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057회 -
입구로 뛰어들어가자마자 첫 번째 좀비가 보였다. 머리를 일부 뜯어먹혀서 피가 맺힌 두개골이 드러나 있기에, 준성은 그 자리를 노려서 마체테를 내리찍었다.
뭔가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좀비는 괴성 한 번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쓰러졌다. 좀비의 팔에서 튀어나와 있던 부러진 뾰족한 뼈가 아파트 입구 벽면의 녹슨 우편함을 끼이익-하고 긁으며 지나갔다.
캬학-!
키엑, 칵!
칠판 긁는 소리와 비슷한 소름 끼치는 소음에 1층에 있던 좀비들이 일제히 고개를 돌렸다.
차박차박차박차박차박차박!
바닥에 웅덩이가 질 정도로 흥건한 피를 마구 밟으며 뛰어온 여섯 명의 좀비가 두 사람을 향해 얼굴부터 들이밀었다.
파각-!
창민의 쇠파이프가 시원하게 휘둘러졌다. 쇠파이프에 이마를 내리 찍히면서 코와 입까지 함께 맞게 된 좀비의 피 묻은 치아가 우르르 떨어졌다. 휘둘러졌던 쇠파이프는 연결된 동작처럼 다른 좀비의 머리를 후려갈겼고, 단번에 소리도 못 낸 채 나자빠졌다.
창민은 멈추지 않고 연이어 쇠파이프를 휘둘렀다. 어느새 그는 준성의 앞을 막듯이 서서는 화려한 검무(劍舞)를 추는 검사처럼 좀비들의 머리를 박살 내고 있었다.
그러던 중, 한 좀비가 창민이 거세게 휘두른 쇠파이프를 빗맞고 비틀거렸다. 손에 타격감이 있었기에 충분히 뇌가 손상됐으리라 생각한 창민은 뒤이어 다른 좀비의 머리를 내리쳤다. 그때, 창민은 한 번 비틀거리기만 했을 뿐 곧바로 달려드는 직전의 좀비를 보고는 급한 대로 자신의 팔뚝을 내주었다.
콰득, 하고 깨물림과 동시에 피가 터질 거라 예상되던 창민의 팔은 생각보다 멀쩡했다.
사실 창민이 입고 있는 검은 재킷의 양 소매에는 넓적한 검은색 절연테이프가 마치 원단과 하나인 양 감겨 있었다.
재킷 자체도 겨울답게 어느 정도 두께가 있었고 그 위를 몇 겹이나 되는 절연테이프가 감고 있으니, 짐승도 아닌 인간의 치아를 가진 좀비가 단번에 살가죽까지 파먹기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그만큼 팔에 테이프만 감아도 어느 정도 방어가 가능했다.
좀비 사태가 터졌던 첫날부터 절연테이프를 양 재킷 소매에 칭칭 감아둔 창민은 이것 덕에 목숨을 건진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단시간에 공격당했을 때만 방어할 수 있었다.
몇 초가 지나도록 그대로 팔을 내주고 있는다면 사정없이 치악력을 발휘한 좀비의 치아가 결국은 피부를 뚫게 된다. 좀비들은 본인들의 치아가 깨지든 으스러지든 일절 상관없이 물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래서 창민은 자신의 팔뚝에 이를 박아넣은 채 으르렁대는 좀비의 머리채를 곧바로 휘어잡아 떼어냈다. 그러고선 그대로 복도 초입의 넓은 창문에 내던지듯 박아 버렸다. 창틀에 배를 접듯이 고꾸라진 좀비가 파닥거리다가, 곧 깨진 유리가 잔뜩 박힌 피투성이의 얼굴로 창민을 노려보며 재차 달려들었다.
퍽!
케흑!
또다시 창민을 물기 직전.
준성의 마체테가 위에서 아래로 내리쳐졌다. 창민의 얼굴과 그리 멀지 않은 위치로 마체테의 칼끝이 불쑥 나타났다.
무릎을 꺾은 좀비의 몸이 아래로 다리가 접힌 만큼 훅 꺼졌다. 준성은 그 좀비의 어깨를 짚은 채 마체테를 뽑아내며 말했다.
“너무 형이 다 때려잡으려고 하지 않아도 돼요.”
“그래도 너무 위험하잖아.”
“괜찮아요.”
가볍게 대답한 준성은 창민을 지나 그의 뒤로 보이는 101호 문으로 달려갔다. 벌려진 문틈이 아주 적어서 신경 쓰고 보지 않는다면 계속 닫혀 있는 줄 알았을 것이다.
준성이 속도를 줄이지 않고 101호로 달려들던 그때.
쾅-!
캬하악-!
잠금쇠가 걸려 있지 않던 101호 문이 갑자기 좀비의 몸에 튕겨 거세게 열렸다. 다 알고 있었다는 것처럼 미리 뛰어갔었기에 그 좀비 바로 앞이었던 준성은 가로로 직선을 긋듯이 좀비의 관자놀이를 세게 베어버렸다. 마체테가 박히며 밀려난 머리가 맥없이 101호 문가 옆에 반대쪽 머리를 찧었다.
준성이 좀비의 몸을 발로 밟은 채 두 손으로 마체테를 뽑아내며 창민에게 말했다.
“2층에서 두 놈 와요.”
너무나 침착하면서도 확신하는 목소리였기에 의아해하는 것도 잠시.
정말 2층에서 두 좀비가 뛰어내리듯 달려왔다. 치아로 뭔가를 물어뜯을 생각만 가득한 두 좀비가 얼굴을 앞으로 쭉 내밀며 달려들었다. 입가가 찢어지는 것도 아랑곳하지 않고 괴성과 함께 달려들던 두 좀비는 각각 창민이 휘두른 쇠파이프에 머리가 깨져버렸다.
창민이 그들을 손쉽게 때려눕힐 걸 믿고 있었던 것처럼, 준성이 지체하지 않고 2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창민도 다급히 그를 뒤쫓았다.
2층 계단을 뛰어오르며 감각을 곤두세우던 준성이 작은 소리로 말했다.
“형, 3층 중간쯤에 문 열린 집이 하나 있을 거예요.”
마치 아파트를 다 보고 있기라도 하는 것처럼 내부를 완벽히 꿰고 있던 준성이 그에게 제안했다.
“2층과 3층엔 좀비가 특히 많아서 일일이 상대하기가 어려워요. 자칫 잘못하면 구석에 몰리게 될 수도 있고요.”
“피할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게 불가능하다면 어딘가로 유인하는 게 낫겠네.”
“맞아요.”
준성은 그 유인하는 역할을 꿈에서 했던 것과 똑같이 자신이 하려 했다.
“제가 좀비들을 끌고 그 열린 집으로 들어갈 거예요. 집 안의 내부구조는 알고 있으니까, 유인해서 집 안 깊이 끌어들이고 재빨리 나와서 문을 닫을게요.”
“뭐? 말도 안 돼. 집이 넓어 봐야 얼마나 넓다고 그 안에서 놈들을 떼어내고 나올 수가 있어? 게다가 내부구조는 또 어떻게 알고?”
방이 네다섯 개쯤 되는 넓은 공간이라고 해도 우르르 몰려오는 좀비들을 깔끔하게 떼어낼 순 없다. 하물며 집과 집의 간격이 좁은 구식 아파트라면 내부가 훨씬 좁을 게 당연했다.
하지만 준성은 이미 꿈에서 같은 방법으로 좀비들을 따돌려, 아슬아슬하게 그 집 안에 가둔 적이 있었다. 후에 낡은 문이 못 버텨서 결국 열리게 되긴 하지만, 그전까진 상당히 많은 수의 좀비들의 발을 묶어놓을 수 있었다. 그 덕분에 경오도 쉽게 구출할 수 있었고.
그때와 달리 물리면 죽는다는 각오를 단단히 해야 했기에 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지만 해야 했다. 현재로서는 그게 2층과 3층을 빠르게 정리하고 올라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형은 제가 2층 복도로 뛰어들어갈 때 1층과 2층의 계단 사이에서 대기해주세요. 제가 3층으로 올라가서 좀비들 다 몰아넣고 신호 드리면 그때 올라오시면 돼요.”
“아니, 안 돼.”
창민이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미간을 모은 채 애원하듯 부탁한다.
“차라리 그 역할을 내가 하면 안 될까? 내가 하게 해줘.”
“안 돼요. 위험해요.”
“넌 안 위험하고?”
창민이 준성의 팔을 놓지 않을 것처럼 꽉 붙잡았다.
“2층과 3층 좀비들을 모두 유인해서 3층의 열려 있는 한 집에 몰아넣는다…. 내가 이해한 게 맞지?”
“맞긴 하지만…….”
준성으로서는 창민이 이해했다고 해서 그에게 자신을 대신해달라는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누가 봐도 자신보다 체력도 좋고 몸놀림도 좋은 그이지만, 자칫 물릴 수도 있는 위험한 일인 건 동일했다. 그렇다면 역시 한 번이라도 성공해본 사람이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몸 쓰는 일 전문은 나야. 그러니까 날 시켜줘.”
“형이 저보다 강하고 빠른 건 알아요. 하지만 유인한 뒤에 그 안에서 빠져나오는 게 제일 큰 문제예요. 전 이미 ‘경험’해봐서 빠져나올 자신이 있지만 솔직히 형은 모르는 거잖아요.”
준성의 말에서 이상한 점을 느낀 창민은 뭔가를 물어보려는 것처럼 입을 벙긋했다. 하지만 그는 지금과 같은 상황에 그걸 자세히 파헤치려 드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했다. 애초에 ‘경험’이라는 단어에 자신이 반응할 걸 몰랐을 준성이 아니다. 오히려 의도하고 내뱉었을 거다.
서창민의 말도 안 되는 가설 중 하나에 점점 무게를 실어주기 위해서.
창민은 그런 준성에게 제 생각을 말했다. 3층의 한 집에 단순히 몰아넣고 도망쳐 나오는 게 아니라, 그보다 더 확실히 처리할 방법을.
창민의 얘기를 들어보던 준성이 잠시 생각에 빠졌다.
“정말 자신 있는 거죠?”
“응. 그런 건 전문이거든.”
자신만만하게 웃는 창민을 보며, 준성이 생각 끝에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요. 한번 해 보죠.”
“고마워.”
준성의 머리를 헤집듯이 쓰다듬은 창민이 그를 앞질러 걸어갔다. 준성은 부디 그가 무사히 해내길 바라며 뒤를 따랐다.
그러는 와중에도 준성은 여전히 고민 중이었다.
꿈에서 이미 성공했던 대로 따라가면 변수도 없을 테니 완벽히 해결될 수 있지 않을까.
‘아니지. 창민이 형 자체가 변수잖아.’
꿈에서는 단 한 번도 얻지 못했던 카드, 서창민이 이 자리에 있다는 게 변수 중 하나였다. 꿈에서는 본 적도 없던 도한서가 제 옆에 머물고 있듯이.
‘도한서 때문인가.’
이젠 딱히 변수가 나쁘게 생각되지 않았다.
일찍이 훤히 꿰뚫어 보고 있던 앞날이 변수 탓에 이리저리 어그러진다는 건, 모처럼의 완벽한 정보를 못 쓰게 되는 셈이나 다름없다.
하지만 변수를 끼고 행한 모든 일이 다 어그러진 건 아니었다. 실제로 변수 덩어리 도한서 덕분에 서창민과 이지안을 구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정보는 기본 베이스(Base)일 뿐이다. 이걸 기반으로 어떻게 변화를 주느냐에 따라 더 좋은 작전이 나올 수도 있고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질 수도 있다. 둘 다 겁난다면 그냥 있는 그대로 따라가면 될 일이다.
선택은 결국 강준성의 몫이었고, 그는 이번에 서창민이라는 변수를 이용한 작은 변화를 체감해보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