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레드 닷 (196)화 (196/240)

- 196화 -

이 기분을 뭐라 표현해야 할지 모르겠다.

한없이 나약해진 강준성.

그 끝에서 처절하게 불러대는 제 이름.

‘아아….’

겨우 삼켜낸 탄식이 목구멍 안에서 간질간질 맴돌았다.

‘씨발, 존나 기분 좋아….’

욕설로도 채 표현하기 힘든 괴기한 희열이 한서의 몇 없는 감정을 끈적하게 주물러댔다.

도한서는 본디, 무력하게 목숨을 구걸하는 자들을 좋아하지 않았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아야만 살아갈 수 있는 거라면 차라리 죽어버리는 게 낫다고 생각하던 사람이 그이다.

누구에게도 도와달라는 말 한마디 할 수 없었고 선택이란 이름의 자유조차 부여받지 못했던 도한서에게 있어, 위태로운 목숨줄을 부여잡은 채 죽기 싫다고 울부짖는 것만큼 꼴 보기 싫은 것도 없었다.

그런데 참 우습게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그 모든 경멸의 순간이 새로운 깨달음으로 덧칠되어가고 있었다.

죽음을 앞둔 무력함 속에서 살려달라고, 죽기 싫다고 매달리는 외침은 인간의 생존 본능 그 자체였다.

그것은 혐오해야 마땅한 것이 아니었다.

강준성이 보여주는 이러한 사랑스럽고 예쁜 본능을, 대체 어떻게 경멸할 수 있단 말인가.

도한서는 강준성이 이해하지 못할 희열을 목구멍 너머로 꾸역꾸역 밀어 넣으며 입가의 미소를 지워냈다. 절망에 절어있는 준성의 얼굴에 입을 맞추며 멈추지 않는 아까운 눈물을 거듭 핥아주었다.

“울지 마. 너 안 죽어.”

강준성은 죽지 않는다.

“말했잖아, 내가 죽게 두지 않겠다고.”

그의 생존 본능이 이처럼 자신만을 원하고 있는데, 죽게 둘까 보냐.

한서는 자신의 비틀린 감정을 숨긴 채, 준성에게 키스했다. 입술을 대고 질척한 살덩이를 맞대자마자 닿는 곳 어디든 씹어먹어 버리고 싶은 욕구가 치솟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조심해야 했다. 성미대로 씹어먹었다가는 강준성의 몸이 버티지 못할 게 뻔했다.

무엇보다도, 제게마저 겁먹게 된다면 강준성의 정신이 기댈 곳 하나 없이 허무하게 망가져 버릴 것 같았다. 지금 그가 붙잡을 수 있는 건 자신뿐이었기에.

방으로 향하는 중에도 준성은 입술을 떼려 하지 않았다. 가만히 있어도 그가 먼저 매달리고 급한 듯이 입술을 비벼댔다.

‘미치겠네.’

천천히 걸음을 내딛는 한서의 미간이 연달아 꿈틀거렸다. 충동을 이기지 못하고 목까지 차올라버린 성욕을 내리누르는 것만으로도 한계인데, 유례없는 애달픈 키스와 신음이 자꾸만 그의 이성을 뚝뚝 부러뜨리려 했다.

‘좆이 터져버릴 것 같아.’

걷는 것조차 힘들 만큼 제멋대로 발기해버린 성기를 애써 무시한 채, 매트에 준성을 조심스레 내려놓았다. 키스에 빠져 정신없던 준성이 입술을 떼자마자 이름을 불러댔다.

“도한서…, 도한서….”

한서는 어떠한 표정도 짓지 못했다. 원하는 대로 얼굴을 풀었다가는 형언할 단어가 없는 기이하고 무서운 표정을 짓게 될 것 같아, 일부러 무표정을 고수했다.

“자꾸 울 거야? 이러다 탈수 와.”

“도한서….”

“네 개새끼 어디 안 가니까 그만 울라고.”

강준성이 우는 건 언제나 보기 좋다. 언제나 강한 모습만 보여주기 때문인지 제 앞에서 보이는 이런 연약한 모습이 마냥 사랑스럽고 매혹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몸을 망치면서까지 울게 두고 싶진 않았다. 바이러스에 감염된 것뿐이라면 모를까, 어깨에 깊은 부상까지 있다. 자신이 해둔 치료는 응급처치에 불과할 뿐, 제대로 된 의사를 찾아서 당장이라도 치료를 받아야 할 상황이었다. 그러니 체력을 떨어뜨릴 만한 일은 되도록 자제시켜야 했다.

‘너무 많이 울었어. 물이라도 마시게 해야 해.’

부상으로 인해 체력이 현저히 떨어진 상황에서 탈수는 명백한 독약이었다. 회복을 위해서라도 충분한 수분 섭취는 필수였기에, 물이라도 갖다 주기 위해 일어나려는 순간.

“안 돼…!”

강준성의 두 손이 한서의 팔을 덥석 붙잡았다. 고통스러울 어깨의 통증을 무시한 채, 누구보다 필사적으로.

“나한테서…….”

제 개새끼의 타액을 묻힌 붉은 입술이 덜덜 떨며 말을 잇는다.

“눈 떼지 마…. 제발…….”

한서는 극도의 공포와 불안을 담은 강준성의 눈동자로부터 도저히 벗어날 수 없었다.

아니, 벗어나고 싶지 않았다.

오금이 저리고 아랫배가 당겼다. 바지 속에서 꿈틀거리던 성기가 금방이라도 사정할 것처럼 단단해졌고, 손끝과 발끝이 딱딱하게 굳어버렸다.

한서는 전율하는 손끝을 뻗어, 준성의 볼을 쓰다듬었다. 닿은 부분에서 찌릿찌릿한 전기가 흐르는 것만 같다.

“내가 계속 옆에 있었으면 좋겠어?”

“응….”

준성은 손끝만으로는 부족하다는 듯이 손바닥에까지 볼을 비비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른 놈들은 어때? 나 말고 다른 놈들이어도 상관없어?”

“아니, 아니야….”

이번엔 고개를 저으며 손목까지 꼭 붙잡으며 매달렸다. 도망가지 못하게 하려는 것처럼.

눈물 고인 준성의 눈이 정확히 도한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너만 옆에…, 흑, 옆에 있어 주면 돼….”

준성의 얼굴이 다시금 일그러지며 눈물을 쏟아내었다.

“나 좀 살려줘….”

“…씹.”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얼굴을 확 일그러뜨린 도한서가 준성을 덮어주려 했던 이불을 확 걷어내며 그의 몸을 덮치듯 올라탔다.

“살릴게. 네가 스스로 죽겠다고 해도 내가 살릴 거야.”

급하게 상의를 벗어 던진 한서가 준성의 얼굴을 손으로 감싸 턱을 들었다. 약간 벌어진 입술 사이로, 이때껏 참았던 욕망 담긴 숨결과 함께 잔뜩 달궈진 혀를 밀어 넣었다.

“읍…!”

샤워실에서 나눴던 키스와는 비교도 할 수 없는 거칠고 폭력적인 키스가 이어졌다. 준성으로서는 한서의 혀가 날뛰는 걸 받아주는 것만으로도 급급해, 벌써부터 숨이 막혀가는 느낌이 들었다.

“흐읏, 한…서…, 읍! 도한……! 하아….”

간간이 신음 사이로 흘러나오는 목소리는 언제나 도한서를 찾았다. 그의 이름을 읊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것처럼 끝도 없이 불렀다.

그때마다 한서의 얼마 남지 않은 이성의 실타래가 한 줄 한 줄, 매섭게 끊어져 갔다.

준성은 키스에 열중해있느라 눈치채지 못했지만, 도한서의 입꼬리는 멋대로 치켜 올라간 채로 도통 내려오지 않고 있었다.

강준성의 입에서는 이때껏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이름이 나오지 않았다.

꿈속에서조차 죽게 두지 않을 만큼 소중한 동생도, 자신의 든든한 조력자이자 누구보다 믿을 만한 사람이라던 절친도, 그 어떤 동료도 준성의 머릿속을 비집고 들어가지는 못했다.

오직 한 사람.

이처럼 나약한 본능을 낱낱이 보여주며 애걸복걸할 수 있는 건, 눈앞에 있는 자신이 ‘도한서’이기 때문이다.

다른 누구도 아닌 도한서라서.

‘됐어.’

도한서가 ‘강준성’이라는 별개의 카테고리를 만들었듯이, 강준성 역시 ‘도한서’라는 카테고리를 만들어버린 거다.

딱 한 사람만을 넣을 수 있는 유일한 카테고리를.

그 사실이 한서의 정신을 아찔하게 만들었다. 이 미친 희열과 충족감을 대체 뭐로 표현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씨발, 강준성…. 강준성…!”

삽시간에 준성만큼이나 새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급하게 키스했다. 입술을 맞대고 그의 입 안을 휘젓지 않고서는 도저히 버틸 수가 없다.

“흑, 도한…서…! 읍!”

도한서의 입에서는 강준성의 이름이, 강준성의 입에서는 도한서의 이름만이 흘러나왔다.

두 사람은 그저 서로를 부르고, 서로를 탐하며, 서로에게 매달렸다. 자신에겐 오직 너뿐이라는 듯이.

입 속이 얼얼해질 정도로 마구 유린하던 한서가 준성의 입술을 부을 정도로 빨아대며 손을 내렸다. 그의 손이 어느새 약간의 메마른 피가 묻어 있던 준성의 가슴을 매만졌다.

“하아…, 하아….”

풀린 눈으로 거친 숨을 몰아쉬던 준성은 자신의 입술에서 떨어진 한서가 붕대 감긴 목과 그 아래의 쇄골에 입 맞추는 걸 느끼며 바르르 떨었다. 분명 열이 올라있어서 몸 전체가 뜨거울 텐데도 한서의 입술이 낙인처럼 제 피부 위를 뜨겁게 지지는 것만 같았다.

사실 진통제의 효과가 완전히 사라진 지금, 어깨와 목에서 느껴지는 통증은 식은땀이 절로 흐를 정도였다. 그럼에도 준성이 끙끙대지 않고 버틸 수 있는 건, 온 신경이 오직 도한서에게 쏠려 있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맞닿아 있는 부분마다 피부가 더욱 빨갛게 달아오르며 간질간질해지는 느낌이다.

한서의 품 안에서 뜨거운 몸을 떨며 그의 급박한 입맞춤을 느끼고 있던 준성은 쇄골 아래의 가슴팍을 향하는 입술에 화들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아, 안 돼! 잠깐만…!”

상처 부위 근처는 괜찮지만, 그 이외의 부분은 아직 제대로 씻지도 못한 상태였다. 특히나 가슴팍에는 좀비가 된 남기혁이 목을 물 때 흘렀던 피 일부가 그대로 굳어 있었다. 혹시라도 그걸 핥기라도 했다가는 도한서 역시 감염되어버리고 만다.

준성이 피가 굳어 있는 가슴팍을 보며 긴장한 걸 보고 혼자 급한 표정을 짓고 있던 한서가 돌연 눈가를 누그러뜨렸다.

“다친 상태고 열도 있어서 섣불리 씻겨줄 순 없고…….”

매트에서 내려선 한서는 수술용 트레이의 밑단에 놓여 있던 알루미늄 보관함으로 손을 뻗었다. 뚜껑을 여니, 차갑게 보관되어 있던 젖은 수건 몇 개가 들어있다. 물로만 적신 건 아니었는지, 소독약 냄새가 확 풍겨 왔다.

한서는 준성의 상처 부위를 닦아낼 때 썼던 것과 같은 차가운 젖은 수건을 들고서 이번엔 웬 알약 하나를 집어 들었다. 원래대로라면 직접 진통제 주사를 놔줄 생각이었지만, 굳이 알약 형태를 골랐다.

“넌 내가 하는 대로 가만히 받기만 해.”

뜨거운 숨을 뱉은 한서가 자신의 긴 혀를 쭉 빼서 그 위에 알약을 얹고는 묘하게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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