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화 -
숨을 헐떡이며 자신을 욕하는 준성을 아직 욕정 담긴 눈으로 내려다보고 있던 한서가 천천히 성기를 빼내었다. 마음 같아서는 그 상태로 더 박아대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준성이 버티지도 못할뿐더러 밖의 일행들이 무전기로 눈치 없이 방해할지도 모른다.
‘처음이니까 좀 봐줄까.’
관대하게 생각하며 단념하기로 했다. 하지만 느릿하게 빠져나가는 것뿐임에도 아직 감도가 예민한 상태의 준성에겐 자극적인지, 일일이 움찔거리며 반응하기 일쑤였다. 덕분에 한서는 이걸 이대로 다시 밀어 넣을지 말지를 고민해야만 했다.
그러는 사이, 준성은 성기가 빠져나가는 감각에 밭은 숨을 헐떡이며 눈가를 찌푸리고 있었다.
‘이상한 느낌이야, 진짜.’
오싹오싹한 자극을 남긴 채 성기가 완전히 빠져나가자, 급격히 찾아온 안쪽의 허전함을 메우려는 것처럼 내벽이 꿈틀거리며 움직였다. 이때만큼은 저절로 움직이는 구멍의 오물거림까지 알아채 버려서 민망하기 짝이 없었다.
침대에 늘어진 채 자신의 몸속 움직임을 느끼고 있던 준성은 배에 닿는 차가운 느낌에 어깨를 움츠렸다.
“읏, 뭐야?”
어느새 침대 옆 트레이에서 물티슈를 꺼낸 한서가 준성의 배에 묻은 정액을 닦아주고 있었다.
하긴, 섹스를 위해 콘돔과 젤까지 놔뒀을 정도이니 뒤처리를 위한 물티슈가 있어도 이상할 건 아니었다. 다만 서늘한 곳에 있던 물건이라서 그런지, 닦을 때마다 얼음이 지나가는 것 같아서 흠칫 놀라게 된다.
“차가워?”
한서가 혀를 길게 내보이며 묘하게 웃었다.
“사실은 핥아먹을까 하다가, 그러면 또 하고 싶어질까 봐 참는 중인데.”
“계속 참아, 그럼.”
한서를 노려보며 그의 손에서 물티슈를 빼앗아 들었다. 대체 남의 정액 같은 걸 비위 상하게 왜 먹냐며 속으로 중얼거렸다.
몸을 말끔히 닦아낸 준성은 끈적한 정액이 묻어난 물티슈를 내려다보았다.
진한 정액 비린내가 났다. 그 탓에 조금 전의 상황이 생생히 떠올라버렸다.
“하아….”
어질어질한 머리를 짚으며 깊은 한숨을 흘렸다.
도한서와 ‘섹스’를 해버렸다. 손으로 만지거나 키스를 하고 살결을 비비는 수준이 아니라, 정말 넣고 흔들고 싸버리는 섹스를.
‘넣은 건 저 새끼뿐이지만.’
그래도 섹스는 섹스였다. 부정할 길 없는.
상상도 못 해본 일이라서 그런지 뒤늦게 찾아온 정신적 충격이 상당했다. 도한서의 충동을 억제해주고 받아주겠다 말한 건 자신이었지만, 아무리 그래도 남자끼리 섹스라니.
기껏해야 한서의 성기를 대신 흔들어주는 것까지만 생각했던 준성으로서는 꽤 당황스러운 일이었다.
힐끔, 한서를 바라보았다.
상당한 양의 정액이 담긴 콘돔과 미끌거리는 액이 묻은 장갑을 처리한 한서가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태연히 옷을 입고 있다. 조금 전에 발정 난 개처럼 헉헉대던 놈 같지 않게 금세 멀쩡해진 얼굴이라, 준성은 그가 상당히 얄미웠다.
날카롭게 노려보고 있노라니, 시선을 느낀 한서가 빙긋 웃으며 바라보았다.
“왜? 더 하고 싶어? 나야 좋은데.”
“이거, 네 면상에 던져도 되냐?”
“맞아주면 더 해도 되는 거지?”
준성은 정액 닦은 물티슈를 진짜 던져버릴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도한서라면 왠지 얼굴에 날아온 물티슈의 정액 때문에 또다시 흥분해서 덮칠 것 같았다.
입을 꾹 다문 채 다른 물티슈를 뽑아 든 준성은 무릎을 세워 두 다리를 벌린 채 그 사이로 손을 뻗었다.
“읏….”
차가운 물티슈가 구멍에 닿자, 화끈한 쓰라림이 느껴졌다.
‘찢어진 건 아니겠지?’
다행히 찢어진 자리를 훑었을 때 느껴지는 날카로운 찌릿함은 없었다. 대신 붓기 직전의 뜨거움과 쓰라림이 남아 있다.
한서의 성기 크기를 떠올린 준성이 질린 얼굴을 했다. 그만한 크기의 물건을 이런 작은 구멍으로 받아들였으니, 멀쩡하면 그게 더 이상할 일이었다.
준성이 몸을 닦는 동안 셔츠까지 챙겨 입은 한서가 침대를 향해 돌아섰다.
“도와줄…….”
입을 열던 한서가 돌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그런 줄도 모르고 서툰 손으로 구멍을 닦고 있던 준성이 좀 더 다리를 벌렸다. 액이 묻은 건 겉면만이 아니니, 물티슈를 손가락에 두른 채 안으로 넣어볼 생각이었다.
그 모습을 정면으로 봐버린 한서가 짧은 욕설을 흘렸다.
“씨발, 이래놓고 더 하지 말라고?”
한서의 말을 미처 듣지 못한 채 끙끙거리며 구멍을 닦던 준성은 자신에게 드리워지는 그림자를 보고서 그제야 고개를 들었다. 새로운 수술용 장갑을 끼며 거친 숨을 내쉬는 한서가 왠지 무섭게 느껴졌다.
“그대로 다리 벌리고 있어. 직접 쑤셔서 닦아줄 테니까.”
갑작스레 자신을 압박하는 기운에 당황하던 준성은 그만 도한서를 밀어낼 타이밍을 놓치고 말았다.
절대 평범하다고는 할 수 없는 첫 섹스, 그리고 뒤처리까지 말끔히 당해버린(?) 후.
힘 빠진 몸으로 옷을 챙겨입던 준성은 자신을 뒤에서 끌어안은 채 도통 비키질 않는 한서 때문에 눈가를 찌푸렸다.
“옷 입기 힘드니까 좀 떨어져.”
“그러니까 내가 입혀준다고 했잖아.”
“이번엔 입혀준다는 빌미로 또 어딜 그렇게 만져대려고?”
바로 조금 전에 구멍을 청소해준답시고 사람을 한 번 더 싸게 만든 망할 놈이 도한서였다. 빈틈을 보였다간 또 당하게 될 것 같아, 이번엔 눈빛부터 무섭게 철벽을 쳤다.
한서의 거미 같은 팔을 밀어내며 셔츠의 단추를 모두 채운 준성이 마지막으로 코트를 집어 들었다.
펄럭이며 코트를 걸치자, 그새 배어버린 약품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다른 옷에 비해 면적도 넓고 두께도 좀 있다 보니, 한 번 배어버린 냄새는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았다. 그만큼 이 방의 약품 냄새는 상당히 지독했다.
‘그러고 보니…….’
이런 지독한 약품 냄새도 섹스하는 동안엔 그다지 느끼지 못했다. 그만큼 정신이 없었기 때문도 있지만, 맞붙은 서로의 체취가 더 강렬했던 탓도 있었다.
“조금은… 지워졌어?”
질문을 던져보았다.
춥고 서늘하던 공기는 어느새 두 사람의 열기 덕분에 딱 좋은 온기를 품었고, 알싸한 약품 냄새 대신 두 사람의 체취가 남았다.
이 정도면 도한서가 원하는 대로 됐을까.
한서를 돌아보자, 그가 기다렸던 것처럼 곧바로 마주 안았다. 그러고선 눈앞의 검은 머리에 코를 묻었다.
준성의 귓가에, 폐부를 모두 채워버릴 것처럼 깊이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렸다.
“응.”
한서의 목소리가 옅은 웃음소리를 담았다.
“네 냄새밖에 안 나. 아주 좋아.”
“그렇게 얼굴 박고 있으면 당연히…….”
딴지를 걸려던 준성이 입을 다물었다. 마주 안고 있는 지금, 준성 역시 지독한 약품 냄새가 아니라 도한서의 맡기 좋은 체취를 삼키고 있었기에 반박할 수가 없었다.
준성은 말없이 한서에게 안긴 채, 잠시 눈을 감았다.
삐빅-
두 사람의 귓가를 파고드는 무전기의 알림음이 났다. 준성이 움찔하며 한서를 밀어냈다. 순순히 물러난 한서가 무전기가 든 백팩을 무섭게 노려보고 있다.
-준성아, 한서야. 나오고 있어?
창민의 걱정스러운 목소리를 들은 준성이 얼른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네. 너무 기다리게 해서 죄송해요.”
-괜찮아. 그보다 곧 비가 쏟아질 것 같아.
무전기를 든 채, 준성이 시간을 확인했다. 창민의 말대로 앞으로 30분도 채 되지 않아 비가 쏟아질 거다.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네.’
원래의 계획대로라면 이미 아지트로 돌아가 있었어야 할 시간인데, 꼬여도 너무 꼬였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지만…….’
도한서와의 섹스라든지 쓸데없이 농락해대는 뒤처리에 시간을 빼앗긴 건 그렇다고 해도, 제1연구실의 존재나 사건의 원흉 조사 같은 데에도 상당한 시간을 써버렸다.
역시나 도한서는 변수 덩어리.
도한서가 중심이 되면 뭐든 생각대로 되는 법이 없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다.
‘그래도 나쁘지 않아.’
도한서 같은 변수라면 얼마든지 받아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남기혁 같은 변수는 절대 사양이지만.
본의 아니게 남기혁을 떠올려버린 준성이 이를 꽉 깨물었다. 사람 머리를 무슨 디저트 케이스처럼 들고 CCTV를 보며 씩 웃던 그의 얼굴은 정말이지 끔찍하기 이를 데 없었다.
‘괜찮아. 안 만나면 돼.’
직접 만나기 위해 아지트를 찾아오거나 이곳에서 기다리다가 덮치지 않았던 것만 봐도 그는 자신의 행동거지를 모두 파악하진 못하고 있다. 그러니 그와 만날 법한 길만 골라서 움직이지 않는다면 괜찮을 것이다.
생각은 그렇게 했어도 남기혁을 떠올리는 건 준성에게 있어 굉장히 힘든 일이었다. 할 수만 있다면 머릿속 일부를 도려내어, 남기혁의 존재 자체를 지워버리고 싶을 정도였다.
그새 차가워진 손을 도한서가 뒤덮듯 그러쥐었다.
깊고 선명한 눈으로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한서를 마주 보며, 준성이 작게 미소 띤 얼굴로 창민에게 무전을 했다.
“이만 돌아가죠. 우리 아지트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