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62화 (162/214)

주차한 장소까지 걸어가는 몇 분 동안에도 인유신은 놀랐다. 오봉산으로 가는 길은 푸르른 논밭이 가득했는데, 여기는 온통 황무지였다. 농사를 아예 지을 수 없는 건지, 그렇다면 식량은 어떻게 생산하는 건지 궁금증만 샘솟았다.

최진혁이 타고 온 차를 보게 되었을 때 놀라움은 더욱 커졌다. 차의 형태는 그가 알던 것과 비슷했다. 바퀴가 네 개 달렸고, 그 위에 탑승하는 장소와 짐을 싣는 공간이 있었다. 다만 엔진 같은 동력 기관 등이 있어야 할 보닛이 좁았다.

“자동차가 어떻게 움직이는 거예요”

“마법으로 움직입니다만”

“마법……!”

왠지 두근두근해진 인유신은 최진혁이 뒷좌석의 문을 열자 제일 먼저 탔다. 그다음에 현규하, 공태성이 차례대로 탔다. 차체가 넓어서 셋이 타도 좁다는 느낌은 들지 않았다.

중간에 끼인 현규하는 케이지를 무릎에서 1센티미터 떨어진 허공에 고정했다. 6세는 8세의 그루밍을 받고 잠꼬대까지 하면서 여전히 잘 자고 있었다.

인유신은 설레는 눈길로 최진혁이 시동을 거는 모습을 구경했다. 최진혁은 복잡한 마나 회로가 각인된 프레임에 손을 얹었다.

마나를 주입하자, 마나 회로가 밝게 빛나며 차체가 한 차례 가볍게 진동했다. 그렇게 최진혁은 차를 출발시켰다.

“마나가 없는 사람도 쓸 수 있는 거예요”

“없으면 따로 충전을 해야 하죠. 그쪽 세상에서는 다른가 봅니다”

“기름을 쓰거든요.”

“비효율적이군요. 오염도 심할 테고.”

“그렇긴 해요. 그런데 최 팀장님. 아, 죄송해요. 입에 익어서…….”

핸들을 쥔 채 최진혁이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여기에서도 팀장 맞습니다.”

“진짜요”

최진혁은 간단한 프로필을 말해 주었다. 독을 다루는 고유 능력이 있다는 것. 정부 소속인 헵타곤에서 근무하고 있다는 것. 동생을 비롯한 가족은 어린 시절에 사망했으며 아직 미혼이라는 것. 인유신이 알고 있던 최진혁과 어느 정도 비슷한 프로필이었다.

현규하야 눈앞의 최진혁이 어떤 인생을 살았든 신경 쓰지 않았지만 공태성은 무척 복잡미묘한 표정이었다.

이 최진혁이 별개의 존재라는 건 인유신도 인식하고 있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해도 조금 걸리는 찜찜함이 있었다. 인유신은 눈치를 살피다가 넌지시 찔렀다.

“팀장님, 그냥 편하게 말 놓아 주시면 안 될까요”

“그러지.”

최진혁은 기다렸다는 듯이 바로 말을 놓았다. 목소리까지 똑같은 사람이 똑같은 말투로 말하니 반가운 한편으로는 싱숭생숭했다.

‘헷갈릴 거 같으니까 우리 쪽 팀장님은 최진혁1이라고 해야겠다. 무례한 칭호지만 나 혼자 생각하는 건 괜찮겠지’

인유신이 궁금증을 얼추 채우고 난 뒤에야 현규하는 입을 열었다.

“스토얀이 여기에서 어떤 존재인 거죠”

“극히 일부의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사실이지만, 이 망할 세상이 완전히 폭삭 내려앉지 않도록 받쳐 주고 있는 존재라고 해야 할까 신들은 세계의 왕이라고 부르는 것 같다만.”

“흐음……. 만나 봤어요”

“만나 보긴 했지. 그래서 널 바로 알아봤던 거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던 인유신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과연, 현규하와 엄청 닮았나 보다.

‘고모인 스토야와도 닮긴 했으니까…….’

가만히 현규하의 옆얼굴을 응시했다. 그와 몹시 닮은 얼굴이 친자식을 산 제물로 바치려 하다니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팀장님, 그럼 저희는 루마니아까지 가는 거예요”

“루마니아 루마니아에 따로 용건이 있나 거기는 사람도 별로 안 살 텐데”

“예 스토얀은 루마니아에 있는 게 아니에요”

“한양에 있다만”

“한양 한양이요”

인유신의 눈이 휘둥그레졌고 공태성도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 어머니가 평행 세계에 관해 남긴 기록을 많이 본 현규하만 ‘그렇군.’ 하는 태연한 표정을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럼 여기 한국이 아닌 건가요”

“조선이다만”

“……설마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아니, 그냥 조선. 무슨 나라 이름이 그렇게 길지”

인유신은 안도의 숨을 돌렸다. ‘통일된 한국에서 살고 있던 내가 환생하니 북한 땅에 !’ 같은 전개는 다행히 일어나지 않았다.

얘기를 좀 더 들어 보니 입헌 군주국인 조선의 수도는 개성이었고, 스토얀은 30년 전부터 한양에 거처를 마련한 모양이었다.

“개성이 조선의 수도로 남아 있는 것도 의외로군.”

“아, 미안. 그쪽 문제는 설명 못 한다. 내가 역사에는 약해서.”

공태성은 충격받은 얼굴이 되었다. 인유신도 이해했다. 최진혁의 입에서 공태성에게 사과하는 말이 나오다니. “그 자식은 확실히 문과 뇌가 아니었지…….”라고 중얼거리는 걸 보니 이것도 두 최진혁의 공통점인 모양이다.

어쨌든 준의 신전이 한양에도 있다는 확답까지 들은 공태성은 조선이든 북한이든 상관없다는 표정이 되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조선이든 북한이든 알 바 아니라는 표정을 짓고 있던 현규하는 실용적인 정보 수집을 시작했다.

우선 던전이나 보스, 아티팩트 등 시스템상의 메시지로 출력되는 용어는 동일했다. 인유신은 상태창의 글씨가 모국어라고 여기는 언어로 표시되는 것처럼 게이트가 열리는 세계에서 사용 인구가 가장 많은 언어로 용어가 정립되는 게 아닐까, 라고 추측했다.

차이점도 있었다. 신성과 직접 닿을 수 있는 세계이니만큼 시스템과 각성 등을 받아들이는 개념은 현저히 달랐다.

이아드에서의 각성은 신의 뜻이었기에, 신탁의 일종이라고 여기는 시스템을 오라클이라 불렀다. 각성자들 가운데 능력이 뛰어난 이들을 부르는 호칭은 신의 뜻을 행하는 종복인 서번트와 신에게 번제로 올릴 제물을 사냥하는 헌터가 혼용되다가, 근래에는 거의 헌터로 통용되었다. 헌터라 칭하는 건 철의 시대와 같은데 의미는 판이했다.

“그럼 팀장님도 귀속 아티팩트 가지고 있으세요 앗, 실례되는 질문이면 사과드릴게요.”

“너희가 마수인 것도 아니니 딱히 상관은 없지. 에리크 14세와 관련된 아티팩트다.”

에리크 14세는 광기로 인해 폐위되어 독살당한 스웨덴의 국왕이었다. 보르자 가문과 관련이 있는 듯했던 최진혁1의 귀속 아티팩트와는 달랐다. 이런 차이점이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공태성이 말했다.

“이쪽의 나는 존재하지 않거나 최진혁과 교류가 없는 모양이다.”

“왜요”

“그 자식에게 귀속 아티팩트를 구해 준 게 나였으니까.”

“아하…….”

예의 바른 인유신은 목구멍까지 튀어 오른 의문을 꾹 삼키며 참았지만, 현규하는 참지 않았다.

“최진혁에게는 쓸 만한 아티팩트 구해 줘 놓고 왜 네 아티팩트는 그따위인 거지”

“……씨발. 국적 문제만 빼면 내 아티팩트도 쓸 만하다고.”

“그 국적이 모든 장점을 완전히 덮어 버리는 문제잖아. 너 솔직히 혜연 누나 아티팩트 볼 때마다 쫄리지 그냥 막 남해에 뛰어들어서 뒈지는 게 낫겠다 싶지”

“…….”

여기가 차 안이라서 참는다는 표정으로 현규하를 살벌하게 노려보는 공태성을 보면서 인유신은 다른 의미로 감탄했다. 공태성에게 귀속 아티팩트까지 받아 놓고도 틈만 나면 그를 갈구는 최진혁1은 진짜 대단한 사람이었다.

‘이런 게 악우라는 걸까’

그러는 사이에 차는 회령 시내로 진입했다. 시내를 구경할 여유도 없이 차는 곧장 목적지로 향했다.

“그쪽 세상에는 이동이 가능한 게이트가 있나”

“아뇨. 처음 들어요.”

“그럼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되겠군. 한양까지는 게이트를 통과해서 갈 거다.”

게이트를 통해 이동하는 기술, 정확히는 마법이 개발된 건 70년 전이라고 했다.

아주 가끔 내부의 마나가 매우 안정되어 있으나 마수도 부산물도 획득할 수 없는 게이트가 열렸다. 사람들은 시간이 지나면 브레이크도 없이 자연 소멸하는 게이트를 활용하는 방법을 알아냈다.

“나는 마법사가 아니라서 자세한 원리는 모르지만 소멸하지 않도록 마나를 운용하며 내부의 공간을 찢어서 다른 좌표와 연결한다더군.”

“우와.”

뭔지는 몰라도 대단해 보였다. 현규하도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종의 터미널이라고 보면 되겠네요. 자연 소멸하는 게이트는 우리 쪽에도 있는데 위험하지도 않고 활용 방법도 없으니까 그냥 방치하거든요.”

최진혁은 곧장 게이트로 차를 몰았다. 차와 사람들로 북적거리는 곳이었다. 한양까지 게이트를 연결하려면 대기 인원이 찰 때까지 기다려야 했으나 그의 신분증을 보여 주자 바로 통과되었다.

“수고가 많으십니다. 들어가십쇼.”

게이트 앞에서 마법사로 보이는 직원이 마법진을 발동했다. 차가 게이트 안으로 스르르 들어갔다.

인유신은 두근두근하며 현규하의 손을 꼭 잡았다. 현규하도 입꼬리를 빙긋 올리며 속닥거렸다.

“기대돼요”

“엄청요.”

게이트를 통과할 때 느껴지는 특유의 현기증이 몸을 쓸었다. 그리고 그냥 그게 끝이었다. 눈을 깜빡거렸다가 떴을 때 차는 벌써 게이트 밖으로 나와 있었다.

“……어라”

“별거 없지”

운전석의 최진혁이 픽 웃었다.

“여기가 한양이다.”

“우리 아들은 별문제 없이 잘 오고 있네.”

허공에 띄운 창을 유심히 바라보던 청년은 턱을 문지르며 곰곰이 생각했다. 자세한 연유는 모르겠지만 무사히 이아드로의 길을 연 것을 보면 스토야가 그녀의 혈계에 따로 조처해 둔 게 있었던 듯하다.

‘스토야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지.’

부모에게도 버림받고, 인신 공희의 제물이 되지 않기 위해 세상의 끝까지 쫓겼던 스토야는 무척 철두철미해졌다. 하나의 계획을 실행하기 위해 열이 넘는 준비를 하고 안배하는 그녀의 철저함은 일종의 강박증에 가까웠다.

현소라의 손에 혈계, 그녀의 피를 담은 펜던트를 쥐여 보낼 때도 만약을 대비한 온갖 방법을 취해 두었을 것이다. 후에 눈알을 커프크니를 통해 보내 달라고 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을 터.

‘명계를 통해서 이아드로 온 것 같은데……. 명계에 있던 시간은 몇 분 안 되었으니 다른 일은 없었을 것 같군.’

그 몇 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난 조카와 고모가 짧은 해후를 나누기에 적당한 시간이었다.

스토야의 목표는 알고 있다. 이아드의 멸망을 유예하는 것.

그녀의 목표는 그의 이해와 어느 정도 일치한다. 지금까지 누이를 한 번도 불신한 적이 없던 그는 이번에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으리라 판단했다.

창을 닫은 청년은 관심을 거두고 화초에 마저 물을 주기 시작했다.

창밖으로 보이는 시내의 풍경은 확실히 서울과 달랐다. 일단 거리의 행인들이 적었으며 외국인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많았다. 엔진을 탑재하는 공간이 좁은 차들이 도로를 달렸는데 그 수도 그리 많다고 할 수는 없었다. 언제나 시야를 채우던 고층의 건물도 드물었다. 오히려 한옥이 더 자주 보였다.

도중에 눈에 익은 야트막한 산이 보였다. 낙산인 듯하여 반가운 느낌이 들었는데, 그로부터 한참을 더 지났지만 동대문은 보이지 않았다.

‘동대문은 수도를 옮기면서 축성한 거니까 이쪽 세계에 없는 게 당연하네.’

머리로는 이해하는데도 낯선 기분은 어쩔 수 없다. 인유신은 숨을 조금 고르면서 창문에서 시선을 뗐다.

“구경은 더 안 해요”

“오늘은 너무 놀랐으니까 이쯤에서 중단하려고요. 내일로 미루어 둘래요. 규하 씨는 신기하지 않아요”

“주인님 보느라 바깥 구경할 틈 같은 건 없습니다. 나는 유신 씨가 세상에서 가장 신비로워요.”

비록 공태성이 ‘놀고 있군.’이라는 표정으로 쳐다보긴 했지만 인유신은 민망하면서도 좋았다. 어느 세계에서든 현규하는 현규하였고, 그가 변하지 않고 중심을 잡아 주고 있다는 건 무척이나 좋은 안정감을 마음에 심어 주었다.

“그런데 신경 쓰이는 게 있다만.”

최진혁의 말에 인유신은 움찔했다. 설마 동성이 사귀는 게 엄청나게 터부시되는 사회 분위기인가 싶어서 긴장했지만 아니었다.

“케이지 안에 있는 게 뭐지”

“햄스터요. 제가 햄스터를 테이밍할 수 있거든요.”

백미러에 비치는 최진혁의 눈이 반짝 빛났다.

“나중에 보여 줄 수 있나”

“물론이죠. 핸들링 잘하는 애도 있어요.”

최진혁과 햄스터로 수다를 떨다 보니 어느새 인왕산을 등진 중층 한옥이 보였다. 그곳에 현규하의 아버지가 있을 것이다. 산 제물로 바치기 위해 아들을 낳았다던, 그 남자가.

긴장감으로 목 안이 깔깔해졌다. 저도 모르게 현규하의 손을 꽉 잡으니, 그의 손바닥에도 약간의 땀이 고여 있다는 게 느껴졌다. 현규하도 긴장하고 있다는 걸 알게 되자 정신이 더 바짝 들었다.

‘이상한 꼴을 보이지는 말아야 해.’

그렇게 현규하와 나란히 솟을대문을 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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