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59)화 (59/240)

- 059회 -

무전으로 지안이 신호를 보내는 걸 듣고 곧바로 밖으로 나와본 경오는 고작 두 명이 좀비 무리를 밀어내고 있는 장면을 보고서 도저히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저 많은 좀비 떼를 상대로 물러나기는커녕 오히려 밀어붙이며 전진하고 있다는 것이 너무나 대단해 보여서 현실감이 없었다.

경오가 놀라서 멈춰 있는 사이, 그가 손에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소리가 들렸다.

-아저씨, 뭐해요! 오빠들이 막아주고 있을 동안 달려요!

“아, 응!”

그제야 상황을 파악한 경오가 문을 닫고서 얼른 계단을 향해 뛰었다. 그는 준성이 첫째 날에 챙겼던 것과 엇비슷할 정도로 상당한 사이즈의 백팩을 메고 있었다.

-아저씨, 그대로 달려서 계단 내려가면 돼요! 4층 말고는 보이는 좀비 없음!

“으, 응! 좋아!”

잔뜩 긴장한 얼굴로 계단까지 뛴 경오는 무전기에서 이상 없다고 했음에도 주변을 신중히 두리번거렸다.

멀리서 쌍안경으로 각 층의 상황을 모두 보고 있던 지안으로서는 아무것도 없는 곳에서 자꾸 두리번거리고 조심히 움직이느라고 시간을 보내는 경오 때문에 답답할 지경이었다.

4층 복도에서 소화전을 이용해 좀비들을 밀어내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복도 끝에서부터 달려온 좀비들이 점점 합류해서 몸을 불려가고 있는데 소화전의 물은 무한대로 나오는 게 아니었다. 한창 물이 많이 나와줄 때 빨리 탈출해야 준성과 창민도 도망칠 수 있는 거라, 지안은 어떻게든 경오를 빨리 건물 밖으로 내보내야 했다.

지안이 일부러 호들갑을 떨며 외쳤다.

-아저씨, 뒤! 뒤요!

“뭐, 뭐?! 뒤?! 뒤 어디?!”

경오의 뒤에는 아무도 없었지만 지안의 호들갑은 멈추지 않았다.

-뒤돌아볼 시간 없어요! 빨리 1층까지 달려요!

지안이 다급히 외치자, 경오는 이제 주변을 두리번거릴 여유가 없었다. 자신의 뒤에는 실제로 두 남자가 막아주고 있던 좀비 떼가 있었다. 그들이 만약 좀비 떼를 더 이상 막지 못한다면 좀비 중 한두 명, 혹은 전체가 쫓아오고 있다고 해도 이상할 게 없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비 떼에 둘러싸여 몸 곳곳이 파먹히던 어느 좀비 영화의 한 장면이 떠올라, 저도 모르게 소리를 지르며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으으으으읍-!”

좀비들이 몰려올까 봐 차마 시원스레 비명은 못 지르고 입을 꾹 다문 채 목으로 울부짖었다. 집에 홀로 틀어박혀 버티느라 쌓이고 쌓였던 극도의 불안과 공포가 경오를 압박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집에서 얌전히 웅크려 있던 것처럼 있을 수는 없었다. 뒤에서 좀비가 쫓아오고 있으니까.

경오는 숨이 차고 목구멍이 가늘게 조여지는 것 같은 답답함을 느꼈다.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을 차곡차곡 밟으면서도 겉옷 주머니를 뒤져 흡입기를 꺼내 들었다.

드론으로 건네받은 게 아니었다면 이럴 때 맥없이 헐떡이다가 쓰러지고 말았을 것이다. 새삼 자신에게 흡입기를 보내준 준성 일행이 고마웠다.

‘침착하자. 내가 빨리 여길 탈출하는 게 저 사람들을 도와주는 걸 거야.’

더는 불안해하며 지체하지 않고 다리에 좀 더 힘을 주었다. 흡입기 덕에 숨구멍도 트인 느낌이라, 좀 더 달릴 수 있을 것 같았다.

2층쯤에서 한 번 찾아올뻔한 공황장애와 천식 발작을 이겨낸 경오는 곧 1층에 다다를 수 있었다.

-입구 밖의 화단 뒤쪽에 숨어있어요! 몸 숙이시고!

“알았어!”

지안의 지시에 따라 화단 뒤쪽에 몸을 숨긴 채 웅크려 주저앉은 경오는 자신을 구하기 위해 필사적이던 두 남자가 부디 무사히 탈출하길 바랐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뒤.

캬아아악-!

칵! 하악-!

멀리서 들려오는 괴성에 어깨가 흠칫했다.

4층에 있던 좀비들이 몰려오는 소리 같았다.

다행히도 아까의 두 남자는 좀비들의 괴성이 들려온 저 먼 곳이 아니라 자신이 숨은 이 화단 뒤쪽으로 와서 얼굴을 보였다.

“하아, 하…. 괜찮아요, 아저씨? 어디 다치진 않았죠?”

아까의 두 남자 중 왜소해 보이는 청년 쪽이 먼저 말을 걸었다.

경오는 준성을 보며 진심으로 울컥했다.

고작해야 도망치는 것밖에는 한 게 없는 자신에게 좀비와 싸우던 사람이 먼저 괜찮냐고 물어보다니.

게다가 자신처럼 할 줄 아는 것도 별로 없는 평범한 사람 하나를 구하기 위해 이토록 많은 좀비와 싸우고 안전히 도망칠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경찰이나 구조대도 못한 일을 그들이 해준 것이다.

경오에게 있어 그들은 진심으로 감사해야 마땅할 사람들이었다.

경오가 감격하는 사이, 준성과 창민은 화단 뒤에 몸을 숙여 숨으면서 귀를 기울였다. 그들을 쫓던 좀비들의 괴성이 2층에 다다르는가 싶더니, 얼마 못 가 1층 언저리에서 신음하는 소리가 들렸다. 시야에서 준성과 창민을 놓친 지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른 탓에 다시 목적 없이 배회하는 모양이었다.

안도한 내색의 창민이 준성을 바라보았다. 그는 시계를 확인하며 주변을 눈에 담고 있었다.

‘구해낸 시간은 거의 같아. 그렇다면 구름다리로 올라가는 동안 그사이에 좀비가 튀어나올 확률은 없다고 봐야 해.’

꿈에서 경오를 구해낸 후의 일까지 기억을 더듬어보던 준성이 앞서 움직였다. 그의 뒤를 경오가 따르고 마지막을 창민이 뒤따르며 혹시 모를 좀비의 습격에 대비했다.

“걱정 말아요. 구름다리 위로 올라가는 동안에는 아무 좀비도 안 나타나니까 안심해도 돼요.”

경오는 그걸 어떻게 확신하냐며 되물었고, 준성은 그저 말없이 걸었다. 마지막에 서서 두 사람의 뒤를 지키듯이 뒤따르던 창민은 준성의 뒷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손에 든 쇠파이프를 내렸다.

세 사람은 곧 고요한 구름다리에 올랐다. 그런 그들을 반기는 건, 그들이 올라오게 될 구름다리 끝의 계단 앞에서 빙긋이 웃고 있는 도한서였다.

“수고했어.”

경오는 드론으로 볼 땐 잘 몰랐던 키 큰 미남자의 모습에 넋을 놓았다. 직접 만나본 사람 중에 저렇게 잘생긴 사람은 살면서 처음 보았다.

“기다리느라 심심해서 주변 정리 좀 했어.”

그리고 태연하게 좀비 시체를 쌓아두며 웃는 사람도 처음 보았다.

경오는 한서의 손에 들린 잭나이프에서 검붉은 피가 뚝뚝 떨어지는 것을 보며 다시금 공황장애가 오려는 걸 필사적으로 참아내야 했다.

* * *

황경오까지 구해내서 컨테이너 사무실 안에 모여 앉고 보니, 한 사람 늘어난 것만으로도 공기가 달라진 느낌이었다.

조금 더 따뜻하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고 해야 하나.

그래서인지 지안의 얼굴도 활짝 핀 느낌이 났다.

“뭔가 저희, 사람 많아져서 좋네요!”

“그래 봤자 배 나온 아저씨 한 명인데 뭘요….”

“아저씨, 말 놓으세요! 저희 중에서 아저씨가 나이 제일 많아요!”

경오는 해맑은 지안의 말에, 가슴이 뭔가에 아프게 꿰뚫리는 듯한 느낌을 받아야 했다.

그거야 척 보기에도 자신만 30대 후반이고 나머진 다들 20대, 심지어 지안은 고등학생이었다. 그들 사이에 있으려니 나이 때문에 괜히 우울해졌다.

머쓱한 얼굴로 눈치를 보던 경오가 준성에게 받은 칼로리 바의 마지막 귀퉁이를 한입에 털어 넣었다. 물까지 시원하게 들이켠 그는 한차례 심호흡한 후에 슬쩍 준성을 바라보았다.

“근데 설명 좀 해줬으면 하는데…요.”

“지안이 말대로 말 편히 하세요. 설명은 뭐부터 해드릴까요?”

준성은 어차피 오늘 모든 걸 얘기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묻는 족족 사실을 말해주려 했다.

경오는 뭐부터 말할까, 하다가 자신의 백팩을 가리켰다. 상당히 빵빵한 백팩은 척 보기에도 많은 것들이 들어있을 것 같았다.

“저것들은 왜 가져 오라고 한 거…야? 내가 갖고 있는 줄은 또 어떻게 알았고?”

준성도 경오를 따라 그의 백팩에 시선을 두었다.

“아시다시피 구조 활동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아요. 기껏해야 첫날이나 둘째 날에 주요 몇 곳 돌아본 게 다죠.”

준성은 경오를 포함한 다른 이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이때까지 아무런 방송이나 알림도 없이 방치되어 있는 건 확실히 이상해요. 구조에 대한 계획이나 피난처 안내, 혹은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 건지 알리지도 않아요.”

이는 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꿈속에서도 구조대라고는 인한병원에서 봤던 그것 한 대뿐이었고, 이후로는 구조와 관련된 자잘한 방송조차 없었다. 곳곳에 생존자들이 있을 게 뻔함에도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는 게 이상했다. 이와 관련하여 더 파보기 위해선 직접 외곽의 피난소로 가는 게 가장 좋았다.

하지만 준성은 꿈속에서조차 인한시 외곽의 피난소에 가본 적이 없었다.

피난소에 가기 위해선 필히 2일 차의 구조헬기에 탑승해야 했는데, 준성은 이때 거의 탑승해 본 적이 없었던 거다.

매번 남는 건 세 자리뿐이었고, 그 자리에 동생과 그 친구들을 앉혔다. 자신이 타버리면 누구 한 명을 버려야 했기에 그 선택지는 되도록 고르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꿈이 거듭되면서 좀비 사태의 해결책을 찾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명을 반강제로 빼고서 자신이 올라탔던 적이 있었다.

구조헬기를 타고 이동하여 인한시 외곽의 피난처로 가면 뭔가 추가적인 정보를 얻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대체 상황이 어떻기에 이후로 구조대도 안 보내고 인한시 생존자들을 그토록 방치해 놓는 건지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준성이 탄 헬기가 인한시 외곽으로 넘어가려 하면 꼭 이상한 일이 생겼다.

치직-

노이즈가 낀 것처럼 눈앞이 흐려지고, 귀는 먹먹해졌다. 몸이 뻣뻣하게 굳고 숨도 쉬어지질 않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정신을 잃고서 깜짝 놀라 눈을 뜨면 다시 원룸 한가운데였다.

즉, 자신이 구조헬기에 탑승한 채로 인한시 외곽으로 나가려 하면 꿈이 강제로 ‘재시작’되었다. 타인에게 살해당하거나 자살했을 때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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