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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튼 퓨리티 (98)화 (98/172)

98화

지저분한 봉고차 내부, 험악한 인상과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들. 난데없이 끌려온 상황에 놀라 쿵쾅거리는 심장을 억누르면서도 빠르게 주위를 살피며 물었다. 그러면서 몰래 뒤로 돌린 손을 더듬어 문손잡이를 찾았다.

달칵, 달칵.

미리 조치를 취해 두었는지 내 쪽의 문은 열리지 않았다.

“야, 뒤에 따라붙었는데?”

“저런 새끼들이야 금방 떼어 내지.”

내 옆에 앉은 부리부리한 쌍꺼풀의 남자가 차 뒤쪽 유리창을 살피며 말하자, 운전석에 앉은 남자가 코웃음을 치며 속도를 높였다. 격하게 차선 이동을 해 대는 탓에 몸이 이쪽저쪽으로 흔들리며 짓눌렸다.

“잘못 데려오신 거예요.”

“뭐?”

“저희 집은 돈 없어요. 아버지는 일찍 돌아가셨고, 엄마는 알코올 중독에 치매라서 요양 병원에 계세요. 저는 막노동 나가면서 병원비 대느라 집도 없어요. 그러니까, 절 납치해 봤자 돈 나올 구석은 없다고요!”

떨리는 입술에 힘을 주어 빠르게 말하다 감정이 복받쳐 거의 소리를 지르듯 쏟아 냈다. 듣고 있던 남자들이 피식피식 웃음을 흘렸다.

“야. 너 애인 존나 부자라는 건 왜 빼고 말하냐?”

잔머리 굴리지 말라며 맞은편에 앉아 있던 얼굴에 칼자국이 난 남자가 손을 올렸다.

뻑, 소리가 나며 눈앞이 하얘졌다. 주먹에 맞았는지 팔꿈치로 맞았는지도 모르겠고, 어떻게 맞았는지도 모르겠다. 갑작스럽게 정도 이상의 타격을 받으면 아프다는 통각조차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귀에 삐- 하는 이명과 함께 잠시 정신이 멍해졌다.

“휴대폰부터 빨리 찾아서 버려.”

누군가의 말과 함께 타인의 손이 몸 여기저기를 더듬었다. 주머니에 넣어 두었던 휴대폰을 찾아낸 남자가 창문을 열고 밖으로 휴대폰을 내던졌다.

“넌 그냥 입 다물고 얌전히만 있으면 돼. 그럼 돈 많은 네 애인님이 몸값 주는 즉시 풀려날 테니까. 몸 성히 돌아가야지. 안 그래?”

“애인…… 없어요. 사람 잘못 데려온 거라고요.”

처음에는 무차별 납치라고 생각했다. 하필이면 돈 나올 구석이 없는 나 같은 놈을 납치했다는 생각에 어이가 없었다.

그런데 알고 보니 사람을 혼동해 잘못 납치한 모양이다. 돈 많은 애인이라니. 애인도 없는데, 심지어 돈 많은 애인? 돈 많은 부모를 가졌다고 오해를 받는 것보다 더 황당한 소리였다.

“말했잖아요! 돈 나올 구석 없다고. 나나 아저씨들이나 구질구질한 팔자는 똑같다니까! 아저씨들보다 내가 더 거지같이 살고 있는데…….”

“아, 씨발 새끼. 존나 시끄럽네. 안 닥쳐?”

“쟤 입 좀 막아라.”

“나 아니라고! 사람 잘못 데려왔다고!”

“야, 야. 입부터 막으라니까.”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부리부리 쌍꺼풀’이 청테이프를 뜯어 내 입 위에 뚝뚝 눌러 붙였다. 고개를 이리저리 흔들어 피하고 손을 휘저어 막아 보았지만 양쪽에서 붙잡아 구속하는 남자들의 힘을 이겨 낼 수가 없었다.

말 들을 생각이 아예 없는 거야.

대체 누구를 협박할 생각인지는 모르겠으나, 돈을 받지 못할 게 분명했다. 그러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지? 얌전히 기다리는 것도 돈을 줄 사람이 있다는 전제하에 가능한 방법이다. 사람을 잘못 납치했음을 이 남자들이 알게 된다면, 나는 어떻게 처리될까.

「해민 씨. 사람은 몸뚱이만 있으면 돈 만들 방법이 아주 많아요.」

문득 이환의 말이 떠올랐다.

몸뚱이만 있으면…….

장기 매매. 섬 노예. 뉴스에서 본 끔찍한 범죄 사건들이 떠올랐다.

벌떡 일어나 내가 떠밀려 들어왔던 문으로 몸을 던졌다.

얌전히 있으면 안 된다. 어떻게 해서든 벗어나야 해.

“야, 애새끼 좀 붙잡아.”

“어려서 그런지 팔딱팔딱 난리도 아닌데?”

손끝에 문손잡이가 닿았으나 머리채가 잡혀 뒤로 끌어당겨졌다.

“좀! 얌전히! 있으라고!”

손아귀에 붙잡힌 머리통이 차 바닥과 의자에 쾅쾅 부딪혔다. 이리저리 꺾이고 짓눌리던 머리가 무언가에 긁히며 묽은 액체가 뺨을 타고 흘러내렸다.

“아, 씨발. 피 봤네.”

“살살 다뤄. 상처 없이 멀쩡하게 돌려보내야 한다는 거 기억 안 나?”

“씨발, 솔직히 숨만 붙어 있으면 된 거 아냐? 납치당한 새끼가 멀쩡하게 돌아가면 그게 이상한 거지.”

눈앞의 남자들에게서 벗어날 방법이 없을까. 주변에 있는 걸 무기로 사용한다면…….

그런 생각을 해 보았으나 주변에 무기가 될 만한 것은 보이지 않았다. 주먹을 휘둘러 볼까도 생각했으나 남자들의 솥뚜껑만 한 손에 비하면 내 손은 그냥 솜방망이였다.

내가 뭘 할 수 있지. 어떻게 해야 벗어날 수 있지.

“그래도 부자 놈이 애인이라잖냐. 상처 내는 건 돈 안 주려고 버틸 때 써먹어도 충분해. 손가락 하나 정도는 잘라도 된다고 했으니까. 하, 씨발. 무슨 고난과 역경이냐.”

부자 놈 애인 아니라니까.

답답한 마음에 손짓 발짓을 해 가며 항의했다가 괜히 한 대를 더 맞았다. 손과 발이 테이프로 둘둘 묶인 건 덤이었다.

봉고차에 끌려 들어올 때 소리라도 지를걸. 끌려가기 전에 뭐든 붙잡고 늘어지기라도 할걸.

멍청하게 있다가 그냥 떠밀려 들어왔다. 제 발로 순순히 끌려온 꼴이다. 멍청이, 바보, 모질이, 띨띨이.

“얌전히 있어. 너만 얌전히 있으면 몸 성히 돌아갈 수 있으니까. 괜히 피곤하게 만들어서 힘 빼게 만들지 말고. 멀쩡히 돌아갈 수 있는데, 괜히 깝죽거리다가 팔다리 하나 부러지면 누구 손해겠냐?”

힘이 빠진 내 뺨을 손으로 툭툭 두드리며 맞은편에 앉은 ‘칼자국’ 남자가 씨익 웃었다.

몸 성히…… 돌아갈 수 있을까?

지금이야 돈 많은 애인이 몸값을 줄 거라는 기대에 나를 가만히 두고 있지만, 그 돈 많은 애인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걸 알게 된다면? 그때도 나를 가만히 둘까. 잘못된 대상을 납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이 남자들이 미안하다고 사과하며 나를 멀쩡하게 풀어 주리라는 기대를 하기가 어려웠다.

조용히 증거 인멸을 할 가능성이 크지 않을까. 조선팔도로 내 장기가 팔려 나가거나, 혹은 벗어날 길이 존재하지 않는 섬에 팔려 가 노예처럼 일하다 죽거나.

“나 아니에요. 나 아니라고요.”

묶인 손을 들어 입을 막고 있는 테이프를 떼어 내고 빠르게 말을 내뱉었다.

“부자 애인 없어요. 진짜예요. 사람 잘못 납치한 거예요.”

“야, 야!”

“멍청한 새끼. 손을 앞으로 묶으면 어떻게 하냐. 뒤로 묶어야지. 이 띨빵한 새끼야.”

내 행태를 보고 있던 ‘쌍꺼풀’이 입술을 벙긋거렸고, 맞은편에서 ‘칼자국’이 혀를 차며 그런 ‘쌍꺼풀’의 머리통을 후려갈겼다.

“뭐해? 빨리 뒤로 묶어.”

“아이, 씨.”

손을 둘둘 묶어 둔 테이프를 뜯어 내려고 애쓰는 ‘쌍꺼풀’을 보며 ‘칼자국’이 혀를 찼다.

“새끼야, 칼로 잘라.”

“보내 주시면 신고 안 할게요. 진짜 사람 잘못 잡아 오셨어요. 돈 보내라고 연락해 봤자 못 받으실 거예요. 진짜로요.”

“서해민.”

“……네?”

“너 서해민 맞잖아.”

‘칼자국’의 입에서 나온 내 이름 석 자에 정신이 멍해졌다.

그러게.

나 서해민 맞는데……. 어떻게 이 남자들이 내 이름을 알고 있지?

“이래도 사람 잘못 잡아 온 거 같냐?”

“……부자 애인…… 진짜 없는데…….”

“너 씨발, 부잣집 애인 놈 집에서 같이 살고 있잖아. 그런 집에서 살면 일이억은 껌값 아냐?”

“애, 애인 아니에요. 그 집 가정부예요. 저 거기서 일하는 거예요.”

“아이고, 그러세요? 아까는 뭐 막노동하신다면서요. 거짓말도 일관성 있게 해야지. 쌍판은 멀쩡한 놈이 대가리는 영 안 굴러가는 모양이네. 개소리는 여기까지 하고, 애인 놈이 몸값 가지고 올 동안 얌전히 앉아 계셔.”

더는 시끄럽게 굴지 말라며 ‘칼자국’이 청테이프로 입을 막았다.

어째서 이런 오해를 받게 된 걸까.

울고 싶었다.

아니, 살고 싶었다.

하지만 남자들에게서 벗어날 방법도, 살아남을 방법도 요원했다.

입을 막은 테이프를 떼어 내려는 시도는 너무나도 쉽게 막혔고, 손을 둘둘 싸고 있는 테이프를 ‘쌍꺼풀’이 칼로 뚝 잘라 냈다.

……칼.

칼.

‘쌍꺼풀’이 어설프게 쥐고 있는 잭나이프를 낚아챘다. 생각보다 먼저 움직인 몸의 순발력과 결단력에 나도 놀랄 정도였으나, 칼을 빼앗긴 ‘쌍꺼풀’이 느낀 당황만큼은 아니었다. 그는 한순간 비어 버린 제 손을 멀뚱멀뚱 바라보았다.

“가만히 있어! 찌, 찌르기 전에 가만히 있어!”

칼끝을 남자들 쪽으로 향하며 풀려난 손으로 입을 막은 테이프를 다시금 떼어 냈다.

“하, 진짜 가지가지 하네. 어휴, 이 얼빵한 새끼. 이런 새끼 데리고 작업해야 하냐? 답답해 뒤지겠다, 진짜.”

어휴, 어휴. 한숨을 내쉬며 ‘칼자국’이 ‘쌍꺼풀’의 뒤통수를 연신 때려 댔다. 운전석에서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적당히 해라, 적당히.”

“아니, 이 새끼는 대체 왜 데리고 온 거야?”

“거 막내 구박 좀 그만하고. 처음에는 다 그렇지, 뭐.”

“어휴, 씨발. 좆같다, 진짜. 막내는 도착하면 대가리 박을 준비하자. 응?”

“죄송합니다, 형님.”

“됐고, 넌 그거 안 내놔?”

내 손에 들린 칼이 전혀 위협적으로 느껴지지 않는지, ‘칼자국’은 운전석의 남자와 잡담을 주고받았다. 그리고는 내게 손을 내밀며 칼을 달라고 했다. 나는 ‘칼자국’의 요구에 응하는 대신 칼을 휘둘렀으나, 그 어설픈 시도는 손목을 낚아채 움켜잡은 ‘칼자국’으로 인해 허망하게 무산되었다.

“아, 새끼. 진짜 골 때리네. 겁 없이 칼 뺏는 놈이나 멍청하게 칼 뺏기는 놈이나.”

“아악.”

손목을 움켜쥔 손아귀에 힘이 들어갔다.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에 절로 신음이 흘러나왔다.

“얌전히 있으라고,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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