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어두운 방 안은 항상 외롭고 차가운 것만은 아니다. 익숙한 목소리와 적당히 뜨거운 체온.
나는 그의 나지막한 숨소리에 매달리듯 팔을 뻗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침대 위. 살갗이 느릿하게 부딪히는 소리마저 자극적이게
느껴졌고, 이내 참아왔던 신음을 내뱉었다. 눈앞이 보이지 않는 만큼 소리에 민감해지는
건 당연했다. 계속되는 형의 애무에 체온은 달아오를 대로 달아올랐고, 그 혀가 사타구니
부근을 맴돌자 저절로 몸이 움츠러들었다. 움찔거리는 내 모습이 그 어두운 곳에서
보이기라도 한 건지, 형의 낮은 비웃음 소리가 들려왔다.
“갑자기 왜 웃어요….”
“그냥. 귀여워서….”
한껏 붉게 달아오른 얼굴이 형에게 안 보여서 다행이었다. 온통 어두워 내 표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았지만, 나는 양팔로 얼굴을 가리기에 급급했다. 가까스로 얼굴을
가린 채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다 큰 청년한테 귀엽다는 말이 칭찬이에요?”
“칭찬이지.”
“그만 좀 핥아요…. 더럽게….”
“네네.”
형은 내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대답만 대충 할 뿐이었다. 이 어두운 공간에서 벽면에
매달린 시계가 보일 리 없었지만, 그의 애무는 약 30분 정도 이어졌던 것 같다. 간혹 그의
혀끝이 민감한 성감대를 스칠 때면 침대 시트를 꽉 쥐며 밖으로 나오려는 신음을 삼키곤
했다.
“형… 빨리….”
“빨리 뭐?”
참다 못 한 내가 그의 목 뒤를 감싸며 내 코앞으로 확 잡아당겼다.
어두운 방에서 30분 이상 있었더니 어느 정도 시야가 밝아진 것 같았다. 덕분에 현우 형의
당황한 표정을 볼 수 있었다. 매일같이 섹스파트너, 친한 동생이랍시고 날 놀려대는 형이
오늘따라 더 얄미워 보였다. 특히 30분 동안 애무만 하는 건 신종 고문이라고밖에 할 수
없었다.
나는 찌푸린 표정으로 그를 노려봤고, 양쪽 다리를 형의 허리에 감싸 아랫부분을
밀착했다.
여유로운 척 웃는 형의 표정이 내 속을 긁어내는 것 같았다.
검은색 드로즈 안에서 꺼내달라고 발악하는 내 페니스가 불쌍하지도 않은지.
“이번엔 제가 할 차례죠?”
“뭘 하려고?”
“얌전히 누워 있기나 해요.”
나는 힘이 실린 손으로 그의 팔을 잡고 침대 위에 눕혔다. 위에 올라타 누군가를
내려다본다는 게 이런 기분이구나 싶을 정도로 거의 처음인 위치였다. 어디부터 공략해야
형의 입에서 신음 소리를 들을 수 있을지 고민됐다. 천천히 그의 몸을 훑어보던 나는 굳게
매여있는 벨트를 손으로 풀기 시작했다.
어느 정도 앞이 보이는 수준이었지만, 양손으로 한참을 붙잡고 있는 내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우스웠다.
현우 형은 그런 날 내려다보며 그 큰 손바닥으로 익숙하게 내 머리를 헝클었다.
나는 그제서야 풀린 벨트를 침대 밑으로 던져버렸다. 그리고는 기다렸다는 듯 한 손으로
버클을 풀었고, 지퍼를 내렸다. 형이 내 몸 곳곳을 애무해댈 때는 여유 넘치는 표정과
행동이었는데, 생각보다 그의 아랫도리는 뜨거워져 있었다. 이때다 싶은 마음에 나는
그를 올려다보며 실실 웃었다.
“형. 여유로운 척은 혼자 다하더니…. 저보다 급했나봐요?”
“…너 많이 컸다?”
“장난이에요.”
한껏 커져 있는 페니스를 한 손으로 감싸자 뜨거운 체온이 더 뜨겁게 느껴지는 것 같았다.
“이렇게 큰데 어떻게 들어간 거지….”
나는 작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페니스를 만지작거렸다. 그 모습이 내가 생각해도
놀이터에서 흙장난하는 애가 된 것 같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조심스럽게 입술을 그
뜨거운 페니스 끝 부분에 갖다 댔다. 체온이 맞닿자 기분이 오묘해졌다. 사실 펠라를 한 게
처음인 것도 아니었지만, 거의 1년 만에 하는 거라 느낌이 이상했다. 항상 봤던 모형의
물건이면서도 남의 것에 익숙해지긴 어려운 것 같다.
“으읍… 음….”
발기된 페니스를 양손으로 쥔 채, 귀두 끝 부분만 입 안에 넣었다. 쪽 소리가 나도록
부풀어있는 페니스에 키스를 해댔다. 나는 이미 커져 있는 그 뜨거운 물건의 끝에서 하얀
액체가 나올 때까지 핥을 생각이었다. 열심히 물고 빤 탓에 입술 주변에 묻은 묽은 타액이
턱선을 타고 흘렀다.
***
어둡고 다소 좁은 원룸. 소리만 들으면 누가 아이스크림이라도 핥아 먹고 있는 것 같았다.
어떻게 단 한 번도 그의 입에서 신음 소리가 안 나올 수 있지?
“잘 좀 해봐. 오랜만이라 그런가…. 엄청 못하네.”
“…혀이 모느기느거 에어!!”
형이 못 느끼는 거예요!!
그 말에 발끈해버린 내 꼴이 재밌는지 형은 소리 내 웃었다. 나는 시간이 지날수록 오기가
생겼다. 최대한 입 안 깊숙이 페니스를 넣으려 했지만, 더 넣었다간 목젖을 건드려
헛구역질이 나올 것 같았다.
그때, 가만히 누워있던 현우 형은 기다렸다는 듯 내 머리를 꽉 잡아 페니스를 끝까지
물도록 했다.
갑작스럽게 목구멍 끝까지 들어오는 그 큰 페니스에 적잖게 놀라 바둥거리며 그의 다리를
꽉 잡았다.
“으읍…! 우욱….”
“하아… 전에는 잘했으면서 왜 그렇게 살살해?”
반사적으로 목구멍을 꽉 조이는 게 마음에 든 건지 형의 입에선 낮고 거친 숨소리가
뱉어졌다.
내 계획대로였다면, 지금쯤 현우 형이 내 혀 놀림에 흥분해서 제발 넣게 해달라며 빌고
있어야 했다.
현실은 완전 그 반대의 상황인 셈이 되었지만….
가끔 형의 거친 행동이 날 힘들게 하기도 한다. 평소에도 이랬다면 난 형한테서
멀어졌겠지만, 꼭 섹스할 때만 그의 난폭함이 드러난다. 그렇다고 섹스를 할 때마다 매번
그러는 것도 아니라 하지 말라고 말할 타이밍을 놓친다. 다소 난폭한 관계가 끝나면 나는
형의 등짝을 세게 때리는데, 그때마다 형은 아프지도 않은지 실실 웃으면서 가볍게
사과할 뿐이었다.
그 여유로우면서도 능글거리는 웃음에 화가 가라앉는 건지 뭔지. 항상 같은 레퍼토리에
당하는 나도 참 바보 같다.
꽉 쥐어진 내 머리가 불쌍해질 때쯤 그의 페니스 끝에서 미끌거리는 액체가 목구멍을
타고 들어왔다. 비릿한 냄새가 썩 좋은 맛은 절대 아니었다. 남의 쿠퍼 액이나 받아먹는 내
처지가 불쌍하기 그지없었다.
“하아… 읍….”
“…하아… 하진아….”
나지막한 톤으로 내 이름을 부르는 형의 목소리가 오늘따라 다르게 들려왔다. 오랜만에
이런 상황에서 이름을 들어서 그런지 더 자극적이었다. 한껏 달아오른 숨소리, 살짝
떨리는 낮은 목소리가 그의 페니스를 물고 있는 내 입장에선 야하게 들릴 수밖에 없었다.
나는 그의 허벅지를 잡은 채, 혀를 열심히 굴렸다. 턱이 얼얼할 정도로 물고 있었지만,
그가 사정할 때까진 버틸 수 있을 것 같았다.
딱딱하게 서 있는 페니스의 기둥 부분을 혀로 감싸며 목젖 안까지 밀어 넣자 목이
간질간질했다. 타액은 이미 형의 페니스와 내 입가에 흘러 질척거렸다. 불을 꺼서
다행이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아마 지금 방 안 불이 켜져 있는 상태였다면 나는
얼굴을 가리기 바빴을 것이다.
“콜록… 콜록….”
십몇 분을 입 안 가득 물고 빤 끝에, 드디어 그의 페니스에서 뜨겁고 하얀 액체가
흘러나왔다. 나는 서둘러 입을 떼 냈고, 목구멍을 타고 삼켜져버린 정액을 뱉어내려
노력했다. 현우 형은 그런 내 속을 알긴 하는 건지, 내 팔을 잡아 침대에 엎드리도록 했다.
두 손목이 허리 뒤로 젖혀져 형의 한 손에 잡혔다. 베개에 고개를 푹 묻은 채, 엉덩이를
들고 있는 내 모습이 새삼 안쓰럽게 느껴졌다. 형은 지금쯤 내 몸을 훑어보면서 어떻게,
어떤 식으로 넣을지 고민에 빠졌을 것이다.
처음 첫사랑을 잊게 해준다는 그의 달콤한 말에 현혹돼 여기까지 오게 된 거지만, 이
정도로 변태였는지 알았더라면 현우 형을 멀리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보다 너도 급해 보이네.”
“…알면 좀 빨리 끝내요….”
고개를 뒤로 획 돌리며 신경질적인 말투로 말했다. 형은 그런 내 사소한 반응조차
우스운지 웃음을 참으며 양손으로 내 허리를 꽉 잡았다. 거칠면서도 투박한 손길에 내
몸이 굳어오는 것 같았다.
형은 기다렸다는 듯이 허벅지 사이로 자신의 뜨겁고 단단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금방이라도 애널 안으로 들어올 것처럼 내 허리를 잡은 그의 손이 얄밉게 느껴졌다.
나는 탄성에 가까운 신음을 뱉어냈고, 한껏 발기된 페니스가 내 허벅지 안쪽을 쓸어낼
때마다 온몸을 부르르 떨었다. 내 몸은 잔뜩 긴장한 것처럼 뻣뻣하게 엎드려 움찔댈
뿐이었다. 형은 내 어깨에서부터 허리까지 차례대로 키스했다. 쾌감에 떨고 있는 내 피부
결에 그의 뜨거운 입술이 맞닿자 참고 있던 신음이 하나둘 터져 나왔다.
“하악… 아!”
“엄청… 젖어있어.”
현우 형의 뜨거운 손바닥이 내 페니스를 감싸 쥐었고, 엄지손가락으로 끝부분을 느슨히
막았다.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단단히 부푼 페니스는 그 큰 손에 감싸져 더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귀두 끝을 막아버린 그의 엄지손가락이 조금씩 움직이며 자극하자, 질척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가득 채웠다. 무릎을 세운 채 가까스로 허리를 치켜세우고 있던 내 몸은
무자비한 자극에 금방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비틀거렸다.
“아… 하아….”
“소리 들려?”
“…하아… 읏….”
“여기도 엄청 야해.”
오늘따라 집요하게 내 몸 구석구석을 탐하는 형의 행동이 의아하게 느껴졌다. 그동안
잠자리에서 삐뚤어진 성격을 보이는 편이었지만, 이 정도로 오랜 시간 애태운 적은
없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세우고 있던 허리가 뻐근해질 때쯤, 나는 몸을 뒤로 획 돌려 그의 목을 잡아당겼다.
그리고는 양다리로 형의 허리를 감싸 조였다. 단단해진 페니스가 내 다리 사이의 구멍에
맞닿자, 형의 몸이 눈에 띄게 움찔거렸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음을 지으며 말했다.
“형이야말로 엄청 급해 보이는데…. 그만 뜸 들이고 넣어요.”
대체 어떤 말에 스위치가 눌린 건지, 그는 약 3초동안 아무런 말없이 날 쳐다봤다. 그리곤
내 말을 기다렸던 사람 마냥 뜨겁게 달아오른 페니스를 이미 젖어있던 애널 안으로
천천히 밀어 넣었다.
애탔던 시간들이 무색하게 머릿속은 쾌감 하나로 채워졌다. 단단한 페니스가 내벽 안을
누르자, 미끌거리는 액체가 다리 선을 타고 흘러내렸다.
“뜨거워….”
“하아… 아….”
형은 내가 놀라지 않게끔 쾌감에 익숙해질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 같았다. 이내 가쁜
숨소리가 조용히 가라앉았고, 현우 형은 느릿하면서도 깊게 허리를 움직였다.
투박하면서도 거친 손으로 내 골반을 잡고 느릿하게 허리짓을 하는 그에게, 나는 두
손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었다.
“하악… 하아… 형….”
“…엄청 조이는데?”
쓸데없는 소리.
나는 신경질적으로 그의 목을 꽉 끌어안았고, 달아오른 입술로 입맞춤을 했다. 그
입맞춤은 곧 키스로 이어졌다. 달큼하면서도 쓴맛이 느껴지는 키스가 오늘따라 더
흥분되는 것 같았다. 가쁜 숨소리에 신음 소리가 섞여 민망함이 느껴질 때쯤, 형은 입술을
떼고 아까보다 더 거칠게 허리짓을 반복했다.
“하아… 하….”
“저… 저 손 좀….”
나는 턱선을 타고 흐르는 타액을 닦을 생각도 못 한 채, 팔을 붙잡으며 겨우 말을 이었다.
먼저 사정 못 하도록 페니스 끝을 꽉 잡고 있는 형의 손이 놓일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덕분에 체온은 더더욱 높아지는 게 높아졌고, 허리가 부러질 것처럼 크게 휘었다.
나는 손톱을 세워 그의 팔을 세게 붙잡았다. 고의는 아니었지만 더 이상 참지 못할 정도로
강한 쾌감에 하반신 전체가 마비되는 느낌이었다.
아침쯤 되면 푹 파인 손톱자국들을 보고 꽤나 놀란 표정을 짓겠지. 그 표정이 나름 볼 만할
것 같았다.
거칠어진 형의 허리짓에 내 몸은 금방이라도 절정을 느낄 사람처럼 반응했고, 캄캄한 방
안엔 살갗의 마찰음이 크게 울렸다. 심한 쾌락을 밖으로 내보내지 못하는 기분은
생각보다 참기 힘들었다. 그동안 참았던 교성 섞인 신음을 입 밖으로 내며 이미 헝클어진
시트 자락을 꽉 쥐었다.
“혀… 형… 하악….”
바들바들 떨고 있는 내 손을 형의 큰 손이 감싸 쥐었고, 나는 말을 잇기도 전에 절정에
이르렀다.
뻣뻣하게 휜 채로 떨리는 등을 아래에서부터 목선까지 입맞춤을 하던 형은 그제서야
만족한 듯 말했다.
“이제 가도 돼.”
드라이 오르가슴이라는 말은 고등학생 시절 인터넷에서만 떠도는 단어쯤이라
생각했었다.
정액을 내보내지 못한 상태로 절정에 이른다는 게 진짜 가능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남다른 취미의 현우 형덕분에….
그가 쥐고 있던 페니스를 손에서 놓자, 뜨겁게 달아오른 페니스 끝에서 묽은 정액이
계속해서 흘렀다. 마비된 몸의 감각이 돌아온 것 마냥 높은 체온이 손끝까지 한순간에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느껴진 오르가슴 덕분인지, 몸은 쉽게 피로를 느끼는 것 같았다. 평소
같았으면 양손으로 입을 막고 부끄러움에 몸을 웅크리고도 남았을 텐데, 지금은 그럴
힘조차 남아있지 않았다.
“하아… 하….”
“와… 진짜 힘 빠진다….”
“…형 진짜… 지금 때리고 싶은데 힘없어서 봐주는 거예요….”
“…하하….”
형은 내가 누워있는 침대 위로 엎어졌다. 다 큰 성인 남성 두 명이 눕기엔 턱없이 비좁은
침대였으나, 그는 딱히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무거운 다리를 내 허리에 걸친 채 손을
뻗어 선반 위 스탠드를 켰다. 노란빛을 띠는 조명에 눈살이 저절로 찌푸려졌다. 열심히
운동을 한 탓인지, 몸 곳곳은 끈적한 느낌이 들었다. 특히 다리 사이가 가관이었다.
다리를 움직일 때마다 미끌거리는 액체가 다리 사이로 흘렀고, 그 때문에 침대 시트가
젖을 생각을 하니 기분이 찝찝했다. 형은 마치 자기 집이라도 되는 듯, 바닥에 나뒹굴고
있던 에어컨 리모컨을 잡아 전원 버튼을 눌렀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원한 바람이
기분 좋게 방 안을 채웠다.
***
2시간쯤 지났을까, 침대의 작은 흔들림에 눈을 떴다. 내 옆에 누워있던 현우 형은
침대에서 일어나 바지를 입고 세 발자국 앞에 있는 냉장고를 열었다. 눈은 진작에
떠졌지만, 몸은 움직일 생각을 안 했다.
“나 때문에 깼어? 더 자.”
“아뇨…. 저 물 좀….”
그는 냉장고에서 물을 꺼내 싱크대를 한번 훑어보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어쩔 수 없다는 표정으로 소매를 걷어 설거지를 시작했다.
그냥 병째로 줘도 되는데….
형은 가끔 안 어울리는 부분에서 완벽주의일 때가 있다. 자기가 깔끔한 편이 절대
아니라면서 내 방에 올 때마다 청소를 해준다. 환하게 켜진 부엌 불에 게슴츠레 뜨고 있던
눈을 두어 번 깜빡였다. 마지못해 몸을 일으킨 나는 식탁 앞 의자에 앉아 물을 병째로
들이켰다.
열심히 설거지에 열중한 형의 모습이 묘하게 느껴졌다. 턱을 괸 채 그의 등 근육을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쭉 훑어보자, 나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섹스를 할 때는 항상 어두운 방 안에서, 소리도 억누르며 하는 게 대다수였기 때문에 그의
몸을 이렇게까지 자세히 본 적은 없었다.
형은 설거지를 마치고 아직 물기가 묻은 컵을 식탁 위에 내려놨다. 그리고는 한 손으로
물을 따르며 내게 말했다.
“강이태랑은 웬만하면 엮이지 마.”
“…갑자기 강이태는 왜요?”
“걔 좀 사이코 같지 않냐? 아까 그 새끼 눈빛 봤잖아. 존나 나한테 달려드는 거. 평소엔
착한 척 혼자 다하더니.”
나는 못 미더운 표정으로 형을 빤히 쳐다봤다. 형은 그에 질세라 내 시선을 피하지 않고
뚫어져라 쳐다볼 뿐이었다.
“그래도 형 생각만큼 나쁜 앤 아니에요.”
어색한 웃음으로 분위기를 모면하려던 게 형에겐 꽤 티가 났을 것 같았다.
그래. 아까 강이태의 행동이 정상은 아니었지….
어디에서 기분이 나빴던 건지, 형의 표정이 썩 좋지만은 않아 보였다. 그는 찌푸린
표정으로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는 벗어놨던 옷을 대충 챙겨
입으며 침대 밑에 던져진 담뱃갑을 주웠다.
“그래도 내 말 잘 생각해봐. 너도 마음 정리했으면서 걔랑 엮여서 뭐해? 나중에 너만
상처받아. 그때처럼.”
“…저도 알아요. 그 정도는….”
“알면 뭐해. 너 그래놓고 맨날 뒤통수 맞잖아.”
“….”
“…미안. 딱히 너한테 이런 얘기 꺼내려던 건 아닌데…. 담배 좀 피우고 올게.”
형이 나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형을 처음 만났을 때만 해도
그를 잊을 수 있다는 확신에 차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내 눈앞에 그가 나타날 줄은 생각도
못 한 시나리오였다. 그동안 그를 잊기 위해 했던 노력과 계획들이 모두 물거품이 되는 것
같았다. 날 위해 신경 써준 현우 형에게도 줏대없는 모습을 보인 것 같아 미안할
따름이었다.
찰칵하고 잠긴 도어록 소리에 나는 머리를 헝클며 짧은 절규를 내뱉었다.
잠깐 담배 피우고 오겠다던 현우 형은 집에 들어가 보겠다는 메시지만 남긴 채 그 날
아침까지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