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47)화 (147/240)

- 147화 -

“저, 정말이야?!”

눈물을 털어낸 경오가 후다닥 한서 곁으로 달려왔다.

황경오의 드론으로 접촉했던 큰 체구의 남자 쪽과 중간 다리 역할인 자는 서로 간에 예의를 갖출 생각도 하지 않았고 편하게 반말을 나눴다. 그 점을 봤을 때 둘 사이에 계급적 차이는 없다고 추측된다.

상부에 말을 전하고 또 그 위로 말을 전해야 하는 복잡한 구조를 고집해서 나눈 게 아닌 이상, 조사할 거리를 좁히는 건 아주 쉬웠다. 단순히 무전 송신 범위가 닿지 않아서 조직원을, 그것도 말단을 더 배치한 걸 테니까.

이 부분에 대해선 창민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이런 위험한 재난 상황일수록 조직의 계급은 더욱 큰 효력을 발휘한다. 계급이 높을수록 안전지대에 있을 확률이 높고, 반대로 말단에 가까울수록 고되고 힘든 일을 맡을 확률이 높아진다. 그러니 감시역이나 전달책을 맡은 이들은 분명 말단에 해당하는 자들일 것이다.

무전기의 송신 거리는 2.5km 내외.

한 팀의 말단을 걸쳤다는 전제하에, 오차 범위를 500m 늘여서 3km씩 두 번 계산한 6km까지를 조사 범위에 넣는다.

반대로 첫 번째 팀의 최대 송신 거리는 오차 범위인 500m를 줄여서 2km 안에 인질팀이 없다고 추정하는 게 확실했다.

직접 접촉한 큰 체구의 남자가 있는 위치를 기준으로 2km 떨어진 곳에서부터 6km까지.

남기혁과 인질팀은 이 도넛 형태의 4km 안에 있는 것이다.

문제는 6km의 조사 범위를 4km로 줄였다고는 해도 조사할 때 쓸 마땅한 차량도 없을뿐더러, 인간만 보면 물어뜯고 싶어서 앞뒤 안 보고 달려드는 좀비가 거리에 가득하다. 그 안에서 4km를 조사해나가는 건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뭔가 힌트라도 있으면 좋으련만.

“인질들이 있는 위치는 모르지만, 남기혁이 어떤 종류의 건물에 있는지는 알고 있었어.”

타이밍 좋게 튀어나온 한서의 말에, 창민과 경오가 또 한 번 놀란 얼굴을 했다.

한서는 지하철 대피소에 남아있던 남기혁의 메시지를 그들에게 전해주었다. 이는 준성이 괜히 걱정과 불안만 가중하게 될까 봐서 드러내지 않고 숨기려 했던 메시지로, 두 사람은 모르고 있던 내용이었다.

[강채이는 당분간 내가 데리고 있을게.]

[7일째 밤에 예쁨받던 그 공장으로 와.]

[안 오면 동생 머리 들고 내가 직접 데리러 갈 거야.]

예쁨받던 그 공장.

7일 밤에 해당하는 자정 무렵, 그러니까 무전을 나눈 지금으로부터 약 3시간 전까지 남기혁은 100% 인한시 어딘가에 있는 ‘공장’에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자정부터 지금까지는 정말이지 웬만한 건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지독히도 깜깜한 새벽이다. 별빛은 고사하고 달빛마저 가려져 있다.

제아무리 야간투시경이 여러 개 있다고 하지만, 이런 밤에 사진 속의 여러 인질까지 끌고 이 새벽에 이동을 감행하는 바보는 없을 것이다.

만약 날이 밝자마자 남기혁이 이동을 하더라도 짐이 될 게 뻔한 인질들까지 다 데리고 움직이진 않을 터.

남기혁이 있든 없든, 인질들을 몰아넣어 둘 공간이 있을 정도의 안전지대를 확보해둔 상태라면 그곳을 쉽게 버릴 리가 없다.

‘번거롭긴 하네.’

남기혁이 어디 있는지 가장 잘 알고 있는 건 강준성이었다.

그에게 직접 남기혁이 있을 공장의 위치를 물어본다면 아주 쉽게 풀릴 일이지만, 도한서는 그러고 싶지 않았다.

이유를 논리정연하게 풀어놓으며 정의하는 건 어려웠다.

그저, 강준성이 남기혁을 떠올리게 되는 게 싫었다.

그에게 끌려다니게 되는 것도 싫었다.

그래서 제 손으로 죽여서 내다 버려도 상관없을 황경오에게 직접 찾아와, 이렇듯 인질을 구하는 걸 도우려는 거다.

강준성이라면 한 번 마음에 들였던 황경오라 하더라도 그가 일행을 위험에 빠뜨린 걸 묵과하지 않을 것이다. 남기혁의 손에 인질이 있는 이상, 황경오는 제 엄마를 죽게 놔둘 수 없기에 어쩔 수 없이 일행을 배신해야 할 일이 생기는 건 필연적이다.

마음에 들인 사람, 믿을 만한 아군이라고 해서 모두의 무게가 같은 것은 아니다.

그걸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이 강준성이다.

그에게 있어 동생 강채이의 무게와 다른 아군의 무게가 다른 것처럼, 황경오를 포함한 모든 사람도 각자의 마음속 우선순위가 존재한다.

그러니 강준성이 황경오를 내치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자신이 마음에 들였던 사람의 가족이 남기혁에게 인질로 잡혀 있다는 사실을 깔끔히 무시할 순 없다. 현실에선 잠깐이었다고 해도 꿈속에선 강준성과 몇 번 연이 닿았던 김태주 또한 인질 사이에 버젓이 섞여 있는 걸 보았다.

게다가 이제 막 동료로 받아들인 임유슬, 그녀의 동생도 무게를 더하게 되겠지.

결국 강준성은 남기혁이 쳐둔 여러 그물 중 하나인 ‘인질 구출’을 고려하게 될 거다.

그렇다면 그딴 거슬리는 그물 따위, 제 손으로 찢어버리겠다.

‘강준성을 귀찮게 하기 전에 내가 처리하겠어.’

인질만 모두 사라진다면 강준성이 남기혁에게 휘둘릴 걱정은 안 해도 된다.

‘인질 따위, 전부 죽여버리고 싶지만.’

사실은 그게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걸 알고 있음에도 그럴 수 없었다.

좀비가 아닌 ‘살아있는 인간’을 죽이기 위해선 강준성과의 암묵적 약속이자 정당성에 맞춰 칼을 들어야 했다.

강준성을 죽이려는 자.

강준성을 죽게 할 자.

그들을 죽여야만 강준성이 ‘하사’한 정당성이 지켜진다.

그러니 인질들을 죽여서 깔끔히 치워버리는 선택지는 아쉽게도 고를 수가 없다.

속으로 아까운 마음을 삼킨 한서가 준성의 휴대폰을 들어 화면을 보여주었다.

“남기혁이 강준성을 기다리던 곳은 ‘공장’이야.”

휴대폰 화면에 떠 있는 건 그들이 선 인한시의 지도 한복판이었다.

“조사 범위인 4km 이내에 존재하는 공장은 단 한 곳.”

한서의 손가락이 지도상의 한 지점을 가리켰다.

[대성제철 인한공장(폐쇄)]

“이곳에 남기혁, 그리고 인질들이 있을 거야.”

창민과 경오는 한서가 가리킨 지점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준성의 지시에 따라 두 팀으로 나눠진 일행이 모텔을 나서려던 시각.

황경오는 아침에 한서의 말에 따라 준성이 짜준 안전 루트를 고스란히 적어놓은 쪽지를 준비했다. 그 안에는 준성의 목적이 ‘인한시 외곽의 피난소’라는 정보도 넣어두었다.

한서가 경오에게 정보를 명확히 적어놓으라고 지시했던 이유는 상대가 남기혁이기 때문이었다.

준성처럼 꿈의 정보가 있는 그에게 허구로 말도 안 되는 루트와 목적을 적어놓으면 단박에 눈치챌 가능성이 컸다.

경오의 바람처럼 일단은 인질들이 안전해야 했다. 그러려면 타당하면서도 확실한 정보를 줄 필요가 있었다.

남기혁 쪽에서는 남겨둔 쪽지를 100% 신뢰하기보다는 그 정보를 토대로 황경오를 눈여겨볼 것이다.

강준성이 짤법한 안전 루트가 맞는지, 그의 목적이라던 내용이 합당한지, 황경오가 사실은 뭔가 허튼수작을 부려둔 건 아닌지.

그 증거로, 이 터널까지 오는 내내 꼬리가 붙어 있었다. 응당 그럴 걸 예상한 세 명을 제외하면 누구도 저 높은 곳에서 쫓아오는 자그마한 드론을 눈치채지 못했을 것이다.

방해물조차 없는 드넓은 하늘에 떠 있는 드론의 눈을 피하기란 쉽지 않다. 빌딩 사이를 이리저리 꺾어 움직인다 해도 드론은 그 움직임을 절대 놓치지 않을 거다.

그런 면에서 터널은 아주 유용하다 할 수 있었다.

높이 떠 있을 땐 안심하고 감시할 수 있을 테지만, 버스를 뒤따라 고요하고 좁은 터널로 들어가 버리면 자칫 들킬 위험이 있었다.

게다가 터널은 건너편 출구까지 닫혀 있어서 아무런 빛도 보이지 않는 깜깜한 어둠뿐이었다.

달리는 버스의 전조등만 믿고 드론을 투입하기엔 빛이 거의 없어서 시야가 너무 좁았다. 한밤중이었다면 야간투시경을 붙여놓고 터널 안까지 추적하는 것도 가능했겠지만, 지금은 대낮이라서 되레 시야를 망가뜨리는 그런 장치를 연결해뒀을 리가 없다.

그래서 한서는 이 터널에 진입했을 때가 감시의 눈을 자연스레 피할 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이라 생각했다.

또한, 이 터널을 중요하게 생각한 이유엔 한 가지가 더 있다.

“남기혁, 그리고 인질들이 있는 공장은 이곳에서 고작 300m쯤 되는 가까운 거리에 있어요.”

창민의 말에 버스 안에 있던 이들이 저마다 눈을 크게 떴다.

“남기혁은 한서가 끌어내 준다고 했으니, 가장 위험한 그놈이 없는 이때가 기회입니다.”

무슨 방법을 쓰려는 건지 모르겠지만, 창민은 한서를 믿어보기로 했다. 그가 말하길, 남기혁을 공장에서 끌어내는 건 아주 쉬운 일이라고 하니까 말이다.

경오와 창민이 털어놓은 사실에 일행의 얼굴이 시시각각 변해갔다.

그들 중에는 불만을 토로하는 자들도 있었다.

“그럼 지금 우리가 움직이는 경로를 저놈들이 다 알고 있다는 거잖아? 그걸 알려주면 어떡해!”

“알려주지 않았더라도 드론을 이용해서 우리가 어디로 향할지 전부 감시했을 거예요. 지금만 해도 우릴 추적하는 드론이 있잖아요.”

이를 눈치채지 못하고 있던 일행이 화들짝 놀랐다.

창민은 일행들의 어수선해진 분위기를 보며 말을 이었다.

“지금 저 드론은 우리가 움직이는 경로뿐만 아니라 경오 형이 배신한 게 맞는지 아닌지를 파악하기 위해서 붙어 있어요. 만약 쪽지의 내용이 가짜이고 다른 길로 가는 게 확인되었다면 인질들은…….”

“그놈이 했던 말처럼 몸이 조각조각 나버렸겠지.”

임유슬의 차가운 말에 모두가 숨을 삼켰다. 직간접적으로 짧게나마 겪어본 바에 의하면, 남기혁이라는 자는 충분히 그러고도 남을 법했다.

이야기를 듣는 동안 냉랭하게 있던 임유슬이 입꼬리를 올려 씩 웃었다.

“난 그쪽 팀으로 들어가겠어. 남기혁에게 붙잡혀 있는 내 동생을 구할 기회인데 마다할 이유가 없지.”

창민에게 다가간 유슬이 잘 부탁한다는 듯이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했다. 한 팀이 되겠다는 그 행동에 창민이 웃으며 손을 붙잡았다.

“그런데 그거 알아?”

유슬이 눈을 돌려 경오를 바라보았다. 펑펑 운 데다가 사정없이 닦아놔서인지 눈가가 상당히 새빨갛다.

“우리 안에 스파이가 있을 거라는 거, 준성이는 이미 알고 있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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