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8)화 (8/240)

- 008회 -

물리지 않기 위해 막대와 다른 쪽 발로 좀비의 머리를 필사적으로 밀어내던 채이는 제 발목에 완전히 가까워진 피 묻은 이빨을 보았다.

곧 이어질 통증을 상상하며 눈을 질끈 감은 그 순간.

퍽-!

갑자기 옆에서 튀어나온 날붙이가 좀비의 머리를 반으로 가를 것처럼 내리꽂혔다. 채이의 발목을 물기 직전이던 좀비가 컥, 소리를 내며 멈춰버렸다.

“내가 위험할 때일수록 눈 감는 거 아니라고 했지.”

놀라서 얼어있던 채이는 거친 숨소리를 담은 익숙한 목소리를 따라 그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괜찮아?”

자신보다 더더욱 침착하고 냉정한 목소리의 오빠, 강준성이 좀비의 머리에서 마체테를 뽑아 들며 물었다.

준성을 확인한 채이는 저도 모르게 긴장이 풀려 휘청거렸다. 준성은 그런 채이의 팔을 잡아서 넘어지지 않게 지탱해주며 그녀의 상태를 살폈다.

“다친 데는 없어?”

“…응.”

고개를 끄덕여 보인 채이가 바르게 섰다. 옷 곳곳에 피가 묻긴 했어도 그게 본인의 것이 아니라는 걸 눈으로 확인한 준성이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툭툭 두드려주었다. 채이는 그런 준성을 바라보며 묘한 눈을 했다.

왜 이 시간에 여기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평소에는 그냥 게임에 빠진 방구석 집돌이에 불과한 오빠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든든하게 느껴졌다.

준성은 마체테를 휘둘러서 그 표면에 묻은 검붉은 피를 털어내며 채이의 팔을 잡아끌었다.

“왜 아직 여기 있어? 지금쯤이면 조교실에 있었어야…….”

준성은 말을 채 잇지 못한 채 입을 다물었다. 원래대로라면 이미 조교실에 무사히 들어갔어야 할 그녀들이 지금까지 이 복도에 있었던 이유는 아마도 어긋난 시간 때문일 거라 생각했다. 2시 정각에 알람 소리가 났다면 좀비와 마주칠 일 없이 그대로 조교실로 뛰어들어갔을 테고, 자신은 몇 분 뒤에 곧장 그녀들과 합류했을 거다.

채이의 붙잡혔던 발목을 내려다보았다. 그녀의 청바지와 약간 드러나 있는 하얀 발목에는 좀비가 쥘 때 생긴 핏자국이 선명히 남아있었다.

조금만 늦었더라면 꿈에서도 죽지 않았던 채이가 현실에서 발목을 물려 좀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두려움을 넘어 이런 변수를 만든 원흉인 자신에게 화가 날 지경이다.

‘더 이상 변수는 없어야 해.’

채이 몰래 입속 살을 씹으며 정신을 가다듬던 준성은 영문도 모른 채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소연까지 잡아끌고서 조교실로 향했다.

마음이 급해서 두 번이나 비밀번호를 틀려버린 지우는 세 번째에 이르러서야 제대로 조교실 문을 열 수 있었다. 그녀는 채이와 소연을 데리고 달려오는 준성을 향해 빨리 오라며 손짓했다.

“빨리요! 빨리!”

시끄러운 재촉을 들으며 조교실 안으로 들어간 세 사람의 뒤로 지우가 다급히 문을 닫는 소리가 들렸다.

“흐아아….”

완전히 긴장이 풀린 듯, 헉헉거리던 소연이 바닥에 털썩 주저앉으며 긴 숨소리를 내었다. 문에 등을 댄 채 미끄러지듯 앉아버린 지우 또한 마찬가지였다.

숨을 고르던 준성은 조교실 내부를 슥 훑어보았다.

꿈에서 봤던 조교실 내부와 동일했다. 데스크의 서류 한 장 달라진 게 없고, 가성비 좋아 보이는 2인용 소파 두 개와 원목 테이블까지 똑같다. 심지어 지우가 터덜터덜 걸어가서 열어젖힌 냉장고 안의 캔커피 종류와 배치마저도.

새삼 두 달간 꿔왔던 꿈이 참 신기하게 느껴졌다. 딱 한 번 와봤던 게 전부인 채이의 대학 구조와 이런 조교실 내부를 자신이 어떻게 알고 꿈을 꿨을까.

‘이런 게 예지몽인가.’

두 달 내내 재시작하는 예지몽이라니, 들어본 적도 없다.

시간이 갈수록 자신이 꾼 꿈에 대해 놀라고 있던 준성은 자신의 소매를 잡아당기는 느낌에 시선을 돌렸다.

창백하던 아까와 달리 혈색이 좀 돌아온 채이가 준성을 올려다보며 물었다.

“오빤 어떻게 된 거야? 왜 여기 있어?”

“너 구하러 왔지.”

무심한 목소리로 대답한 준성이 채이의 볼로 손을 뻗었다. 소연을 공격하던 좀비를 때리면서 튄 피가 그녀의 볼에도 약간 묻어있었다.

채이는 볼에 묻은 피를 닦아주는 준성의 손을 걷어내며 눈가를 찌푸렸다.

“내가 학교 어디 있는 줄 알고 구하러 왔다는 거야? 조교실은 또 어떻게 알고?”

“말해도 못 믿을걸.”

“말해, 뭐든 믿어줄게.”

“숨 좀 돌리고 말해도 돼?”

“…….”

채이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눈치였지만 더 몰아붙이진 않았다. 일단은 안전한 곳에 들어왔으니 준성의 말대로 숨 좀 돌리고 나면 알아서 차차 말해주겠지.

“저기…….”

어느새 다가온 지우가 준성을 향해 캔커피 하나를 내밀며 눈치를 보았다.

“채이 오빠세요?”

“응. 둘 다 채이 친구들이지?”

‘네’라고 대답한 지우가 본인과 소연의 이름을 대신 말해주다가 갑자기 울먹거렸다. 준성은 꿈에서 봤던 것처럼 지우가 현실에서도 똑같이 겁과 눈물이 많다는 것에 이마가 지끈거리는 걸 느꼈다. 체구가 작다고는 해도 건장한 남자인 게 분명한데 참 시도 때도 없이 잘 우는 학생이었다.

“흑, 형, 저희, 흑…, 저희 어떻게 되는 거예요? 이게 다 무슨……. 흑….”

수도 없이 봐온 지우의 눈물이라, 준성은 당황하지 않고 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없이 위로했다. 말로 달래주면 달래줄수록 더 서럽게 우는 타입이라서 이렇게 토닥여주기만 하는 편이 그의 눈물을 빨리 멈추게 하는 방법이었다.

지우는 자신을 토닥여주는 준성을 바라보며 몇 번 훌쩍이다가 이내 손등으로 눈을 거칠게 비벼대며 눈물을 삼켰다.

“진정됐으면 잠깐 앉아볼래?”

준성의 말에 지우가 순순히 고개를 끄덕이며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바닥에서 일어난 소연 역시 준성의 얘기를 듣기 위해 지우와 같은 소파에 나란히 앉아 그를 바라보았다. 이때까지 서 있던 준성도 백팩을 내려놓으며 채이 옆자리에 엉덩이를 붙였다.

시원한 캔커피를 단번에 절반이나 들이켠 준성이 맞은편에 앉은 지우와 소연에게 말했다.

“다들 지금 상황, 어디까지 알고 있어?”

이제야 제대로 말해주려는 건가 싶어서 채이가 눈을 빛내며 대꾸했다.

“폭동 일어났다는 기사만 봤어. 다들 그렇게 알고 있었는데, 갑자기 좀비가 우르르 나타나서는……. 아니, 그 전에…….”

한 템포 숨을 고른 채이가 약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우리가 본 거, 좀비 맞지?”

“맞아.”

채이의 떨리는 질문에 비해 가볍고 짧은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대답은 세 사람 모두에게 다시금 섬뜩한 긴장감을 부여해 주었다.

“시간 없으니까 짧게 설명할게.”

‘시간이 없다’라는 말에 의문을 가질 새도 없이 준성의 말이 이어졌다.

“다들 본 것처럼 곳곳에는 좀비가 널렸어. 인한시는 이미 군에 의해 폐쇄됐고, 알다시피 연락수단과 인터넷 모두 완전히 끊긴 상태야. 다른 지역에서는 인한시에 대규모 폭동이 일어났다고만 알고 있어서 이런 좀비 사태는 전혀 모르고 있어.”

준성은 꿈을 통해 일찍이 파악했던 현 상황을 중요한 것만 축약해서 말해주었다. 그 안엔 국가가 나서서 관리에 들어간 탓에 인터넷을 통해선 절대 얻을 수 없는 정보 또한 섞여 있었다.

얘기를 듣던 지우가 사색이 되어 입술을 덜덜 떨었다.

“이, 이렇게 좀비가 떼로 돌아다니는데 모를 수가 있어요? 우린 좀비가 나타났다고 신고까지 했다고요!”

“경찰 당국에도 이미 공문이 내려왔어. 통신이 끊어져서 신고도 못 하겠지만, 만약 그전에 신고했다고 해도 좀비 관련 신고 접수는 전부 묵살됐을 거야.”

“그럴 리가 없어요! 그럴 리가!”

지우가 절망적인 목소리로 악을 썼다. 그의 어깨를 감싸며 토닥여주는 소연 역시 안색이 파리해지긴 마찬가지였다.

놀라울 정도로 발 빠른 대응과 차단.

국가는 그만큼 이 사태를 심각하게 보고 있었다.

‘좀비’라는 존재를 빠르게 인정하고 인한시를 봉쇄, 고립시켜서 어떻게든 그 안에 사태를 수습하고자 필사적이다.

인한시 외부의 국민들이 만약 ‘좀비’의 존재를 인지하게 된다면 한국, 나아가 전 세계가 혼란에 휩싸인다. 한국은 정치, 경제, 외교, 모든 방면에서 외면받게 될 거고, 영원히 ‘좀비 바이러스 발병지’라는 딱지를 붙인 채 손가락질받으며 살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다른 나라의 간섭을 막으려면 일이 커지기 전에 해결해야만 했다. 그걸 위한 대응과 차단이라, 높은 사람들의 속내를 다 알고 있던 준성으로서는 인한시에 고립된 사람 중 하나로서 그저 씁쓸할 수밖에 없었다.

이야기를 가만히 듣던 채이가 석연찮은 표정으로 준성을 바라보았다.

“오빤 어떻게 그걸 다 알아?”

이상함을 느낀 채이가 준성을 추궁했다.

“지금 말한 내용, 뭘 근거로 그렇게 확신하냐고. 여태 집에만 틀어박혀 있었을 텐데 어떻게……!”

똑똑-

채이의 말이 뚝 끊어졌다. 예기치 못한 소리에 그녀를 포함한 모두가 잔뜩 긴장한 얼굴로 문을 바라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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