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0회 -
707 특수임무단.
대한민국 육군특수전사령부 소속, 직할 특수임무 부대이다.
국가급의 대테러 임무나 중요한 특수작전을 주로 수행한다.
이 특수임무단 소속인 서창민은 준성이 짜둔 판에서 유용하게 움직일 동료였다. 게임으로 치면 ‘영웅’으로 분류되는 능력치 좋은 캐릭터나 마찬가지이다.
준성은 몸을 잘 쓰는 한서가 있긴 하지만, 특임단 출신을 따라갈 순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위험할 때의 임기응변이라든지 상황판단력, 나아가 무기를 사용하게 될 때도 그만큼 든든한 사람은 없다.
‘얻기 힘든 카드였을 뿐이지.’
다시금 오늘의 일을 뿌듯하게 여겼다. 꿈속에서 아무리 살려서 얻고 싶어도 못 얻던 레어 카드, 서창민을 현실에서 얻었으니까.
꿈속에서부터 이미 서창민이 어떤 사람인지 파악하고 있었기에 놀랄 것도 없었지만, 자연스럽게 감탄한 척했다.
“어마어마한 곳 출신이시네요. 대단해요.”
“그렇지 않습니다. 저보다야 준성 씨가 대단하죠.”
“저는 그냥 게임만 하던 일개 백수예요.”
“하하, 농담도.”
준성의 진심 어린 사실을 웃어넘긴 창민이 다소 흥분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깜짝 놀랐어요. 무서우셨을 텐데 저희 구해주시려고 좀비 무리에 뛰어들기까지 하시고 아예 전멸시키기까지……. 진짜 대단하십니다.”
창민은 진심으로 감탄하고 있었다.
그는 아직까지도 눈앞의 마른 남자가 마체테를 거침없이 휘두르며 좀비들을 때려잡던 걸 잊지 못했다. 유약해 보이는 얼굴이라, 좀비와 눈만 마주쳐도 울먹거릴 것 같은데 실상은 전혀 달랐다. 좀비들이 도리어 그를 보고 도망가야 할 것 같다.
게다가 그는 머리가 참 좋았다.
거창한 방법 없이 쇠파이프 하나로 좀비들의 돌진을 늦춰서 도망갈 시간을 벌어준 기지, 특정 상가 주변 골목의 구조를 파악하고 활용할 줄 아는 관찰력과 판단력, 휴대폰과 스피커를 이용한 유도작전 및 가스폭발을 이용한 좀비 섬멸까지.
창민은 준성에게서 특임단의 유능한 두뇌파 장교와 같은 냄새를 맡았다.
사실은 한서가 없었으면 단념해야 했을 방법들이었고 꿈속에서 확보한 정보들도 갖고 있었기에 가능한 바였지만, 이를 풀어서 얘기해줄 순 없는 노릇이었다.
가볍게 ‘고마워요’라는 짧은 인사로 대신한 준성은 이제 술술 말도 잘 하게 된 창민에게 질문을 받았다.
“그런데 인한시 바깥 상황을 알아봐 줄 수 있는 사람을 구하러 가신다고 했잖아요? 그러느니 직접 인한시 외곽에 마련되어 있을 피난처를 찾아가시는 게 낫지 않을까요? 대피도 하고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거고요. 아, 준성 씨가 구해주신 제가 할 말은 아니지만요.”
창민이 머쓱한 얼굴로 볼을 긁적였다.
창민의 질문은 꽤 예리했다. 그리고 맞는 말이기도 했다. 누구나 내 코가 석 자인 상황에 바깥 상황 좀 알아보겠답시고 누굴 구하러 가겠다니.
구조대라도 올 거라는 확신이 있으면 모르겠는데, 그렇지 않다면 창민의 말대로 시 외곽의 피난처로 향하거나 아니면 그냥 괜찮은 은신처 하나 찾아서 틀어박혀 있는 게 제일 낫다.
그럼에도 준성이 내일 만날 그 사람을 구해야 한다고 생각한 건, 그가 가진 능력도 능력이지만 구할 수 있는 게 내일뿐이라서였다.
준성은 일단 창민의 말에 수긍해주었다.
“맞는 말 하셨어요. 보통은 창민 씨 말대로 하는 게 낫죠.”
“하지만 피난처 위치도 명확하게 알려진 바가 없고, 지금 우리가 있는 곳은 인한시 한가운데라서 외곽으로의 이동도 어려워요. 이동 중에 우리가 모두 살아있을 거라는 보장도 없죠.”
냉정한 말에 창민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내일 그 사람을 구하게 되면 어차피 시 외곽의 피난처도 찾을 수 있고, 그 이상도 알아볼 수 있어요. 이러나저러나 그 사람이 필요해요.”
“그렇군요.”
고개를 끄덕인 창민이 물었다.
“그 사람은 어떤 분이세요? 경찰 관계자나 소방대원?”
“아뇨.”
준성은 꿈속에서 만났던 그 남자를 떠올려보았다.
“배 나온 공돌이요.”
* * *
겨울답게 해는 금방 떨어졌다.
하루하루 해가 떨어지는 시각이 앞당겨지는 가운데.
준성은 컨테이너 사무실 구석에서 일찍부터 나란히 누워 잠든 두 사람을 멀찍이서 바라보고 있었다.
병원에서 챙겨온 모포 두 개는 전부 그들에게 주었다. 사흘 내내 세탁소에 갇혀 제대로 먹고 마시지도 못하고 잠도 푹 잘 수가 없었을 테니, 지금처럼 어느 정도 안전과 쾌적함이 확보된 상태에선 마음이 놓일 수밖에 없다.
“잘 자네.”
무릎을 세워 두 팔을 팔짱 껴서 얹은 준성이 그 위에 머리를 눕히며 중얼거렸다.
“피곤했겠지?”
준성은 모포가 두 개 뿐이기도 하고 시기가 시기이니만큼 불침번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피곤함에 찌든 두 사람을 먼저 재우기로 했다. 미안해하긴 했지만 제안을 거절할 수 없을 정도로 피곤했는지, 역시나 눕자마자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옆에 같이 앉아 있던 한서에게로 고개를 돌렸다.
“넌 괜찮아?”
“뭐가?”
눈이 마주친 도한서가 부드럽게 웃어주었다.
준성은 그런 한서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들었다.
“피곤하지 않아? 피 많이 뽑았잖아.”
거리가 있어서 들릴 리는 없겠지만, 혹시 몰라서 목소리를 낮췄다.
“원래 빈혈 때문에 병원도 자주 갔던 거라며. 피 많이 뽑아서 또 빈혈 생기는 거 아냐?”
“음…, 듣고 보니 어지러운 것 같기도 하고.”
장난처럼 했던 말이지만 준성의 얼굴을 심각하게 만들기엔 충분했다.
“누워. 당장 누워.”
“괜찮아. 이 정도쯤은…….”
“누우라고.”
준성이 눈꼬리를 치켜올리며 명령하자, 한서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옆에 누워버렸다. 머리를 땅에 대려다가 멈칫하던 그가 눈가를 휘며 음흉한 시선을 보냈다.
“베개 없으면 자기 힘든데.”
“백팩 베고 자.”
“별의별 거 다 들어서 베고 자면 아파.”
한서가 준성의 허벅지를 은근하게 쓰다듬었다.
“이거 베고 자면 안 돼?”
“그러든가.”
한서의 음흉한 손끝이 품은 수상함을 깨닫지 못한 준성이 선뜻 허벅지를 내주었다. 다리를 쭉 펴서는 여기에 머리를 대라, 라는 표시로 허벅지 가운데를 툭툭 때렸다.
준성의 허벅지를 베고 옆으로 누운 한서는 스르르 눈을 감아보았다.
“최고의 베개네.”
“그냥 다리에 근육 없다고 웃어도 돼.”
“칭찬으로 한 말이야.”
그다지 칭찬으로 받아들이지 않던 준성은 옆으로 누워 있는 한서의 머리카락을 저도 모르게 쓰다듬어보았다. 그냥 손을 내려둘 위치에 부드러운 머리카락이 있어서 습관적으로 만져보는 것뿐이었다.
한서는 그게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눈을 감고 있는 한서의 얼굴에 기분 좋은 미소가 떠올랐다.
“누가 쓰다듬어 주는 거, 기분 좋은 거네.”
“기분 좋으면 이대로 그냥 자.”
원래 피부가 하얘서 이게 창백한 건지 아닌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무방비하게 눈을 감고 누워 있는 모습을 보다 보니 그를 쉬게 해주고 싶었다.
한편으로는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본인이 원해서 스스로 채혈까지 해가며 ‘백신’을 제게 줬다지만, 그 탓에 피로해진 것처럼 보이는 건 착각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람을 위험천만하게도 가스폭발이 날 곳으로 보내버렸다. 그 방법이 최선이었다고 해도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였다.
‘하물며 ‘백신’을 위험하게 만들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오늘의 자신은 너무 무모했다. 결과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한서에게 위험을 감수하게 한 건 자책할 만했다.
“내일부턴 좀 더 안전한 쪽으로 구상해볼게.”
“괜찮아. 난 스릴 있는 거 좋아해.”
한서가 감았던 눈을 뜨며 피식 웃었다.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엄청 기분 좋거든.”
“…미친놈이네.”
“맞아.”
한서는 부정하는 대신, 누운 채로 손을 뻗어 준성의 등허리를 쓸었다.
“위험한 거 좋아해. 놀이공원에서 제일 무서운 놀이기구부터 타러 가는 심리랑 비슷하달까.”
“진짜 목숨이 걸린 거랑은 다르잖아.”
“그런가.”
한서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래도 둘 중에 선택하라면 난 역시 목숨 걸린 게 좋겠어.”
“절대 안 돼. 이제부터는 위험하지 않게 할 거야.”
어차피 위험하게 몸 써야 하는 일에는 적격자인 서창민이 있다. 애초에 서창민을 제일 먼저 얻으려고 했던 이유 속에는 도한서를 위험한 역할에서 빼두기 위함도 끼어 있었다.
“네가 위험해지느니 차라리 내가 할래.”
준성은 진심으로 그렇게 생각했다.
친구라서든, 그와의 약속 때문이라든, 유일하고도 완벽한 ‘백신’이기 때문이든.
오늘처럼 도한서를 위험하게 만드는 일은 없어야 했다. 절대적으로 지켜야 하는 자를 최전선에 내보낸다는 건 전략적으로도 미친 짓이다.
준성을 올려다보던 한서가 갑자기 미간을 찌푸리더니 몸을 일으켜 앉았다.
“이대로는 안 되겠어.”
“뭐가?”
일어나 앉은 한서가 웃음기 없는 눈으로 준성을 마주 보았다. 준성은 그가 정말 몸 어딘가가 이상해서 일어난 줄 알고 걱정 어린 눈을 했다.
하지만 한서의 입에서 나온 말은 준성의 미간을 확 찌푸리게 했다.
“또 설 것 같은데, 키스해주면 안 돼?”
“제정신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