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90)화 (90/240)

- 90화 -

“신경 쓰여?”

한서의 물음에 준성이 상체를 일으켜 앉으며 눈꼬리를 올렸다.

“그래.”

“왜?”

“그야…….”

입을 열던 준성이 멈칫했다.

그러고 보니 왜 이렇게 찬물이라도 얻어맞은 것처럼 기분이 나빠졌지?

스스로도 즉각 답을 찾지 못해서 당황해하다가 한 박자 늦게 말을 이었다.

“하고 싶은 것도 못 하고 여기 갇혀 지냈다고 하기엔, 섹스까지 잘만 하고 있었던 것 같아서.”

도한서의 과거 얘기를 들어보자면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어지간히 끔찍하고 숨도 못 쉴 만큼 억압당하는 삶을 살아왔다. 자의 따윈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고, 뭘 시키든 그저 응할 수밖에 없었던 수동적인 시간뿐이다.

그런데 그 안에서 개인의 욕구 분출에 대한 증거나 다름없는 게 나왔으니 의심스러울 수밖에.

도한서의 입에서 나온 모든 걸 진실이라 믿고 있었던 준성으로서는 약간의 배신감을 느껴버렸다.

그래서 기분이 나빠진 것뿐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어째 질문을 받는 쪽보다 물어보는 쪽이 눈을 피하고 있는 이 상황 속에서, 한서가 묘한 미소를 띠었다.

“아쉽게도, 이건 여태껏 제대로 써본 적이 없어.”

콘돔 한 줄을 흔들어 보인 한서가 그걸 준성의 옆에 던져놓으며 그의 다리 사이로 파고들었다.

“연구원들이 남녀 할 것 없이 자기 몸까지 바쳐가며 내 도파민을 위해 노력해봤지만, 전부 헛수고였거든.”

한서의 말을 이해한 준성이 의심스러운 눈으로 그의 아래쪽을 내려다보았다. 셔츠 하나만 남은 자신과 달리 버클조차 풀지 않은 바지를 여태껏 입고 있던 한서의 아랫도리는 이미 잔뜩 부풀어 있었다.

“상대가 남자든 여자든 안 서더라고. 아무한테도.”

“네 거기가 지금 무슨 상태인지 두 눈으로 보고 말해, 사기꾼아.”

신빙성 없는 얘기라며 한서의 두툼한 성기 쪽을 눈짓한 준성은 큼직한 손에 가슴을 밀려서 다시금 눕혀져 버렸다.

준성을 내려다보며 상아색 수술용 장갑을 끼는 한서의 모습이 어딘지 모르게 무서웠다. 방을 비추는 빛이 한서의 눈동자를 스산하게 비추고, 그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뜨거운 숨결과 숨소리가 뜻 모를 위기감을 전했다.

“물론 내 손으로 죽여버리는 상상을 하면 조금 반응이 오긴 왔어. 하지만 그게 다야. 콘돔을 쓸 수 있을 정도로 단단해지진 못했거든.”

“…진짜야?”

“응.”

알 수 없는 위기감조차 잊을 만큼 다정한 미소가 시야를 채웠다. 그러는 동안에도 한서의 거친 숨과 풀린 눈동자는 평소처럼 돌아올 생각을 않고 있었다. 지금 이러는 동안에도 어째서인지 그의 성욕은 더욱 커지고 있는 듯했다.

“읏!”

안심해버린 준성의 아래쪽에 차가운 뭔가가 닿았다. 차가운 젤을 묻힌 한서의 손가락이 아래쪽 어딘가를 매만지고 있다.

“야, 야!”

성기를 만지는 거라면 이렇게 놀라진 않았을 거다.

“거길 왜 만져!”

배설만을 위해 있는 곳이라 생각했던 작은 구멍에 촉촉하면서도 약간 걸쭉한 젤이 묻었다. 그 상태로 약간의 열을 품은 손가락이 마사지하듯 문질러대며 구멍의 주름을 더듬었다.

“넣을 거니까 미리 풀어둬야지.”

“넣어?”

“남자끼리는 제대로 안 풀면 찢어진다던데. 피 보는 게 좋으면 나야 좋고.”

“무슨 개소리야. 아니, 그러니까 뭘 어디에 넣는 건데?”

준성의 의아한 눈을 바라보며 아래를 더듬던 한서가 눈가를 휘며 웃었다.

“그보다 질투라도 한 거야, 방금?”

“질……!”

단어를 채 완성하지도 못하고 화들짝 놀란 얼굴을 하던 준성이 얼른 시선을 피했다.

“그런 거 아니야. 그냥 네가…….”

구멍을 매만지는 간지러운 감각보다도 한서의 시선이 더 신경 쓰였던 준성은 한 손으로 눈을 가린 채 말을 이었다.

“나한테… 거짓말했나 싶어서…….”

구멍을 매만지던 한서의 손끝이 움찔하며 멈췄다. 그러다 흐음, 하고 특유의 콧소리를 냈다.

“내가 너한테 거짓말하는 게 싫어?”

“당연한 거 아냐?”

“만약 내가 너한테 거짓말하면 어떻게 되는데?”

눈을 가린 준성의 손가락 사이로, 한기가 깃든 날카로운 눈동자가 한서를 노려보았다.

“죽여버릴 거야.”

준성의 눈동자에 깃든 서릿발 같은 무형의 송곳이 도한서의 목을 겨누는 듯했다.

살기가 깃든 준성의 말은 진심이었다.

그 말이 진심이 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한서가 짐작도 하지 못할 만큼 많은 경험 탓이었다. 재반복이 당연한 악몽과 같은 꿈에 불과했지만, 그 안에서 준성은 언제나 진심이었기에 믿었던 자들에 의한 배신감은 이날 이때까지도 고스란히 누적된 상태였다.

그만한 신뢰를 주었던 동료가 극히 적긴 했으나, 현재의 도한서는 엄연히 그 ‘신뢰하는 동료’ 카테고리에 있는 사람이다. 다른 사람들이 거짓을 말할 때와는 무게가 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고 해서 준성이 타인에게 일절 거짓말하지 않는 청렴결백한 사람인 건 아니었다.

원래 준성은 진심으로 대하는 사람에게는 뭐든 숨기지 않고 솔직히 털어놓고 싶어 하는 쪽이었다. 꿈에서 수없이 겪었듯, 지금과 같은 재난 상황으로 인해 맛이 가버린 별의별 인간들이 제 본성을 가감 없이 드러내는 때만 아니라면, 준성은 그 누구보다 솔직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군에게조차 모든 걸 속속들이 털어놓지 않았던 준성조차 한서에게만은 숨김없이 털어놓았다. 그렇게 모든 걸 내보여줬으니만큼 한서 역시 그렇게 해줄 거라 믿었고, 실제로 그는 준성을 바로 이 방에 데려다 놓았다. 약품 냄새가 진동하는 춥고 삭막한 도한서의 과거에.

“나한텐 거짓말하지 마. 다른 놈들은 다 속여도 난 속이지 말라고.”

도한서의 가장 깊은 공간에 발을 들인 건 ‘강준성’이니까.

“그랬다간 정말… 죽여버릴지도 몰라.”

협박을 담은 진심이 묵직한 무게감을 보였다. 그 무게감은 준성을 내리누르고 있는 한서 역시 충분히 느껴버릴 수 있을 정도였다.

문득 준성은 자신이 너무 쓸데없이 진지했나 싶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심지어 남자한테 깔려 있는 상태에 셔츠 한 장 외엔 아무것도 입지 않은 몸이다. 이런 민망한 상태로 잘도 지껄였구나, 싶어서 얼굴이 차츰 더 달아올랐다.

동작을 멈춘 채 준성을 바라보고 있던 한서의 얼굴에서 점차 미소가 흐려져 갔다. 약간 고개를 숙인 그의 얼굴에 그림자가 드리워져, 표정이 보이지 않게 됐다.

직후, 준성은 부드럽게 매만지기만 하던 구멍을 파고드는 이물감을 느껴야 했다.

“윽?! 갑자기 뭘 넣는 거야?!”

눈가를 가렸던 손을 떼고서 한서를 바라본 준성은 순간 어깨를 움츠리며 숨을 삼켰다.

“씨발.”

안으로 들어온 이물감에 움찔하면서도 욕설을 내뱉는 도한서의 그림자 드리워진 얼굴에서 눈을 뗄 수가 없다. 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주문 외우듯이 중얼거리는 그의 욕설 사이사이에 ‘박고 싶어’라든지, ‘넣고 싶어’와 같은 말이 섞여 있다.

내리깔고 있던 한서의 눈이 돌연 번뜩이는가 싶더니, 그를 바라보느라 어깨를 비스듬히 들고 있던 준성을 한 손으로 거세게 내리눌렀다.

“도한서…! 읏-!”

구멍 속으로 약간 파고들었던 수준에 불과했던 손가락이 갑자기 깊숙한 곳을 쿡 찔렀다. 강해진 이물감도 이물감이지만, 손가락 뿌리까지 깊이 넣어서 내벽을 더듬는 느낌이 너무나 생소했다.

자신의 구멍 속을 파고든 게 뭔지 알아챈 준성이 기겁하며 한서를 밀어내려 했다. 하지만 어깨를 아플 정도로 내리누른 한서는 도무지 물러나려 하지 않았다.

“손가락 빼! 더럽게 거기다가 왜 넣어!”

“더러워? 어디가? 씨발, 마음 같아서는 구멍이고 뭐고 다 찢어서 샅샅이 핥아먹고 싶은데 참고 있는 거라고.”

준성은 한서의 끔찍하면서도 조급한 말에 입만 벙긋거렸다. 할 말조차 잊은 채 잠깐 넋을 놓았던 준성은 안을 휘젓는 손가락의 움직임이 빨라진 데에 화들짝 놀랐다. 거부감이 드는 생소한 이물감이 몸속을 더듬으며 긁는 느낌이란, 살면서 단 한 번도 상상해보지 못한 기이한 간지러움이었다.

“그만해! 왜 이런걸……! 으흑?!”

바둥거리던 준성의 몸이 흠칫하며 굳었다.

안쪽 깊은 곳에 있는 어딘가가 한서의 손끝에 건드려졌다. 다른 내벽은 그저 간지러움이나 이물감만 전해줄 뿐이었는데, 그 자리를 건들자마자 안쪽 전체가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찌릿해졌다. 그뿐만 아니라 이상하게 성기 안쪽 깊은 곳과 단전까지 울리는 느낌이었다.

‘뭐지, 방금?’

아무리 머리를 굴려봐도 정의 내릴 수 없는 감각에 당황한 것도 잠시.

준성은 그 이상한 감각을 퍼뜨리던 위치를 한서가 다시금 찌르자마자 마치 제 것이 아닌 듯한 소리를 내고 말았다.

“흐앗-?!”

다리 전체가 움찔하고 허리가 들썩거렸다. 준성은 이 이상한 감각에 겁이라도 먹은 것처럼, 자신을 내리누른 한서의 팔을 두 손으로 꽉 붙잡았다.

미소마저 잃은 채 헐떡이던 붉은 얼굴의 도한서와 눈이 마주쳤다.

뼈대가 긴 손가락이 같은 자리를 또다시 쿡 찔렀다.

“아-!”

찌르자마자 내벽이 경련했다. 손가락 뿌리를 삼킨 구멍이 스스로 오물거리며 반응한다.

“그거, 거기 이상하니까 그만…….”

혼란스러운 얼굴의 준성이 낯선 감각의 공포에 입술을 떨자, 한서의 눈가가 꿈틀했다. 한쪽 입꼬리가 보란 듯이 올라가는 걸 본 준성이 아차 싶었다.

‘이 새끼 청개구리인데……!’

준성의 생각을 아는지 모르는지, 곧 청개구리 도한서의 손가락이 유독 예민한 그곳을 사정없이 찔러대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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