하게 느껴졌다. 강이태랑 마주칠 줄 알았으면 좀 더

사람다운 차림으로 나오는 건데.

OT 주간이라 당연하게도 수업이 없을 줄 알았다. 그러나 교수님은 내 속을 아는지

모르는지 1시간이 지나도록 수업은 끝날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고개를 고정한 채 눈길만 살짝 옆으로 돌려 강이태를 훑어봤다. 편입생의 첫

수업이라 그런지 꽤나 집중한 표정으로 교수님을 보고 있었다. 앞만 보고 있던 이태는

턱을 괸 채 업신여기는 듯한 표정으로 내 쪽을 쳐다봤다. 그와 눈이 마주치자 나는 서둘러

시선을 노트로 옮겼다.

“야….”

나는 반사적으로 그와 눈이 마주치자 고개를 숙여버렸고, 곧 익숙한 목소리 톤이

들려왔다. 날 부르고 있다는 것쯤은 알았지만 못 들은 척 어색하게 연기했다. 그러자

이번엔 내 팔을 손으로 잡고 흔들더니 그 낮은 목소리로 내 이름을 불렀다.

“유하진. 나 무시하냐?”

“…아니. 집중하느라 부르는지도 몰랐네.”

입꼬리만 올린 채 어색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의 시선을 피했고, 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너 수업 끝나고 뭐해?”

“…약속 있어.”

시선은 노트에 고정하고 입만 뻐끔거리는 꼴이 그의 눈엔 분명 우스워 보였을 것이다.

약속? 말끝을 올리는 게 마치 ‘너가 약속이 어디 있어?’ 라고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어디서?”

갑작스럽게 시작된 그의 심문에 나는 신경질적으로 기침을 하며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그리고는 작은 목소리로.

“학교 정문 앞 프라넬 카페에서.”

“누구랑?”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그는 기다렸다는 듯 질문을 해댔다. 나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그제서야 강이태를 똑바로 쳐다봤다.

강이태는 한 손으로 턱을 괸 채 한껏 여유로운 모습으로 ‘내가 뭐?’ 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런 여유 넘치는 그의 모습이 약올랐다.

“누구 취조하는 것도 아니고… 아예 육하원칙으로 말하라 하지 그러냐.”

“누구랑? 뭐하기로 했는데?”

얼씨구… 이게 정말….

하진은 한쪽 눈썹을 들썩이며 살짝 떨리는 목소리 톤으로 그에게 대답했다.

“장.현.우 형이랑 프라넬 카페에서 공부하기로 했다. 왜?”

“거기 맨 뒷자리 학생들.”

교수님은 심기 불편한 표정으로 안경을 올려 쓰며 강이태와 내가 있는 자리를 쳐다봤다.

강이태는 눈웃음을 지으며 사과했고, 아까보단 훨씬 작은 목소리로 다시 말을 걸어왔다.

“시험 기간도 아닌데 무슨 공부야?”

“…자격증 시험 보기로 했거든.”

“무슨 자격증? 운전면허?”

“…너 지금 나랑 뭐하자는 거야.”

시선은 강의실 앞에 고정하던 나는 신경질적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만한 자세로 턱을

괴고 있을 것 같았던 강이태는 양손으로 고개를 받친 채 나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강이태의 그런 모습엔 더더군다나 면역이 없던 탓에 얼굴은 한순간에 확 달아올랐다.

강이태는 그런 내 표정을 살피더니 혼자 실실 웃어대기 시작했다.

“…왜 웃어?”

새빨개진 얼굴을 뒤늦게 가리기 위해 고개를 푹 숙였다. 나는 바쁜 일이 생각 난 사람 마냥

바지 주머니에서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그리고는 다급한 손으로 현우 형에게 메시지를 보냈다.

애초에 없던 약속을 있는 척하다니. 유하진. 많이 컸구나….

이태는 몇 자 끄적거리던 노트를 덮었고, 이제는 대놓고 몸까지 돌려 날 빤히 쳐다봤다.

나는 옆에 앉아있는 강이태의 눈치를 살피며 형의 답장을 기다렸다.

― 나 학생회 회의 있어서 오늘 안 될 거 같은데… 내일은 어때? 갑자기 무슨 일이야?

나도 모르게 깊은 한숨을 내쉬며 강의실 책상 위에 이마를 박았다. 옆에서 강이태의

시선이 느껴졌지만 이제 와서 멋있는 척 해봐야 뭐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 그냥 할 얘기가 있어서요. 그럼 내일 수업 끝나고 연락할게요.

수업이 끝나자 60명 남짓한 수강생들이 하나둘씩 넓은 강의실을 빠져나갔다. 강이태가

나가면 집에서 못 잔 잠이나 자려고 했는데, 이상하게 가방을 든 채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 서 있었다.

설마 아니겠지….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일부러 느릿하게 가방을 챙겨 강의실 문을 나서려 했다. 문 앞에 서

있던 그는 내 팔을 붙잡더니 말없이 손을 내밀었다. 어색한 웃음으로 어떻게든

때워보려고 했는데 그는 내 팔을 꽉 잡고 놔주지 않았다.

“옷.”

“…뭐?”

그는 내 얼굴 앞까지 내밀고 있던 손을 갖다 대며 말을 이었다.

“셔츠 말이야. 어제 너가 내 셔츠에 토했잖아. 오늘 준다며?”

“아….”

어젯밤의 일들이 하나둘씩 떠올랐다.

강이태의 셔츠….

아마 지금쯤 축축하게 젖어 세탁기 안에 처박혀있겠지.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엔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어색한 웃음을 지으며 말없이

그를 쳐다볼 뿐이었다. 나의 이런 반응을 예상한 건지 그는 강의실 뒷문에 등을 대고 기댄

채 팔짱을 꼈다. 왜 그렇게 내 스케줄을 취조하듯 캐물었는지 이제야 이해가 됐다. 그리고

그의 아무 의미 없는 행동들에 괜히 나 혼자 떨려 했다는 걸 깨닫고 고개를 푹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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