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화
끼이익, 무겁고 차가운 철문의 닫히는 소리가 방 안을 울렸다. 둘 중 아무도 철문의
문고리를 잡아당기지 않았다. 느긋하게 닫히는 현관문과 달리 내 손은 어느 때보다
바쁘게 움직였다. 영화관 만큼이나 어두운 공간. 어쩌면 영화관보다 더 어두컴컴하고
잡음 하나 없이 조용하게 느껴졌다. 손으로 현관의 신발장을 짚는 소리, 그가 신고 있던
운동화가 벗겨지는 소리까지. 눈 앞이 안 보이는 탓에 청각이 더 예민해진 것 같았다.
쾅하고 문이 닫히는 소리에 그도 놀랐는지, 어깨를 움츠리며 잠깐 동안 숨을 멈췄다.
그리고는 이내 익숙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나는 그런 그를 재촉이라도 하듯 허리를
감싸 밀착했고, 목덜미에 입술을 갖다 댔다.
“…잠깐만. 씻고 해요.”
입술 끝에 스친 그의 귓가가 평상시보다 더 뜨겁게 달아올라 있었다. 눈에 보이진
않았지만, 하진은 손을 뻗어 스위치가 달린 벽면을 더듬고 있는 것 같았다. 나는 방
스위치를 누르려던 그의 손을 잡아 말렸다. 내 손 안에서 꼼지락거리는 그 손이 나에겐
간지럽게 느껴졌다. 한 손으로는 그의 손을 잡고, 남은 한 손으로는 얇은 허리를 감싸
천천히 바닥에 눕혔다. 내 행동 하나하나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들이 나에겐 흥미롭게
다가왔다.
“어두운 데에서 하는 건 오랜만이네. 게다가 이런 상황은 처음이잖아.”
“…형, 현관에서 하는 게 취향이었어요?”
한껏 가빠진 숨소리가 나를 더 다급하게 만들었다. 나는 최대한 조심스럽게, 그가 놀라지
않게끔 짧은 입맞춤을 남겼고, 그 짧았던 입맞춤은 자연스레 키스로 이어졌다. 혀끝으로
살짝 벌어져 있는 입술 사이를 파고들며 천천히 혀를 섞었다. 방금 전보다 더 뜨겁고 가쁜
숨이 왠지 만족스럽게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남자보다 날 더 생각하고 있겠지.
나는 그에게 매달리듯 더 오랜 시간 키스를 했고, 살짝 휜 목선을 따라 키스 마크를
남겼다. 보이는 곳에 남기지 말라며 칭얼거리는 그의 말이 오늘따라 더 귀엽게 들려오는
것 같았다. 나는 다소 성의 없는 대답을 내뱉었고, 손을 아래로 내려 하진이 입고 있던
하얀색 반팔 티셔츠를 위로 걷어냈다.
반나절 동안 비어져 있던 탓에 방바닥은 차갑게 식은 상태였다. 그 차가운 바닥에 누워
윗옷을 반 이상 걷어냈으니, 등이 차가울 법도 했다. 하진은 허리를 꼿꼿하게 세우며 한
손으로 내 소매를 꽉 잡았다. 세워진 허리에 무리는 가지 않을까, 나는 허리를 받쳐주며
그의 다리 사이에 무릎을 세웠다. 방금 전 꽤 길게 나눴던 키스 때문인지 하진은 이미
흥분한 상태인 것 같았다.
“…이미 딱딱해진 거 같네.”
“형…!”
그만 좀 놀리라는 듯, 하진의 목소리 톤이 살짝 올라갔다. 나는 장난스럽게 웃음으로 대신
대답했고, 그의 뺨에 짧은 키스를 남겼다.
10분 정도 지나자, 어느 정도 시야가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처음 방 안으로 들어섰을 땐
서로의 얼굴이 안 보일 만큼 어두웠던 거 같은데, 지금은 그의 표정과 시선의 움직임까지
얼추 알아볼 수 있었다. 나는 손등으로 뺨과 귓불을 스치며 하진의 몸 곳곳에 입을 맞췄다.
입술이 닿는 곳마다 한껏 달아오른 체온을 느낄 수 있었다. 계속되는 애무 때문인지,
손끝부터 발끝까지. 긴장한 기색이 역력했다. 나는 그 긴장감을 조금이나마 덜어주기
위해 가볍게 허리를 끌어안으며 그의 손가락을 할짝였다.
“무슨 개도 아니고….”
투덜거리듯 내뱉은 그의 말에 작게 웃음을 터트려버렸고, 나는 다시 손가락 하나하나
혀를 뒤엉키며 핥아나가기 시작했다.
“하아… 읏…”
그는 손으로 입을 막은 채, 신음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최대한 숨을 죽이고 있었다.
“손 떼. 그냥 소리 내도 돼.”
“알았으니까… 침대 가서 해요.”
“그러게 내가 호텔 가자고 했잖아….”
“…내일 수업 있다니까요.”
하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고, 손을 뻗어 내 뒷목을 끌어당겼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채 하진을 멍하니 쳐다봤다. 이렇게까지 가까이서 눈을
쳐다보는 건 오랜만의 일이었던 것 같았다. 이마가 맞닿자, 그의 체온이 얼마나 높게
올라갔는지 실감할 수 있었다. 하진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
“형, 오늘 이상해요.”
“…뭐가?”
되물었지만, 나는 그에 대한 대답을 듣고 싶지 않았다. 지금은 서로의 앞에 있는
사람에게만 집중하길 원했다. 그 어떤 말이나 묘사 없이 오로지 몸에만 의지하고 싶었다.
하진의 입에서 말이 이어지려 하자, 나는 목덜미를 살짝 깨물며 굳게 잠겨진 바지 지퍼
부근을 손바닥으로 문질렀다. 묵직하고 딱딱한 감촉이 손바닥을 맴돌았다.
혹시라도 대화 중 내가 듣기 싫은 사람의 이름이 나온다면 나는 어떤 식으로 그를 대해야
할까.
아마 여태까지 잘 견뎌온 내 인내심이 한순간에 끊겨버릴 것 같았다. 계속해서 애태우는
내 손길에 하진은 허리를 이리저리 비틀며 다리를 오므렸다. 상체를 살짝 들어 양손으로
내 목 뒤를 감싸던 하진은 참다못해 몸을 일으켰고, 대충 윤곽만 보이는 큼직한 침대에
털썩 앉아버렸다. 나는 그에게 졌다는 듯 신고 있던 구두를 벗어 침대 쪽으로 향했다.
***
항상 느꼈듯, 남자 둘에게 싱글사이즈 침대는 턱없이 부족한 크기였다. 나는 잠겨있던
그의 바지 지퍼를 손으로 가볍게 내렸고, 하진도 기다렸던 건지 스스로 바지를
벗어버렸다. 이렇게까지 적극적인 모습은 거의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기 때문에 나를 더
자극하는 행동으로 보일 뿐이었다. 창피하긴 했던 건지, 한쪽 팔로 얼굴을 가린 채 입을
열었다.
“빨리해요. 그만 좀…”
“…그만 좀?”
“…뜸 좀 그만 들이라고요. 참기 힘드니까.”
달뜬 숨 때문인지 그의 목소리가 미세하게 떨려왔다.
“미안. 제대로 할게.”
난 조금이라도 더 긴 시간 동안 이러고 있길 바라는데….
나는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다시 한번 입술에 긴 키스를 남기며 그의 드로즈 안으로 손을
넣었다. 뜨거운 체온에 차가운 손끝이 닿자, 하진은 몸을 잔뜩 움츠리며 반응했다. 그런
모습 하나하나가 나에겐 사랑스럽게 느껴졌다. 나는 그의 페니스를 드로즈 밖으로 꺼내
천천히 어르고 달래듯이 한 손으로 문지르기 시작했다. 침대 헤드 바로 위에 있는 창문
때문인지 그의 얼굴이 현관 앞에 있을 때보다 더 잘 보이는 것 같았다. 감기라도 걸린
사람마냥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뺨과 이마와 꽉 다문 입이 안쓰럽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죄책감에 나는 서둘러 몸을 숙였고, 잔뜩 성나있는 그의 페니스를 조심스레 입 안에
머금었다.
입 안 가득 퍼져오는 뜨거운 체온에 나는 살짝 고개를 들어 그의 표정을 살폈다. 한
손으로는 헝클어진 시트 자락을 꽉 쥐고, 한 손으로는 습관처럼 입을 틀어막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필사적으로 신음을 참으려는 하진에게 이유 모를 오기가 생기는 것 같았다.
유치하고 우스운 얘기처럼 들리겠지만, 더 집요하게 그를 괴롭혀 틀어막은 입 사이로
신음 소리를 듣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입 안에 머금고 있던 페니스를 한 손으로 느슨히 잡은 채, 천천히 혀로 할짝이며
자극해나갔다. 까슬한 혀의 표면이 민감하고 부드러운 살갗에 맞닿자, 그는 가까스로
신음을 참아내며 무릎을 세우려 했다. 나는 어두운 방 안에서 유독 빛나고 있는 하진의
눈을 일부로라도 마주하려 했다.
언제까지, 이런 시간이 얼마 동안 이어질지 모르니까. 나는 그와 함께 있는 시간을
조금이라도 더 눈에 담고 싶었다. 아까보다 더 흥분한 그의 페니스를 나는 양손으로 쥐어
입 안 깊숙한 곳까지 넣었다. 목구멍 끝까지 밀어 넣어 그의 달아오른 페니스 끝 부분을 꽉
조였다. 나는 타액으로 흥건히 젖은 페니스를 손바닥으로 문질렀고, 얕은 신음 소리만
맴돌던 방 안엔 어느새 질척이는 소리로 가득 채워졌다. 그 소리가 꽤 자극적이었던 건지,
하진은 고개를 젖히며 발끝을 뻣뻣이 세웠다.
“…뜨거워.”
“하아… 아…!”
나는 엄지손가락의 끝 부분으로 그가 평소 민감했던 부분을 살살 문질렀다. 정면을 보고
누워있던 하진의 자세는, 옆으로 웅크린 채 양손으로 베개를 끌어안는 자세로
바뀌어있었다. 그제서야 참았던 신음이 입에서 하나둘씩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왠지
모를 만족감에 나는 흡족한 미소를 지었고, 손에 쥔 페니스를 점점 더 세게 흔들어댔다. 내
사소한 손짓 하나에 반응하며 신음 내는 하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것 같았다.
“…형, 그만…. 더 하면… 나올 것 같아요.”
“하아… 그럼 한 번 더 하면 되지.”
하진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잠시 동안 내 얼굴을 바라봤고, 이미 말이 안 통한다는 걸 안
건지 손을 뻗어 내 팔을 꽉 잡아 말렸다. 나는 그의 말림에도 아랑곳 하지 않은 채 그의
손이 닿지 않는 다리 사이, 깊숙한 곳을 손가락으로 노렸다. 살살 긁어내듯 민감한 곳을
건드리며 한쪽 팔은 길게 뻗어 침대 옆 테이블을 더듬거렸다.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둔탁하고 딱딱한 물건들이 헝클어지는 소리에 하진은 마른침을 삼키며 불안한 듯 내
눈치를 살폈다. 나는 말랑한 손 촉감의 튜브를 손에 잡았고, 눈 바로 앞까지 갖다 대며
캄캄한 곳에서 글씨를 읽으려 노력했다. 어두운 공간에서 그 작은 글씨가 보일 리 없었다.
나는 미간을 찌푸리며 뚜껑을 열었고, 그의 엉덩이 사이로 로션 같아 보이는 액체를 쭉
짜냈다.
탁자 위에 있던 거니까… 핸드크림쯤 되겠지.
미끌거리면서도 차가운 액체가 다리 사이를 타고 침대 시트까지 적셔버리자, 하진은 살짝
올라간 목소리 톤으로 화를 냈다.
“시트… 젖잖아요.”
“내가 내일 빨아줄게.”
마치 어린애를 달래주듯 나는 말끝을 늘이며 그의 투정을 받아줬다. 하진은 차가운
액체가 기분 나빴는지, 허리를 세운 채 어떻게 좀 해보라는 얼굴로 날 빤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손가락 끝을 세워 그 차갑고 미끌거리는 액체를 훑어냈고. 가장 깊숙하고
뜨거운 곳에 천천히 문질렀다. 질척이다 못해 찌걱거리는 소리가 새삼 자극적이게
들려왔다. 분명 문지르기만 했을 뿐인데, 하진은 꽤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나는 마른침을
삼키며 미세하게 떨리는 목소리로 그에게 물었다.
“…오늘따라 더 급해 보이네.”
“아… 읏…”
“조금만 참아.”
나는 점점 가빠지는 숨을 최대한 티가 안 나게 고르며 그의 애널을 집요하게 괴롭혔다.
잔뜩 뿌렸던 알 수 없는 액체 덕분인지, 금방 느슨해진 구멍 안으로 손가락 한 마디 정도를
집어넣었다. 그러자, 하진의 입에선 교성에 가까운, 기분 좋아 보이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나는 혀끝으로 입맛을 다시며 한번에 깊숙한 곳까지 손가락을 밀어 넣었다. 극도의
흥분감에 사로잡혀 부러질 것처럼 휘어버린 허리가 보기만 해도 아파 보였다. 나는 그의
입술에 키스를 남기며 넣었던 손가락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미끌거렸던 액체는 그의 다리
사이를 흥건히 적셨고, 그 사이로 풍겨오는 복숭아향이 향기롭게 느껴졌다. 나는 코를
킁킁거리며 그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왜요?”
“너 향 있는 로션 싫다고 맨날 무향으로 쓰지 않았나?”
“…….”
순간 하진의 얼굴이 지금까지 빨개졌던 것보다 더 붉게 달아올랐다. 나는 수상하다는 듯
빤히 바라봤지만, 그는 내 시선을 피하며 상체를 앞으로 확 일으켰다. 그리고는 곤란한
미소를 지으며 어색한 손짓으로 내가 입고 있던 셔츠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딴소리 그만하고 집중해요.”
“…아니. 뭔데?”
끝내 단추를 하나하나 다 풀어버린 그는, 손으로 내 다리 사이를 더듬거렸다. 묵직하고
단단하게 뭉친 페니스가 손끝에 닿자 꽤 놀란 표정을 지으며 바지 버클과 지퍼를 내렸다.
새삼 놀라기는….
나는 창밖에서 비춰오는 빛에 의존해 침대 옆, 서랍장을 뒤적거렸다. 덜그럭거리는
소리가 꽤 크게 들릴 정도로 방 안은 조용했다. 살짝 불안한 눈빛으로 내 쪽을 쳐다보던
하진은, 내 손에 쥐어진 콘돔 박스를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나는 입꼬리를 슬쩍
올려 음흉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뭘 생각한 거야? 내일 수업 있다는 애한테 심한 짓 할 정도로 나쁜놈은 아니거든?”
“…평소 형이라면 가능하죠.”
하진은 게슴츠레 뜬 눈으로 날 바라봤고, 나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콘돔 하나를 이 끝으로
뜯어냈다. 분명 그와 섹스하는 게 한두 번 일도 아니면서, 대체 뭐 때문에 이렇게 떨리는
걸까. 나는 짧고 복잡한 생각을 잠시 뒤로 제쳤고, 능숙한 손놀림으로 콘돔을 씌웠다. 그도
긴장한 건지, 살짝 떨리는 손으로 내 한쪽 어깨를 잡으며 어색하게 시선을 마주했다.
“…딱 한 번만이에요.”
“누가 들으면 한 번에 서너 번씩 하는 줄 알겠네.”
“맞잖아요…!”
내 아래에 누워 빽 소리를 지르며 바르작거리는 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새삼 웃음이
터져 나왔다. 나는 뜨겁게 달아오른 이마에 쪽 소리가 나도록 키스를 남겼고, 이내 화가
가라앉은 건지 하진은 아무 소리 없이 고개를 베개에 묻어버렸다. 얇고도 살짝 들려있는
허리가 놀라지 않게, 양손으로 살며시 잡은 채 그의 다리 사이로 몸을 더 밀착시켰다.
윤활제가 묻은 콘돔의 표면이 사타구니 쪽에 문질러지자 베개를 꽉 쥐고 있던 그의 손이
허리 쪽까지 내려왔다. 나는 아랫입술을 꽉 깨물며 느릿하면서도 깊게, 안쪽 깊숙한
곳으로 페니스를 밀어 넣었다. 한껏 휘어버린 허리와 도드라진 목선. 하진은 달뜬 숨을
힘겹게 내뱉으며 잔뜩 구김진 얇은 침대 시트를 꽉 움켜쥐었다.
그런 모습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알 수 없는 감정들이 휘몰아쳤다.
‘좀 더 오랫동안 갖고 싶어. 이런 모습 다른 사람한테는 보여주고 싶지 않아.’와 같은….
유치하고 이기적인 감정.
나는 덜덜 떨리는 하진의 몸 곳곳에 감칠맛 나는 키스 마크를 하나둘씩 새겼다. 평소
같았으면 왜 이렇게 많이 남기냐며 화냈을 하진이였는데, 지금은 그럴 힘조차 없어
보였다. 창밖 건너편 건물의 빛 덕분에 그의 몸에 남겨진 붉은 자국들이 선명히 보였다.
나는 달뜬 숨을 내쉬며 한 손을 쫙 펼쳐 그의 배 주변을 간지럽히듯 매만졌다.
“…많이 아파?”
“아… 아직은 괜찮아요.”
뜨거운 체온이 섞인 숨소리와 그 틈으로 미세하게 떨리는 그의 목소리.
나는 손등에 노란빛이 돌 정도로 시트 자락을 꽉 쥐고 있던 하진의 손을 살며시 잡아
깍지를 꼈다. 뜨거운 체온이 한가득 전해오는 느낌이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그가
적응할 때쯤, 멈춰있던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꽉 조이다 못해 물고 안 놔주는 느낌이
날 더 흥분시키는 것 같았다. 넘어갈 것처럼 가빠진 숨소리가 조용했던 방 안을 더 가득
채웠다.
하진이 집을 비울 때면 항상 쳐져 있던 암막 커튼이, 오늘따라 걷혀있는 이유는 대체 뭘까.
삐걱이는 침대 매트리스와 몇 발자국만 걸으면 닿는 부엌. 이젠 익숙해질 때도 된 거
같은데, 내 앞에 있는 이 남자랑 할 때 만큼은 항상 새로운 기분이 든다. 나는 방금 전보다
조금 더 거칠게 허리를 흔들었다. 하루, 이틀 지나면 사라질 키스 마크들. 그 위로
잇자국이 남게끔 꽉 깨물었다.
“하… 으읏…! 아…”
그의 입에서 터져 나오는 억눌린 신음들이 나에겐 더 자극적이게 들려왔다. 나는
양손으로 그의 허벅지를 받쳤고, 하진의 몸 곳곳을 입술로 탐하며 허리를 흔들었다.
뜨거운 숨이 그 작은 공간을 가득 메우는 느낌이었다. 식은땀이 갈색 머리카락을 적시기
시작할 때쯤, 나는 그의 입술에 딥키스를 남기며 깊은 곳에 사정했다.
***
“…댔잖아요.”
“뭐?”
“한 번만 한댔잖아요!! 무슨 발정 난 개도 아니고…!”
하진은 베개에 묻고 있던 고개를 들고 버럭 소리쳤다. 미안한 마음이 있긴 한 건지, 현우는
마른 수건으로 몸에 묻은 물기를 닦으며 그에게 사과했다. 그리고는 다 벗은 꼴로
욕실에서 걸어 나와 하진의 옷장 서랍을 뒤적거렸다. 침대에 엎어져 있던 그는, 살짝
상체만 일으킨 채 현우의 행동을 주시했다.
“…또 마음대로 입으려고요?”
“하하… 씻고 나서 입던 옷 또 입으면 찝찝하잖아.”
현우는 멋쩍은 미소를 띠며 하진의 옷들 중 가장 커 보이는 티셔츠와 바지를 서랍에서
골랐다. 방 안을 천천히 둘러보던 현우는 잠깐 동안 생각에 빠진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바닥 이곳저곳에 널브러진 다 쓴 콘돔들과 처음부터 더러웠다지만, 알 수 없는 액체들이
묻은 침대 시트. 평소 깔끔함을 추구하던 현우에게 이것보다 더한 고문은 없었다. 현우는
한껏 진지한 표정을 지으며 바지만 대충 입은 채 청소를 하기 시작했다. 책상 밑 플라스틱
재질의 휴지통을 한 손에 들고, 손끝으로 떨어져 있던 축 처진 콘돔을 들어 버리자, 하진은
식겁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실내 휴지통만큼은 청결했으면 하는데요….”
“이게 더러워?”
현우는 장난기 가득한 얼굴을 하고는 손가락 두 개로 집고 있던 콘돔을 그에게
가까이했다. 그의 장난을 받아주기도 전에 허리의 통증이 더 심해졌는지, 하진은 눈살을
찌푸리며 주먹으로 허리를 두드렸다.
“많이 아파?”
“당연하잖아요…. 한 번에 서너 번 한 적 없다면서요? 그래놓고…”
“미안…. 청소 다 하고 약 발라줄게.”
그는 들고 있던 휴지통을 가볍게 들어 책상 위에 있는 쓰레기까지 한 번에 쓸어담기
시작했다. 바닥에 떨어진 옷가지부터 펜까지, 주워 올리던 현우의 눈에 핑크색의
반투명한 튜브가 눈에 띄었다. 현우는 그 핸드크림처럼 생긴 튜브를 들어 거기에 적힌
글을 소리 내어 읽었다.
“…러브… 젤. 사랑하는 만큼… 뿌려 주세…”
아무 생각 없이 바라보고 있던 하진이 벌게진 얼굴로 그가 들고 있는 튜브를 낚아챘고,
빼앗은 튜브를 빛의 속도로 침대 옆, 먼지가 가득한 후미진 곳에 던져버렸다.
“…방금 그거 뭐였어?”
“핸드크림이요.”
하진은 잔뜩 떨리는 목소리로 어색한 미소를 띠며 말했다. 차근차근 상황파악을 하던
현우는 피식 웃음 지으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아까 썼던 게 러브젤일 줄이야. 어쩐지 복숭아향을 로션으로 쓸 리가 없었는데.”
“….”
“아까 들어보니까 새것이라기엔 좀 가볍더라.”
“그냥 좀 못 본 척하면 어디가 덧나요? 진짜… 애도 아니고….”
그의 흔들리는 시선이 현우의 눈엔 누구보다도 잘 보였다. 현우는 심드렁한 말투로
중얼거리던 하진을 가만히 쳐다보더니, 그 큰 손을 뻗어 그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하진은
의아한 눈빛으로 그를 쳐다봤지만, 현우는 침대에서 일어나 옷장 구석 편에 있는 구급
상자를 가져왔다. 그리고는 파스를 꺼내 그의 허리에 붙여줬다.
“갑자기 뭐예요?”
“뭐긴. 너 허리 아프다며.”
“…형, 요즘 진짜 이상한 거 알아요?”
“…내가 뭘?”
“원래 자상하지 않았던 건 아니지만….”
아주 짧은 정적.
“…내가 그랬나?”
현우는 하진의 머리카락을 다시 한번 쓰다듬으며 누가 들어도 건성에 가까운 말을
내뱉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