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3화
눈썹을 축 늘어뜨리며 곤란한 표정을 짓자, 이환이 얇은 이불을 끌어당겨 저와 내 몸을 가리듯 덮었다.
“부끄럽게 하지 않을 테니까, 이제 키스해 줘요.”
한 몸처럼 나를 끌어안고 다리를 얽으며 이환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이불과 이환의 몸뚱이에 폭삭 감겨 맨살이 가려지자, 그의 말처럼 부끄러움이 조금 가시는 듯도 했다. 약간의 안도감을 느끼며 조심스럽게 이환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쪽, 쪽. 새 부리처럼 쪼듯이 입을 맞추자 부족하다는 양 남자의 입술이 뻐끔거렸다. 살짝 이를 세워 그 입술을 깨물고, 그가 그랬던 것처럼 혀를 내밀어 갈라진 틈을 핥았다. 도톰한 입술에 혓바닥이 깨물렸다.
아프지는 않지만 놀라서 흠칫 몸을 굳히자 마주한 눈이 다정함을 담고 둥글게 휘어졌다.
입술을 비스듬히 겹쳐 포개고, 마중 나온 혀가 톡톡 치열을 두드린다. 살짝 입을 벌리고 혀를 내밀자 두 개의 살덩이가 부드럽게 뒤얽혔다.
“으응…….”
목 안쪽에서 나직한 신음이 흘러나왔다.
가슴과 허리를 부드럽게 쓸고 문지르는 손바닥의 온기가 기분 좋다. 엉덩이를 잡았다 놓으며 힘주어 문지르는 손아귀의 힘도 나쁘지 않다. 단단한 아랫도리를 마주 대고 비비는 행위도 시야에서 가려지자 은밀한 자극으로 다가왔다.
이환의 목에 손을 둘러 감으며 가까이 끌어당겼다. 코끝을 울리며 흘러나오는 옅은 신음에 남자의 손이 엉덩이 사이를 조심스럽게 파고든다.
자글자글 주름진 구멍의 입구를 손가락 끝으로 지그시 눌러 문지른다. 움찔거리던 입구가 뻐끔 벌어지며 손가락 끝마디를 삼켰다. 단단하고 굵은 손가락이 위아래로 까닥이며 간을 보듯 안쪽을 휘저었다.
흐응, 하고 콧소리를 흘리자 잠시 움직임을 멈추었던 손가락이 조금 더 깊이 파고들었다. 여전히 뻑뻑하지만 희미하게 물기가 스며 나왔다. 그것을 이환 또한 느꼈는지 슬쩍 뒤로 빠졌던 손가락이 두 개로 늘어나 안을 채웠다.
“아아…….”
“……아파요?”
내 신음에 이환이 입술을 떼어 내며 물었다.
“아뇨. 조금…… 뻐근해요.”
“구멍이 젖고 있어요. 내 자지가 그렇게 먹고 싶었나?”
귓가에 울리는 야한 단어에 어깨를 움츠렸다. 그 반응이 귀엽다며 이환이 쪽쪽 뺨에 입맞춤을 했다.
손가락은 꾸준히 뒤를 드나들었다. 깊게 파고들었다 빠져나가고, 내벽의 안쪽을 둥글게 휘젓기도 했다. 어느 정도 벌어지는지를 가늠하듯 구멍 안에서 손가락을 쫙 벌려 보기도 했다. 그럴 때마다 찰박거리는 물소리가 새어 나왔다.
“흐으으, 시, 실장님. 이제…… 넣어도, 으응…… 넣어도 될 것 같아요.”
“넣어도 될 것 같아요?”
“네에.”
“손가락도 넣어 줬는데, 뭘 더 넣고 싶어서요?”
“읏, 그런 건…….”
“그런 건 묻지 말까요?”
그건 아직 대답하기가 부끄럽구나, 내 요정님.
귓가에 웃음소리가 흩날렸다.
내내 구멍 안을 쑤시던 손가락이 빠져나가고, 허벅지가 활짝 벌어져 눌리며 남자의 성기가 뒤에 닿았다. 약간의 긴장감, 그리고 약간의 기대감. 꿀꺽 침을 삼키며 초조하게 숨을 죽이고 있자, 풀어진 구멍의 주름을 넓게 벌리며 프리컴으로 젖은 귀두가 대가리를 들이밀었다.
“으으.”
손가락과는 차원이 다른 굵기에 절로 턱 끝에 힘이 들어갔다. 신음을 꾹 눌러 삼키며 남자의 등을 끌어안았다.
“아파요?”
걱정스레 묻는 이환의 목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구멍의 입구부터 내벽이 벌어지며 서서히 남자의 성기를 삼킨다. 끝도 없이 밀려 들어오는 성기를 꾸역꾸역 삼키는 것이 차츰 버거워졌다. 배 속이 더부룩하고 헛구역질이 치민다. 턱 끝에 힘을 주어 숨을 참으며 그가 내부에 자리 잡기를 기다렸다.
“해민 씨?”
이환의 목소리를 듣는 순간, 참았던 숨을 토해 냈다. 땀으로 푹 젖은 등허리를 커다란 손이 쓱쓱 쓸어 주었다.
“아무런 소리도 없기에 기절한 줄 알았습니다.”
“그 정도는 참을 수 있어요.”
“참아야 할 정도로 아팠습니까? 아프면 아프다고 말을 해야지, 참으면 어떻게 해요.”
땀이 맺힌 이마를 입술로 훑어 주며 이환이 낮게 혀를 찼다.
“아픈 건 아니고요. 조금 뻐근했어요.”
“그게 아픈 거지. 지금도 아픕니까?”
“안 아파요. ……다 들어왔어요?”
힐끔 눈치를 살피며 묻자, 이환이 대답 대신 내 손을 끌어당겨 가랑이 사이로 이끌었다. 손끝에 내 엉덩이에 맞물린 남자의 사타구니가 만져졌다.
이전과 다르게 버거운 삽입과 생살을 억지로 벌려 늘여 놓은 듯 구멍에서 느껴지는 홧홧함과 뻐근함이 낯설어 겁이 나기도 했다. 하지만 그 큰 것을 끝까지 삼켰다는 사실에 하나의 관문을 통과한 것처럼 뿌듯함도 느꼈다. 그것이 표정에 드러났는지 걱정스레 날 내려다보던 이환이 풋, 하고 웃음을 흘렸다.
“페로몬에 취하지 않고 멀쩡한 정신으로 침대에 함께 있으니, 해민 씨의 이런 표정도 보게 되네요.”
“제 표정이 이상해요?”
“엄청 뿌듯해하는 아이 같아요.”
내심 뿌듯해한 건 사실이지만 아이 같다니.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 성숙한 성인으로서 용납할 수 없는 말이었다.
“아이한테 이러는 건 범죄죠.”
“그러게요. 일 년만 일찍 만났어도 쇠고랑 찰 뻔했습니다. 역시나 운명이네요.”
운명까지 갈 일은 아닌데.
그것을 지적하려는 시도는 슬쩍 허리를 뒤로 물리며 성기를 빼내는 이환의 움직임에 무산되었다. 꽉 틀어박혀 있던 거시기가 빠져나가자 들러붙어 있던 내벽이 딸려 움직였다.
“아…….”
“아파요?”
“……아뇨. 괜찮으니까…….”
그러니까 신경 쓰지 말고 움직이라고. 과민 반응할 필요는 없다고.
그렇게 말을 했는데도 몸을 움찔거리고 옅은 신음을 토해 낼 때마다 이환은 걱정을 버리지 못하고 아픈지를 물어 왔다. 그의 움직임은 변함없이 조심스러웠고, 내게서 한시도 눈을 떼지 않고 무리를 주지 않으려 했다.
느린 속도로 성기를 빼냈다가 밀어 넣기를 반복한다. 그 움직임은 구멍이 풀어지고 내벽이 느슨해질 때까지 꾸준하게 이어졌다.
걱정할 일은 아무것도 없다고, 아플 일도 두려워할 일도 없다고.
이환은 시선을 마주하고 다정한 얼굴로 내게 전해 왔다.
언제나처럼.
내가 이환의 집에 들어온 뒤로 내내 그래 왔듯이. 한시도 변함없이.
“실장님이 저를 왜 좋아하는지 모르겠어요.”
손을 들어 이환의 뺨을 감쌌다. 그는 고개를 틀어 내 손바닥에 입술을 눌러 문질렀다.
“그런데요. ……내가 실장님을 좋아하게 된다면, 그 이유는 알 것 같아요.”
내 속삭임을 들은 이환이 고개를 수그려 입을 맞췄다. 촉, 하고 들러붙은 입술이 떨어지고 다시 달라붙었다.
온기가, 따스한 숨결이, 다정함이 내게로 전해져 왔다.
페로몬에 취해 정신을 차리지 못했던 히트 사이클 때와 달리 명확하게 이환을 눈에 담으며 차곡차곡 쌓여 가는 흥분의 계단을 밟고 올라섰다. 계단 끝에서의 추락은 아찔했으나 그 어느 때보다 선명한 황홀감이 존재했다.
14
주말까지 꽉꽉 채워 보낸 휴가는 분에 넘칠 정도로 호화롭고 안락했다.
이환은 내가 침대에서 벗어나는 걸 용납하지 못하는 사람처럼 굴었다. 내 손으로 몸을 씻는 것도, 내 발로 바닥을 딛는 것도 허락하지 않았다.
씻으러 갈 때에도 안아서 옮겼고, 씻는 것도 제 손으로 씻겼으며, 식사마저도 그가 차려 와 침대에서 먹었다. 침대가 축축하게 젖으면 두 개의 침실을 번갈아 옮겨 가며 사용했고, 그때마다 침대 시트를 가는 일 역시 이환이 했다.
실장님에게 그런 잡일을 시킬 수 없다고 질색을 할 때마다 이환은 휴가 와서 잡일 하는 사람이 따로 있냐며 부득불 내 손을 붙잡아 놓았다. 집에서야 일을 대신 해 주거나 못 하게 하면 돈 받은 만큼 하는 일이 없다고 퇴사할까 봐 무서워서 손도 못 댔다지만, 휴가니까 이런 때라도 자신이 꼭 해야 한다고.
대체 왜 굳이 꼭 이환이 해야 하는지, 심지어 내 몸을 씻고 내 몸을 움직이는 것까지 이환의 손이 대체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수발을 드는 이환이 어느 때보다 즐거워하는 얼굴이라 필사적으로 만류하지 않았다.
“연휴가 이렇게 끝나다니, 아쉽네요.”
“푹 쉬셨잖아요. ……아닌가? 사실 저만 너무 편하게 쉰 것 같긴 해요.”
겨우 몇 시간 투자하여 수영을 숙련된 수준까지 익힐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으나 대신 튜브를 끼고 물장구를 치며 수영장에서 실컷 놀았다.
난생처음 바다 위로 떠오르는 해도 눈에 담았다. 쿠션을 잔뜩 모아 둔 러그 위에 드러누워 팝콘을 집어 먹으며 영화도 보았다. 지하에 마련된 바에서 이환이 만들어 주는 칵테일을 마시며 당구도 배웠다. 그리고 그 외의 시간은 전부 침대에서 지냈다.
다시 생각해도 진짜 게으르고 느긋한 시간이었다. 내 평생 언제 이렇게 손가락 하나 까닥하지 않고 늘어져서 지낼 날이 또 있을까 싶을 만큼 방만하게 보낸 휴가였다.
“나도 모처럼 푹 쉬었습니다. 해민 씨와 함께라서 더 즐거웠고요. 연휴가 너무 짧아 아쉬울 뿐입니다.”
“나흘이나 있었는데요.”
심지어 나흘이나 되는 그 연휴는 어제 끝났습니다만.
남들은 이미 출근했을 월요일 아침에 이환과 나는 느긋하게 휴가지에서 출발하고 있었다.
저녁에 운전하면 피곤하고 위험하다고, 푹 자고 아침에 출발하자는 이환의 주장이 강경했던 탓이다. 월요일 아침 출근은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으나, 그는 점심 이후에 출근해도 된다고 가볍게 일축했다.
이건 회장님 아들의 뻔뻔한 배짱인가, 무보수 노동자의 정당한 여유인가.
정답을 알 수 없는 의문을 별장에 남겨 둔 채, 나는 이환이 운전하는 차에 얌전히 올랐다.
“별장은 괜찮았습니까?”
“네. 좋았어요. 그렇게 잘 지어 놓고 정작 사용하는 사람들이 없다니 아까울 정도로요.”
“다음에 또 옵시다. 새해에 일출 보러 와도 좋고.”
그때는 조금 더 길게 있다 가자며 이환은 털어 내지 못한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곳에 언제 또 오게 될까 싶었으나, 굳이 그것을 따지지 않고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