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45화 -
때는 한서가 경오의 배신 행동을 추궁하고 얼마 되지 않은 새벽.
경오는 새까만 밤하늘을 향해 드론을 날렸다.
야간 투시경을 달아서 개조한 건 상당히 급조라 조악하긴 했지만, 다행히 빛이 없어도 충분히 밤하늘을 날 수 있을 정도는 되었다.
드론은 모텔 꼭대기쯤 되는 높이에 멈춰 서서 연신 빨간 불을 깜빡거렸다.
0.5초 간격으로 점멸하는 빨간 불에 화답한 건 다소 거리가 먼 허공.
야간 투시경이 있긴 해도 거리 때문에 명확한 형태를 알아보는 건 어려운 일이었다. 경오의 드론은 어렴풋한 실루엣이 내는 빨간 불에만 의지한 채 그쪽으로 천천히 날아갔다.
어느 정도 거리가 가까워지자, 허공에 뜬 물체의 명확한 형태가 렌즈에 잡혔다.
그것도 야간 투시경을 붙여서 개조한 드론이었는데, 급히 개조한 경오의 것에 비해 좀 더 잘 다듬어진 견고한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드론은 조종기를 통해 화면을 보고 있을 경오에게 따라오라고 말하는 것처럼 몸을 돌렸다.
천천히 앞서 이동하던 드론을 따라가 보니, 한 건물 옥상에 앉아있는 두 남자가 보였다. 불빛 하나 없는 곳에서 각자 두툼한 담요를 어깨에 걸친 채, 두 대의 드론이 내려앉길 기다려주고 있다.
“우, 우릴 감시하던 사람들인가 봐.”
경오가 마른침을 삼키며 말했다. 그는 자신이 쥔 조종기의 화면을 말없이 내려다보고 있는 창민과 한서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내, 내 드론을 부수거나 하진 않겠…지?”
“형을 스파이로 쓰려면 소통할 수 있는 이용 수단이 필요해요. 섣불리 부수진 않겠죠.”
창민의 말대로, 경오의 드론과 접촉한 자들은 딱히 기계를 부수거나 망가뜨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경오의 드론을 조심히 든 채로 이리저리 살펴보던 두 남자는 곧 배 부분에 붙어있는 무전기를 발견한 듯 보였다.
남자들이 무전기를 발견하고 손에 쥔 걸 확인한 경오가 급히 자신이 갖고 있던 다른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병원에서 나올 때 기계 종류는 모두 경오의 가방에 쓸어 담았었기에, 현재는 무전기 두 개를 전부 그가 갖고 있었다.
무전기를 받아 든 상대가 자세히 살펴보는 기색도 없이 곧바로 송신 버튼을 눌렀다.
-황경오?
상대는 이미 이 드론을 날린 사람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던 모양이다. 하긴, 그러니까 길 안내까지 하면서 자신들과 접촉할 수 있게끔 도와준 거겠지만.
경오가 긴장한 표정으로 무전기를 입가에 가져갔다.
“하, 하라는 대로 했잖아요. 빨리 우리 엄마 무사한지 알려줘요!”
그러자 드론의 렌즈에 그들의 키득거리는 모양새가 고스란히 잡혔다.
-네 엄마는 무사하게 잘 있어. 앞으로도 우리가 시키는 대로만 잘해주면 다시 멀쩡히 만날 수 있을 거야.
“그걸 어, 어떻게 믿어요!”
경오가 진심을 담아 외쳤다. 어느새 그의 눈가에는 물기가 번지고 있었다.
“엄마가 무사하다는 걸 아, 알아야겠어요. 목소리만이라도 드, 들려줘요!”
-이봐, 지금이 휴대폰 빵빵 터지던 때랑 같아? 목소리를 뭘 어떻게 들려줘?
“무, 무전기로라도 들려주면 되잖아요! 하다못해 얼굴이라도 보여줘요! 그렇게만 해주면 뭐, 뭐든 할 테니까요!”
-하, 이 새끼가…….
경오의 외침에 짜증이 가득한 목소리를 내던 상대가 그와 같이 있던 왜소한 남자에게 뭐라 말하는 모습이 보였다. 얼마 가지 않아, 큰 체구의 남자가 다른 무전기를 꺼내 들었다. 경오는 렌즈에 비친 그들의 무전기에 주목했다.
큰 체구의 남자는 한 손에 경오가 건넨 무전기를, 다른 한 손에는 그들 간의 소통용으로 갖고 있던 엇비슷한 무전기를 들고서 옥상 구석으로 이동했다. 드론에 내장된 오디오에 혹여 음성이 들어갈까 봐 경계하는 듯했다.
잠시 후.
-좋아. 목소리 정돈 듣게 해주지.
“됐다!”
경오가 저도 모르게 소리쳤다. 다행히 무전기의 송신 버튼은 누르지 않은 상태라, 그의 쾌재는 곁에 있던 창민과 한서만 들을 수 있었다.
경오가 기뻐한 데에는 충분한 이유가 있었다.
목소리를 듣게 해준다는 건 그의 모친이 아직 살아있다는 증거였다. 한서가 남기혁을 떠올리며 ‘그놈이 내 생각대로인 놈이라면 아마 인질은 멀쩡할 거야’라고 말했었는데, 그의 예측이 정확했다.
그뿐 아니라 지금의 상황은 한서가 바라마지 않던 바로 그 흐름이었다.
“빠, 빨리 들려줘요!”
-기다려, 새끼야. 준비가 좀 필요하다고.
무전기를 들고 있던 남자가 드론을 노려보며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눈앞에 드론이 아니라 황경오 본인이 있었으면 손으로 머리라도 한 대 내리쳤을 것 같은 기세다.
-드론의 오디오는 멀쩡히 작동하고 있냐?
“네, 네!”
무전기처럼 음성을 송출하는 건 불가능했지만 소리를 담는 건 가능했다. 단, 비행 중에는 아무리 저소음이라고 해도 바로 지척에서 돌아가는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잡음이 심한지라, 경오는 여태껏 이 기능을 제대로 써본 적이 없었다.
-그럼 귀 열고 기다리고 있어 봐.
두 남자는 아예 경오의 드론 앞에 자리를 잡고 털썩 앉아버렸다. 그러더니 자기들이 갖고 있던 무전기를 드론에 가까이 댄 채 저들끼리 작은 소리로 잡담이나 해댔다.
피가 마를 것 같은 긴장 속에서 어느덧 10분의 시간이 지났다.
왜소한 남자는 갖고 있던 쌍안경으로 준성 일행의 모텔 쪽을 주시하고 있었고, 무전기를 드론 가까이 대고 있던 큰 체구의 남자는 입을 쩍 벌리며 연이어 하품해댔다.
그즈음.
-형님이 말씀하시는 거 그대로 전달해줄게.
-알았어.
설마, 그냥 말로 전달하는 건 아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있던 찰나, 송신음이 들림과 동시에 다른 남자의 목소리가 튀어나왔다.
-들리냐?
드론의 코앞에 있던 무전기에서 들린 그 목소리는 확연히 묵직한 톤이었다.
큰 체구의 남자가 긴장한 얼굴로 송신 버튼을 누른 채, 그대로 5초 정도를 흘린 후에야 대답했다.
-예, 들립니다.
큰 체구의 남자가 내뱉은 목소리는 껄렁한 느낌을 쫙 뺀 각진 느낌이었다. 그만큼 상대에게 깍듯한 느낌이었다.
몇 초 뒤, 무전기의 수신음이 울리고 나서 곧바로 묵직한 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인질 목소리 들려줄 테니까 얌전히 기다리라고 해라.
-예, 형님.
이번에도 큰 체구의 남자는 송신 버튼을 누르고 바로 말하는 게 아니라, 일부러 5초 정도를 흘려보낸 후에야 목소리를 냈다.
“중간에 무전을 걸쳤나 보군.”
한서의 말에 창민이 고개를 끄덕였다.
“송신 신호와 말 사이의 텀이 크지 않은 거로 봐선 아마도 다리는 하나밖에 안 걸쳤을 거야.”
두 사람은 지금까지의 무전 송신을 토대로 확신에 가까운 추측을 이어나갔다.
경오가 맞닥뜨린 두 남자 쪽에서 직접 무전 가능한 거리 안에 다른 팀이 있긴 하지만, 그건 인질을 보유한 팀이 아니다. 대신 다른 팀은 인질을 보유한 팀과 직접 연락하는 게 가능했다.
큰 체구의 남자 쪽 팀과 인질을 보유한 팀의 무전을 이어주기 위한 중간 다리 역할의 팀이 하나 더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의 생각을 무리 없이 이해한 경오가 고개를 끄덕였다.
“디자인이나 크기로 봐선 음, 내 거랑 비슷한 업무용 무전기를 쓰는 것 같아. 원래는 최대 송신 거리가……, 어…, 한 10km까지 나올 테지만…….”
“이렇게 건물이 많은 도심에서는 송신 거리가 현저히 짧겠죠.”
“마, 맞아. 내 무전기도 음성이 제대로 잡히는 최대 거리는 2.5km까지가 한계였어.”
창민이 있던 특임단에서는 경오의 것과 전혀 다른 군용 무전기를 썼지만, 무전기에 관한 교육을 받은 이들이라면 군인이든 보안 업체 사람이든 다들 아는 사실이 이러한 송신에 관한 부분이다. 건물이 별로 없는 곳이나 평야에서는 아주 멀리까지 송신이 가능하지만, 도심 같은 곳에서는 그 최대 거리가 반 이하로 뚝 잘리기 마련이다.
도심 한가운데의 보안 업체 시스템 기사였던 황경오로서는 자신과 같은 업무용 무전기가 어느 정도까지 송신 가능한지 당연하게 알고 있었다.
그때, 큰 체구의 남자가 들고 있던 무전기에서 한 중년 여인의 외침이 들려왔다.
-경오야! 경오야!
“어, 엄마!”
목소리에 반응하듯 왈칵 눈물을 터뜨린 경오가 무전기를 켤 생각도 못 하고 그녀에게 화답했다.
-야, 대화하게 해줄 테니까 송신 버튼 누르고 5초, 아니, 10초 뒤에 말해라.
경오는 울음을 참으며 큰 체구의 남자가 지시한 대로 송신 버튼을 누르고 10초를 세었다. 그동안 남자 쪽이 다른 무전기의 송신 버튼을 누른 채 대기했다.
정확히 10초가 지나자마자 황경오가 엄마는 괜찮냐며 거의 고함치듯 말을 뱉었고, 몇 초 뒤에 그 말을 지금 막 듣고 대답하는 것처럼 말하는 모친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그 과정을 지켜보고 있던 한서의 머리가 강준성처럼 빠르게 회전하기 시작했다.
오차 범위를 감안하여 무전기의 송신 거리를 3km로 잡는다. 중간에 걸친 무전기의 최대 송신 거리를 고려해서 현재 인질들이 있는 위치를 가늠해보면 약 6km 이내.
즉, 큰 체구의 남자들이 모텔을 감시하며 대기하고 있는 위치로부터 약 6km 이내에 황경오의 엄마를 포함한 인질들이 모여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