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그 애는 항상 많은 사람들 주변에 둘러싸여 있었다. 그중에는 분명 나처럼 좋아한다는
감정을 동경심으로 포장하는 애들도 있었을 거고, 그저 자기 이미지를 위해 가까이하는
사람도 있었을 게 분명했다. 나는 그와 점점 가까워질수록 자신이 그런 사람들과
다르다는 착각을 했었다. 잠시나마 그렇게 착각했던 내가 지금 생각해보면 어리석다고
느낀다.
정말 어렸으니까 할 수 있는 생각이었지.
다이어리를 들키고 나서는 순전히 내가 강이태를 피해 다녔다. 나에게 무슨 말을 할지 안
들어도 뻔했기 때문이었다. 설상 그가 뱉는 말들이 날 비하하는 말이 아니더라도 나는 또
혼자 깊게 생각하고, 더 힘들어질 것 같았다.
애초에 내가 그와 다시 가까워질 기회를 만들지 않았다. 농구부 활동은 그 날 이후로 건강
핑계를 대며 빠져나왔고, 조 활동은 평소보다 더 조용히 지내며 시간을 보냈다.
강이태도 눈치를 챈 건지 더 이상 나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이태와 친하게 지내면서
가까워졌던 친구들도 저절로 나에게서 멀어질 수밖에 없었다.
사실 처음부터 전학을 염두해둔 건 절대 아니었다. 재개발로 인해 나가기 싫어도 이사를
가야 하는 상황이었고, 다소 적은 재개발 보상금으로 아빠와 내가 갈 수 있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었다.
어쩔 수 없이 지금 살고 있는 곳에서 꽤 떨어진 곳으로 떠나야 했다. 물론 전학도 피할 수
없는 결정이었고, 이 사실을 애들에게 미리 말해야 할지 꽤 오랫동안 혼자 고민했다.
그래도 한때 친했으니까 말하는 건 최소한의 예의일 거라 생각했었다.
분명 난 그렇게 생각했었는데….
어느 날 체육 시간 때 간혹 눈에 띄었던 여자애가 강이태에게 고백을 했다. 물론 그가
고백을 처음 받았을 리 없지만, 평소였다면 곤란한 표정으로 힘겹게나마 거절했을 거면서
마치 나 보란 듯 그 여자애와 사귀기 시작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둘이 사귄다는
사실조차 뒤늦게 애들의 소문으로 건너 듣게 되었다.
간혹 학교에서 집으로 가던 중 이태가 그 여자애와 같이 있는 걸 보게 되면 나도 모르게
천천히 가거나 잠깐 다른 곳에 들리기도 했다.
처음엔 지금까지 일어난 일들을 되짚어보며 어떻게 다시 친해질까 고민을 하기도 했었다.
그러나 강이태는 그런 날 뭉개버리듯 2학년 가을쯤부턴 사귀고, 헤어지고를 반복하기
시작했다. 소문으로는 만나는 족족으로 여자애가 강이태를 찼다는데, 몇몇 애들이
이태에게 직접적으로 물었을 땐 말없이 웃어넘기거나, 대화를 돌렸다.
날이 갈수록 나는 감정적으로 힘들어졌고, 전학을 갈 날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혼자
다니는 생활에 익숙했던 난 학교생활이 힘든 건 절대 아니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그를
지켜보게 된다는 게 심적으로 많이 지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하루하루 버티다보니
말없이 전학을 가게 되었고, 강이태가 과연 나에게 연락을 할지 모르는 일이었지만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연락처를 차단해뒀었다.
***
물기가 뚝뚝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하얀 수건으로 덮어 대충 닦아냈다. 차가운 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적신 탓인지 점점 체온이 낮아지는 것 같았다. 욕실 벽장에 넣어둔
옷을 꺼내 입고 밖으로 나가자 익숙한 남자가 자기 집마냥 내 침대 위에 앉아있었다. 나는
놀란 기색 없이 힘없는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나중에 다시 전화한댔잖아요….”
“…어제부터 기다렸는데. 이 정도는 참아줄 수 있잖아?”
“형은 안 어울리게 가끔 어리다니까….”
나는 아직 물기가 남아있는 머리카락을 목에 걸치고 있던 수건으로 두어 번 털어냈다.
아까 차가운 물을 맞으며 한참 동안 생각을 되짚어서 그런지 몸이 으스스 떨려왔다. 침대
옆에 놓여있는 못 보던 노트북 가방이 내 눈에 띄었다. 나는 두루마리 휴지를 뭉텅이로
쥐어 코를 풀며, 날 멀뚱히 보고 있는 그에게 말했다.
“이건 뭐예요?”
“노트북. 여기서 과제해도 되지?”
“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난 미간을 좁히고 싫다는 기색을 내보였다. 평소였다면
상관없었겠지만, 오늘만큼은 멋대로 행동하는 형의 태도에 불만을 느꼈다. 요즘
이러저러한 일들을 워낙 많이 겪어 생각을 정리할 시간이 필요했다. 아무리
복학생이라지만 이렇게까지 다이나믹한 대학생활은 너무 과한 것 같았다. 차라리 날
환영해주려고 형이랑 강이태가 짜고 친 거라면 웃으며 넘길 수 있을 텐데, 그럴 리도 없고.
나는 바닥에 무릎을 꿇고 그대로 침대에 고꾸라졌다. 침대 시트는 머리카락에 묻어있던
물기로 축축이 젖어들었다. 항상 제멋대로였던 현우 형에게 차마 뭐라 말도 못 하고, 나는
알 수 없는 외계어를 내뱉으며 침대 매트리스를 주먹으로 두어 번 쳐댔다. 그리고는
고개를 획 돌려 한껏 심술 난 목소리로 말했다.
“다음부턴 연락하고 들어와요. 저도 사생활이라는 게 있는데….”
“네네.”
언제나 그렇듯 형은 건성으로 대답하며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냈다. 나는 침대에 턱을
받치고 앉아 꺼져 있던 핸드폰을 켰고, 켜자마자 요란한 알림이 방 안을 울렸다. 어딘가
익숙지 않은 이름의 알림에 눈살을 찌푸렸다.
― 집 잘 들어갔어?
나는 못 볼 거라도 본 사람처럼 핸드폰을 침대 위에 덮어버렸다. 저절로 뱉어진 깊은 한숨
소리가 거슬렸는지, 노트북 화면에 시선을 고정하고 있던 현우 형이 못 이기는 척 입을
열었다.
“너도 교양과제 있지 않냐?”
“…몰라요. 저도….”
고개를 침대에 묻고 있어 어눌한 발음이 새어 나왔다. 분명 어제 끝내려고 가져간
과제들이 그대로 가방 안에 있음에도 어째선지 내 몸은 움직일 생각이 없어 보였다. 나는
겨우 상체를 일으켜 현관에 떨궈진 가방을 끌어당겼다. 강이태 집에서 급하게 도망쳐
나오느라 대충 챙겨온 건지 책 몇 개가 비는 것 같았다. 나는 가방을 거꾸로 뒤집어 한참을
샅샅이 뒤졌다.
그나마 두고 온 책이 당장 마감인 과제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침대 위에 무릎을 굽힌 채
한참을 말없이 노트북 화면만 보고 있던 현우 형이 내게 말을 걸어왔다.
“너 어제 뭘 했길래 외박까지 한 거야? 과제 하러 독서실이라도 갔어?”
“아….”
정말 한숨이 끊이지 않는 상황들의 연속이었다. 나는 바닥에 널브러진 두꺼운 책들 중 몇
권을 골라 던지듯 책상 위에 올려놓았다. 두꺼운 책들이 책상 위에 던져지자 쾅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그리고는 의자에 앉아 책을 펼치고, 노트북 전원 버튼을 눌렀다. 한참 동안
어떤 말을 해야 할까 생각한 끝에 나는 다소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제 이태네 집에 있었어요. 어쩌다 과제 같이하기로 해서.”
“…그래?”
“걔가 저한테 옛날처럼 지내자 하더라고요. 전 딱히 별생각 없으니까… 뭐 다 지나간
일이고…. 괜히 저 혼자 오바하는 것 같아서.”
“하긴. 너도 다 잊었다며.”
얼마 남지 않은 과제 마감 때문인지 시선을 철저하게 화면으로 고정시킨 그의 모습이
왠지 낯설게 느껴졌다. 나는 그런 형을 바라보며 혼자 횡설수설 변명을 하기 시작했다.
지나간 일은 확실히 맞는 말이었지만, 내가 그 일들을 다 잊었다기엔 머릿속의 한 부분에
생생히 남아있었다. 그런 내 기억을 부정이라도 하듯 이렇게 구구절절 말하고 있는 내가
새삼 불쌍하게 느껴졌다.
“…맞아요. 언제 적 일인데.”
형은 내 변명에 쐐기를 박아버렸다.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고, 일부러 큰 소리를 내며 책장을 넘겼다. 그렇게
또다시 이어지는 정적.
아직 복잡스럽게 돌아다니는 생각들을 과제를 하며 한구석으로 몰아냈다. 철없을 때,
그냥 어렸을 때 겪는 첫사랑에 짝사랑일 뿐인데. 좀 특별한 점이라면 상대가 같은
남자였다는 것뿐이고, 덮어두면 되는 일이었다.
나만 강이태를 옛날처럼 대할 수 있으면 깔끔하게 정리되는 일이니까….
형은 어제에 대해 더 이상 물어보지 않았다. 의외로 쿨하게 넘어가는 그의 태도가
이상했지만, 나에겐 오히려 잘된 일이었다. 모르는 사람한테 사기나 당할 것 같고
어리숙해 보이니까, 형은 그런 날 자기 친동생이라 생각하고 과한 걱정을 여태 해왔던
거였다.
무미건조하게 울리는 키보드 두들기는 소리와 두꺼운 책장이 넘어가는 소리. 항상 웃고
떠들기만 했던 형이랑 이런 분위기를 갖게 된 건 꽤 어색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곧
과제 제출이라 신경이 곤두서서 그런 건지, 뭐 때문인지 평소 수다스러웠던 형과는 달라
보였다. 나는 목소리를 가다듬는 헛기침 소리로 오래 끌고 가던 정적을 깨버렸다.
그리고는 노트북을 덮고 굳이 안 해도 되는 말을 일부러 입 밖으로 내보냈다.
“아 끝났다.”
나는 크게 기지개를 켜며 옆에 앉아있는 현우 형을 힐끗 쳐다봤다. 그는 양쪽 귀에
이어폰까지 낀 채 집중하고 있었다. 형이 무슨 노래를 듣고 있는지 밖으로 다 들릴 정도의
볼륨 크기였다. 침대에 쭈그리고 앉아 노트북을 두드리고 있는 게 얼핏 보기에도 불편해
보이는 자세였다. 나는 조심스럽게 의자에서 일어나 그의 옆에 자리 잡고 앉았다. 그는
무심하게 날 쳐다보는 듯싶더니, 이내 시선을 화면으로 다시 옮겼다.
“뭐 듣고 있어요? 엄청 소리 크게 해놨네.”
어색한 웃음으로 나름 용기를 내 다시 말을 걸었다. 나는 형이 끼고 있던 이어폰 한쪽을 빼
귀에 꽂아 노래를 엿들었다. 이어폰 안에선 무슨 노래인지도 모를 팝송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왜? 너 다 했어?”
“…아까 말했잖아요. 다했다고….”
“그랬나?”
형은 무심한 표정으로 쓰고 있던 리포트를 마저 다듬었고, 몇 분 지나지 않아 평생 안 덮을
것 같았던 노트북을 드디어 덮었다.
그리고는 내 귓가에 조곤조곤 한 글자씩 읊조리기 시작했다.
“그럼 걔네 집에서 과제만 한 거야?”
“그랬으면 지금까지 과제 안 했겠죠… . 어제 끝낼라 했는데….”
“어색하진 않았나보네. 보통 오랜만에 만나면 어색해서 집에 들어왔을 텐데. 술이라도
마시지 않는 이상….”
하하….
나는 애써 웃음을 지었다. 내 반응에 어느 정도 눈치를 챈 건지 그는 턱을 괸 채 내 얼굴을
뚫어져라 쳐다봤다. 괜스레 그의 눈치를 보며 나는 크게 하품을 했고, 침대 위에 어질러진
시트 안으로 기어들어갔다. 과제도 끝냈겠다 오늘만큼은 아무 생각 없이 잠이나 푹 잘
계획을 세웠었다. 분명 오늘 아침까지만 해도 그렇게 생각했는데, 하필 오늘 가장 피하고
싶은 사람이 이렇게 아무 말 없이 찾아올 줄 몰랐다. 계획에 차질은 생겼지만, 그러든 말든
나는 형의 눈을 피해 이불 안으로 도망쳤다.
평소 12시간까지 거뜬하게 잘 수 있는 내가 강이태네 집에서 5시간도 못 자고 깬 건 거의
기적이었다. 그때 못 깼으면 지금까지 걔네 집에서 어떻게 빠져나갈지 궁리를 하고
있었을 게 뻔했다.
짧다면 짧은 정적이 이불 안까지 이어졌고, 이불 밖에 있는 형이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조심스럽게 이불 밖으로 고개만 내밀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생각 외로
무덤덤한 표정을 띤 형의 시선이 내 머리카락 끝부터 발끝까지 천천히 흘러가고 있었다.
평소답지 않은 형의 조용한 모습과 분위기가 오히려 의아하게 느껴졌다.
“강이태가 무슨 짓 안 했어?”
“술밖에 안 마셨어요. 그리고 걔….”
“… 걔 뭐?”
“…아니에요.”
걔가 형만큼 앞뒤 안 가리진 않는다고요….
순간적으로 이성의 끈을 잡아 튀어나오려던 말을 가까스로 다시 삼켰다.
자기가 하고 싶은 말은 거르는 법 없이 다 하고, 갖고 싶은 건 꼭 가져야 하는 현우 형과
내가 아는 강이태는 너무나도 다른 사람들이다. 마음 같아선 두 사람을 한 자리에
앉혀두고 제대로 대화 좀 나눠보라고 말하고 싶은 심정이었다. 가운데에 날 두고 서로
으르렁거리고 있는 모습이 시간이 지날수록 나만 지쳐가는 것 같았다.
여러 생각이 한꺼번에 들자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런 내 속을 알 리 없는 현우 형은 가만히
날 지켜보더니 손끝으로 흘러내린 머리카락을 조심스레 넘겨줬다. 그런 형의 손길에 나는
지난 어젯밤 일들을 떠올릴 수밖에 없었다. 어제 생각을 하나씩 되짚자 점점 얼굴까지
달아올랐다.
“너 지금 무슨 생각해? 얼굴까지 빨개져서는….”
그제서야 형의 입가에 미소가 돌았다. 어딘가 가라앉은 분위기에 눈치까지 보며 긴장하고
있었던 내가 순간 바보같이 느껴졌다. 나도 그를 따라 실없는 웃음을 지어 보였다. 항상
먼저 웃어주는 현우 형에게 익숙한 상태였는데, 가라앉은 분위기의 형은 나에게
낯설었다. 누워있는 날 내려다보고 있는 형의 시선이 느껴지자 나는 고개를 돌려 괜히
전공책을 펼쳤다.
소음 하나 없이 조용한 방 안에 요란스럽게 책장 넘기는 소리가 유독 크게 들리는 것
같았다. 형에게 무심한 듯 구는 내 연기는 그의 눈에 너무나도 티 나는 행동일 수밖에
없었다.
형은 말없이 미소를 띠며 빨갛다 못해 뜨거워진 내 귀를 한 손으로 감싸 쥐었다.
“귀까지 뜨거워져서는…. 무슨 생각 하냐니까?”
그제서야 웃음을 띤 형 앞에서 강이태를 떠올렸다고는 차마 말할 수 없었다. 나는 대충
얼버무리듯 말끝을 흐렸고, 내 이마에 짧은 키스를 남긴 현우 형을 말없이 쳐다봤다. 항상
그랬던 것처럼 형이 우리 집에 들어와 있을 때부터 이렇게 될 거라는 걸 눈치채고 있었다.
방에 들어와 있는 형을 보고 반가워하지 않았던 것도, 오늘만큼은 형을 받아줄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아마 지금 내가 딴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도 얼굴에 다 드러났을
것이다. 그런 날 붙잡기라도 하듯 현우 형은 내 입술에 몇 번이고 키스를 하기 시작했다.
짧게 서너 번 반복하던 그의 키스는, 이내 느릿하고 천천히 내 입술에 머물렀다. 한
손으로는 내 머리카락을 쓸어올리고, 능숙하게 키스를 하며 내가 입고 있던 옷을
헤집었다. 그의 손은 차가웠고, 두드러진 마디가 투박하게 느껴졌다. 손끝이 살갗에 닿을
때마다 부족한 공기를 들이마시듯 떨리는 숨을 내쉬었다. 형과의 키스는 항상
느릿하면서도 다급했다. 몇 번이고 날 잡아먹을 것처럼 키스를 하곤 하지만, 내가 놀라지
않도록 최대한 느릿하게 혀를 섞었다. 그 키스마저도 너무나 형다워서, 몇 번이고
나오려던 웃음을 삼킨 적이 있었다.
형은 입술을 떼고 혀끝으로 천천히 목덜미를 쓸어내리는 것 같더니, 질근 깨물어 짙은
자국을 남겼다.
“말해줄 때까지 계속할 거야.”
***
오래된 매트리스가 힘겹게 삐걱거리는 소리. 그 밖에 이 작은 방 안에서 들리는
소리라고는….
“…손가락 물지 마.”
“하아… 읏….”
형은 바쁘게 움직이던 손을 멈추고 내 팔을 잡았다. 신음을 참는답시고 꽉 깨문 탓에 붉은
잇자국이 선명하게 부어올랐다. 내 손가락을 유심히 보던 그는 혀를 차며 그 큰 손으로 내
두 손목을 꽉 잡았다. 나는 미간을 좁힌 채 살짝 짜증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
“완전 형 멋대로인 거 알아요?”
“… 내가 뭘?”
그는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처럼 순수하다는 듯이 웃음을 지었다. 그리고는 젤로 흥건히
젖은 손으로 다시 페니스를 만졌다. 오일처럼 미끌거리면서도 질척거리는 촉감과, 묘하게
자극적인 소리가 날 버티기 힘들게 만들었다. 거칠고 차가웠던 그의 손이 젤 덕분에 마치
다른 사람의 손처럼 매끈하게 느껴졌다. 아직 밝은 곳에서 이런 짓을 할 만큼 면역이
강하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바지가 벗겨지자마자 눈을 감았다. 어쩌다 눈을 뜨더라도
절대 형의 얼굴 밖으로 시선을 돌리지 않았다.
형의 크고 미끌거리는 손이 내 페니스를 감싸고 문지를 때마다 허리부터 머리끝까지
뻣뻣하게 긴장됐다. 젤을 손안에 문지르고 다리 사이에 바르는 동안 적당한 자극과
쾌감에 슬슬 적응되고 있었다. 형은 내가 적응할 때까지 기다렸는지, 손가락을 좁고
동그랗게 말아 이미 발기된 페니스를 억지로 끼워 넣었다. 미끌거리는 젤 때문에 쉽게
손가락 안을 통과한 페니스가 점점 더 부풀어 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문 채, 찌푸린 표정으로 형을 쳐다봤다.
“그 표정 오랜만에 보는 거 같아.”
“하아… 장난 좀… 적당히 쳐요….”
“난 나름 진지한데? … 입 안에 싸면 각오해.”
그는 의미심장한 말과 동시에 손가락으로 페니스를 꽉 쥐었고, 한껏 달아오른 입 안에
페니스를 머금었다. 입 안의 혀가 페니스를 감쌀 때마다 이질적이고 낯선 느낌이 들었다.
체온 가득한 입 안에서 사정을 참는 건 생각보다 힘든 일이었다. 온몸에 힘을 주고 긴장을
놓지 않았다. 꼿꼿하게 세워져 있던 허리선이 긴장감에 조금씩 흐트러졌고, 굳게 다물고
있던 입 밖으로 옅은 신음을 몰아쉬었다. 형은 그런 내 반응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고개
숙여 열심히 핥아댈 뿐이었다.
“하아… 으응….”
나는 손을 아래로 뻗어 그의 머리카락을 가볍게 쓸었다. 그리고는 머리를 감싸 쥐며 몸을
앞으로 웅크렸다. 잔뜩 흥분한 앞부분을 혀의 끝으로 간지럽히듯 핥아대자 더 이상
신음을 참기 힘들 지경이었다. 시트 자락을 꽉 쥐고 있던 손으로 다급히 입을 막았다. 손
사이로 옅게 새어 나오는 신음 소리에 그는 더 세게 내 것을 빨아댔다.
“생각보다 잘 참네.”
한참을 물고 빨던 형은 손등으로 입가를 가볍게 닦아내며 장난스러운 웃음을 지었다.
나는 드디어 끝났다는 생각에 괜히 여유로운 척 숨을 고르고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이제 그만 장난치고 끝내요.”
“이제 시작인데 무슨 소리야?”
가끔 그가 평소보다 무서워 보일 때가 있다. 아까처럼 이유 모를 조용함을 유지할 때, 날
보고 능글거리는 웃음을 지어 보일 때, 듣도 보도 못한 물건을 내 눈앞에 보여줄 때….
“지금까지 잘 참았으니까… 상을 줘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