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18회 -
“에이! 칵, 퉤!”
담배를 입에 문 채 선로를 걷던 50대 남자가 신경질적으로 침을 뱉었다. 그러고선 휴대폰을 들어 연신 긴급전화를 눌러보았다. 역시나 연결이 되지 않자 성난 얼굴로 담배를 뻑뻑 피워댔다.
담배 한 대 정도로는 진정할 수 없는지, 다 피운 담배를 발로 비벼 끄면서도 새 담배 하나를 꺼내 들었다.
담뱃갑 안에 남아있는 담배의 수는 고작 6개.
남자는 얼마 남지 않은 담배를 보며 갈등했지만, 일단은 자신의 격한 감정을 달래는 게 먼저였기에 결국 입에 새 담배를 물었다.
두 번째 담배를 피우며 터덜터덜 걷던 남자는 담배 연기와 함께 긴 한숨을 내뿜었다.
“씨부레! 구조는 대체 언제 오는 거야?! 할 일이 태산인데……, 아오.”
혀까지 굴려 가며 시원하게 욕지거리를 내뱉은 남자가 휴대폰으로 다시금 긴급전화를 누르려 했다.
쾅!
“헉!”
근처에서 갑자기 들려온 소리에 화들짝 놀란 남자가 반밖에 태우지 못한 담배를 바닥에 툭 떨구었다. 놀란 가슴을 진정시키며 소리가 난 쪽을 보자, 저 앞에 불빛이 들어오는 스크린도어가 보였다.
“아이씨, 놀랐잖아!”
소리를 낸 게 스크린도어에 달라붙은 좀비의 짓이라는 걸 알아챈 남자가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안 그래도 몇 개비 없는데 반밖에 못 태운 담배를 버리게 했으니, 스크린도어에 달라붙은 좀비가 짜증날 수밖에 없었다.
남자는 겁도 없이 스크린도어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스크린도어에는 몸을 기대고 있거나 머리를 박고 있는 등, 누가 봐도 축 처진 듯한 좀비들이 달라붙어 있었다. 근처에 공격할 인간이 없으면 이처럼 넋을 놓은 듯한 상태가 되는 게 이 좀비들의 특징 중 하나였다.
남자는 선로에서 스크린도어를 올려다보며 크게 소리쳤다.
“이 씨부레 새끼들아! 늬들 때문에 다 된 계약 깨지면 책임질 거야?! 늬들이 나 승진시켜 줄 거냐고!”
남자가 소리치자, 이에 고개를 번쩍 든 좀비들이 스크린도어를 마구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캭! 캬악-!
쿠아아-!
쾅쾅쾅!
남자는 스크린도어에 금세 가득 달라 붙어버린 좀비들의 기세에 일순 주춤하는가 싶더니, 코웃음 치며 그들에게 삿대질을 했다.
“어디 백날 두드려봐라! 그게 열리나!”
스크린도어가 아주 튼튼하다는 건 철호와 함께 이쪽으로 대피했을 때부터 알았다. 지하철이 이동할 때 생기는 풍압을 견디기 위한 강화유리라서 어지간한 충격과 무게에는 끄떡도 없다고 들었다.
“아하하! 대한민국 기술 만만세다, 씹새끼들아!”
남자는 두 팔을 번쩍 들고서 만세를 외치는 자세로 크게 웃었다. 남자의 존재를 알아챈 좀비들이 스크린도어에 겹겹이 달려들었다.
그때.
쩌적.
스크린도어에 막힌 좀비들의 먹먹한 괴성과 문을 두드리는 소리 사이로 이상한 소리가 끼어들었다. 하지만 남자는 좀비들을 비웃으며 스트레스를 푸는 중이라 그 소리를 미처 듣지 못했다.
쩍, 쩌적.
“아하하하!”
쩌저적-!
실컷 웃는 와중에도 들릴 정도로 이번 건 소리가 좀 크고 뚜렷했다.
불길한 예감에 남자는 웃던 걸 멈추고서 소리의 근원지를 눈으로 찾았다.
쩌적!
이내 근원지를 찾아내었다.
비상문 바로 옆의 스크린도어.
중앙 부분이 무언가 단단한 것으로 내리친 것처럼 깨져 있고, 그곳을 중심으로 균열이 사방으로 퍼져 나가고 있었다.
단순히 약간 깨진 정도에 불과했다면 이처럼 사방으로 균열이 퍼지진 않았겠지만, 좀비들의 무게가 쏠리고 그들이 문에 다닥다닥 붙어서 유리를 마구 때려댄 탓이었다. 충격을 받으면 제일 약한 부분, 즉 손상된 부분부터 문제가 생기는 법이다.
남자는 당장이라도 깨질 것처럼 큰 균열이 있는 스크린도어를 보며 뒤로 주춤 물러났다.
“뭐, 뭐야!”
심장이 터질 만큼 극도의 불안감을 느낀 그 순간.
균열이 있던 유리 전체에 모자이크라도 덧씌워진 것처럼 엄청난 수의 촘촘한 균열이 생겼다. 뒤이어 유리 전체가 남자를 향해 쏟아지듯 무너져내렸다.
* * *
사람들에게 식량을 충분히 나눠주고서 훨씬 가벼워진 백팩을 정리하던 준성은 텐트 안으로 들어오는 한서를 보며 못마땅한 얼굴을 했다.
“너 들어오니까 꽉 차네. 그냥 네가 텐트 하나 혼자 쓰는 게 낫지 않아?”
“울보 후배가 남하고는 같이 못 잔다잖아.”
한서의 말대로 지우는 남하고 같이 못 자는 예민한 성격이긴 했다. 그래서 꿈에서는 지우가 하도 징징대기에 어쩔 수 없이 텐트를 하나 더 쳐서 따로 잠들었던 기억이 있다. 그렇다고 한서와도 따로 자기 위해 텐트를 더 늘려달라고 하기엔 다들 2인용 텐트를 알맞게 쓰고 있어서 눈치가 보였다.
‘어차피 하루만 자고 갈 건데 뭐.’
불편하더라도 오늘 밤만 보내면 내일 병원으로 이동할 테니, 그곳에서는 1인용 침대를 마음껏 쓸 수 있을 거다.
백팩을 정리하던 준성은 습관처럼 시계를 내려다보았다.
‘이제 슬슬 채이를 달래줘야겠는데.’
채이는 소연과 함께 들어간 2인용 텐트에서 그녀를 토닥여주는 중이었다. 남자인 지우보다 더 강단 있는 소연이었지만, 긴장이 풀리고 나니 눈물이 흐르는 걸 멈출 수가 없던 모양이다.
심지어 그녀의 부모도 같은 인한시에 있다고 한다. 아마 부모님 걱정 때문에도 불안해 미칠 지경일 거다.
‘우린 부모님이 안 계셔서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
2년 전에 비행기 사고로 돌아가신 아빠와 엄마의 얼굴을 떠올려본 준성은 자기도 모르게 감정적이 되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아냈다. 그래야 이따가 채이의 멘탈이 바스러지는 타이밍에 그녀를 적절히 달래줄 수 있다.
꿈속에서 봤던 채이의 울먹이는 얼굴을 떠올리며 시계를 보고 있는데, 뒤에서 갑자기 다가온 한서가 가까이 밀착해 앉았다. 그러더니 시계를 찬 왼손 손목을 덥석 붙잡았다.
“시계를 굉장히 많이 보네. 쓸데없을 정도로.”
낮은 음색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참 매력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같은 남자끼리 매력적이라고 느껴 봐야 하등 쓸모가 없다.
준성은 징그러울 정도로 달라붙어 앉은 한서를 돌아보았다. 얼굴이 너무 가까워서 놀라는 것도 잠시.
“네가 정해진 시간에 맞춰서 판을 짜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건, 내 착각일까?”
한서의 말에 준성은 대답 대신 그를 빤히 바라보았다.
어차피 자신의 선택지에 ‘꿈에 대한 얘기를 해준다’는 선택지는 없었다. 그건 도한서도 마찬가지이지만, 앞으로 만날 모두에게도 그런 선택지는 없을 것이다.
자신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따라줄 사람은 극히 드물었다. 믿어줬던 사람들도 결국은 이용하려는 자들에 의해 죽거나 농락당했다.
모든 걸 털어놓았던 자신 역시 잔인한 대우를 받았다.
재시작하기 위해 스스로 바닥을 기어 좀비에게 향했을 정도로.
그 이후로 준성은 꿈에서조차 타인에게 자신의 능력을 말하지 않았다. 현실에서라면 더더욱 입을 다물어야 했다.
현실은 고통을 고통이라 느끼게 하니까.
도한서가 얼마나 짐작을 했든, 준성이 할 말은 하나뿐이었다.
“우연이야.”
“우연? 흐음….”
한서의 의심스러운 숨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눈빛만큼이나 차가운 숨결이라, 준성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며 그를 밀어내었다.
“징그러우니까 좀 떨어져.”
“밖에 들릴까 봐 그랬지.”
변명하던 한서가 갑자기 움찔하며 눈을 꾹 감았다. 그러더니 준성을 뒤에서부터 끌어안듯 기대서는 그의 어깨에 이마를 묻었다.
“뭐 하는…….”
한서의 몸이 꽤 묵직하기에 그를 밀어내려는데, 어째 그의 숨소리가 이상했다. 손목을 잡고 있는 손도 약하게 떨리는 것 같다.
워낙 몸도 잘 쓰고 안색 하나 바뀌는 법이 없어서 어딘가 아프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갑자기 이렇듯 늘어져서는 색색거리고 있으니 준성도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야, 뭐야. 너 괜찮아?”
“음…. 준성아….”
커다란 녀석답지 않게 목소리에도 힘이 없다.
준성은 한서에게 정말 큰 문제가 생긴 줄 알고 급히 물었다.
“어디가 어떻게 안 좋은데? 머리 아파? 아니면 배? 팔? 아까 로프 지탱할 때 진짜 다쳤던 거 아냐?”
저절로 말이 빨라졌다.
다른 이들이라면 꿈을 통해 언제 어떻게 아프고 뭘 해줘야 나을지 속속들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도한서는 달랐다.
현실에서 처음 만나게 된 인물이라 이렇게 갑자기 아파하는 걸 예상할 수가 없었다.
준성은 급히 백팩을 뒤졌다. 약국에서 웬만한 건 종류별로 다 챙겨왔기에 뭐든 말만 하면 알맞은 약을 척척 꺼내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빨리 말해 봐. 어디가 아픈…지…….”
약 몇 개를 집어 들고서 한서를 돌아보려던 준성은 왼손이 허전해진 걸 느꼈다.
“흐음, 준성이는 역시 남이 아픈 거에 약하구나.”
어느새 원래대로 돌아온 한서의 목소리가 귓가를 간질였다.
준성은 한서가 일부러 실감 난 꾀병을 부린 거라 생각하며 진심으로 화난 표정을 지었다.
“아픈 척한 거야?”
“응.”
“너한테 욕 좀 해도 돼? 하지 말라고 해도 할 거야.”
“좋아. 네가 하는 쌍욕도 들어보고 싶었거든.”
장난스레 대꾸한 한서가 방금 준성이 정신없는 틈을 타서 은밀히 풀어냈던 손목시계를 그의 앞에 들어 보였다. 그의 장난스럽던 눈빛이 점차 싸늘하게 바뀌어 갔다.
“근데 말이야.”
낮은 속삭임이 준성의 귀를 파고들었다.
“내가 널 찾아온 것도 네가 예상했던 ‘우연’이야?”
준성은 한서의 말에서 이상함을 느꼈다.
‘날 찾아왔다고?’
안전한 곳을 찾아서 조교실에 왔던 게 아니라, 나를?
준성이 의문을 담은 눈으로 한서와 눈을 마주했다. 한서의 눈은 웃음기 하나 없이 차갑고 예리하게 빛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