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규하의 팬들은 큰 기대 없이, 하지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10시 30분을 기다렸다. 예정 시각을 조금 넘긴 10시 45분에 라이브 방송이 시작되었다.
“안녕하세요, 이혜연입니다.”
시간 때우려고 사무실에 죽치고 있다가 얼떨결에 라이브 방송의 스타트를 끊게 된 이혜연이 긴장감이 역력히 드러나는 말투로 인사했다.
“인터뷰는 가끔 했는데 라이브 방송은 처음이라서 제가 많이 어색하네요. 실수해도 너그럽게 양해해 주세요. 집에 가면 이상한 거 찍고 왔다고 우리 딸한테 또 혼나겠네.”
급조된 라이브 방송 촬영은 빈 회의실에서 진행되었다.
카메라 옆에 앉은 노 팀장이 잘하고 있다면서 파이팅 하라는 제스처를 보였다. 인유신도 휴대폰의 전광판 어플로 누님 최고라는 글씨를 써서 흔들었다. 현규하도 그의 부탁을 받아서 역시 사이코키네시스로 전광판 어플을 까닥까닥 흔들고 있었다.
그 주접에 바짝 긴장한 이혜연도 풋 웃고 말았다.
“오늘 라이브에 나오길 기다린 사람은 아마 따로 있으실 텐데, 웬 아줌마가 나와서 많이 실망하셨겠어요.”
- 아니예요ㅠㅠㅠㅠ언니 넘 보고 싶었어요ㅠㅠㅠㅠㅠ
- 언니 아내는 필요 없으세요ㅠㅠㅠㅠ
익숙하지 않은 이혜연은 시청자들의 반응을 바로 보지 못했다. 노 팀장의 설명을 듣고서야 시선을 움직였다.
“댓글은 이거 보면 돼요 아하, 여기로 질문도 하고 그러시는구나.”
- 권 장인님 싸움 잘하세요
“성, 아니 남편요 광물 다루느라 힘은 센데 싸움은 잘 못합니다. 근데 이게 왜 궁금하신 거지”
얼굴과 능력으로 인성을 압도하는 현규하와는 대조적으로 이혜연은 능력도 인성도 좋다. 거기에 오랜 시간 공무 헌터로 일해 와 인망도 두터웠다.
그녀의 팬들만 모인 게 아닌데도 분위기는 좋았다. 질문들에 대답해 주면서 어느 정도 긴장이 풀린 이혜연은 오늘 방송의 목표인 홍보를 시작했다.
“저번 주 주말에 헌터 라이선스 합격하신 분들의 던전 연수가 있었거든요. 기사 읽으신 분들도 있죠”
“자세한 내용 없이 단신 기사로만 나갔어요.”
“아, 그랬어요”
대본을 급조한 탓에 언질이 제대로 되지 않았다. 이능부는 홍보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 던전 연수에 현규하가 참여했다는 걸 일단 비밀로 걸어 두고 있었다. 이제 터트려서 주목도를 모을 때였다.
“팀장님이 단신으로만 나갔다고 얘기하시네요. 지금까지 던전 연수 장면은 다큐멘터리의 일부 장면으로만 공개되었는데, 전체 영상을 브이로그로 편집한 건 이번이 최초라고 해요. 연수가 아니라 소풍이라는 얘기도 있지만, 그만큼 막 라이선스를 획득하신 각성자분들이 위험에 빠지지 않도록 저희 공무 헌터들이 애쓰고 있습니다.”
그러며 이혜연은 머쓱하게 웃었다.
“이렇게 잘난 척하면서 말하고 있긴 한데 사실 지난 연수 때는 제가 없었어요. 우리 최진혁 헌터가 리더였는데 오늘이 마침 비번이어서요. 다른 헌터들은 방송 못 하겠다고 도망치는 바람에 어쩌다가 제가 총대를 메게 됐네요.”
- 헐브이로그요
- 앗... 아.... 아앗.... 그 말은.....
눈치 빠른 몇몇 사람들이 댓글을 남겼다. 댓글이 올라가는 속도가 점차 빨라졌다.
“S급 헌터가 무려 두 분이나 인솔에 참여했던 유례없는 연수였는데요, 그중 한 분은 나르샤의 공태성 길드장님이시고.”
이혜연은 목이 말라서 잠깐 말을 끊고 물을 한 모금 마셨을 뿐인데, 덕분에 극적인 효과가 연출되었다.
- 언니저숨넘어가요ㅠㅠㅠ빨리빨리ㅠㅠㅠㅠㅠㅠ
- 혹시 다른 S급 헌터의 이니셜이 H로 시작해서 거꾸로 해도 똑같은 그분.....
- 아 제바류ㅠㅠㅠㅠㅠ
“옆에서 촬영 구경하고 있으니까 바로 소개해 드릴게요. 우리 이능부의 현규하 헌터였습니다.”
소개하는 제스처를 한 이혜연은 자리에서 일어났고, 손 떨림을 없애 주는 스킬의 소유자 오하나의 손에서 카메라가 매끄럽게 옆으로 움직였다.
책상 앞을 천천히 걸어온 현규하는 각본대로 다리를 꼬고 오만한 시선을 내리뜨며 앉았다.
“안녕하세요, 현규하입니다.”
“나 목소리 엄청 떨리지 않았냐”
발갛게 달아오른 얼굴에 파닥파닥 손부채를 부치면서 이혜연이 속닥거렸다. 인유신은 쌍따봉을 올렸다.
“누님, 최고였어요. 헌터 은퇴하시면 예능이나 MC 하셔도 되겠던데요”
“으하학. 말만이라도 고맙다, 야. 암튼 나중에 규하 영상도 보여 줘. 먼저 가 보겠습니다. 방송 파이팅이에요.”
“정말 감사합니다, 헌터님. 나중에 다시 인사드릴게요.”
낮은 인사 소리가 회의실 구석을 소곤소곤 오갔다. 갑작스러운 라이브 방송 때문에 약속 시각까지 미룬 이혜연은 서둘러 회의실을 나갔다.
그 와중에 현규하는 다리 꼬고 앉은 지 1분도 안 되어서 자세를 바로 했다.
“골반 비틀어지는데 누가 이딴 자세를 대본에 넣은 거야 자기 골반 아니라고 아주 막 다루는군.”
정장에는 무조건 다리를 꼬고 앉아야 한다고 우겼던 오하나는 딴청을 피웠으며, 그 모습이 치명적이라고 생각했던 인유신도 뜨끔했다.
어쨌거나 그의 모습이 카메라에 포착된 순간부터 댓글창은 폭발했고 시청자도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댓글이 올라가는 속도를 따라갈 수도 없을 지경이었지만 현규하의 동체 시력에는 별문제가 없는 모양이었다.
“본체가 재킷이 아니었냐는 말은 또 뭡니까. 그건 그냥 편하니까 입는 거고, 내 본체는 남친을 애정하는 나의 마음입니다.”
“오늘이 무슨 날이라서 정장 입은 게 아니라, 공작새 알죠 수컷들이 왜 꼬리를 치장하겠어요 맞아요. 나도 남친에게 구애하려고 입었어요. 어제 또 차일 뻔해서요. 여기 남자들도 있는지 모르겠지만 댁들도 안 차이려면 나처럼 잘 가꾸도록 하세요.”
“집에서 따로 기르는 네발 달린 생명체는 없는데 남친에게 길러지고 싶긴 하네요. 네발로 기어 다닐 수 있는데.”
“남친이랑 한 커플링 맞아요.”
“남친이랑 먹는 떡볶이를 젤 좋아하는데요.”
“남친이랑 부르는 노래요.”
“남친이랑 영화관 간 적이 없어서 뭐가 좋은지 잘 모르겠네요.”
“남친이랑 데이트하기 좋은 계절이요.”
“남친한테 차일 뻔했다고 말했는데 어제 뭐 했냐는 질문은 누가 한 거야”
다만 모든 질문에 대한 대답이 기승전남친이었기 때문에 인유신은 자꾸만 화끈화끈 열이 올랐다.
눈에 보이는 대로 대답하던 현규하가 잠시 말을 중단하고 물을 마셨다. 마침 손부채로도 안 되어서 세 장짜리 급조 대본으로 팔랑팔랑 부채질을 하던 인유신과 눈이 마주친 순간이었다.
시종일관 시큰둥하게 대답하던 현규하는 시선이 마주치자 반사적으로 눈가를 접으며 사르르 미소했다. 라이브 방송에 참여한 시청자들에게는 물론 인유신이 보이지 않았지만, 녹아들 듯 달콤한 눈빛이 향하는 곳이 어디인지는 뻔했다.
미친 듯이 폭주하는 댓글창에서 언뜻 염장질이라든가 멜로 눈깔 같은 단어를 봐 버린 인유신은 빨개진 얼굴을 들지 못했다.
회의실에 있던 디지털소통팀의 다른 직원들마저 괜히 민망함을 느끼는데, 현규하만 태연했다.
“팀장님. 근데 이거 언제까지 해야 해요”
“흠흠, 눈에 뜨이는 질문 딱 세 개만 더 답하시고 다음으로 넘어가죠.”
“그럼……. 1, 고독방에 생존 신고를 해 달라고요 나는 자아가 없는 남자라서 남친이 허락해 주면요.”
인유신은 빨개진 얼굴을 화급히 끄덕였으며, 현규하는 즉석에서 셀카를 찍어 고독방으로 전송했다.
“2, 관리하기 귀찮을 거니까 SNS는 만들 예정 없습니다. 3, 팬 카페에는 옛날에 심심해서 가입하긴 했었는데, 아이디 해킹당했을 때 스팸글 올렸다고 쫓겨났어요. 재가입도 안 되던데요. 질문 타임 끝.”
그를 영구 강퇴 시킨 팬 카페가 뒤집히거나 말거나 현규하는 대본대로 진행했다. 한 번 대충 훑는 것으로 대본을 다 외웠던 그는 무심히 입술을 움직였다.
“아까 혜연 누나가 말한 대로 공무 헌터들은 욕 처먹으면서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입니다.”
여기저기에서 치이는 이능부의 서러움을 풀어 주며, 한편으로는 공무 헌터에 지원 많이 해 달라고 홍보하는 내용의 대본을 주욱 읊은 현규하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근데 이딴 소리 해 봤자 별로 귀에 안 들어올 거라는 건 알아요. 다른 공대에서 알바까지 뛰어도 길드에서 받는 연봉만은 못 하니까. 교대 근무도 안 맞는 사람은 힘들 거고. 하지만 공무 헌터만의 장점이 확실히 있습니다. 우선 구내식당이 맛있어요. 특식도 꼬박꼬박 나오고요. 교대 근무자들을 위해 조식과 석식도 제공되니까 밥해 먹기 귀찮은 사람들은 영양 가득한 삼시 세끼를 구내식당에서 때워도 됩니다.”
대본에는 없던 내용이었다. 직원들은 의아해하는 표정이 되었지만 장점을 얘기하고 있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을 했다. 인유신만이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그의 입부터 막아야 하는 게 아닌가 심각하게 고민했다.
“이게 포인트인데요, 공무 헌터에 관심 가질 헌터들이라고 해 봤자 등급은 저기 밑에 있잖아요. 그 등급으로 일반 길드 가면 상위 헌터들 밑 닦아 주느라 바쁠 텐데 공무 헌터나 되세요. 돈 좀 더 벌겠다고 좆소 길드에서 치이는 것보다는 다들 고만고만한 이능부에서 정신적 평화를 얻는 게 나을 거 같네요. 더 번 돈이 정신 병원비로 다 나갈 수도 있으니까요. 참고로 이능부의 헌터들은 ‘내가 쟤보다는 낫지.’에서 ‘쟤’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나는 빼고.”
노 팀장은 소리 없는 비명을 질렀다. 인유신은 무겁게 침음했다. 역시 현규하의 입을 막아야 했다.
“홍보할 건 다 한 거 같고, 마지막으로 사적인 얘기 한마디 할게요. 우리 남친한테 악플 단 사람들 지금쯤이면 슬슬 고소장을 받고 있을 텐데 합의 없고 선처 없으니 쓸데없는 일에 힘 빼지 마세요. 그럼 이만. 음, 라이브 방송 시청 감사합니다.”
불시에 시작했던 라이브 방송은 잘 진행되다가 한순간에 털린 노 팀장의 멘탈과 함께 끝났다.
“수, 수고하셨습니다…….”
“팀장님. 아까 그 발언, 괜찮은 거예요”
“나도 몰라……. 어떻게든 되겠지…….”
이미 엎지른 물이다. 노 팀장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름대로 어그로를 끌었으니 홍보라고 우길 수도 있지 않을까…… 딴에는 홍보랍시고 한 말이기도 했다. 거기다가 현규하라는 만능 방패도 있다. 현규하의 입을 누가 닥치게 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그 과업을 수행할 수 있을 유일한 사람은 다른 발언에 더 놀라고 있었다.
“무슨 고소를 하셨는데요”
“유신 씨는 신경 쓸 거 없어요. 만약 그놈들이 나한테 안 통한다고 유신 씨에게 연락하면 씹고 바로 나한테 넘겨요. 내가 다 정리할 테니까.”
인유신은 멍하게 고개를 끄덕거렸다.
어차피 계약직이라서 책임질 것도 없는 오하나만 금방 회복해서 두 사람에게 다가왔다.
“헌터님, SNS에 올릴 사진 한 장만 부탁할게요.”
그녀는 현규하가 귀찮다면서 거절하기 전에 재빨리 말을 이었다.
“폴라로이드도 갖고 왔는데 이참에 라방 기념으로 유신 씨랑도 예쁘게 같이 찍어요!”
현규하는 두말없이 승낙했다.
그렇게 라이브 방송은 우여곡절 끝에 완전히 종료되었다. 홍보담당관에게 깨진 노 팀장은 절대 현규하와 라이브 방송을 해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얻었다. 하지만 그의 어그로는 정말 효과가 있어서, 다음 분기의 공채 때 공무 헌터 지원서는 평소보다 늘어났다.
한편 폴라로이드 사진을 찍어 본 적이 없던 인유신은 신기하게 바라보았다. 휴대폰으로 찍는 사진과는 확실히 느낌이 달랐다. 이게 바로 갬성인가.
현규하도 고개를 숙이며 사진을 응시했다.
“아침에 나올 때는 과연 꼬실 수 있는 와꾸인지 걱정했는데 이렇게 보니 나쁘지는 않네요.”
“규하 씨 얼굴에 안 넘어가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진지하게 대답하며 인유신은 사진을 휴대폰 케이스 안에 살살 밀어 넣었다. 집에 가면 잘 보이는 벽에 붙여 놓을 요량이었다. 그와 처음으로 찍은 사진이다.
“오늘은 모처럼 주인님 마음에 드는 짓을 했으니 퇴근할 때까지 이 모습을 완벽하게 보존할 수 있도록 마수와 싸울 일이 없었으면 좋겠군요.”
“그거 좀 플래그 세운 것처럼 들려요.”
“에이, 설마요.”
현규하는 그럴 리가 있겠냐는 듯 하하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