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60)화 (60/240)

- 060회 -

처음에는 헬기에 문제가 생긴 줄 알았다. 자신이 명확히 기억하지 못할 뿐이고 실제로는 헬기의 어딘가가 파손되어 추락사한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다음 꿈에서도 똑같이 해보았다. 이번엔 또렷이 기억하고자 같은 타이밍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치직-

또다시 같은 현상을 겪고 다시 처음으로 되돌아왔다.

헬기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그 현상을 겪게 되기 직전까지도 헬기 밖을 바라보며 혹시 어딘가에서 연기가 나지는 않는지 눈여겨보았다. 기억이 남은 마지막 순간에도 헬기를 지켜봤지만 파손은 고사하고 아주 멀쩡했다.

납득할 수 없는 이상 현상에 준성은 혼란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그러다 한 가지 결론을 내렸다.

‘넘어갈 자격이 아직 안 되기 때문일 수도 있어.’

구조헬기를 타고 인한시 외곽으로 향할 때는 좀비 사태 해결책의 실마리조차 잡지 못했을 때, 그것도 꿈의 흐름으로 치자면 이틀째라는 초반부에 해당한다. 제대로 된 해결책을 얻지 못하고 탈출하려 했기에 되돌려보낸 거라는 생각이 들만도 했다.

준성으로서는 구조헬기를 이용한 탈출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정보를 얻기 위해 했던 일이라서 억울한 심정도 있었다. 결국은 꿈이 자신의 정보수집을 방해한 거나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자신이 직접 움직이는 게 아니라 다른 수단을 써서 인한시 외곽, 혹은 그 너머를 확인해보면 어떨까.

그래서 떠올린 게 황경오의 드론이었다.

그는 꿈속에서도 본인의 드론을 수시로 개조했다. 좀비와 싸울 때도 그의 드론을 활용한 작전을 펼칠 수 있을 만큼 유용한 기능도 많았다. 화면 녹화, 음성 전달, 나중에는 최대거리를 늘려서 효과적인 정찰을 하거나 최대무게를 늘려서 물건 전달도 할 수 있었다.

준성은 이 드론을 이용해 인한시 외곽을 둘러보기로 했다.

참 황당하게도, 꿈은 그것조차 허용하지 않았다.

자신이 밖으로 나가는 것만 제한되어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수단을 써서 바깥 정보를 얻어보려고만 해도 갑자기 재시작되곤 했다.

준성은 이 불합리한 정보 차단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은 꿈이 아니다.

‘현실’이다.

꿈이 정보를 차단할 수도 없고 가는 길을 막을 수도 없었다.

감히 꿈이 방해할 엄두도 못 내는 현실이니만큼 지금이라면 그때 얻지 못했던 정보도 얻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준성은 드디어 인한시 밖을 볼 수 있다는 생각에 두 손을 꽉 쥐며 경오를 향해 입을 열었다.

“저는 아저씨의 드론으로 인한시 밖을 확인할 생각이에요.”

꿈에서는 어느 정도 밖의 정보를 갖고 있긴 했다.

‘군이 인한시를 폐쇄했으며, 외곽에 피난처를 만들어서 관리 중이다’라든지 ‘경찰 당국에도 공문이 내려와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 좀비 관련 신고를 전부 묵살 중이다’라는 등의 신빙성 있는 정보였다.

이를 신빙성 있다고 생각했던 이유는 꿈을 수없이 반복하면서 각종 루트를 통해 알아둔 계엄군 소속의 군인이나 경찰 관계자 등을 통해서 얻은 정보였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 정보 그대로 믿고 있을 수 있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

‘불안해.’

어딘지 모르게 불안했다. 자신이 보이지 않는 곳에서 굴러다니는 ‘변수’가 자꾸만 신경 쓰였다.

머릿속에 떠오르는 인한병원에서의 일과 ‘그 남자’를 떠올리다 보면 자신의 눈이 닿지 않는 곳에 있는 모든 게 바뀌어 있을 것 같은 불안한 느낌이 들었다.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황경오의 드론을 이용한 외부 정찰은 반드시 필요한 것이었다.

“지금의 드론으로는 고작해야 2km 정도 밖에 못 가죠? 그걸 최대 10km는 나갈 수 있도록 아저씨가 개조해주셔야 해요.”

“10km?!”

경오가 깜짝 놀라며 고개를 저었다.

“그렇게 멀리까지는 무리야. 그만한 거리를 갈 수 있도록 드론을 개조하는 것도 힘들지만, 된다고 하더라도 비행 관리가 안 돼. 순수 무선통신으로 그렇게 먼 거리까지 조종은…….”

“어차피 아저씨가 스스로 깨닫고 알아서 잘 개조해주실 거긴 한데, 제가 기억하는 선에서 모두 알려드릴게요. 그래야 일주일간 고생하시던 걸 하루 만에 개조하실 테니까요.”

경오는 들으면 들을수록 준성의 말이 어딘가 이상하다는 걸 느꼈다.

어째 준성은 자신이 그런 형태의 개조를 성공시킬 수 있을 거라고 확신하는 듯했다.

‘아니, 확신이라기보다는… 마치 내가 그 말대로 개조했던 적이 있는 것처럼…….’

준성의 말에 위화감을 느끼며 고개만 갸웃거리던 그때, 얌전히 듣고 있던 창민이 그제야 입을 뗐다.

“내가 느껴온 게 워낙 황당해서 이게 맞는지 모르겠는데, 말도 안 되는 생각인지 아닌지 좀 확인해줄래?”

창민의 눈이 진지하게 준성을 바라보았다.

“준성이 너, 앞날을 볼 수 있는 거야?”

“으응?!”

소리를 낸 건 준성이 아니라 경오였다. 그는 진지한 얼굴로 농담을 던지는 창민을 보며 어색하게 웃었다.

“하, 하하…, 말도 안 되는 생각 맞네, 맞아…….”

“맞아요.”

“으응?!”

준성의 말에 또 눈이 휘둥그레진 경오가 황당한 표정을 짓고 있다. 문제는 그런 표정을 짓고 있는 게 경오뿐만이 아니었다.

“와, 준성이 오빠가 개그 치려고 한다….”

어이없다는 듯한 얼굴로 헛웃음을 보이던 지안은 그저 농담이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어째 질문을 던진 창민도 그렇고 대답한 준성도 너무 진지하다.

준성은 창민을 시작으로 지안과 경오를 한 번씩 둘러보며 말했다.

“지금부터 이 내용을 믿고 안 믿고는 세 사람 자유예요.”

경오는 이미 꿈속에서 말해봤던 경험이 있었기에 그다지 걱정이 되지 않았다. 본인의 집에 있는 물건 중에서 드론 개조에 필요한 부품과 공구까지 속속들이 알고 있고, 무엇보다도 그가 마지막 날에 드론을 내보내서 어느 쪽을 정찰할지도 알고 있었다.

결정적인 것은 ‘흡입기’였다.

경오는 자신의 목숨줄이나 다름없는 중요한 흡입기를 딱 필요할 때에 같은 기종으로 보내줬다는 것에 상당한 비중을 두었다.

심지어 그 약은 약국마다 천식 환자의 처방전이 있어야만 구매 가능한 물건이라서 쉽게 살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준성도 이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첫째 날에 주인이 도망간 약국으로 찾아가, 필요한 약품들과 함께 흡입기를 챙겨 넣었다. 양심상 약값은 약국 테이블에 올려놓고 나왔다.

미리 챙겨뒀던 흡입기는 예상대로 경오에게 아주 유용했고, 앞뒤 내용을 전부 들은 그로서는 준성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이미 경험했던 바이니 이래서 경오가 걱정되지 않는다 해도 다른 둘이 문제였다.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모르겠다는 얼굴을 하고 있는 지안과 다 알면서도 직접 들어서 확인하고 싶다는 얼굴의 창민을 보며, 준성이 드디어 자신의 ‘꿈’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그로부터 한 시간 후.

깜깜한 밤하늘 아래, 컨테이너 사무실 밖으로 나온 준성은 자신을 뒤따르는 그림자를 보며 그에게 말했다.

“솔직히 별로 걱정은 안 돼. 믿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다들 직접 보고 겪었으니까.”

준성의 어깨 위로 포근한 담요가 덮어졌다. 꽤 너비가 있는 담요였기에 그걸 좀 더 펼쳐서 함께 어깨를 덮은 한서가 말했다.

“믿을 거야.”

한서의 팔이 담요에 덮인 준성의 허리를 휘감아 당겼다. 좀비들에게 물리지 않기 위해 밀착하던 때처럼 옆구리를 완전히 붙여서 서게 된 준성이 그를 밀어내려다가 예전 일을 떠올렸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한테도 다 얘기했었지.’

자신의 꿈에 관한 이야기와 미래에 관한 걸 얘기했을 때, 한서는 장난스럽게 비웃거나 ‘에이, 설마’ 같은 표정을 지으며 부정하지 않았다. 준성이 말하는 게 전부 의심할 필요도 없는 사실이라 생각하며 얘기해주는 족족 믿어주는 눈치였다.

새삼 도한서가 고맙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만약 그래도 못 믿겠다고 하면 전부 버리고 가. 나만 있어도 충분하잖아.”

준성은 고개를 돌려 한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평소처럼 여유로운 미소를 건 그였지만, 어딘지 모르게 불만이 있어 보였다.

“뭐가 마음에 안 들어?”

“응.”

즉답한 한서가 준성의 턱을 잡아 들며 그를 내려다보았다.

“개 키우는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말 잘 들으면 예뻐해 준다던데.”

“개?”

의아해하는 준성에게 한서가 이어서 말했다.

“시키는 거 잘 했으니까 예뻐해 줘야 하지 않아?”

준성은 여전히 ‘이게 무슨 개소리야’라는 얼굴을 하고 있었다.

답답했던지, 한서가 준성의 손을 들어 제 머리에 얹었다.

“머리 복잡한 건 알지만 해 줄 건 해야지. 안 그러면 내가 그놈하고 널 단둘이 가도록 보내준 의미가 없어.”

한서를 빤히 보던 준성은 그의 머리에 얹어진 자신의 손과 그의 미소 띤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작게 소리 내어 웃었다.

“우리 개새끼가 주인님한테 잘했다고 칭찬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났다, 이거네?”

한서의 눈꼬리가 음흉하게 올라갔다. 그가 준성의 몸을 돌려서는 한쪽 팔로 허리를 끌어당겨 안았다. 가슴과 배, 그리고 그 아래쪽까지 완전히 맞닿았다.

“응, 주인님.”

한서가 자신과 준성을 함께 덮고 있던 담요를 팔에 걸쳐 머리 언저리까지 올렸다. 그 탓에 컨테이너 사무실 쪽에서는 창문을 내다보더라도 두 사람의 머리통도 거의 볼 수 없게 되었다.

담요 안쪽에서 한서가 눈웃음을 쳤다.

“눈앞의 개새끼, 예뻐해 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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