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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화 (15/33)

15화

고등학생 때부터 강이태는 남들과 달라 보였다. 내가 못 하는 모든 걸 할 수 있는

아이였고, 어떤 사람이든 자기 주변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능력을 갖췄었다. 공부도

그럭저럭 잘하는 편이라 선생님들도 이태를 특별하게 생각했던 것 같다.

난 부모님의 갑작스러운 이혼으로 아빠 손에 어쩔 수 없이 그 학교에 끌려왔었고,

그곳에서 처음으로 강이태를 만났다.

고등학교 1학년 6월. 다른 애들은 입학한 지 석 달이나 지나 이미 친해질 애들은 친해져

있는 상황이었다.

다른 애들보다 숫기도 없던 나는 혼자 구석 자리에 앉아 창밖만 바라볼 뿐이었다. 게다가

시기가 시기인지라 그 사이에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수업이 끝날 때마다

찾아오는 쉬는 시간이 당연히 가장 큰 고민이었다. 그 짧은 10분이 수업시간 50분보다 더

길게 느껴졌다.

전학 첫날, 나는 아침부터 점심까지 고개를 숙인 채 책상과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업

시간엔 철저하게 책상에 놓인 교과서를, 쉬는 시간엔 시끄러운 교실 안이 아닌 조용한

창밖을 쳐다봤다. 학교생활에 집중하기에는 갑작스럽게 일어난 가정문제가 나에겐 더

중요한 시기였다.

“야―”

내 시선은 쉬는 시간 내내 창밖에 머물러 있었다. 내 바로 옆에서 누군가의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당연하게도 고개를 돌리지 않았다.

설마 날 부르는 거겠어. 이 많은 애들 중에….

“유…하진?”

그는 다시 한번 내 이름을 한 글자씩 똑똑히 말하며 팔을 잡았다. 그제서야 내 시야 안으로

강이태의 얼굴이 들어왔다. 전학을 오고 처음으로 내 이름을 불러준 사람은 강이태였다.

이런 시답지도 않은 이유로 그에게 남다른 감정을 느꼈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라

생각되겠지만, 아마 이런 세세한 자상함이 남모르게 쌓였던 것 같다. 그가 내 이름을 처음

불렀던 목소리 톤까지 난 선명하게 기억난다. 강이태 특유의 나지막하고 허스키한

목소리는 처음 듣는 나로선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긴장감에 한껏 굳은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대답은커녕 멍해 보이는 내 얼굴에 이태는 웃음을 참고 말을 이었다.

“다음 시간 체육인데… 탈의실 어딘지 모르지?”

“…응.”

“그냥 교실에서 갈아입으면 돼. 있긴 한데 3층은 다 남자애들 반이기도 하고. 여자애들은

잘 안 올라오니까….”

“아….”

제대로 된 대답을 해주기엔 내 정신은 시끄러운 교실 안 분위기를 적응하느라 바빴다.

이미 체육복으로 갈아입은 몇몇 남자애들이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었다. 특이한 이름이 한 번에 알아듣기 힘들었지만, 그의 체육복에 달려 있는 명찰을 한

글자씩 읊으며 외우려고 노력했다.

강이태….

그 후로 신경쓰고 싶지 않아도 이태가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었다. 4교시가 지난 후에야

강이태가 내 뒷자리였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쉬는 시간엔 약속이라도 한 듯 그의 자리로 애들이 몰려왔고, 그 시간만큼은 그의

목소리를 정확히 들을 수 있었다.

얼핏 보기에도 강이태는 주변에 친구가 많았다. 그리고 몇몇 애들은 그를 이름이 아닌,

반장이라고 부르는 것 같았다. 교실로 수업을 들어오는 선생님들은 다 같이 대본을

짜기라도 한 듯, 이태의 이름을 부를 때와 다른 애들의 이름을 부를 때 목소리 톤부터가

달라 보였다.

하루 중 거의 반 이상을 웃는 표정으로 사는 것 같았다. 그 점이 나와 비슷해 보였고, 애써

웃는 것 같아 안쓰러워 보일 정도였다. 그는 사소한 남들의 부탁까지 웬만하면 들어주려

했다. 이해가 안 갈 정도로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잘해주는 게 내가 보기엔 오히려 힘들어

보였다.

처음엔 그 모습이 불쾌하게 느껴졌다. 묘하게 나와 비슷한 부분이 보고 있으면 기분이

나빴다. 남들에게 좋은 모습만 보이려고 노력하는 날 보는 것 같아서 한편으론 그의 평소

모습이 가식적으로 보였다.

“너 이름이 뭐랬더라… 유진이랬나?”

“유하진인데….”

“아아….”

이태는 그 큰 손을 뻗어 내 머리를 자기 마음대로 헝클었다. 나는 당황한 기색을 띠며

헝클어진 머리를 손으로 정돈하느라 바빴다.

가끔씩 아무런 이유 없이 내 이름을 부르는 강이태가 나에겐 정말 이상한 사람으로

다가왔다.

친하지도 않은 사이에 쓸데없는 용건으로 이름을 부르고, 이름을 알려준 지 하루도 채 안

지났는데 까먹질 않나….

처음엔 정말 이상한 놈 같아서 멀리해야겠다 싶었는데.

***

이제 막 더운 바람이 불기 시작하던 초여름날, 모두가 뛰어다니는 체육 시간이 나에겐

가장 고역이었다. 뜨거운 햇볕에 알레르기라도 있는 듯 땀을 조금만 흘려도 나는 금방 픽

쓰러져버렸다. 내 몸이 약하다는 사실은 선생님들과 나 사이에 비밀이었다. 평범한

남자애들과 다르게 깡마른 몸과 하얀 피부가 나에겐 콤플렉스였다. 게다가 몸까지

허약체질이라는 사실이 알려진다면 내 자존감은 지금보다 더 깎일 것만 같았다.

하지만 비밀이라기엔 체육 시간마다 운동장 맨 뒤 스탠드에 앉아 있는 내 꼴은 누가 봐도

허약하다는 걸 알아차릴 없는 모습이었다.

그 날따라 햇볕은 더 심하게 운동장을 비추고 있었고, 모래가 뜨겁게 빛나는 운동장

둘레를 따라 땀범벅이 된 강이태가 뛰고 있었다.

모든 게 그를 중심으로 움직이는 것 같았다. 맨 앞줄에서 뛰고 있는 이태를 따라 애들이

움직였고, 농구 연습시합을 할 때도 모두가 이태와 같은 팀을 하고 싶어 했다.

여자애들이든 남자애들이든 성별을 불문하고 그를 좋아하는 것 같았다.

“오… 역시 강이태!”

그는 기다렸다는 듯, 농구공이 손에 쥐어지자 골대 쪽으로 높게 점프를 했다. 흐트러짐

없는 자세부터가 꽤 오랜 시간 동안 농구를 한 것 같았다. 당연하게도 공은 골대에

안정적으로 들어갔고, 같은 팀 남자애들이 환호했다. 나도 모르게 경기 관중이라도 된

마냥 강이태에게 시선을 고정한 채 마음속으로 응원했다. 나는 입술을 깨물어 저절로

지어지는 웃음을 참으려고 노력했다. 공부와 체육은 물론이고, 나에겐 절대 없는 그의

사교성이 가장 부러웠다.

한마디로 나와 다른 세상에 사는 사람 같다고 생각되었다.

적당히 그은 피부에 땀으로 젖은 반 팔 체육복. 지치지도 않는 건지 쉬지 않고 뛰는 그의

모습이 신기했다. 나는 어딘가에 혼이 빠진 사람처럼 그에게 시선을 고정시켰다. 두 시가

넘어가자 뜨거운 햇빛이 스텐드까지 비췄다. 거칠게 숨을 몰아쉬며 운동장 한가운데에

멈춰선 강이태는 스텐드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우연히 눈이 마주치자 나는 고개를

돌리고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뜨겁다 못해 따갑기까지 한 햇볕 탓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는 것 같았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열이 확 오르는 기분이었다. 그저 오늘

날씨가 더웠을 뿐이었다. 얼굴이 빨개진 데에 특별한 이유는 없었다.

분명 그렇게 믿고 싶었는데….

스탠드에서 벌떡 일어나 한동안 가만히 바닥만 본 채 서 있던 나는 어색한 걸음걸이로

수돗가를 향했다. 길게 늘어져 있는 수돗가의 맨 끝에 서서 차가운 물로 얼굴을 적셨다.

후끈거리는 열 때문인지 차가운 물이 더 시원하게 느껴졌다. 센 수압 덕분에 입고 있던

체육복 소매까지 흥건히 젖어버렸다. 뜨겁게 달아올랐던 얼굴은 조금씩 식어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살갗에 닿는 물의 마찰음과 쉬는 시간 종소리가 섞여 귓가에 울렸다. 그

사이로 들려오는 강이태의 웃음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는 것 같았다.

“너 다리 아픈 거 괜찮아?”

빠르게 세수를 마친 이태는 머리끝까지 홀딱 젖은 채 나에게 말을 걸었다. 벌겋게 올라온

얼굴을 어떻게 가라앉힌 건데, 그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윗도리를 올려 젖은 얼굴을

대충 닦아냈다. 뜨거운 햇볕 냄새와 몸에 밴 땀 냄새가 나에겐 어색하게 느껴졌다.

평소보다 더 멍한 얼굴로 뚫어져라 강이태를 쳐다보던 나는 고개를 돌리며 시선을

피했다.

보아하니 몸이 약해서 체육을 못하는 게 아니라, 다리 부상 정도로 생각하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멀쩡한 다리를 괜히 절뚝거리며 한 손으로 수돗가 선반을 짚었다.

“그냥 무릎이 좀 아파서…. 무리하면 안 된대.”

내 입에서 어떤 말을 내뱉고 있는지조차 알 수 없었다. 대충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던 것

같은데, 이태의 주변에 서 있던 애들은 내 쪽을 보고 비웃었던 것 같았다. 나는 아랫입술을

질근 씹으며 양손으로 옷깃을 만지작거렸다. 긴장하거나 곤란할 때 나타나는 버릇 중

하나였다. 나는 작게 숨을 고르고,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리고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그곳을 빠져나오려 했는데….

“야, 너 열나? 나보다 뜨거운 거 같은데.”

얼떨결에 강이태와 눈이 마주친 나는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원래

이렇게까지 남을 챙기는 성격인가 싶을 정도로 부담스럽게 느껴졌지만, 내 이마에 얹어진

그의 손이 나쁘지만은 않았다. 가슴 한 켠이 먹먹해질 만큼 울렁거렸다. 그 이유는 나도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차가운 물기에 젖은 그의 손끝에 반응하는 것 같았다.

“아… 아니. 더워서 그런 거….”

내 입에선 이해하기 힘든 말들이 더듬더듬 흘러나왔다. 한 명은 얼굴이 빨개져 있고, 다른

한 명은 얼굴을 가까이하며 안부를 묻고 있는 이 장면이 어떻게 보면 영화의 한

장면이었다. 이태 주변으로 남자애들 몇명이 들러붙자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확

쳐버렸다. 나는 한 손으로 앞머리를 아래로 내리며 도망치듯 학교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뭐야… 쟤 다리 멀쩡한가보네.”

“…그러게.”

3층 복도 맨 끝에 위치한 교실까지 얼마나 빠르게 뛰었는지 기억하지 못할 정도였다.

계단을 두 칸씩 뛰어오를 때마다 거친 숨이 턱까지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어렸을 때부터

누가 무슨 말만 하면 쉽게 얼굴이 빨개졌었다. 그랬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하게, 지금 내

얼굴에 열이 오르는 이유를 단순히 안면홍조쯤으로 생각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내가 강이태랑 친해진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상상이었다. 내성적인

나와는 다르게 항상 주변에 사람이 가득해 보였던 강이태는 누가 봐도 극과 극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중학생 때부터 다져진 피해망상으로 인해 낯선 사람과 쉽게 친해질 수가 없었다.

먼저 다가가는 건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다가오는 사람마저 스스로 쳐내기에 바빴다.

이태는 그런 나한테 지치지도 않는지, 수업시간이든 점심시간이든 나에게 말을 걸어주고

함께 하려 했다. 지금 생각하면 분명 선생님의 부탁에 못 이겨 말 몇 번 걸어줬던 거였을

텐데, 그 당시 나는 그렇게까지 생각이 깊지 않았다. 그저 계속 귀찮게 말 거는 뒷자리에

앉은 애, 이유는 알 수 없지만 계속 눈길이 가는 애. 딱 그렇게만 생각했었다.

***

아무리 멀리하고 싶어도 자리를 바꿀 때마다 자리가 겹친다거나, 누군가 계속 말을

걸어온다면 가까워질 수밖에 없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학교에 전학 온 지 한 달 채 안 지나서 그렇게 나는 강이태와 조금씩 가까워지고 있었다.

거의 한 달간 강이태에게 겹겹이 쌓아두었던 벽들을 허물기 시작했다.

평소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리뷰 쓰기, 영화감상 정도의 부 활동만 생각했던 내가,

농구부에 들어갈 거라곤 그 아무도 생각 못 했던 일이었다. 내가 농구부 가입서명을

했다는 이유로 담임선생님과 체육 선생님께서 긴급회의를 여셨고, 그 얘기는 아빠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약 일주일 동안 선생님과 부모님의 회의가 이어졌고, 다행히 나는 부

활동을 허락받을 수 있었다.

그를 좀 더 가까이서 알아보고 싶었던 마음이었다. 어떤 사람인지, 왜 나한테 친절한지.

가장 궁금했고, 신경 쓰이는 부분이었다.

“헐… 너도 농구부야?”

“…응.”

나는 아직도 농구부 애들의 그 놀란 표정을 잊을 수 없다. 그들의 눈빛만 봐도 ‘너가 왜

여기?’라고 말하는 게 느껴졌다.

누가 봐도 농구부나 축구부, 야구부를 들 것처럼 생기진 않았으니까… 애들이 의아한

표정으로 바라보는 건 어쩌면 당연했다.

누군가 나에게 강이태를 따라 농구부에 들었냐고 물어보면 어떡하지?

평소에 티가 날 정도로 강이태에게 붙어있진 않았다. 오히려 내가 강이태를 졸졸

따라다니는 것처럼 보일까봐 주변까지 신경 쓰며 피해 다녔다. 나는 시끄럽게 뒷말

나오는 걸 누구보다 싫어했다. 어렸을 때 부모님의 이혼문제부터 재혼, 중학교 시절 왕따

생활까지 남들에게 밉보일 일들이 꽤 많았다. 그래서 더더욱 눈에 띄기를 싫어했었고,

선생님들한테나 애들한테 중심인 강이태와는 가까워지고 싶지 않았다.

“너 다리 괜찮겠어?”

“어… 나았어.”

“다행이네. 그래도 금방 나아서.”

말도 안 되는 소리. 처음부터 멀쩡한 다리로 아픈 척하느라 애 좀 먹었지.

마룻바닥 마냥 진한 갈색 나무가 학교 체육관 바닥 전체를 뒤덮고 있었다. 당연히 운동은

운동장에서 해야 된다는 이상한 신념을 갖고 있던 체육선생님 덕에 체육관 안까지

들어와본 건 처음이었다. 거친 모래 대신 운동화에 닿는 딱딱한 바닥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나까지 포함해 농구부에 새로 들어온 학생은 3명이었다. 총 20명 남짓한

농구부원들은 다섯 명 씩 네 줄로 각 맞춰 서 있었다. 내 앞에 서 있는 강이태가 나에겐

새삼 새로워 보였다. 항상 멀리 떨어져 지켜보거나, 그가 내 뒷자리에 앉았던 적이 많았기

때문에 내가 그의 뒷모습을 본다는 건 생각도 못 할 일이었다.

180….

아니… 훨씬 넘나?

차렷 자세로 그의 뒤에 서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유심히 살폈다. 다른 애들에 비해

널찍한 어깨와 등이 어린 나이에 신기하게만 느껴졌다.

갑작스럽게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던 강이태는 깜짝 놀란 내 표정을 보며 살짝 웃음을

지었다. 나는 그의 시선을 최대한 안 피하려 노력했고, 습관처럼 체육복 옷깃을 쥔 채

어색한 웃음을 띠었다.

“그래도 뭐. 취미로 하는 농구니까 그렇게 빡세진 않을 거야. 첫날이기도 하고….”

이태의 그 크고 투박한 손이 좋아졌던 건 그때부터였다. 내 얇은 머릿결을 두어 번

쓸어내며 쓰다듬는 게 기분 좋게 느껴졌다. 나는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내리며

고개를 숙였다. 애초에 같은 남자인 애한테 두근거려 하고,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는 이

상황을 뭐라 받아드려야 할지 그 당시 나로선 알 수 없었다.

… 좋아하는 감정.

18년을 사는 동안 단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었다. 얼굴이 빨개진다 해서 좋아하는

걸까?

섣불리 혼자 좋아하는 감정이라 단정 짓게 된다면, 그 후로 정말 같은 남자인 강이태를

좋아하게 될 것만 같았다.

그 감정이 무서워 겁이 났고, 애써 외면하고 싶었다.

내 눈에 강이태는 모두에게 무언가 드러내지 않는 것 같았다. 항상 그렇듯 모두에게 과할

정도로 친절하고, 항상 책상 의자에 앉아 공부를 한다거나, 놀아봤자 체육관에서 농구를

하는 정도의 생활 패턴이 어딘가 모르게 꽉 막혀있는 것처럼 보였다.

농구부원 20명 정도가 나란히 줄지어 체육관을 뛰는 모습이 나에겐 생소하면서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행히 뜨거운 햇빛 대신 밝은 조명들이 체육관 전체를 비추고 있었다. 앞에 선 강이태의

뒷모습을 보며 체육관 세 바퀴쯤 뛰었을 때, 그의 뒷모습이 점점 내 시야에서 멀어지는 게

느껴졌다. 나는 거친 숨을 내몰아 쉬었고, 따라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흐르는 땀

때문인지 흐릿해지는 눈앞이 어지럽고 속까지 울렁거리는 것 같았다. 농구부원들과 한

바퀴 이상 차이 나기 시작하자, 팔짱을 낀 채 바라보고 있던 선생님이 내 쪽으로

달려오셨다.

그 후로 잠깐 동안 머릿속의 모든 필름이 끊겼다. 아마 선생님께서 날 부축해주셨고, 그

넓은 체육관 전체를 둥글게 두르고 있는 스탠드 위로 앉혔던 것 같았다. 나는 병원에서

배웠던 대로 심호흡을 하기 시작했다. 내 옆에 서서 날 걱정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는

선생님께 괜히 죄송스러웠다. 체육관 벤치에 앉아 거친 숨을 내뱉고 있는 내 모습이

초라하게 느껴졌다. 증상은 나아질 것 같지 않았다.

체육관을 열 바퀴 이상 뛰고 있는 애들이 지금 내 모습을 보고 한심하다 생각하겠지.

그 넓은 체육관에서 내 존재는 너무나도 작았다. 작고 초라한 내 모습에 바뀌고 싶다는

생각을 수도 없이 많이 했지만, 3년간 날 괴롭히고 있는 이 병조차 혼자 극복하지 못하는

내 스스로가 답답했다.

다른 생각을 해보려 해도 결국 자기비하로 이어졌고, 손바닥을 흥건히 적시는 땀들과

다리가 떨릴 정도로 두근거리는 심장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순전한 내 욕심에 들었던 농구부에서는 제대로 된 시합조차 못 뛰어보고 기초체력만

다졌다. 체육 시간 때처럼 멀리서 강이태를 지켜볼 뿐이었다. 널찍한 체육관 구석에서

러닝부터 줄넘기까지 혼자만의 시간이 더 많았다. 그래도 쉬는 시간마다 주인에게

달려오는 강아지마냥 일부러 찾아와주는 강이태가 고맙게 느껴졌다.

이 학교에 전학을 오고 1년간, 나는 내 감정을 깨닫기 위해 노력했다. 내가 느끼는 감정이

어색하고 피하고 싶었지만, 시간이 지나자 오히려 나는 이 감정을 더 파해치려 했다.

그래서 그에게 더 가까이 갔고, 내 자신에게 계속해서 물음을 던졌다.

… 나는 이 애를 좋아하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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