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63)화 (163/240)

- 163화 -

좀비에게 물려 현실에서 눈을 뜬 준성은 한동안 침대에 누운 채로 눈만 부릅뜬 채 도통 움직이질 못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갔다.

“우욱-! 읍!”

변기를 붙잡고 속에 있는 걸 모두 게워냈다. 그러고도 구토가 멈추질 않아, 나중에는 위액만 줄줄 쏟아냈다.

제 눈앞에서 죽어 나가던 사람들의 모습이 생생히 떠오르다 못해 눈앞에 한 번 더 펼쳐지는 느낌이었다. 지금이 현실은 맞는 건지, 아니면 아직도 꿈인지 모르겠다.

사방으로 튀던 핏물.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공간.

사람이었던 고깃덩이들.

인간을 구성하던 수많은 조각.

그 모든 게 떠올라 미칠 것 같았다.

거친 숨을 내뱉으며 혼란스러운 눈을 하고 있던 준성이 주저앉아 있던 몸을 일으켰다. 세면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창백한 모습을 마주하며 하얀 목을 손으로 더듬더듬 만져보았다. 폐공장에서는 목에 손끝이 닿는 것만으로도 얼얼한 감각이 느껴졌는데, 지금은 그런 것 하나 없이 부드러운 촉감뿐이다.

거울을 통해 자신을 바라보고 있던 준성이 두 손으로 제 목을 감싸보았다.

두 손이 목을 완벽히 감싸자마자 갑자기 숨이 턱 막히는 느낌이 들었다. 그와 동시에 전신이 끔찍할 정도로 저릿저릿해졌다.

“헉…, 으흡…!”

목을 감싼 손에 힘을 준 것도 아니었다. 누군가가 대신 짓누르고 있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멀쩡했던 호흡기가 완전히 고장이라도 난 것처럼 굴었다. 단순히 들이마시고 내쉬면 되는 것을, 컥컥거리며 과도하게 숨을 삼키려고 안달이 났다.

남기혁에게 또다시 목을 졸린 듯한 느낌이었다. 극도의 불안감을 느낄 수밖에 없도록 호흡을 통제당하고 그의 허락 하에만 숨을 쉴 수 있던 때가 떠올랐다.

그때를 경험하듯 찾아온 과호흡은 준성의 정신을 또 한 번 뒤흔들었다.

숨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서 무의식중에 제 목을 손톱 세워 긁고 있던 준성이 더듬더듬 세면대의 물을 틀었다. 그대로 넘칠 만큼 물을 받아, 급히 한 손으로 코와 입을 가린 채 얼굴을 파묻었다.

얼굴이 물에 푹 빠져버리자, 이를 ‘잠수’로 이해한 본능이 준성의 호흡을 막았다. 물속에서는 숨을 쉴 수 없다는 본능에만 의존할 순 없어서 손으로 코와 입을 철저히 봉쇄했다.

그대로 1분 정도 버티고 있자, 그제야 하얗게 변했던 머릿속이 점차 돌아오는 게 느껴졌다. 조금 더 견디니 가쁘게 움직이던 호흡기가 안정화되기 시작한다.

“푸하-!”

한계에 다다라 얼굴을 빼냈을 즈음엔 과호흡 증세도 거의 가라앉아 있었다.

비틀거리며 물러나던 준성이 화장실 벽에 등을 기대어 주저앉았다. 푹 숙인 얼굴과 머리카락에 묻은 물기가 그의 가슴팍으로 뚝뚝 떨어졌다.

본능은 꿈에서 겪은 모든 것이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을 경고라도 하듯, 준성에게 끝없이 지옥을 상기시켰다.

“이제… 싫어….”

준성이 두 무릎을 세워 끌어안았다. 무릎에 머리를 박은 채 미친 사람처럼 중얼거렸다.

“그만하고 싶어…. 싫어…. 안 할래…. 왜 내가…….”

어린애의 칭얼거림을 닮은 준성의 목소리가 점차 격앙되었다. 얼굴에서 흐르던 물은 점차 그의 눈물로 뒤덮여버렸다.

좀비는 무섭다.

피로 뒤덮인 몰골도 무섭고, 귀를 찢는 듯한 괴성도 무섭고, 죽은 몸으로 앞뒤 가리지 않고 달려드는 것도 무섭고, 게걸스럽게 산 사람을 물어뜯으려는 모습도 무서웠다.

하지만 사람이 더 무서웠다.

믿었던 동료들에게 외면당했다. 제 말은 믿어줄 생각도 않고 무슨 역병 바라보듯 흘겨보는 시선도 슬슬 익숙해질 지경이다. 법이라는 단어가 내리쬐는 빛이 닿지 않게 된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한때 일행이었던 자들을 거리낌 없이 죽이기도 했다.

그래도 꿈이니까, 그저 이상하게 반복될 뿐인 꿈에 불과하니까, 그러니까 태연해지자고 생각했다.

그런 준성을 짓밟듯이 남기혁이 나타났다.

무한한 신뢰를 쌓고 더없이 따뜻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으면서, 세상에서 가장 악독한 살인마가 되어 준성에게 뼛속 깊이 트라우마를 새겨 넣었다.

그 사람이라면 분명 자신을 이해해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는데…….

폐공장에서 끝없이 고문받을 때처럼 완전히 넋이 나가버린 준성이 비척거리며 일어났다. 그는 누가 툭 치기만 해도 쓰러질 것 같은 힘없는 걸음으로 걸어가, 주방에서 잘 벼려진 식칼을 꺼내 들었다.

준성은 자신의 손에 들린 식칼을 눈물진 얼굴로 멍하니 내려다보았다.

‘아프겠지.’

지금은 현실이니까, 분명 아플 것이다.

식칼의 옆면이 준성의 어깨에 닿았다. 날 부분은 그대로 목을 향하게 하고서 두 손으로 손잡이를 꽉 붙잡았다.

어깨를 타고 스르르 움직이던 칼날이 목선에 닿았다.

찌릿한 느낌이 목을 타고 퍼져 나갔다. 뒤이어 칼날이 닿은 부위가 쓰라린 통증을 담는다.

준성의 탁한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고통이 느껴진다. 그러니 이건 분명 현실이다.

하지만 지금이 현실이라는 건 과연 어떻게 증명할 수 있을까.

이번부터 고통도 느낄 수 있도록 꿈이 변화한 거라면?

이대로 자살했다가 또다시 현실에서 눈을 뜨게 된다면?

현실에서 죽어도 그저 회차가 반복될 뿐이라면?

어느 것 하나 명확하게 정의할 수가 없었다. 지금이 꿈인지 현실인지 아직도 분간할 수가 없다. 자신이 알고 있던 경계선이 확실한 건지 의심하게 된다.

더는 꿈을 꾸고 싶지 않아서 그만 죽고 싶은데, 죽을 수가 없었다.

자신이 현실이라 믿고 있는 지금 이 순간조차 한낱 꿈에 불과했다면 더는 이 괴이한 악몽에 버틸 힘이 없다.

현실을 현실이라 믿을 수 있는 완연한 증거가 필요했다.

그게 없는 이상, 준성은 섣불리 죽을 수 없었다.

허탈한 마음으로 식칼을 내려놓은 준성의 눈에 점차 독기가 퍼졌다.

‘내가 대체 뭘 잘못했다고 이딴 개 같은 기분을 느껴야 하는 거지?’

유약하던 마음이 삽시간에 뾰족한 자갈처럼 변모했다.

현실이든 꿈이든, 그딴 건 상관없었다.

자신의 목숨이 고작 꿈 때문에, 남기혁이라는 미친놈 때문에 쉽게 내버려도 될 정도로 하찮지 않다는 게 중요했다.

그랬기에 이젠 자신 스스로를 지키기 위해 움직였다.

준성의 방에는 꿈을 꾸는 타이밍을 조절하기 위해 준비해뒀던 수면제가 있었다.

남기혁에게 붙잡혀 있는 동안 수없이 먹었던 게 수면제였기에 당연히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도 그딴 건 개나 줘버리라는 마음으로 입 안에 두 알을 털어 넣었다. 물도 없이 그대로 씹어, 꿀꺽 삼켜버렸다.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도 않았기에 햇볕이 환하게 들이치는 대낮이었지만, 준성은 침대에 다시 누워 기절하듯 잠들었다.

다시 눈을 떴을 때.

준성은 꿈의 시작을 알리듯 어김없이 들려오는 재난 문자의 경보음을 들으며 곧바로 집을 나섰다. 철물점을 찾아가 자신의 손에 가장 익어있는 마체테를 집어 들고는 봉투에 대충 싸서 그대로 길을 걸었다.

준성이 향한 곳은 1일째에 남기혁을 찾아갔던 카페였다.

카페의 외관이 눈에 들어오자마자 본능이 경고했다. 이전 회차에서 무슨 일을 당했는지 떠올려 보라며, 당장 그곳을 벗어나라 명했다.

준성은 본능의 외침을 당당히 무시하며 카페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남기혁은 이전과 달리 여유로워 보이지 않았다. 초조하게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처럼 커피에 입도 대지 않은 채 가만히 앉아있었다.

“남기혁.”

준성이 성큼 다가가며 그의 이름을 불렀다.

고개를 번쩍 든 기혁이 환하게 웃으며 준성을 돌아보았다.

“준……!”

하지만 그는 준성의 이름을 채 입에 담지도 못했다.

퍽, 소리와 함께 남기혁의 목에 마체테의 칼날이 박혀 들었다. 강한 충격에 기혁이 쓰러지며 그의 목에서 피가 터져 나왔다.

“큭, 어으…!”

쓰러진 남기혁의 얼굴이 고통으로 일그러지고, 그의 입에서 미처 삼키지 못한 괴로운 신음이 흘렀다.

밖에서 대기하고 있던 승합차에서 남자들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카페 문을 부술 것처럼 가장 먼저 달려 들어온 우석진이 사색이 되어 소리쳤다.

“형님!”

총을 꺼내든 우석진이 준성을 겨누었다.

“너 뭐야! 당장 비켜!”

준성에 대한 기억이 없는 석진이 당장에 방아쇠를 당기려 했으나, 쓰러져 있던 남기혁이 손을 들어 그를 만류했다.

“손…대지… 마….”

그르륵거리는 핏물 끓는 소리 사이로 살기가 넘실거렸다. 그 살기는 자신에게 칼을 박은 준성이 아니라, 감히 그를 죽이려고 총을 겨눈 우석진에게 향해 있었다. 이에 석진과 다른 부하들 모두가 저마다 멈칫하며 침음을 삼켰다.

“허억…, 허억….”

준성은 기혁을 노려보며 거친 숨을 몰아쉬었다. 눈앞이 아득하게 보일 정도로 마구 흔들리는 시야가 남기혁의 피로 가득 차기 시작했다.

머리끝까지 차오른 알 수 없는 감정에 지배당한 준성이 쓰러진 기혁의 몸 위에 올라탔다.

“준…성아….”

남기혁이 뚝뚝 끊어지는 목소리로 준성의 이름을 불렀다.

그게 너무나 끔찍하고 혐오스러웠다.

홀린 것처럼 내리꽂은 마체테가 남기혁의 목을 정확히 꿰뚫었다. 그의 입에서도 목에서 흐른 것과 같은 새빨간 피가 토해지고 이내 눈에서 초점이 사라져갔다.

“이, 씨발! 뭐 하는 거야!”

부하 중 하나가 큰 소리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그에게 잡히기 전, 준성은 넋 나간 얼굴로 자신의 목을 베었다.

죽기 위해서가 아니라, 자신이 살기 위해서.

목을 베어 죽자마자 다시금 눈을 뜬 준성은 재난 문자 경보음을 들으며 또다시 걸음을 옮겼다.

자살로 인한 무한 반복을 통해, 강준성은 한 회차에서 수없이 남기혁을 죽이고 곧바로 제 목에도 칼을 대었다.

강준성의 죽음은 남기혁이 가장 싫어하는 것이다.

그와 동시에 그는 강준성의 삶과 죽음을 제 손으로 통제하길 바라는 자였다.

그러니 자신이 이전 회차에서 누굴 죽였으며, 누구 때문에 자살했는지, 누구의 통제에서 벗어나고자 했는지, 남기혁 본인이 똑똑히 기억해주길 바랐다.

당신도, 나처럼 지옥을 봐주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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