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1화 -
콰득.
피부를 뚫고 들어온 치아가 근육을 씹었다. 아득한 고통과 함께 끔찍한 소리가 머릿속까지 울려 퍼졌다.
이때 강준성은 참 웃기게도, 지금이 ‘현실’이라는 걸 새삼 깨닫고 말았다.
꿈속에서 좀비에게 수없이 물려왔지만, 지금처럼 아프고 끔찍했던 적이 없다. 현실이기에 느낄 수 있는 고통과 섬뜩함이 준성의 뇌를 빠르게 잠식해 나갔다.
그런 준성의 바로 뒤에서 뻗어 나온 손아귀가 이빨을 세우고 있던 남기혁의 머리를 단숨에 떼어냈다. 맨살이었으면 이때 치아에 걸린 피부가 그대로 길게 뜯겨 나갔겠지만, 목에 감고 있던 붕대 덕분에 그런 끔찍한 장면 대신 입 안에 고여 있던 피만 주르륵 흘러내릴 뿐이다.
으아아-!
바닥에 떨어진 남기혁의 머리가 자신과 준성의 피로 얼룩진 입을 쩍 벌리며 소리 없는 아우성을 부르짖었다.
붉은 피막이 덮여버린 그의 외눈은 죽어서 좀비가 된 그 순간까지도 오직 강준성에게 향해 있었다. 그의 모든 걸 씹어 삼켜버리고 싶다는 듯이.
그 붉은 외눈에, 피를 머금은 칼날이 정확히 내리꽂혔다. 남기혁의 잘려나간 오른손이 이때까지 쥐고 있던 군용 단검이자, 그가 평생을 제 몸의 일부처럼 품고 살았던 칼날이었다.
눈알을 꿰뚫고 들어간 칼날이 뇌를 건드리고, 명확한 소리가 되지 못한 고함을 질러대던 남기혁의 입에서 버퍼링 걸린 듯한 기이한 소리가 흘러나왔다.
한서는 남기혁의 머리가 굴러가지 않도록 머리채를 잡은 채로 몇 번이고 칼을 내리꽂았다. 그때마다 남기혁의 입이 억억, 하는 소리를 내며 반응했다. 독기를 품은 칼에 얼굴 뼈가 사정없이 으스러지고 두개골이 깨지는 바람에 이젠 사람의 머리였던 게 맞는지 의문이 들 정도다.
이미 시체나 다름없는 혈색으로 쓰러져 있던 우석진은 목을 물려버린 강준성과 분노에 물든 도한서, 그리고 뭉개져 가는 남기혁의 머리를 보며 희미하게 웃었다.
남기혁은 본인이 완벽한 좀비가 되기 직전, 우석진에게 가까스로 부탁의 말을 남겼다.
좀비가 된 자신의 머리를 잘라, 저 검은 옷의 면역자를 향해 던지라고.
이때 우석진은 선뜻 이해할 수가 없었다.
면역자라면 좀비를 아무리 던져봐야 해를 입힐 수가 없다. 건물에서 만났을 때 유추한 바로는 좀비 모두가 그를 일부러 피하고 있었으니, 머리를 잘라서 던져도 공격성을 드러내진 않을 것 같았다.
남기혁도 이를 알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명령을 내렸다.
“습관이라는 게… 엄청… 무서운 거거든….”
우석진은 ‘습관’이라는 단어에 의아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누군가의 습관을 알기 위해서는 그만큼 상대를 오래도록 가까이서 지켜봐야 하기에, ‘현실의 남기혁’밖에 모르는 우석진으로서는 선뜻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다만, 붉은 피막 덮인 눈으로 우석진을 올려다보는 남기혁의 얼굴은 ‘강준성의 습관’에 대한 나름의 확신을 보이고 있었다.
남기혁이 보기에, 꿈속에서든 현실에서든 강준성은 언제나 냉정하고 침착한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예외적으로 ‘내 사람’에 한해서는 그러한 올곧은 선이 쉽게 끊어지곤 했다. 그들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잠깐이나마 이성을 잃기도 하고, 대신 몸 바쳐 죽는 선택지를 고르기도 했다. 그러다 구하지 못하고 결국 그들이 죽어버리면, 주저 없이 꿈을 초기화했다.
어차피 꿈속이니 ‘내 사람’이라 여긴 자들이 죽든 말든 상관하지 않아도 될 법하건만, 그걸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처럼 무리하게 뛰어드는 경우가 있었다. 물론 그렇게 되기 전에 냉정하게 방책을 세우고 적절한 판단을 내리곤 했지만, 갑작스러운 불상사만큼은 그도 어쩔 수 없었다.
어쩌면 그렇게 ‘내 사람’을 지키기 위해 몸을 던졌던 것은 ‘꿈’이기 때문에 가능했던 일일 수도 있다.
자신은 죽더라도 어차피 다시 시작할 수 있으니까.
그 생각이 강준성에게 기묘한 습관을 만들어버렸다.
‘내 사람’을 위해서라면 죽을 게 분명하다 하더라도 몸을 내던져버리는, ‘현실’에서만큼은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짓을.
꿈속에서 파악한 바로는 이때껏 강준성의 ‘내 사람’에 해당한 자는 그의 동생인 강채이와 오랜 절친 장대욱, 그리고 바로 자신, 남기혁이었다.
한때나마 강준성의 ‘내 사람’이라는 카테고리 안에 들어있던 자로서, 남기혁은 분명히 확신할 수 있었다.
인정하기는 싫었지만, 저 검은 옷의 남자는 분명 강준성에게 있어 ‘내 사람’이다.
그렇다면 그걸 이용하기로 했다.
강준성을 직접 노려봐야 그를 감싸며 온 신경을 쏟고 있는 검은 옷의 남자에게 쳐내질 게 분명하다. 그만큼 강준성을 지키는 남자는 철옹성처럼 그를 온몸으로 감싼 채 붙어 있었다.
하지만 정작 그의 몸 자체는 방어책 하나 없이 휑하니 드러나 있다. 남자의 등 뒤로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하고 다 죽어가는 남자 둘과 꿈틀거리는 좀비 하나뿐이니, 그들을 굳이 신경 쓸 필요는 없을 만했다.
남기혁은 남자의 당연한 방심을 틈타, 강준성에게 마지막 집착의 흔적을 남기고자 했다.
“내 ‘현실’을… 내 손으로 부수게 해줘….”
바라마지 않던 ‘현실’이 자신을 보지 않고, 자신을 바라지 않고, 자신을 버리길 원한다면, 차라리 함께 망가져 버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그렇게 생각했다.
우석진은 남기혁의 비정상적인 바람이 이루어진 것을 보며, 그제야 완전히 숨을 거두었다.
그때까지도 도한서의 칼질은 멈추지 않았다.
남기혁의 머리를 잘게 다지기라도 할 것처럼 내리꽂히는 칼날에는 이미 찐득하게 변하기 시작한 핏물이 꾸덕꾸덕하게 묻어나고 있었다.
한 손으로 물어뜯긴 목을 감싸 쥔 채 한서의 행동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던 준성이 입술을 달싹였다.
“도한서….”
한서는 준성의 말이 들리지도 않는지, 여전히 단검을 내리꽂고 있었다.
“야….”
한서의 뒤에 선 준성이 그의 등에 손을 얹었다.
“나 아파….”
미약하게 떨리는 손과 힘없는 준성의 목소리가 편향적이던 한서의 감각을 단숨에 일깨웠다.
단검을 내던지고 준성을 향해 돌아서던 한서의 핏발 선 눈이 멈칫했다.
울고 있을 거라 생각했다. 세상이 다 무너진 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온통 떨고 있을 줄 알았다. 그 끝에 보이는 건 자신을 향한 원망이지 않을까, 그렇게 짐작했었다.
하지만 강준성은 여전했다. 창백하지만 침착한 얼굴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고, 마주한 눈동자에도 아무런 동요가 없다.
오직 준성의 손끝만이 인간적이다. 미처 감추지 못한 떨림이 지금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그래서 더 화가 났다.
“왜 그랬어?”
도한서의 얼굴이 그답지 않게 무너져내렸다.
“저 새끼 머리가 노리던 건 내가 아니었어.”
“알아. 하지만 내버려 뒀으면 방향도 못 바꾸는 좀비 머리가 그대로 네 목에 매달려서 날 공격하려고 했겠지. 뭐로 매달렸겠어? 이빨밖에 더 있어? 안 매달려도 그 이빨에 닿아서 생채기라도 생기면?”
“씨발, 이빨이든 뭐든 내버려 두면 되잖아! 어차피 난……!”
“넌 면역자가 아니잖아!”
준성이 버럭 소리쳤다. 출혈 때문인지, 소리 한 번 쳤다고 눈앞이 단숨에 어그러지려 한다.
한 손으로 식은땀이 밴 이마를 짚은 준성이 숨을 고르며 말했다.
“내가 아무리 연구고 뭐고 아무것도 모른다고 해도, 머리가 없진 않아. 네가 완벽한 면역자였으면 채혈 중심의 ‘연구재료’로만 쓰진 않았겠지.”
준성이 연구의 모든 걸 알고 있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한서의 과거를 들었고 구멍 난 연구자료를 꿈속에서 한 번, 현실에서 또 한 번 두 눈으로 확인했다. 더불어 도한서의 과거가 녹아있는 원본 연구자료를 폐기한 것도 자신이었다.
대충 훑어본 게 전부였다곤 해도, 그 안에 ‘면역자’에 관한 중요한 언급은 단 하나도 없었다. 바이러스의 시초이자, 백신이 될 특이 혈액만이 중점적으로 기재되어 있었을 뿐.
“네 양아버지 새끼가 면역자를 가만히 두겠어? 당연히 직접 바이러스까지 넣어서 반응을…….”
말을 잇던 준성은 숨이 답답해지는 것을 느끼며 휘청거렸다. 한서가 그를 껴안듯 받아내며 목의 상처를 손으로 꾹 눌렀다.
“윽….”
신음을 삼킨 준성이 멍하니 숨을 헐떡이다가 한서의 어깨에 얼굴을 묻었다.
도한서에게 해줄 말이 많았다.
분명 많았는데.
이상하게 입 밖으로 나오질 않았다.
‘나, 죽는 건가.’
감염된 건 확실했다. 얄팍한 붕대 몇 겹 정도로는 바이러스를 막을 수 없다.
머릿속이 점점 둔해지는 느낌이다. 더는 아무런 생각도 하기 싫은 것처럼 멍해진다. 과다출혈의 영향이겠지만, 준성은 자신이 의도하기라도 한 것처럼 머릿속의 생각을 순순히 지워냈다.
지금 이 순간에 제 머릿속을 가득 채우게 될 생각이란, 전부 부정적인 것들뿐이라는 걸 알기에.
“도한서…, 나 죽냐…?”
눈을 감는 준성의 입술이 실소를 흘렸다.
마치 홀로 꿈속에라도 서 있는 것처럼 가볍게 물었다.
돌아온 대답은 그 무엇보다 묵직하고 어두웠다.
“안 죽어.”
점점 떨궈지던 준성의 고개가 한서의 손에 의해 위를 향했다. 어느새 핏물을 머금은 도한서의 입술이 단숨에 가까워졌다.
“내가 죽게 두지 않아.”
함께 했던 언젠가처럼 혀를 깨문 한서의 키스는 그 어느 때보다 뜨겁고, 절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