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80)화 (180/240)

- 180화 -

파사삭 깨져버린 틈 사이로, 무수히 많은 좀비의 팔이 운전석을 향해 쏟아져 들어왔다. 운전석으로 쳐들어온 팔이 가장 가까이 있던 남자의 머리를 잡아당겼다.

“으아아악-!”

“마, 막아! 막아!”

조수석의 남자가 어떻게든 해보려 했지만, 그의 외침은 단번에 무색해졌다. 무자비한 힘에 의해 차창 밖으로 상체의 일부가 딸려 나간 운전석의 남자는 그 상태 그대로 좀비들에게 곳곳을 물어뜯기고 말았다. 순식간에 형체도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물어뜯기며 비명을 지르는 남자의 몸이 전기라도 통한 것처럼 부르르 떨렸다.

차에 남아 있던 남자들은 그야말로 패닉이었다. 부서진 차창 밖으로 남자를 밀어내봐야 새로운 좀비들이 그 틈으로 파고들 뿐이고, 그렇다고 내버려 두자니 자신들의 동료였던 자가 흉악스러운 괴물로 돌변하여 자신들을 다 죽일 게 뻔했다.

그야말로 죽음밖에는 답이 없는 상황.

남자들은 망연자실한 얼굴로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좀비 무리 사이에서 유일하게 평화로운 검은 남자가, 자신들을 바라보며 그저 웃고 있는 게 보였다.

열 대의 차량 속 수십 명의 남자.

도한서는 손에 쥔 송곳 하나로 그 모두를 처리했다.

도한서가 한 일은 그저 모든 차의 차창을 하나씩 부수는 게 전부였다. 나머지는 산 사람의 몸에 이를 박고 싶어 하는 게걸스러운 좀비들의 몫이다.

“으아아악-!”

“커헉-! 살려……!”

“죽고 싶, 지 않…아…!”

남자들의 비명은 죽은 자의 괴성에 묻혀 점점 사그라졌고, 이내 그들 또한 기괴한 소리를 내지르게 되었다.

좀비들로 둘러싸인 차량들을 조금 떨어져서 감상하듯 바라보고 있던 도한서가 검은 세단을 향해 걸었다. 안에 사람이 없다는 걸 알아챈 좀비들은 검은 세단의 뒤쪽 외에는 딱히 붙어 있지도 않았다.

한서가 다가가자, 까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트렁크의 표면을 갉아대고 있던 좀비들이 슬쩍 물러났다. 한서는 트렁크 표면에 붙여두었던 게 너저분하게 찢어져 있을 뿐만 아니라, 안에 들어있던 붉은 액체까지 죄다 쏟아져버린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준성이 들어간 건물 근처까지 돌아왔을 때.

한서는 준성이 당부한 ‘두 번째 미션’을 위해 반쯤 남은 혈액팩 하나를 꺼내 들었다. 준성이 맡긴 자신의 혈액팩과 함께 들어있던 ‘타인의 혈액’에는 마치 제 것인 양 ‘Base_도한서(RH NULL)’라는 네임택이 붙어 있었다.

그건 양부가 원장을 찾아왔을 때 갖고 있던 혈액팩이었다. 도한서의 것인 줄 알고 먹었으나, 가짜라는 걸 안 뒤로는 그대로 잠가두고서 원장에게 버리듯이 줘버린 그것이다.

원장의 집에서 도한서의 혈액팩을 챙기던 준성은 방치되어 있던 그걸 충분히 이용해 먹을 수 있을 거라 확신했다.

눈이 좋지 않은 좀비들은 청각, 그리고 후각이 지극히 발달한 상태였다. 그중에서도 후각은 ‘신선한 피’를 귀신같이 잡아낸다는 특징이 있다.

준성은 그 특징을 이용하여, 오직 도한서에게만 가능한 미션을 주었다.

차 뒤쪽에 타인의 혈액팩을 붙여놓고서 조금씩 흐르게 하여 달리면 그 냄새를 맡은 지척의 좀비들이 기차처럼 줄줄이 달려오게 된다.

좀비에 대한 공포가 없는 도한서라면 그를 쫓아오는 괴물 무리에 정신이 흐트러질 일이 없다. 만약 속도 조절을 잘못해서 좀비들이 에워싼다고 해도 그라면 태평하게 걸어 나올 수 있다.

도한서이기에 가능했던 미션은 결국 완벽히 성공했고, 그 결과 남기혁의 ‘수족’에 해당하는 부하들이 순식간에 몰살당했다.

아니, 정확히는 ‘완벽히’ 성공했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었다.

강준성은 그저 남기혁의 부하들을 좀비 떼로 에워싸서 발을 묶어달라고 했을 뿐.

그저 차를 가까이 대어두는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총을 갖고 있으니 자칫 가까이 다가가기도 전에 총살당할 수도 있지만, 군용 대피소에 있을 군용트럭에서 방탄유리를 떼어 붙인다면 충분히 방어할 수 있었다.

원래대로라면 도한서가 지금처럼 차에서 여유롭게 걸어 나올 일도 없었고, 좀비들이 감히 손도 대지 못한다는 걸 타인에게 보여줄 필요도 없었다. 신선한 피를 쫓아 달려온 좀비들은 이윽고 다른 인간들이 모여있는 차를 자연스레 발견하여 포위했을 테니까.

그렇게만 된다면 만약 강준성이 남기혁을 죽이는 데 실패하고 그에게 끌려 나온다고 해도, 건물 밖에 있는 건 어마어마한 수의 좀비들이다. 당연히 건물 밖으로 나가지 못한 채 안에 있는 좀비들을 상대하며 힘을 빼게 될 것이다.

강준성에겐 나름의 확신이 있었다.

남기혁이 자신을 좀비들에게 물려 죽게 할 리 없다.

그 확신이 있었기에, 준성은 자신이 남기혁과의 전면전에서 패배한다고 해도 얌전히 때를 기다릴 생각이었다. 어디로도 도망치지 못하도록 발을 묶고, 그의 수족이나 다름없는 부하들을 차 안에 가둔다.

패했음에도 그렇게 기회를 엿보다 보면 반드시 남기혁을 제 손으로 죽일 수 있는 때가 올 거라 여겼다.

실패 이후의 순간까지도 미리 계산과 계획을 거듭한 강준성은 도한서가 고개를 끄덕이는 걸 보며 안심한 듯 웃어주었다.

“너 없었으면 어쩔 뻔했냐.”

강준성은 모를 것이다.

도한서가 예전처럼 충동에만 집중하던 남자였다면 그 자리에서 곧바로 덮쳐졌을 거라는 걸.

‘너무 조련당했나.’

지금 생각해도 그때 어떻게 참았나 의아할 정도였다. 그렇게 예쁘게 웃어주는데도 충동을 억누를 줄 알게 되다니.

그때를 떠올리며 웃던 도한서의 눈길이 도로에 줄지은 차를 향했다. 차가 정말 서 있긴 한 건지 제대로 분간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좀비들에게 빈틈없이 에워싸여 있다. 그 사이로는 더 이상 사람의 언어나 맑은 비명이 아니라 그륵거리는 피 끓는 소리를 동반한 괴성만 터져 나오고 있었다.

이 거리에 이제 살아있는 사람은 도한서 한 명뿐이었다.

그 결과에 한서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물러 터졌어.’

발을 묶는 것 정도로 해결될 거라 생각하다니.

강준성은 다 좋은데 끝맺음이 부족하다.

누군가를 묶어두는 데에 가장 좋은 방법은, 그의 팔다리를 잘라내는 것이다.

남기혁을 건물 안에 묶어두고 싶었다면 그의 수족에 해당하는 부하들을 전부 잘라 죽여버리면 된다. 그거야말로 완벽한 해답이다.

‘널 죽이려는 놈들이잖아. 그럼 죽어야지.’

자신이 한 일에 자연스레 부여되는 정당성을 곱씹으며 서늘하게 웃었다.

강준성이 남기혁에게 붙잡혀버린 채로 그에게 끌려나가면 결국 ‘정신적인 죽음’이 예정되어 있다.

꿈속에서 이미 강준성을 놓친 전적이 있으니, 남기혁이라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가혹한 세뇌와 감시를 끝없이 이어갈 게 뻔했다. 자신이 그놈이라도 강준성을 한 번 놓치면 똑같은 짓을 해버릴 것 같으니까.

당연히 남기혁의 부하들은 강준성을 ‘사육’하는 데에 일조할 공범들이라고 볼 수 있었다.

그렇다고 강준성이 남기혁을 죽이는 데에 성공하기만 하면 해결되는 것도 아니었다.

중심축을 잃은 부하들은 강준성에게 강한 원한을 갖게 될 것이다. 특히나 남기혁의 옆에는 맹목적인 최측근이 있다고 하니, 보스를 잃은 분노를 이기지 못한 그가 부하들을 모아 악귀처럼 달려들 터였다.

결국은 남기혁의 부하들이 살아있다면 언젠가 강준성을 위협하게 될 텐데, 그걸 가만히 놔둘 도한서가 아니었다.

죽은 자밖에 남지 않은 무리에게서 시선을 돌려, 으슥한 5층 건물을 올려다보았다.

“데리러 왔어, 준성아.”

건물에 들어가던 남기혁이 읊던 것과 똑같은 말을 내뱉은 도한서가 입구의 유리문을 밀었다. 어서 오라는 듯이 부드럽게 밀려난 유리문 사이로 좀비들 특유의 탁한 피 냄새가 풍겨 왔다.

* * *

카가각-!

칼날과 칼날이 부딪치며 표면을 긁는 소리가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뭐야, 우리 준성이, 왜 이렇게 강해? 형 몰래 무슨 훈련이라도 했어? 응?”

눈을 반짝이던 남기혁이 단검을 높이 쳐들었다. 준성은 벌써부터 삐걱거리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마체테의 검면을 방패처럼 써서 그걸 막아냈다. 하지만 단검에 쏠린 힘이 워낙 강해서 막자마자 두 걸음이나 뒤로 밀리듯 물러나야만 했다.

준성은 마체테를 잡은 손이 경련하는 걸 느끼며 손아귀에 최대한 힘을 주었다. 이걸 놓쳐버리면 단숨에 달려든 남기혁에 의해 팔부터 잘려나갈 게 분명했다.

‘예전 같았으면 진작 놓쳤겠지.’

남기혁의 말처럼 준성이 현실에서 딱히 훈련을 한 건 아니었다. 그저 남기혁과 만나지 않게 된 후로도 마체테를 꾸준히 써왔기에, 나름의 버티는 요령을 터득한 것뿐.

거리를 벌리자마자 남기혁의 단검이 득달같이 달려들었다. 마체테의 검면을 활용하여 어렵사리 칼날을 막아내던 준성이 슬쩍 어느 지점을 바라보았다.

‘조금만 더.’

남기혁이 자신의 목숨을 단번에 노릴 일은 없었다. 기껏해야 팔을 깔끔하게 잘라내려는 노력만 할 뿐.

그렇기에 방어가 좀 더 손쉬운 점이 있긴 했지만 이제 버티는 것도 한계였다.

그걸 알아챈 남기혁의 움직임이 생각보다 더 단순해졌다.

덕분에 ‘함정’을 설치한 자리까지 자연스레 끌고 오는 데에 성공할 수 있었다.

“준성아, 더 물러나면 위험……!”

몇 걸음만 더 물러나면 바로 난간이었기에, 준성을 내심 걱정하며 외치던 남기혁은 순간 두 눈을 부릅떴다.

발목에 익숙한 뭔가가 틱, 닿는 게 느껴졌다.

3층에 준비된 함정에 걸렸던 바로 그때와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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