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9화
삐빅 삐빅 삐빅.
날카로운 알림음 소리에 이환은 휴대폰을 확인했다. 화면 속 어지러운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벌컥,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선 백윤경은 휴대폰을 확인하는 이환을 보고 잠시 대기했다.
“차 대기시켜.”
“연락해 두었습니다.”
자리에서 일어난 이환이 재킷을 집어 들고 성큼성큼 사무실을 걸어 나왔다. 그 뒤를 쫓으며 백윤경이 태블릿을 건네주었다.
“애들은? 출발했대?”
휴대폰보다 큰 태블릿 화면으로 상황을 살피며 엘리베이터에 올라선 이환이 물었다.
“메뉴얼대로 움직이고 있습니다. 안가에서 자택까지 오 분 안에 도착할 겁니다.”
태블릿 모서리를 손가락을 툭툭 치는 이환의 손길에 조바심이 묻어났다.
“생각보다 빠르게 밀리는데.”
침입자들이 저택 내부로 들어올 수 있는 루트는 현관뿐이다. 포크레인으로 벽을 밀거나 절단기를 가져오지 않는 이상 어지간해서는 유리창도 뚫기 어려울 터였다. 물론 시간을 들인다면 유리창을 깨고 들어갈 수야 있겠으나, 시간이 그 정도로 충분치 않음을 알기에 미는 쪽도 밀리는 쪽도 현관문을 차지하고자 애쓰고 있었다.
바로 탈 수 있도록 회사 건물 바로 앞에 대기 중인 차에 오르는 순간, 메시지가 도착했다.
[VIP 세이프룸으로 이동]
내용을 확인한 이환의 얼굴에 미약한 안도감이 번졌다.
“집으로 빨리 갑시다.”
“네, 실장님.”
운전기사가 조심스럽게, 그러면서도 신속하게 차를 출발시켰다.
“경찰 쪽으로 연락 넣어서 출동하지 말라고 해. 추가 인원은 도착하면 통화 연결하고.”
“네.”
백윤경에게 지시를 내리고 휴대폰으로 메시지를 전송했다.
[상태는?]
상황이 아닌 상태를 물었다. 누구의 상태를 묻는지 덧붙이지 않아도 알리라 생각했는데, 보낸 메시지에 대한 답이 오지 않았다. 잠잠한 휴대폰을 내려다보며 흐음, 하고 목을 울렸다.
[몸에 이상은 없음. 약간 놀라고 긴장 상태로 보이지만, 안정을 찾으려 노력 중.]
후우, 작게 한숨을 내쉰 이환은 전화를 걸까 하다 말았다. 어차피 지금 상황에서 전화를 건다고 해도 해 줄 수 있는 게 없다. 최대한 빠르게 상황을 마무리 짓고 얼굴을 보는 편이 서해민에게도 저에게도 나았다.
“실장님.”
앞좌석에 앉은 백윤경이 휴대폰을 내밀었다.
화면을 확인하자 이제 막 도착했는지 대문을 통과해 우르르 몰려 들어오는 추가 경호 인력이 보였다. 현관은 이미 뚫려 몇몇의 침입자가 안으로 들어갔고, 나머지는 들어간 이들의 뒤를 지키듯 현관 앞에 버티고 서서 대치 중이었다.
“스피커폰으로 돌려.”
휴대폰을 건네받은 이환이 상대방에게 말했다. 화면 속 추가 인력의 가장 앞에 서 있던 남자가 휴대폰을 터치하고 앞으로 쭉 내미는 모습이 보였다.
“너희가 누구 집에 침입했는지 알 거라고 생각한다. 일을 벌였으면 그에 따른 책임도 각오했겠지. 너희의 각오를 높게 산다.”
천천히 입을 떼고 말문을 연 이환이 뒷좌석에 등을 기대며 화면 속의 침입자들을 응시했다.
“내가 도착하기 전에, 내가 보낸 사람들이 너희를 붙잡아 둘 거야. 나는 너희를 곱게 포장해서 경찰에 넘길 거다. 너희에게 일을 준 사람이 너희를 빼내 줄 수도 있어. 나는 최대한 그 시간을 뒤로 늦추고, 너희가 잡혀 있는 동안 너희 가족들을 찾을 거다. 너희의 부모, 부모가 없다면 자식, 자식이 없다면 와이프, 와이프가 없다면 애인, 친구, 친척, 사돈의 팔촌까지.”
벌어진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는 조금의 흥분도 없이 고요했으나, 시릴 정도로 차갑기도 했다.
“너희가 경찰서에서 나왔을 때, 그 누구도 연락이 되는 사람은 없을 거다. 아무도 볼 수 없을 거고, 그 어떤 소식도 들을 수 없을 거야. 죽었는지 살았는지도 확인할 수 없겠지.”
화면 속 침입자들은 움직이지 않았으나, 얼굴 위로 떠오른 동요를 감추지 못했다. 주춤거리며 뒤로 한 걸음 물러났다가 제 행동에 화들짝 놀라 억지로 악을 써 댄다.
―어방없다! 저거이 다 얼레부끼야.
―점마 오기 전에 붙잡아 튀면 된다. 날래 움직이라.
―에미나이는 아까 누가 델꼬 튀던데?
―계집애 아니라고.
―전화하는 새끼 안까이 아이야?
―아니라고! 씨발, 뭘 알고나 처오든가. 새끼들아.
휴대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어색한 억양의 목소리에 이환이 픽 웃음을 흘렸다.
“중국에서 넘어온 놈들도 있네? 물 건너왔다고 배짱인가 본데. 오히려 중국에 있는 쪽이 더 쉽다는 걸 모르나 봐? 그쪽은 돈만 좀 처바르면 사람 하나 없어지는 거 신경도 안 쓰잖아.”
―듣지 마, 씨발. 얼른 그 새끼나 잡아 와!
―저 짱개들 입 좀 처막아. 정신 사납게, 씨발.
―밑으로 내려간 새끼들은 왜 소식이 없어!
손에 든 쇠파이프며 식칼을 위협하듯 휘두르며 침입자들이 소리를 질렀다. 저희끼리 손발도 제대로 맞지 않는 꼴을 보아하니 어지간히 급하게 끌어모아 보낸 모양이다. 어이가 없어서 헛웃음만 나왔다.
“곧 도착한다. 다 잡아 놔. 한둘은 죽어도 상관없다. 빠르게 정리해.”
―네, 실장님.
전화를 끊은 이환이 “김 기사님?” 하고 물었다.
“길이 안 막혀서 금방 도착할 겁니다.”
“좋네요.”
한풀 여유로워진 기색으로 태블릿 화면을 바라보는 이환은 간간이 코웃음을 흘렸지만, 결코 유쾌한 얼굴은 아니었다.
“하는 짓은 뻔한데. 심지어 일 처리까지 야물지가 못해. 하는 꼬락서니를 보고 있으면 웃음만 나오는데, 본인은 이게 진짜 먹힐 거라고 생각한 건가? 나는 이런 짓을 저질렀다는 것보다 그게 더 어이가 없어.”
“누구도 예측하지 못할 일을 벌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뻔해서 다행 아닙니까.”
태블릿 화면을 손가락으로 때리며 쯧쯧 혀를 차자, 백윤경이 슬쩍 돌아보며 말을 덧붙였다.
“어지간해야지. 이건 거의 애잔한 수준이 아닌가.”
싸움도 급에 맞게 해야 하는 법인데. 이건 떼쓰는 아이를 상대하는 기분이라며 이환이 고개를 내저었다.
“그래도 대놓고 집을 친다니. 나름 결단력은 있네. 아니, 그냥 생각이 없는 건가.”
“아마도 후자일 겁니다.”
“아무래도 그렇겠지.”
뒤를 생각하고 일을 벌일 사람이 아니기에, 그냥 기분 내키는 대로 일을 저질렀을 가능성이 컸다. 돈만 쥐여 주면 원하는 건 다 이루어질 거라고 생각했을 터이다.
“원하는 걸 손쉽게 얻으며 오냐오냐 자란 탓일까. 점점 더 지능이 떨어지는 것 같아. 예전에는 그래도 생각이라는 걸 하고 살았는데, 이제는 뇌가 퇴화된 것처럼 보인단 말이야.”
“슬슬 회장님도 장남의 부족함을 인지하셨을 텐데요.”
백윤경의 말에 이환이 어이구, 하고 탄식했다.
“윤경이 너 아직도 미련을 못 버렸구나.”
“그게 어디 단숨에 버릴 미련입니까. 솔직히 작은 투자 회사보다 SG 그룹 비서실장 명함이 더 뽀대나지 않습니까. 김 기사님도 그렇죠? 어디 이름도 모르는 투자 회사보다 SG 그룹 소속이 더 탐나지 않습니까?”
“저는 늙어서 별 욕심이 없습니다. 그저 사고 없이, 실장님을 안전하게 모시고 다닐 수 있기만 바랄 뿐입니다.”
“에이, 세상에 욕심 없는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나이가 어리든 많든 여자든 남자든 더 좋은 걸 바라기 마련인데요.”
백윤경이 김 기사의 옆구리를 장난스레 쿡쿡 찌르며 그렇죠? 김 기사님도 그렇죠? 하고 깐족거렸다. 대략 십 년 정도를 함께해 온 사람들이니만큼 격의가 없어졌다지만, 백윤경은 갈수록 무게감이 사라지고 있었다.
절레절레 고개를 내저은 이환이 태블릿의 화면을 지켜보았다. 확실히 머릿수가 많으니 슬슬 정리가 되어 가고 있었다. 대충 좋은 타이밍에 도착할 듯했다.
“호텔 연락해서 룸 하나 잡아 놔. 집 정리될 때까지는 거기서 지내야겠다.”
백윤경에게 휴대폰을 돌려주며 말했다.
“망할 새끼들. 기어코 발코니 창을 부숴 놨네.”
태블릿이 이환의 손에 있기에 휴대폰으로 보안카메라 화면을 살피던 백윤경이 욕설을 내뱉었다.
“깨끗하게 정리해 두겠습니다. 이사 가실 거라면서, 이참에 빌라로 들어가시는 건 어떠십니까. 비슷비슷하게 인테리어가 마무리될 듯한데.”
“해민 씨한테 물어보고. 어느 쪽으로 들어가든 양쪽 다 손 봐 둬. 일단 이번 일부터 마무리하자고.”
“네, 실장님.”
이환이 대문과 정원, 주차장 쪽의 카메라 화면을 돌려 보는 사이, 골목 안으로 들어선 차가 집 앞에 멈추었다.
“실장님, 주차장 안으로 들어가지 못할 것 같습니다.”
“아, 괜찮습니다. 저놈들이 도어락을 망가뜨려서 그렇습니다. 여기서 내릴게요.”
“넵. 여기서 대기하겠습니다.”
차에서 내린 이환이 태블릿을 백윤경에게 넘겨주고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천천히 계단을 디뎌 정원으로 올라서자 엉망이 된 잔디밭 여기저기에 쓰러져 있는 놈들이 보였다.
“놓친 놈들은?”
“다 잡았습니다.”
집 안에서 피투성이가 된 놈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오던 경호 인력들이 이환을 발견하고 살짝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그들은 질질 끌고 온 놈들을 한곳에 던지듯 뭉쳐 놓았다.
“죽은 놈은?”
“조금씩 상하긴 했지만 죽은 놈은 없습니다.”
“저런. 아쉽네.”
혀로 입술을 축이며 이환이 낮게 웃었다.
“얼굴 사진이랑 지문 찍어 놓고 경찰에 넘겨요. 바로 신원 파악 들어가고, 확인되는 즉시 가족관계 증명서에 이름 올라간 사람들 다 잡아 옵니다. 진짜로 혈혈단신이다 하는 놈들은 애인이든 친구든 뭐라도 데려오고. 중국 쪽 놈들은, 그쪽 루트가 따로 있죠? 그쪽으로 현상금 걸어요. 굳이 데려올 필요 없으니 거기서 처분하고 확인되면 돈 보내 주는 식으로.”
“사, 사장님. 살려 주십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