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9화 -
혈액원 원장의 아파트로 가는 길은 그리 멀지 않았다.
하지만 좀비들을 상대하며 도보로 15분 만에 도착하기엔 무리가 있었다.
‘뭐, 어차피 거기까지 가기 전에 끝낼 생각이었지만.’
세 개째인 마지막 채혈 통 속 혈액을 남몰래 입 안에 털어 넣은 준성이 힐끗 뒤쪽을 돌아보았다. 때마침 달려들던 좀비의 머리를 마체테로 후려치며 자연스레 몸을 돌린 거라서 이상할 건 없었다.
준성은 멀찍이서 이쪽을 주시한 채 조용히 따라오는 드론 한 대를 발견했다. 황경오가 가진 것과는 엄연히 다른 디자인에, 색상도 짙은 검은색이다.
드론은 일정 거리를 유지하며 따라오다가 준성이나 한서에게 들킬 것 같으면 잽싸게 건물 뒤로 숨어버리곤 했다.
평소 같았다면 좀비들을 상대하느라 하늘을 볼 여유도 없었을 테지만 지금은 달랐다.
좀비들이 위협적으로 달려들긴 해도 그들은 도한서의 피를 삼킨 강준성을 실제로 물진 못했다. 가장 두려워해야 마땅한 좀비들의 위협에서 어느 정도 안전이 보장된 상태이다. 침착하게 신경을 곤두세우며 사방을 경계하니, 역시 얼마 안 가서 자신들에게 따라붙은 드론을 발견할 수 있었다.
준성은 그들 일행을 뒤쫓는 드론이 있다는 걸 모텔로 향하던 버스 안에서 이미 짐작하고 있었다.
꿈속에서 황경오가 언젠가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다.
사람이 쓰는 야간투시경을 잘만 연결하면 드론에도 사용할 수 있다고.
그땐 아직 남기혁이 본성을 드러내기 전이었고, 그 역시 같은 팀으로 움직일 때였다. 남기혁이 그 꿈을 기억하고 있다면, 황경오의 말을 떠올리며 특수한 드론을 준비했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았다. 좀비 세상이 현실화될 걸 알고 미리 손남섭의 휴대폰에 도청기를 심어둘 정도였으니.
그런 드론의 존재를 알게 된 건 전날 밤, 모텔에 들어설 즈음이었다.
깜깜한 밤하늘에 이질적인 붉은 점이 하나 있었다. 비가 멈춘 지 몇 시간 되지 않은 터라 아직 밤하늘에는 먹구름이 가득해서, 별빛을 잘못 본 것도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주기적으로 깜빡거리던 붉은 점은 한곳에 가만히 떠 있지 않고 조금씩 천천히 움직이기도 했다. 이에 준성은 황경오의 드론을 영상 녹화 상태로 날려 보낼 때 보았던 빛이 그것과 흡사하다는 걸 깨달았다.
짐작대로, 전날에 자신들을 지켜보던 붉은 점은 저 검은 드론의 것이었다. 지금도 아주 미약하지만 드론의 정면에서 희미하게 깜빡거리는 붉은 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저런 장비를 쓰는 게 당연하기도 했다.
황경오가 가진 드론을 통해 뼈저리게 느낀 바이기도 했지만, 저런 기계 장치는 이런 상황에 아주 유용했다. 높이 띄워서 주변을 살피고 좀비들이 가장 적은 길을 고를 수 있으며, 나아가 그들이 목표로 하는 지점이 있다면 그곳까지의 지름길을 미리 알아볼 수도 있다.
‘드론이 없었다면 추적하는 것도 불가능했겠지.’
빛을 내던 인한병원이 무너지고 사방이 깜깜한 어둠으로 뒤덮인 가운데, 불빛 하나 의존하지 않고 달리는 버스를 인간의 몸으로 뒤쫓을 방법이란 없다고 봐야 했다. 물론 똑같이 차를 써서 추적하는 방법도 있지만, 그랬다간 좀비를 경계하던 버스 팀에게 진작 들켰을 것이다.
감시역들은 야간투시경을 연결한 드론으로 남몰래 버스를 추적하게 하고, 멈췄을 때 맞춰 그들이 이동하는 방식을 취했을 거라고 예상했다.
전날, 준성이 밤하늘에서 본 붉은 점은 딱 하나뿐.
더 있었다면 원활한 추적을 위해 띄우지 않았을 리 없는 상황이라, 준성은 감시역들이 가진 드론이 하나뿐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리고 그 드론은 명백히 자신들을 쫓고 있었다.
‘남기혁이라면 날 추적하는 걸 우선하라고 했겠지.’
두 팀으로 나뉘었을 때, 가장 우선하는 쪽을 추적하고 그 움직임을 체크하려 드는 게 당연하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남기혁은 8일째의 내가 어떻게 움직여왔는지 몰라.’
남기혁과 함께 움직였던 회차의 끝은 딱 한 회차를 제외하면 길어야 7일이었다. 이런저런 시도를 해보다가 7일 안에 죽기 일쑤였고, 남기혁도 알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해결책을 찾았던 마지막 회차’에서도 6일째에 죽음을 맞았다.
남기혁과 얽힌 회차 중에서 7일째를 넘긴 회차라고는 딱 한 번뿐.
그때도 7일째 밤에 남기혁에게 끌려가 폐공장에 갇혀버렸던 터라, 8일째부터의 움직임이라고는 하얀 매트 위에서 괴롭게 뒹군 게 전부였다.
사실 8일째에 활발히 움직인 적이 많고 그걸 남기혁이 다 기억하고 있다고 해도 상관없었다.
‘현실’의 8일째는 명백히 다른 루트로 움직이고 있으니까.
‘그래서 저놈도 집요하게 따라오는 거겠지.’
피가 흐르는 입을 쩍 벌리며 달려드는 좀비를 몽둥이 다루듯 마체테로 시원하게 내려찍은 준성이 시간을 확인했다.
세 번째 혈액의 효과가 사라지기까지 약 3분 남았다.
그리고 지금쯤이면 버스 팀이 두 번째 안전 루트에 접어들었을 무렵이다.
이제 와서 드론의 방향을 돌려 버스 팀을 추적하기엔 한참 멀어졌다. 감시역들도 그럴 생각이 없어 보이지만.
준성은 슬슬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한서를 바라보았다. 눈이 마주친 도한서가 태연한 얼굴로 좀비 머리에 회칼을 박아넣으며 살짝 웃어 보였다.
준성과 한서가 좀비들과 싸우는 지점에서 약 50m 정도 떨어진 건물 뒤편.
건물의 몸집에 몸을 숨기고 있던 두 명의 남자가 드론 조종기의 카메라 액정에 비친 강준성과 도한서를 바라보며 마른침을 삼켰다.
“괴물들인가, 저놈들은?”
큰 체구의 한 남자가 기겁한 얼굴로 중얼거렸다. 드론을 조종하던 왜소한 몸의 남자도 그와 똑같은 말을 하고 싶었다.
좀비들이 많지 않은 길을 족집게처럼 골라서 움직이고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그들이 마체테와 회칼로 처리한 좀비의 수만 해도 스물이 넘는다. 그만한 수를 처리하는 동안 아무도 물리지 않았다니, 신기함을 넘어 경악스러울 따름이다.
두 남자는 준성과 한서가 앞서 지나간 길을 따라 이동하는 것뿐이라, 살아있는 좀비라고는 단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그만큼 준성과 한서는 마주치는 좀비마다 능숙한 몸놀림으로 정확히 머리를 노려서 쓰러뜨렸다. 좀비들을 이토록 침착하게 처리하며 앞으로 쑥쑥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은 두 남자가 속한 조직 내에서도 극히 적었다.
놀라움을 금치 못하며 조심스레 추적을 이어나가던 순간.
“헉!”
드론 조종기를 조작하던 남자가 헛숨을 들이켰다.
액정 속, 최우선 타깃에게 이변이 일어났다.
타깃의 어깨에 한 좀비가 얼굴을 박고 있다. 최우선 타깃은 그 머리를 떼어내려는 것처럼 뒷머리를 꽉 붙잡은 채 눈을 크게 뜨고 있었고, 그 옆으로 동료였던 키 큰 남자가 굳은 표정으로 손을 뻗는 게 보였다. 좀비는 곧 키 큰 남자의 손에 끌려 나와, 회칼에 눈을 깊이 꿰뚫리고 말았다.
“무, 물렸나?”
드론 조종기를 붙잡고 있던 남자가 사색이 된 채 손끝을 떨었다.
최우선 타깃이 피 묻은 어깨를 손으로 짚은 채, 벽에 등을 기대어 주저앉았다. 고개를 푹 숙이고 있어서 얼굴은 잘 보이지 않았지만, 그의 어깨에 묻은 피는 드론의 렌즈에도 확실히 잘 담겨 있었다.
최우선 타깃의 앞에 선 채 뭐라 말하던 키 큰 남자가 눈가를 일그러뜨리다가 곧 몸을 돌렸다. 그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걷기 시작했다. 감염증상이 나타나는 것처럼 숨을 헐떡이며 움찔거리는 최우선 타깃을 그렇게 버려두고, 키 큰 남자는 금세 길의 모퉁이를 돌아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빨리 무전 좀 해봐.”
드론 조종기를 잡은 남자의 말에 고개를 세차게 끄덕인 큰 체구의 남자가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보스가 있는 폐공장까지 직접 무전을 하기엔 수신 거리에 한계가 있어, 중간 즈음에 아지트를 두고 대기 중인 윗사람에게 무전을 보냈다.
“형님, 일이 생겼습니다.”
-뭔데?
껄렁한 느낌의 목소리가 심드렁하게 물었다.
“아무래도 타깃이… 좀비에게 당한 것 같습니다.”
-뭐?!
상대가 깜짝 놀란 소리를 내며 욕설을 내뱉는 게 들렸다.
-씨발, 안 되는데……. 야, 확실해? 물린 거 확실하냐고.
“그런 것 같습니다만…….”
-같습니다만, 이 뭐야? 빨리 제대로 확인 안 해?! 씨발, 진짜 물린 거면 우리도 다 뒤질지 모른다고!
이들로서는 억울할 일이었지만, 그들의 형님이라는 사람은 타깃에게 완전히 꽂혀 있는 상태였다. 눈 돌아서 정말 다 죽여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벌써부터 등골이 시렸다.
-물린 거 확실한지 확인하고, 감염된 거 맞으면 뒤져서 변하기 전에 빨리 주둥이에 재갈 물려서 확보해.
형님이 보이던 타깃에 대한 집착을 생각해보면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살아있는 좀비가 타깃의 무방비한 어깨에 얼굴을 묻는 걸 똑똑히 보았다. 안 물렸을 리가 없으니, 그나마 목숨을 부지하려면 이렇게라도 해야 했다. 형님이라면 분명 타깃이 좀비가 되었다고 해도 곁에 두려고 할 테니까.
“알겠습니다.”
이마에 맺힌 식은땀을 닦으며 서로 눈빛을 교환한 두 남자가 발소리를 죽인 채 걸음을 옮겼다.
타깃의 움직임을 주시하고 있던 드론을 따라 그가 있는 자리에 다다른 두 남자는 잔뜩 긴장한 얼굴을 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타깃은 손끝을 까딱거리며 거친 숨을 내쉬고 있었다. 괴성이나 기이한 신음을 흘리지 않는 거로 봐선, 아직 좀비화까지 시간이 좀 남은 듯했다.
이에 안심했는지, 큰 체구의 남자가 손만 뻗으면 닿을 정도 거리까지 가까이 다가갔다. 그는 재갈로 쓸 손수건을 꺼내어 돌돌 말면서도 두 눈으로는 타깃의 어깨를 주목하고 있었다.
타깃의 어깨에는 역시나 피가 진득하게 묻어있었다. 코트를 뚫고 터져 나온 진한 검붉은 피는…….
‘응?’
지척에서 자세히 보니, 코트를 이빨로 찢거나 뚫은 흔적이 없다. 게다가 어깨를 흥건히 물들인 피는 이제 막 터져 나온 선혈이 아니라 끈적한 느낌이 드는 검붉은 색이었다.
마치 좀비의 것과 같다.
큰 체구의 남자가 이상함을 느끼자마자, 그의 멱살이 갑자기 틀어 잡혔다.
좀비에게 당한 게 분명하다고 생각했던 타깃의 하얀 손에.
“안녕하세요.”
여태껏 고개를 숙이고 있던 타깃이 언제 그랬냐는 듯, 태연한 얼굴을 들어 보였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기도 전에 옆에서 짧은 비명이 들렸다.
“크헉!”
고개를 홱 돌려보니, 드론 조종기를 잡고 있던 왜소한 체구의 남자가 땅바닥에 얼굴을 처박힌 채 쓰러져 있다. 누군가의 긴 다리가 바닥에 떨궈진 그의 머리를 가차 없이 짓밟은 탓에 한 번 더 비명이 들렸다.
왜소한 남자의 머리를 으깨버릴 것처럼 사정없이 짓밟은 도한서가 회칼을 들어 그의 목에 내리찍듯 겨누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도한서의 얼굴에는 특유의 서늘함 외엔 아무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
드론이 타깃인 강준성을 주시할 거라는 추측대로, 감시역들은 도한서가 건물을 빙 돌아서 이 자리로 되돌아오는 것조차 눈치채지 못하고 있었다. 애초에 그들은 자신들이 들켰다는 것도 지금 막 알았으니 그럴 만도 했다.
준성에게 멱살을 잡혀 있던 큰 체구의 남자는 순간 목에서 느껴지는 찌릿함에 퍼뜩 고개를 돌렸다. 서슬 퍼런 마체테가 닿은 목 언저리에서 선명한 핏줄기가 주륵, 흘러내렸다.
“그쪽 대가리한테 해줄 말이 있는데, 대신 전해줄래요?”
남자의 굳은 시선을 마주한 강준성의 눈이 초승달처럼 휘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