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31화 (131/214)

한낮의 열기는 꺾이고, 창밖은 어느새 선선한 바람이 부는 밤이 되었다. 발아래에서 빛나는 야경에 비치는 건 서로의 모습뿐이었다.

마침 좋은 타이밍인 것 같다. 민끝녀의 이야기를 들으며 결심한 게 있었다.

“규하 씨.”

그가 부르자 현규하는 바로 허공에서 멈추었다.

“오늘은 꼭 고백을 들어야겠어요.”

“서기 전 사이즈부터 고백해야겠죠 비발 시에는…….”

“으악! 그거 말고요!”

“네에 안 궁금해요 나는 주인님 것 너어무 궁금한데.”

뒷말은 필터링하고.

본의 아니게 느낀 것도 있으니, 정확한 사이즈가 얼마인지 궁금하지 않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인유신은 화제를 돌리려는 현규하의 나불거림에 휩쓸리지 않기 위해 눈을 부릅떴다.

단호한 기색이 드러나자 현규하도 결국 한숨을 폭 쉬었다.

“주인님에게 고백할 수 있을 미모가 아직 덜 준비됐는데요…….”

“규하 씨.”

“……사실은 그, 반지가요.”

“우리 커플링 반지요”

“네……. 유신 씨가 납치되었더라도 반지만 있으면 내가 당장 찾아갈 수 있었는데, 그러지 않았으니까……. 내가 유신 씨에게 필요 없어진 거 같아서……. 지금도 테이밍 깨고 싶어 하는 유신 씨에게 사귀자고 매달린 것도 나니까…….”

입으로 옮기는 것조차 면목이 없다는 것처럼 현규하의 목소리는 그답지 않게 우물쭈물 기어들어 갔다.

그리고 인유신은 이걸 어떻게 해명해야 할지 입술만 뻐끔거리다가 겨우 사실만을 털어놓았다.

“그거…… 8세가 반지를 못 쓰게 한 건데…….”

“……”

“규하 씨가 저 찾느라 다쳤을 게 뻔하니까 반지로 부르려고 했는데, 8세가 온몸을 던져서 못 쓰게 막았어요.”

“…….”

현규하가 고개를 푹 꺾었다. 그의 어깨가 이 그다지 밝지 않은 야경의 빛으로도 보일 만큼 부들부들 경련했다. 나직하게 들려오는 “이 씨발 산 채로 회를 쳐 버릴 쥐새끼가…….”라는 음산한 중얼거림은 듣지 않은 것으로 하기로 했다.

“……유신 씨, 나 말이에요. 그동안 당신 끌어안고 싶고 키스하고 싶고 달라붙어서 치대고 싶은 걸, 계속 참았거든요. 필요 없다는 단계를 지나서 내 존재가 당신한테 폐가 될까 봐요.”

“8세를 대신해서 제가 심심한 사과를…….”

“딱 5분만 그 쥐새끼랑 단둘이 같이 있게 해 주면 안 될까요”

“……8세의 생명이 붙어 있을까요”

“그건 장담 못 하겠는데요. 아니다. 생명만 붙이는 건 될 거 같습니다.”

인유신은 무시무시한 말을 땅이라도 파고들어 갈 것처럼 울적하게 웅얼거리는 현규하의 손을 잡았다. 이런 건 그에게 어울리는 모습이 아니었다. 현규하라면 모름지기 얄미울 만큼 뻔뻔하고, 남들에게는 재수 없을 만큼 당당해야 했다.

“규하 씨가 왜 필요 없는 사람이에요.”

“맞잖아요. 나는 가진 게 얼굴이랑 귀여움밖에 없단 말입니다.”

“저는 그것도 없잖아요.”

“유신 씨가 왜 없어요. 단단하고, 곧고, 바르고, 얼마나 멋진데.”

“……어, 그건 제가 아닌 거 같은데요.”

“아니요. 내 주인님은 세상에서 제일 멋있는 사람이에요.”

어쩐지 듣는 자신이 화끈거리는 말을 단호하게 내지른 현규하가 고개를 기울였다.

“우리, 그래도 아직 사귀는 거 맞죠”

“그쵸”

“그럼 그동안 키스 못 한 거 몰아서 해도 돼요 혀는 조금만 넣을게요.”

“저번에도 그래 놓고 막 넣었잖아요.”

“딱 10센티.”

“10센티 넣겠다는 건 다 넣겠다는 거랑 똑같은 말 아니에요!”

“나 혀 길어요. 알잖아.”

“모르겠습니다!”

“그럼 다시 알려 줘야겠네.”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입술에 말캉거리는 촉감이 닿았다.

일부러 꾹 다물고 있자 그가 아랫입술을 잘근잘근 깨물며 장난치듯 입술을 눌렀다. 코가 살짝살짝 맞붙고, 콧잔등으로 스치는 숨결이 간지럽다.

촉촉하게 젖은 혀끝이 닫힌 입술을 비집고 들어와 잇몸을 더듬었다. 그 간질간질한 감각을 버티지 못하고 살짝 입을 벌리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살덩이가 잇새를 가르며 들어왔다.

오랜만의 접촉인 탓일까. 입천장을 긁으며 안쪽에 숨어 있는 인유신의 혀를 휘감는 살덩이의 감촉이 몹시도 뜨거웠다.

“읏…….”

붙잡고 있던 손을 놓자마자, 언제 얌전히 붙잡혀 있었냐는 것처럼 현규하는 인유신의 목덜미를 안고 허리에 팔을 둘렀다. 탄탄한 가슴이 압박하듯이 그를 내리눌렀다. 이 무게감이 무척 좋았다.

비스듬히 기울인 입술이 갈급한 것처럼 인유신을 삼켰다. 잘근거리는가 싶더니 금세 습한 물소리가 들릴 만큼 깊이 머금으며 빨고, 안쪽을 헤집으며 거칠게 눌렀다.

호흡을 따라가기가 버거워 아래쪽에 눌린 혓바닥을 붉은 살덩이가 흡입하듯 잡아당기더니 얽어매었다. 그로 인해 올라오는 뻐근한 아픔도 좋았다.

인유신은 파고들어 오는 달콤한 열기를 깊숙이 들이마시며 살짝 눈을 떴다. 그리고 무척 아쉬워졌다.

‘규하 씨 얼굴이 하나도 안 보여.’

입술이 끈적한 단 숨을 뱉어 내며 잠시 떨어졌다. 인유신의 뺨과 목덜미에 뜨거운 숨결을 부비며 현규하가 낮게 그르렁거렸다. 달뜬 호흡이 닿을 때마다 살갗이 저릿저릿하여 인유신은 가까스로 신음을 삼켰다.

“우리 앞으로 키스와 그다음 단계는 낮에 하거나 불을 다 켜고 하기로 해요. 주인님 얼굴이 제대로 안 보여서 아까워 죽겠어.”

결국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나 보다. 인유신은 잔웃음을 그리며 현규하의 머리카락에 손가락을 얽었다.

“은근슬쩍 이상한 단어가 들어갔잖아요.”

“어떤 거요 ㅅ…….”

“큰 소리로 말하지 마요!”

“부끄러운 게 아닙니다. 유신 씨도 그 과정을 거쳐 태어났어요.”

“저는 알에서 태어난 거로 할 거예요!”

어깨를 퍽 치는 인유신의 손을 붙잡은 현규하가 손가락 위로 혀를 그었다. 한순간 전류가 흐르는 것처럼 허리까지 흠칫했다. 움찔거리며 꼼지락거리는 손을 현규하가 더 강하게 붙잡았다. 길고 단단한, 언제나 자신이 좋아하던 손.

손가락 사이로 혀를 미끄러트리며 현규하가 낮게 웃었다.

“내 혀 길이 알았어요”

“모르겠어요.”

“그럼 다시 해야겠다.”

기다렸다는 듯이 현규하가 재차 입술을 겹쳤다. 순순히 호응하여 입을 벌리며 그를 받아들였다. 깊숙한 곳까지 밀려들어 오는 뭉클한 열기의 길이는, 끝내 알 수가 없었다.

다만 알 수 있었던 건, 그의 불안이 완전히 가셨다는 것.

[이름  앙리 레이몬드 샤를 프랑소와즈 7세]

[현재 상태  살의. 애정.]

내가 그의 불안을 감싸 줄 수 있었던 걸까. 그렇게 생각하면 입 안을 감도는 열기보다 더욱 선연한 열망이 제 안을 고요히 달구는 것만 같아, 인유신은 그의 목을 더 힘주어 부둥켜안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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