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규하가 손등을 칼로 찔렀을 때처럼 무심하게 칼날을 도로 뽑아냈다. 피가 후드득 흐르는 손이 인유신의 얼굴 앞으로 올라왔다.
“힐 한번 해 봐요.”
피비린내와는 대조적으로 무심한 말투에 겨우 정신이 들었다. 힐이 가능하다지만 겨우 햄스터의 감기나 골절을 고치는 정도다. 피가 이렇게 많이 나는데 사람에게는 쓸모가 없는 능력이면 어쩌지. 어떡하지.
상처 부위를 감싸는 손이 바들바들 떨렸다. 둥글게 번지는 하얀 빛이 손가락 사이로 새어 나왔다.
“오.”
현규하가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흉터도 없이 깔끔하게 나았네요. 이 정도 치유력이라면 어디 가서 굶어 죽지는 않을 텐데 테이밍한 개체 한정이라는 거죠? 아깝군요.”
“…….”
“유신 씨? 아까 먹은 거 때문에 체했어요?”
갸웃하며 바라보는 현규하의 얼굴은 태연하기 짝이 없다. 충격을 받아서 얼굴이 새하얗게 된 이유도 짐작하지 못하는 표정이다.
뒤늦게 다리에 힘이 풀렸다. 후들거리며 주저앉을 뻔한 인유신의 몸을 현규하가 사이코키네시스로 부드럽게 받치며 바이크의 안장에 앉게 했다.
“약국에서 소화제라도 사 올까요.”
“……왜 자기 몸을 그렇게 함부로 다루세요?”
“네?”
“갑자기 칼로 자해를 하셔서 진짜 놀랐잖아요…….”
“아, 미안합니다. 유신 씨는 일반인이니까 피 보는 게 익숙하지 않겠네요.”
“그거는 상관없어요.”
“……?”
정말 이해하지 못하는 현규하의 얼굴이 갑자기 낯설었다. 인유신은 떨리는 손으로 깍지를 끼며 방금 떠오른 생각을 부정했다. 낯설다는 걸 굳이 따질 필요가 있나. 그와 알게 된 지 한 달도 되지 않았는데.
낯설어진 게 아니라, 몰랐던 것이다. 현규하가 어떤 사람인지.
“제 능력이 확실하지도 않은데……. 치료를 못 했으면 어쩌려고 갑자기 상처를 내신 거예요?”
“그럼 병원에 가면 되죠.”
“그렇게 피 흘리시면서요?”
“나한테 이건 상처 축에도 안 껴요. 생채기지. 마수한테 팔 한 짝이 아작 난 적도 있는데요.”
“하지만 이번엔 자해하신 거잖아요……. 그러지 마세요.”
그제야 현규하는.
상처가 치유된 자신의 손을 바라보고, 마치 울 것처럼 힘겹게 일그러진 인유신의 얼굴도 보았다가, 생경하다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설마 당신, 날 걱정하는 거예요?”
어이없어하는 것 같기도 했으며, 비웃는 것 같기도 한, 기묘한 감정이 섞인 목소리였다. 인유신은 고개를 떨구었다.
“알고 있어요. 제가 규하 씨를 걱정하는 게 주제넘은 행동이라는 건요.”
“그런 게 아니라 정말 놀라워서 그래요. 내 상처를 걱정한 사람은 태어나서 당신이 두 번째거든.”
“……규하 씨는 어렸을 때부터 각성자로 헌터 활동을 했었는데도요?”
믿기 힘들다는 반응에 현규하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야 뭐, 말로는 다들 걱정하죠. 하지만 그 걱정은 ‘현규하가 여기서 무너지면 내가 다쳐, 내가 싸워야 해, 내가 죽을지도 몰라, 내 재산이 상할 거야.’ 대충 이런 의미니까요.”
“그럴…….”
그럴 리가 없다는 반문은 고개를 들고, 현규하의 시선을 마주한 순간 흩어졌다. 무심히 내려다보는 투명한 앰버색 눈동자는 비교적 평탄한 삶을 살아온 자신보다 훨씬 거친 굴곡을 거듭하고 마모된 담담함을 담고 있었다.
겨우 9살부터 게이트에 내던져진 삶의 가혹함을 모르는 인유신은 현규하의 단정에 입을 댈 자격이 없었다.
인유신은 현규하를 모르고 그의 삶도 모른다. 그리고 그것을 이제야 실감한 자신이 한심했다. 테이밍이라는 굴레에 강제되어 그가 자신을 배려해 주고 있어서, 주제도 모르고 그를 친근하게 여기고 있었던 모양이다.
“……처음으로 걱정했다는 그분은요?”
“글쎄요. 벌써 20년이 다 되어 가는 얘기니까 걔는 걱정한 걸 벌써 까먹지 않았을까요?”
그 말을 끝으로 현규하는 바이크에서 인유신을 내리게 하더니 머리를 토닥거렸다.
“아직 확인하지 못한 주인님의 다른 능력은 다음 기회에 계속하기로 합시다. 쓸데없는 생각으로 머리 어지럽히지 말고, 올라가서 쉬도록 하세요. 한숨 자고 나면 개운해질 겁니다.”
늘 그랬던 것처럼.
바이크를 탄 현규하는 옥탑방에 불이 켜지는 걸 보고 난 뒤에야 떠났다.
“6세야.”
어두컴컴한 방으로 돌아오자 쳇바퀴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더 빨라졌다. 그의 귀가에 기분이 좋아진 모양이었다.
인유신은 말없이 케이지 앞에 쪼그리고 앉았다.
귀가하면 늘 보았던 똑같은 풍경인데 오늘따라 기운 없이 다리가 축축 처지고, 허전하다. 저녁도 맛있게 먹었고 감기 기운 같은 게 있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럴까.
인유신은 이유를 알고 있다.
저녁을 맛있게 먹었기 때문이다.
‘승기 말고 다른 사람이랑 밥 먹은 거 진짜 오랜만이었어.’
연고지 없는 서울에서 혼자 살며 일하는 인유신은 저녁을 먹자며 부를 변변한 지인 하나 없었다. 유일하게 서울에서 같이 지내는 박승기는 대학원생이라 무척 바쁘다.
가끔 박승기와 만나 저녁을 먹거나 드물게 회식에 참석할 때가 아니면, 늘 혼자 저녁을 먹었다.
변함없던 일상이었다. 그 일상에 불만을 가진 적도 없고 아쉬웠던 적도 없다. ……그렇다고 생각했다.
현규하는 단 한 번의 식사만으로 그에게 외로움을 깨닫게 해 주었다.
사무치게 느끼고 있으면서도 스스로 외면하고 눈을 돌리던 마음의 단단한 껍질을 깨트려, 외로움을 드러내게 했다. 보육원 출신이라는 자격지심 때문에 늘 한 발 뒤에 서 있는 그의 안으로 성큼 들어와 외로움을 보게 했다.
식사 중의 배려가, 잔잔히 쫓아오는 눈빛이, 푸근한 대화가, 모두 그의 고독을 일깨웠다.
‘나와는 다른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잖아.’
현규하를 전혀 모르고 있다는 걸, 오늘 절실히 깨닫지 않았나. 테이밍이라는 수단을 써서 억지로 기워 붙인 관계에 불과하다는 걸 천천히 되새긴다.
“6세야.”
케이지의 문을 열고 손바닥을 내밀자 쳇바퀴에서 6세가 내려와 살짝 올라섰다. 포근포근한 생명체를 어루만지며 안도감을 느꼈다.
주인집 할아버지의 돋보기까지 빌려서 확인해 봤지만 6세의 몸에는 제 이름의 문신이 없었다. 현규하가 특별한 것일까. 특별하다면 이유가 뭘까. 그리고…….
어떻게 해야 테이밍을 해제할 수 있을까.
“너는 계속 내 옆에 있어 줄 거지?”
“찍.”
그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처럼 6세가 코끝을 쫑긋거렸다. 인유신은 엷게 미소하며 햄스터에게 쪽 뽀뽀했다.
빨리 현규하와의 관계를 멈추고 싶었다. 외로움에 더 가라앉기 전에. 혹시나 하는 헛된 기대를 품기 전에.
두 번의 파양을 겪고 한 번의 죽음을 겪은 인유신은.
사람에게 기대를 품는 게 가장 무섭다.
* * *
도어 록에 마나 패턴을 주입하자 세팅된 대로 방 안에 불이 훤히 켜졌다. 하지만 사람이 사는 공간이 아니라 모델 하우스 같은 오피스텔은 조용하고 을씨년스럽다.
현규하는 라이딩 재킷을 벗어 대충 소파에 던진 뒤 허공에 누웠다. 보지도 않고 가볍게 손짓하자 주방에서 냉장고의 문이 열리며 맥주 캔이 날아와 손에 잡혔다.
‘슬슬 냉장고를 채울 때가 된 거 같긴 한데.’
어차피 술과 생수밖에 없는 냉장고다. 시원한 맥주를 꿀꺽꿀꺽 들이켜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러모로 인유신의 집과는 대비되는 공간이었다. 좁고 허름하지만 사람 사는 내음이 물씬 풍기던 인유신의 옥탑방에 비해 그의 오피스텔은 고급스러운 껍질만 씌웠을 뿐, 삭막하기 그지없었다.
애초에 집이란 공간은 안전하게 몸을 누여 잠을 잘 수만 있다면 족했다. 쓸모도 없는 고급 오피스텔이며 가구 등을 갖춘 건 그의 의지가 아니었다.
인유신과 인유신의 집을 떠올리자 떨어져 있다는 게 실감되었다. 심장이 불안하게 떨리기 시작했다. 어느덧 익숙해진 울림이다.
“‘무닌의 눈’.”
짧게 시동어를 읊자 눈앞에 좌표가 펼쳐지며 특정 지점이 깜빡거렸다. 일반 아티팩트를 사용하여 타기팅을 한 그의 ‘주인’이다. 주인의 위치를 알자 불안하게 수런거리던 가슴이 빠르게 진정된다.
방 안에 얌전히 있는 듯한 인유신의 위치 추적을 하면서 만족스럽게 맥주를 마시던 현규하는 벌떡 일어났다.
갑자기 인유신이 움직였다.
‘한밤중에 혼자 어딜 가는 거지?’
얼마나 위험한 세상인가. 허공에서 예기치 못하게 게이트가 열릴지도 모르고, 자동차에 치일지도 모르고, 퍽치기를 당할지도 모르고, 유기된 햄스터를 발견할지도 모른다. 현규하에게는 마지막이 가장 치명적이다.
당장 쫓아가려는데, 인유신은 도로 집으로 올라왔다. 잠깐 쓰레기를 버리러 나간 모양이다.
[오늘은 일찍 잘 거라서 이따가 규하 씨 전화 못 받을 거 같아요. 좋은 밤 되세요.]
도착한 문자를 잠시 내려다보다 화면을 터치했다.
[잘 자요. 내 꿈 꾸고.]
답신을 전송한 뒤에도 한참이나 좌표를 무표정하게 응시했다. 한곳에 멈춘 인유신의 위치는 이후 움직이지 않았다. 문자의 내용처럼 정말 잠이 든 모양이다. 그제야 완전한 안도가 찾아온다.
“씨발. 뭐 하는 짓인지.”
현규하는 그런 자신의 심리에 조소를 보내며 다시 허공으로 털썩 몸을 뉘었다. 강제적으로 부추겨지는 마음의 동요와 안정은 오직 인유신에게만 귀결된다.
오직 한 사람의 안위만을 맹목적으로 살피는 제 심리에 대한 낯섦 때문에 돌아 버릴 지경이다. 그에게 봉사하며 우울증에 가까운 지독한 권태에 젖어 있던 마음이 환기되지만 않았더라면, 그가 ¦°ø¾Îð든 뭐든 정말 살인 청부를 의뢰했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