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20회 -
“윽, 뭐야! 아악!”
준성과 한서에게 각각 팔 하나씩을 붙잡힌 남자가 소리를 질렀다. 몸을 바둥거리면서도 이미 좀비화가 코앞인지, 자꾸만 컥컥 소리를 내고 몸을 퍼덕거렸다.
남자의 몸부림치는 힘이 생각보다 강하다.
준성은 기겁한 얼굴로 주저앉아 있는 철호에게 소리쳤다.
“아저씨, 저희가 끌고 나갈게요! 빨리 문을……! 윽!”
준성은 오른손에서 느껴지는 통증에 이를 악물었다.
남자가 몸부림을 치면서 준성의 오른쪽 손을 물어버린 것이다. 그것도 물자마자 피가 날 정도로.
꿈에서 좀비들에게 수도 없이 물려봤지만 이렇게 생생한 고통은 처음이었다. 이빨이 박힌 게 꿰뚫린 근육을 타고 여실히 느껴질 정도로 너무 아팠다.
그럼에도 준성은 팔의 힘을 풀지 않았다. 이미 물릴지도 모른다는 건 각오하고 있었기에 오히려 남자를 더 세게 압박하며 한서와 함께 그를 문으로 질질 끌었다.
“아저씨, 빨리!”
“아, 아아, 네!”
철호가 다급히 문으로 향했다.
“오빠!”
준성에게 달려가려는 채이를 소연이 두 손으로 꽉 붙잡아 막았다.
“오빠! 오빠!”
준성이 눈앞에서 물린 걸 봐버린 채이가 결국 참았던 눈물을 쏟았다. 그걸 본 준성이 속으로 미안해했다.
‘멘탈 잡아줘야 할 타이밍에 하필…….’
지금쯤이면 채이를 다독이며 불안한 정신을 잡아줬어야 했는데, 오히려 동생을 더욱 괴롭게 하는 장면을 보여버렸다.
하지만 지금은 채이를 달래줄 틈이 없다. 바로 앞은 아니어도 근처에 좀비가 있는 만큼, 문이 열리면 바로 나가야 했다.
빠르게 밖을 살핀 철호가 대피소 문을 활짝 열었다. 준성과 한서는 단번에 힘을 내어 남자를 끌고 대피소 밖으로 나가는 데에 성공했다.
“문 닫으세요!”
“하, 학생들 들어와야죠!”
철호가 얼른 들어오라며 손짓했지만 안에서 누군가가 ‘물렸잖아! 어딜 들어와!’하고 소리치는 게 들렸다.
남자에게 물려버린 걸 봐버린 탓에 대피소의 사람들은 준성이 좀비가 될 거라고 확신하고 있었다. 그 마음을 준성도 알고 있었기에 씁쓸히 고개를 저을 수밖에 없었다.
준성은 안절부절못하는 철호에게 작게 웃어주었다.
“일주일만 버티세요, 아저씨. 그전까지는 밖에 나오지 말고 문 꼭 닫고 계시고요.”
남자에게 당부한 준성은 자신들이 걸어왔던 방향의 터널 쪽에서 나는 괴성과 발소리를 들으며 얼굴을 굳혔다.
“닫아요!”
머뭇거리던 철호는 준성의 외침과 터널 한쪽에서 들려오는 좀비들의 괴성 때문에 결국 문을 굳게 닫아버렸다.
“컥, 크헉!”
그때까지도 준성의 손을 물고 있던 남자가 목을 꺾으며 괴로운 숨소리를 냈다. 남자의 입에서 그륵거리는 소리와 함께 피가 한 움큼 터져 나왔다.
한서는 그런 남자의 뒷머리를 잡아, 대피소 옆 벽면에 머리를 거세게 박아 버렸다. 한 번으로는 부족했는지 세 번이나 연이어 찧었다. 너무 무서운 기세라서 준성은 그를 말리지도 못한 채 숨을 죽였다.
조금 전의 충격으로 얼굴이 온통 피범벅이 된 남자가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그는 더 이상 일어날 것 같지 않았다.
“그래도 방금까지 사람이었는데 너무하는 거 아냐?”
준성이 묻자, 한서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웃으며 ‘더 처박고 싶은데 조절한 거야’라고 상냥히 대꾸했다.
그러는 사이, 터널 한쪽에서 달려오는 발소리와 괴성이 많아졌다. 터널은 워낙 소리가 울려서 멀리까지 들리다 보니, 대피소 문밖에서 나던 소리를 듣고 쫓아오는 듯했다.
어차피 유인할 생각이었으니 상관없다.
준성은 피가 흐르는 오른손을 지혈할 새도 없이 코트 주머니에서 경보기를 꺼냈다. 조교실에서 썼던 것과 같은 것으로, 소리로 유인하는 데에는 이만한 것도 없다.
삐-삐-삐-삐-
경보기의 시끄러운 소리가 터널을 가득 메웠다. 그 소리를 들은 좀비들이 우르르 달려오기 시작했다.
지하철의 전등은 모두 나가 있어도 벽면의 비상구 유도등은 건재했다. 어두워서 멀리까지 잘 볼 수는 없어서 시야 끝의 비상구 유도등을 주시했다. 녹색의 유도등이 순간적으로 검게 점멸하면 그 앞을 좀비가 지나갔다는 뜻이니 그때부터 달리면 될 것 같았다.
현재 목표는 이 경보음이 닿는 거리의 모든 좀비를 모아서 유인하는 것.
준성은 다가오는 좀비 무리의 압박감을 느끼며 애써 태연한 척 한서에게 말했다.
“지금이라도 대피소 안으로 들어가. 넌 안 물린 거 아니까 다들 받아줄 거야.”
“싫어.”
단호히 대답한 한서가 씩 웃었다.
“이쪽이 더 재밌어 보이거든.”
“미친 새끼.”
이번만큼은 욕을 안 할 수가 없다.
도한서는 역시 비정상이다.
준성은 백팩에서 손전등 두 개를 꺼내서 그중 하나를 한서에게 건네주었다.
“달리기 빨라?”
“아마.”
“만약 나 뒤처지면 버리고 그냥 달려.”
그 말을 하자마자 한서가 어둠 속에서 차갑게 노려보는 게 느껴졌다.
“살 생각으로 시작한 거 아냐?”
“맞아. 살려고 이 짓거리 하는 거지. 뒤처진다고 해서 죽을 생각으로 너 먼저 가라는 거 아니니까 걱정 마.”
죽더라도 매일 재시작되던 꿈이 아니라 지금은 현실이다. 당연히 절대로 죽어선 안 된다.
준성의 기백이 느껴졌던 건지, 한서가 씩 웃었다.
“난 살 생각으로 달려드는 애들이 좋더라.”
한서는 어딘지 모르게 들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준성으로서는 그가 진짜 미친 새끼 중에서도 제대로 미친 새끼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그때.
준성의 시야 끝, 저 멀리에 있던 유도등이 깜빡, 점멸했다.
뒤이어.
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깜빡!
횟수를 셀 수도 없는 어마어마한 수의 점멸이 이어졌다.
캬아악-!
으어어어!
준성은 좀비들이 달려오는 방향의 반대쪽을 향해 손전등을 비췄다.
“달려!”
한서 역시 손전등으로 정면을 비추며 준성과 함께 달려갔다.
스크린도어가 파손되어 터널에 좀비가 들어온 방향은 한쪽뿐이었다. 반대쪽은 역마다 스크린도어가 모두 건재하고 터널에 진입한 좀비도 없는 거로 기억하기에, 안심하고 그쪽을 향해 뛰었다.
삐-삐-삐-삐-!
시끄러운 경보음이 계속되고 등 뒤 저 멀리에서 들려오는 괴성과 발소리 역시 쉴 새 없이 들려왔다.
꿈에서 좀비들을 가득 만나봤던 준성이지만, 차마 뒤를 돌아볼 수 없었다. 엄습하는 두려움과 불안을 억누르며 필사적으로 달리는 데에만 집중했다.
‘잡히면 안 돼.’
당연한 얘기지만, 잡히면 그 순간 죽는다. 저만한 수의 좀비들이 모두 달려들어 뜯어먹는다면 머리와 뼈만 남거나 그마저도 기대할 수 없을 것 같다.
준성은 자신과 속도를 맞춰 함께 달려주고 있는 한서를 바라보았다. 둘 다 손전등으로 앞을 비추며 달리고 있었기에 그의 얼굴을 보는 건 충분히 가능했다.
자신의 불안한 마음과 달리, 한서는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이었다. 오히려 이 상황을 즐기고 있는 것처럼 보인달까.
평범한 사람과 확실히 다른 정신 상태(?)를 가진 게 분명하지만 덕분에 불안이 줄어든 것도 사실이다. 준성으로서는 죽을지도 모르는 길을 함께 달려주는 한서에게 고마울 수밖에 없었다.
‘대학…, 같이 다녔으면 일찌감치 친구였을 수도 있겠네.’
프로게이머 활동 때문에 대학을 포기했던 준성은 동생과 같은 대학에 다니며 한서와 같이 강의를 듣는 그런 멋대로의 상상을 해보았다.
덕분에 몸을 굳게 하던 긴장감이 적절히 조절되었다.
“이대로 달리기만 할 건 아니지?”
숨이 거칠어지기 시작한 준성과 달리 한서는 상당히 평온한 숨소리였다. 역시 운동으로 다져진 몸이라 체력도 굉장히 좋은 듯했다.
손전등으로 정면을 비추는 내내 끝없는 터널만 보이고 있었다.
올곧은 직선의 길.
준성은 아직 보이지 않는 저 끝에 있는 게 무엇인지 알고 있었다.
“인한대역 다음 역이 어디인지 알아?”
“개안역이잖아.”
굳이 지하철 노선도를 찾지 않아도 지금 자신들이 뛰고 있는 터널 벽면의 유도등에 ‘548m 직진 시 개안역’이라는 표기가 되어 있다. 대피소가 인한대역과 개안역 사이에 있었기에 548m만 가면 된다.
“개안역에는 차량기지가 있어. 그래서 그쪽엔 선로도 일직선만 있는 게 아니라 차량기지로 향하는 레일과 터널도 있거든.”
한서가 그건 몰랐다며 준성을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그런 걸 일일이 파악하고 있는 사람이 흔하진 않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준성은 꿈에서 이 터널을 통해 개안역을 지나 병원 방향으로 향했었다. 이번에도 동생과 그 친구들을 그렇게 병원까지 데려갈 생각이었는데, 생각지도 못한 일이 터지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그들을 대피소에 남겨야만 했다.
준성은 숨이 빠르게 가빠지는 걸 느끼며 말을 이었다.
“저 좀비들을 이대로 차량기지가 있는 터널 쪽으로 몰아넣을 거야.”
“그럼 우리는?”
한서의 당연한 질문에 준성이 꿈속의 한 장면을 더듬으며 대답했다.
“다음 역으로 가는 터널과 차량기지 터널 사이에 양쪽의 이동을 위한 비상통로가 있어.”
“아하.”
준성의 계획을 완전히 파악한 한서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러면서도 그의 시선은 준성의 긴장한 얼굴에 닿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평범한 일반인이 지하철을 이만큼이나 꿰고 있다는 게 이상했다.
한서의 시선이 준성의 왼쪽 손목에 닿았다.
여태껏 시계를 수시로 보던 준성인데, 지금은 시계가 없다는 것도 전혀 모르고 있다.
‘흐음.’
한서는 준성을 의미심장하게 바라보며 옅게 미소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