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눈을 떠 보니 하얀 천장이 보였다. 코를 찌르는 소독약 냄새, ‘아, 병원이다.’ 이게 내 이야기가 될 줄은 몰랐는데. 왼팔이 움직이질 않아 보니 단단히 고정되어 있었다. 오른팔에는 링거가 연결되어 있어 꼼짝 못 할 상태였다.
근처에 있던 간호사분이 다가와 상태를 살피고, 보호자는 어디 가셨냐 묻기에 나도 모르게 회사에 계실 거라고 답해 버렸다. 그대로 엄마와 누나 번호까지 읊으려던 때였다.
“죄송합니다. 잠시 통화 좀 하고 오느라…. 제가 조현우 학생 보호자예요.”
누군가 급히 내게 다가온다. 뭔 보호자? 아, 조현우. 학교 보건 선생님이다.
“현우야, 아프거나 불편한 곳은 없니?”
“아프진 않은데 나른해요.”
“그래, 다행이다. 잠깐 기다려. 곧 의사분 오실 거야.”
내가 잠들어 있는 동안 웬만한 검사와 처치는 다 끝난 듯했다. 멍한 정신은 의사가 도착함과 동시에 완전히 깨어 버렸다. 처음에 무슨 사진을 보여 주길래 저게 뭔가, 했는데 MRI 사진이란다.
줄줄이 설명이 이어졌다. 들을수록 황당했다. 일단 나는 잠든 게 아니라 기절한 거였다. 뇌나 심장 같은 장기에는 이상이 없고 충격과 스트레스에 의한 것이니 안정을 취하라 당부하셨다. 그리고 다시 사진을 짚어 보여 주신다. 저게 뭔가요? 환자분 팔입니다. 네? 제 팔이라고요?
상완부, 어깨와 가까운 팔뼈에 금이 갔다. 다행히 정도가 심하지 않아 반깁스 후 경과를 지켜보면 된다고 한다. 그 밖에 인대와 근육 손상이 어쩌고, 저쩌고. 끝에 가서는 평정을 유지하던 의사의 미간이 좁아졌다.
“환자분 영양 결핍이 심각해요. 혈압도 무척 낮고요. 수액을 놓긴 했지만, 이거로는 절대 해결 안 됩니다. 식사 제대로 하시고, 충분히 휴식하세요. 뼈보단 이쪽이 더 문제예요.”
“…….”
의사는 수액을 전부 맞고 나면 퇴원해도 된다, 당분간 매일 통원 치료를 하라는 말을 남기고 떠났다. 눈물이 찔끔 나온다. 내가 지금까지 얼마나 조심스레 살았는데. 뼈에 금 간 것도, 링거 맞는 것도 다 처음이다.
“선생님….”
목소리에 힘이 없다. 내가 들어도 불쌍하다.
“응, 현우야. 필요한 거 있니?”
“제 교복….”
한우주가 빌려준 건데 안 보인다.
“아… 바지는 보관 중이야. 상의는 자를 수밖에 없었어.”
미치겠네….
“제 핸드폰은….”
“내가 가지고 있어. 옆에 둘게.”
“감사합니다. 그리고 그….”
“응?”
“한우주랑 인하성 소식 들은 거 있으세요?”
“안 그래도 방금 통화하고 오는 길이야. 큰일은 없는 것 같았어. 이따가 담임 선생님 오실 건데, 그때 여쭤보는 게 좋겠다.”
“네…. 감사합니다.”
인하성이 죽은 건 아닌가 보다. 다행이다. 선생님은 내게 양해를 구하곤 병실을 나가셨다. 여기저기 연락하느라 바빠 보였다.
‘조현우는 진짜로 아무도 없나 봐.’
이렇게 확인 사살 당할 일인가? 보호자는 선생님이고, 가족 얘기는 하나도 없고…. 감기만 앓아도 곁에 아무도 없으면 서러운데, 조현우는 응급실 실려 오고도 혼자다. 혹시나, 싶어 핸드폰을 확인해 본다. 담임 선생님, 조현우 친구들, 그리고 서연준한테 온 연락이 전부…?
‘돌겠다.’
전부인 줄 알았는데 하나 더 있다. 알바처 사장님이다. 어제에 이어 또 지각이냐며 잔뜩 화가 나 있었다. 성실성이 어쩌니 시급을 깎니 마니 하고 있다. 지금도 최저 시급 주잖아. 뭘 깎겠다는 거야. 아픈데 욕먹으니 배로 짜증 난다. 그냥 서연준 문자나 확인했다.
「서연준: 걱정 안 해도 되겠다. 둘 다 크게 다친 곳은 없어 보이는데? 현우 너만 이게 뭐야」
「서연준: 아니 걔네 둘이 다쳤으면 하는 건 아냐;; 뭔 말인지 알지?」
「서연준: 와 인하성 부모님 왔어. 소리 지른ㄷㅁㄴ」
「서연준: 뭔 일인지 보려고 했거든 근데 교무실에서 쫓겨났어.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다. 미안….」
「서연준: 너는 좀 괜찮아? 답장 안 해도 돼. 그냥 걱정돼서 보내는 거야. 치료 잘 받고 푹 쉬어」
“…….”
연락은 고맙지만 답장할 힘이 없다. 핸드폰을 치우고 도로 눈을 감았다. 중간에 알바처 사장에게 전화가 와서 사정을 설명했다. 그리고 알바 잘렸다. 망할 사장. 어차피 팔이 이래서 홀 알바는 못 할 테지만 기분 더럽다. 떠올리는 것만으로 짜증 나 머릿속에서 얼른 치워 버린다.
수액을 다 맞을 즈음에 담임 선생님이 죽과 옷을 사 들고 오셨다. 물을 게 많았는데 오히려 내가 답하는 처지가 되어 버렸다.
한우주와 인하성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나는 왜 그 자리에 있었으며 어쩌다가 끼어들게 되었는지, 싸움이 발생한 이유 같은 것들. 대충 대답하는데 물음이 자꾸 한우주에 대한 것으로 새어 갔다.
“현우 네가 요즘 우주랑 같이 다닌다던데. 오늘은 우주랑 나란히 지각했고.”
“네.”
“우주가 네게 뭔가 요구하거나 강요하는 게 있다면….”
“네?”
“지금은 우리뿐이니 말해도 괜찮다, 현우야.”
기가 찬다. 이건 또 뭐야? 선생님을 바로 보고 단호하게 말했다.
“드릴 말씀 없어요.”
“정말이냐?”
“자리 가깝고, 작년에도 같은 반이었고, 최근에 얘기할 기회가 생겨서 친해진 건데요. 걔가 저한테 무슨 짓을 해요? 왜 그런 걸 가정하고 물어보세요?”
“현우야.”
“한우주 제 친구예요. 우주가 뭐 요구한 거, 강요한 거 없어요.”
“…….”
“절 밀친 건 인하성인데 왜 자꾸 한우주 얘기만 하시는지 모르겠어요.”
“아니 그게. 하성이가 평소에는 참 착실한데….”
“…….”
“아, 이런. 미안하다.”
담임 뭐야? 인하성이 평소에는 착실해? 그게 내 앞에서 할 소리냐? 아무래도 이상하다. 학교 애들도 그렇고, 담임도 그렇고 한우주를 아니꼬워한다. 게임 초반부터 한우주 평판이 이렇게까지 나쁜 적은 없었는데, 또 뭐가 달라진 건지 모르겠다. 답답해도 당장 알 수 있는 건 없었다.
퇴원 절차를 밟고 나오니 밖이 캄캄했다. 담임이 집까지 태워 주겠다는 걸 필사적으로 거절했다. 집 비밀번호를 모르는 것도 있지만 그보다는 담임이랑 더 같이 있기 싫었다.
몸조심해라. 네, 감사합니다. 들어가세요. 상투적인 인사를 마치고 헤어지려는 때에 담임이 다시 나를 불렀다.
“현우야. 하성이랑 하성이 부모님이 병원에 들렀다 가셨나?”
“글쎄요. 병원에선 못 봤는데요.”
“음.”
“무슨 일이신데요?”
“병원비를 이미 누가 계산했다고 해서. 혹시 현우 네 쪽 어른은…?”
“안 오셨어요.”
“…그래, 미안하다. 그, 신경 쓰지 말아라. 그럼 내일 보자.”
그렇게 담임은 신경 쓸 거리를 잔뜩 안겨 주고 가 버렸다. 내게 남은 거라곤 찢어진 교복과 핸드폰, 담임이 사 준 죽 따위가 든 쇼핑백이 전부다. 별게 아닌데도 팔 한쪽을 못 쓰니 유독 무겁고 번거롭게 느껴졌다.
‘어떻게든 입원할 걸 그랬나.’
이제 갈 곳이 없다. 어제까지만 해도 돈이랑 집이랑 가족 없는 신세였는데 오늘은 추가로 팔 한쪽까지 못 쓰게 되었다. 내일은 또 어떻게 될지 두려울 지경이다.
어디든 앉을 수 있는 장소를 찾을 생각이었다. 짐 내려놓고 핸드폰이라도 들여다보게.
그때 갑자기 들고 있던 쇼핑백이 당겨졌다. 순식간에 오른손이 비었다. 저게 내 전 재산인데…. 이제는 소매치기까지 당하는 건가 싶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없었다. 익숙한 얼굴이다.
“죽은 언제 샀대.”
“…너 왜 여기 있어?”
“병문안.”
한우주는 쇼핑백 안쪽을 살피더니 한쪽 눈썹을 찡그렸다.
“이거 내 교복인가?”
“…치료하다가 잘랐대. 미안.”
“지금 너 입은 건 뭔데?”
“담임이 사 준 거. 죽도 담임이 줬어.”
“구려.”
“내 말이.”
아무렇지 않게 내 짐을 들고 평소와 같이 말을 건다. 사소하지만 지금의 내게 가장 필요한 것이었다. 눈물이 핑 돌아 고개를 숙였다.
“뭐 해. 계속 여기 있을 거야?”
“어?”
“길바닥이 좋아?”
“뭐…?”
“길바닥이랑 벽, 천장, 침대 있는 방 중에 어디가 좋은데?”
그걸 질문이라고.
“방이 좋아.”
“그럼 가자.”
“…어디로?”
한우주는 두어 걸음 앞서가다가 내 쪽을 돌아보고는 말했다.
“집.”
한우주가 택시를 부르려 하는 걸 굳이 말렸다. 온종일 누워 있었더니 몸이 찌뿌둥해 걷고 싶었다. 한우주의 집까지 약 40분, 우리는 산책로를 따라 걸었다.
잔뜩 낀 구름이 달을 가려 주변이 유독 어두웠다. 사람은 거의 없다시피 했다. 간간이 보이는 가로등에는 날벌레가 몰려들어 빛 주위를 날아다녔다. 수풀에서 귀뚜라미 소리가 들린다.
정적이 편안했고, 밤공기가 좋았다. 말없이 걷고 있자니 흘끔거리는 시선이 느껴졌다. 한우주가 대뜸 한쪽 팔을 내게 내민다.
“잡아.”
“…뭐?”
“팔이든 소매든 잡아 봐. 너 잘 넘어지잖아.”
“내가 언제 넘어졌다고….”
“어제 집 가다가 넘어질 뻔했잖아.”
“아니 그때는….”
우느라 앞이 잘 안 보여서 그랬던 건데…. 한우주가 자꾸 불안한 눈길을 보낸다. 마지못해 소매를 붙잡고 걸었다. 그리고 또 말이 없다. 그러다 한우주에게 물을 것이 떠올라, 이번에는 내가 말을 걸었다.
“한우주.”
“왜.”
“…혹시 병원비 네가 냈어?”
바로 대답을 안 한다. 시선을 피하기까지 한다.
“따지자면 인하성이 낸 거지.”
“병원에서 인하성 못 봤는데.”
“인하성한테 돈 받을 거잖아. 나중에.”
“…그래서 오늘은? 네가 낸 게 맞고?”
“뭐….”
설마 싶었는데 진짠가 봐. 나는 소매를 조금 잡아당겼다. 한우주가 이쪽을 안 본다. 무시하냐?
“한우주, 너 뭐야?”
“뭐가.”
“왜 이렇게까지 해?”
여전히 이쪽을 안 본다. 묵묵부답이다.
“병원비 내 주고, 지금 너희 집까지 가고 있잖아.”
“병원비는 인하성이….”
“그 말 금지야.”
“…….”
또 말이 없다. 씹힌 건가? 대답할 생각이 없나? 싶을 즈음에 한우주가 말했다.
“넌 왜 그랬는데?”
“내가 뭘?”
“왜 끼어들었냐고.”
“야, 그건….”
“친구라서? 넌 싸움 나면 매번 그렇게 껴들어?”
“그건 아니지….”
“그럼 왜?”
그냥 반사적인 행동이었는데…. 그 이상의 이유를 찾자니 잘 모르겠다. 아프면 다 돈이라고, 평생을 몸 사리며 살아왔다. 싸움판에 무리해서 껴드는 일은 없었다. 보통은 교무실 달려가서 선생님 모셔 오는 쪽이지. 그런데 이번에는 그럴 생각을 못 했다.
…뭐야, 나 왜 그랬지?
재워 준 은혜도 있고, 친근하기도 하고, 이런저런 것들을 떠올려 보지만 납득할 만한 이유가 되지는 못했다. 결국, 이도 저도 아닌 말로 답했다.
“솔직히… 잘 모르겠어.”
또다시 정적이다. 한우주는 무언가를 생각하는 듯 보였고 나는 굳이 대답을 재촉하지 않았다. 그렇게 걷고, 또 걸어 오피스텔 앞에 도착했다. 그리고 한우주가 말했다.
“나도 잘 모르겠다.”
“응?”
“아까 네가 물은 거. 나도 마찬가지라고.”
한우주가 카드 키를 꺼낸다. 오피스텔의 입구가 열리고, 한우주가 들어선다. 나는 어쩐지 마음 한구석이 울렁거려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정체 모를 울렁거림은 오래가지 못했다. 오피스텔 문이 닫혔기 때문이다. 아차, 싶어 한쪽 손을 흔들고, 문을 두드리고, 한우주를 부르며 문 좀 열어 달라 큰 소리를 냈다.
한우주는 태평하게 눈을 끔뻑이며 내 생쇼를 구경했다. 욕설을 조금 뱉고 나서야 문을 열어 준다. 나는 한우주를 원망스레 흘겨봤다.
그리고 한우주가 웃었다. …날 놀리는 걸 즐기는 건가? 불만스러웠지만 웃는 모습이 썩 나쁘지 않아 금방 기분이 풀렸다. 또 놀리면 그때는 화낼 것이라 다짐한다. 지금은 말고 다음에, 다음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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