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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시 주인공이 나를 공략한다-28화 (28/150)

28화

진동이 얕은 잠을 깨운다. 몸을 일으켜 졸음을 몰아내는데 옆에 뭐가 있다.

“미친 깜짝이야.”

간 떨어질 뻔했다. 한우주가 왜 여기 있어? 불편하게 의자에 앉은 채로 자고 있다. 몸 망치려고 작정했나. 방에 좀 돌아가라니까 결국 안 가고….

다시 한번 진동이 크게 울린다. 내 건 아닌데, 진동을 따라 시선을 옮기니 침대 끝자락에 핸드폰이 하나 보인다. 한우주 거다.

“야, 한우주.”

안 깬다.

“한우주. 알람 맞춰 놨어?”

진동이 멈출 줄을 모른다. 거슬린다. 끄고 내가 깨우든가 해야지, 하고 별생각 없이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한우주는 핸드폰에 잠금 하나 안 걸어 놨더라.

“…?”

알람이 아니다. 전화랑 문자가 반복해서 오고 있다. 이 시간에 뭐야. 무심결에 문자 하나를 읽고 말았다.

「새끼야. 내가 만만해?」

…이거 뭐야.

“야, 한우주. 좀 일어나 봐.”

어제는 잘만 일어나더니 딱 하루만 그런 거였나 봐. 어깨를 잡아 흔드니 고개만 툭 떨군다. 깜짝 놀라서 코 밑에 손가락까지 대 봤는데 숨 잘만 쉰다. 아니, 누가 이렇게 죽은 듯이 자냐고.

‘환장하겠네.’

진동이 계속 울린다.

얼핏 봐도 상스러운 욕과 협박으로 도배되어 있다. 불안하다.

‘설마….’

발신인을 확인한다. 저장 안 된 낯선 번호다. 그런데도 정체를 파악하는 게 어렵지 않았다. 문자 내용이 지문이다. 이거 아무리 봐도….

인하성 그 미친 새끼잖아.

문자가 또 왔다.

「내가 혼자 좆 될 거 같냐고」

이 미친놈을 어쩌면 좋지. 이거 지 폰으로 보내는 건가? 협박 증거 갖다 바치는 거야? 아니다. 다른 사람 핸드폰을 훔치거나 뺏은 걸지도 모른다.

진동이 더욱 크게, 미친 듯이 반복해 울렸다.

“악!!”

놀라서 핸드폰을 떨궜다. 전화 왔다. 잠깐만, 잠깐. 위협적인 목소리가 다짜고짜 욕설을 뱉는다.

[개새끼야.]

미친 나 방금 전화 받은 거야? 내가 언제? 터치 잘못했나? 역시 인하성이 맞다. 듣기 힘든 말들이 쏟아진다. 도로 주워서 끊어 버리려 했다. 하필 핸드폰이 한우주가 앉은 의자 밑에 떨어져서 줍기 힘들다.

[받았으면 말을 해. 끝까지 사람 놀려?]

아, 알았다고. 기다리라고. 끊을 거라고.

바닥에 쪼그려 앉아 손을 뻗었다. 하…, 저거 하나 집기가 왜 이리 힘든지. 인하성 때문이잖아. 난 아직 깁스도 못 풀었는데 아오.

핸드폰이랑 열심히 씨름을 벌이는데, 돌연 의자가 바닥에 끌려 움직인다.

“…뭐 해?”

한우주가 깨어났다. 인하성 참 대단하다. 전화로 얠 깨우네.

한우주는 잠이 덜 깬 얼굴로 나를 내려다보며 말했다. 목소리에 졸음이 뚝뚝 묻어난다.

“이게 뭔 소리야?”

…인하성이 너 욕하는 소리.

한우주 목소리가 들렸나. 인하성이 더 큰 소리로 장황한 욕설을 늘어놓기 시작했다.

나는 한우주와 시선을 맞추고 의자 아래를 열심히 삿대질했다. 아래, 아래, 핸드폰 여기 있음. 인하성! 인하성 이 미친놈이 전화함. 입 모양으로만 말한다.

“뭐…, 인성 미친놈 왔다고?”

아, 눈치 없나. 그걸 말로 하면 어떡해.

[야!!!!]

아침부터 이게 무슨 난리야….

내게는 이 난장판을 수습할 힘이 없다. 행동하길 포기하고 주저앉아 버렸다. 한우주가 정신을 차리거나 인하성이 제풀에 지치기를 바랄 뿐이다.

인하성의 욕설이 백색 소음처럼 느껴질 때쯤에 한우주가 자리에서 일어났다. 느릿한 몸짓으로 의자를 치우고 떨어진 핸드폰을 줍는다. 나는 한우주가 그대로 전화를 끊어 버릴 줄 알았다.

“여보세요?”

[한우주!!! 이……한!!……!!, …!]

…저걸 받아서 어쩌려고? 여전히 욕만 하는 것 같은데. 인하성의 말이 띄엄띄엄 들려온다.

[너…!! 오늘……!!, …을 줄 알아!]

“아… 그래?”

저러다 인하성 목소리에 핸드폰 액정이 깨지는 건 아닐까 싶다. 반면 한우주는 지나치게 태연하다.

“안 되겠는데. 너야 정학당해서 상관없겠지만 나는 학교 가야 해서….”

[이런 씹…, …떤데!]

둘이 도대체 뭔 대화를 하는 거야.

“음…, 그 시간도 좀. 저녁 10시 넘어서는 어때?”

뭐. 저녁 10시 넘어서 뭘 하는데. 얜 무슨 친구랑 약속 잡듯이 얘기하냐?

“그래. 그렇게 해. 일단 끊어. 너 너무 시끄러워.”

[……, …. 야 한우주!!!!]

그대로 통화를 끊어 버린다. 핸드폰을 침대 위에 대충 던져 놓고는 하품하기에 여념이 없다. 나는 바닥에서 주섬주섬 일어나 침대 위에 자리 잡으며 물었다.

“…인하성이랑 뭔 얘기 한 거야?”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못 한 것에 가까울 것이다. 입가를 가린 채 하품을 열 번은 더 했으니까. 이젠 눈가가 아예 촉촉하다. 와, 세수도 안 한 몰골로 잘생기기 참 힘든데.

한우주는 가까스로 졸음을 참아 내고 말했다.

“이따 만나자고….”

“뭐?”

“좀 보자고 하던데?”

“어?”

불안하다. 한우주 이 녀석 설마….

“그래서 만나기로 했어?”

“응.”

“저녁 10시 넘어서?”

“응.”

“미쳤어?!”

“아니.”

마지막 건 물음이 아니었는데. 한우주 얘는 어제 내 말을 어디로 들은 거야. 밤에 그 새끼를 만나겠다고? 맞아 주려고 작정했나?

“어쩌자고 그랬어? 걔가 너랑 만나서 뭘 하는데. 협박하거나 패거나 둘 중 하나 아니냐고.”

혹은 둘 다일 수도 있다.

“그렇겠지.”

아, 말하기 지쳐. 침대에 풀썩 누워 버렸다. 한우주는 침대의 적당한 곳에 걸터앉아 나를 내려다봤다.

“조현우.”

“왜.”

한우주의 눈빛이 사뭇 진지해 나도 모르게 미간을 좁힌다. 내 얼굴을 뚫어져라, 보고는 하는 말이….

“너 눈곱 꼈어.”

“야!!!”

난 심각해 죽겠는데 장난하나? 누운 채로 팔만 뻗어 한우주 팔을 찰싹 때렸다. 짜증스럽게도 한우주가 웃음을 터트렸다. 미워 죽겠다. 한우주는 멍청이다.

“뭐가 웃겨? 그만 웃어.”

아예 옆구리를 세게 찔러 버린다. 한우주는 아랑곳하지 않고 마저 웃다가 입을 열었다.

“조현우 네가 그랬잖아. 어떤 식으로든 보복하려 들 거라며.”

“기억하네. 내 말은 아예 까먹은 줄 알았어.”

마음이 단단히 상해 대놓고 이죽거리는 투로 말했다. 한우주는 신경도 안 썼지만.

“모르고 당하는 것보다는 낫잖아. 만날 시간, 날짜, 장소 다 정해 버렸는데.”

아니. 진짜 약속 잡은 거야? 이게 무슨 약속이야? 뭐 맞짱 뜨자는 거야?

“정직하게 나타나 주면 고마운 일이지. 인하성이 그 정도로 멍청할까 싶지만.”

“아….”

가만히 인하성을 돌이켜 본다. 솔직히 걔는 멍청한 게 맞다. 극단적 스탯 몰빵캐라고 해야 하나….

“멍청한 거 맞을걸….”

혹여 한우주가 인하성에 대해 어떻게 그렇게 잘 아느냐, 하고 다시 물을까 봐 눈치를 살피며 말했다. 다행히 한우주는 더 파고들지 않고 수긍했다.

“그러면 다행이네.”

다행인 건가? 한우주는 인하성이 무섭지도 않은가. 아니, 그보다….

“정확히 언제 보기로 한 거야? 날짜는?”

“오늘 밤 10시쯤?”

“해 다 지고 보냐. 위험하게.”

“학교랑 병원 다녀와서 저녁 먹고 나면 그쯤 될 것 같아서 그랬는데.”

“…….”

어떻게 사람이 이럴까. 나는 모든 게 걱정스러운데, 한우주는 직접적인 보복 대상이 되고도 눈 하나 꿈쩍하지 않는다. 저번에 자기도 인하성한테 귀한 얼굴 맞았으면서.

한우주가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대뜸 내 쪽으로 손을 내밀었다. 한우주가 한우주 한다. 영문을 모르겠음.

“뭐 해? 일어나.”

아, 잡고 일어나라고? 뭘 이렇게까지…. 잠깐의 망설임 후 어쩔 수 없이 손을 잡았다. 한우주가 무안할까 봐 배려한 것이다.

강한 힘이 나를 끌어 일으킨다.

“늦는 거 싫어하잖아.”

말하고는 손을 놓는다. 준비하고 나와. 건네는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한우주는 먼저 방을 빠져나갔다.

“…….”

오른손이 뜨겁다. 맥박이 뛰는 감각이 적나라하게 느껴졌다. 인하성 때문에 너무 긴장했나?

‘몰라. 한우주도 무슨 생각이 있겠지.’

큰 숨과 함께 걱정을 몰아낸다. 그런데도 몸은 좀처럼 진정할 생각을 않았다. 떠나지 않는 두근거림이 거슬려 눈을 질끈 감고 생각했다.

아…, 조현우 몸 진짜 약한가 보다.

***

이제는 수단 방법 안 가릴 거야. 무슨 수를 써서라도 서연준과 한우주를 붙여 놔야지. 그리 결심한 지 하루가 채 지나지 않았다. 나는 나름 노력했다. 진짜다. 그런데 망할 세상이 나를 또 방해했다. 아예 말아먹은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내 목표에 한참 못 미치고 말았다.

우선, 한우주와 인하성의 ‘저녁 약속’이 내내 마음에 걸렸다. 인하성 생각을 안 하고 싶어도 그럴 수가 없다. 온갖 사람의 입에서 그놈 이름이 떨어지질 않는다.

그래, 떠들어라. 나는 신경 안 쓸 거야. 진짜로.

얌전히 조력자의 의무나 이행하련다. 졸기에 바쁜 한우주를 두고 교실을 나섰다. 6반에서 서연준을 데려올 계획이었다.

그런데 하필 그때 6반 교실 바로 앞에서 한 무리가 쌉소리를 지껄이고 있더라. 타이밍 참 더럽다. 인하성 이야기야 뭐, 어떻게든 넘길 수 있다. 무시하고 갈 길 가려던 때에 한우주의 이름이 들렸다.

이야기의 주제는 인하성에서 한우주로 옮겨 갔다. 개소리를 추리고 추려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다.

인하성이 건드린 게 한우주라 저 꼴 난 거란다. 한우주 쟤는 분명 뒷배가 있다.

속이 뒤틀리면서도 따지고 보면 아예 틀린 말은 아니라 얌전히 있었다. 그런데 이 새끼들. 정도를 모르더라.

“야, 솔직히 존나. 한우주는 사람 하나 묻어도 멀쩡히 학교 다닐걸?”

울컥, 속에서 부아가 치민다. 감정이 나를 휩쓸어 저 망할 놈 앞에 데려다 놓는다.

“야.”

“어, 뭐야. 조현우?”

어쩐지 목소리가 익숙하다 싶었는데 오재영이다. 눈앞의 얼굴이 당혹감에 흠뻑 젖어 들었다. 그러나 난 그런 걸 살필 만큼 제정신이지 못했다.

“개소리 작작해. 선 못 지킬 거면 입 꿰매고 살든가.”

오재영이 입을 벙긋거리다 오만상을 찌푸린다. 어떻게든 진정하려는 것처럼 보였다.

“조현우. 너 한우주 때문에 이러냐?”

“네가 말 같지도 않은 말을….”

“징그럽게 붙어 다니더니 쌍으로 돌았나.”

내 말을 끊고 받아치는 말에 울분이 가득하다. 아니, 한우주한테 못 할 말 한 건 오재영인데 뭐가 저렇게 억울한 것인지.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치며 말했다.

“그래서 지금 네 잘못이 없다고? 넌 뭐가 그렇게 당당하냐?”

“누가 할 말인데.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네가 이렇게 좆같이 굴면 안 되지. 썅…. 너 허지훈한테 일부러 연락 안 하지? 꼴에 양심은 찔리나 봐?”

오재영이 나를 향해 한 걸음 내디뎠다.

아니, 좆같이 군 사람이 누군데…. 오재영의 눈가가 붉어져 말문이 막혔다. 허지훈. 걔 이름을 듣는 게 몇 번째더라.

오재영은 코앞에서 내 멱살이라도 잡을 기세였으나 욕지거리만 짧게 뱉고 말았다. 오재영이 내게, 아니 이 몸에 해코지할 것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가까이서 본 오재영은 진심으로 화가 났다기보단 속상함을 이기지 못하고 발악하는 것만 같아서. 그래서 더는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그러나 멀리서 보기엔 충분히 위협적인 것으로, 싸움이나 시비 비슷하게 보였을 수는 있겠다. 누군가 내게서 오재영을 떼어 내고, 사이를 가로막아 선다.

서연준이다.

“…지금 뭐 하는 거야?”

“넌 또 뭐야. 신경 꺼.”

“안 되겠는데. 나도 현우한테 볼일 있어서.”

“지랄 말고 꺼지라고.”

아, 더 정신없어졌잖아. 일단 이 난장판부터 어떻게 해야 할 텐데 그럴 자신도 정신력도 없다. 그때쯤 강준희가 손에 묻은 물기를 털며 다가왔다.

쟤는 무슨 오자마자 하는 일이 오재영 입 막는 거다. 아니, 방금 와서 이게 뭔 상황인지도 모를 텐데. 오재영이 발버둥을 친다.

“오재 너는 눈만 떼면 쌈박질이야.”

…그러곤 그대로 끌고 가 버렸다. 뭐 나한텐 특별히 말 얹은 것도 없다. “나중에 얘기하자.”라고 한 게 다다. 오재영 무리는 자연스레 흩어졌고, 서연준과 나만 덩그러니 남았다.

“현우. 괜찮아?”

“어? 어…, 응. 괜찮은데….”

정신이 멍하다. 조현우, 허지훈. 이상할 정도로 안 좋은 한우주의 평판. 오재영이 뱉은 말들. 모든 것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부유할 뿐 실마리가 잡히지 않아 답답할 뿐이다.

‘한우주한테 묻기는 좀 그렇겠지.’

너 소문 안 좋더라. 무슨 일 저질렀어? 허지훈 누군지 알아? 음, 정신 나가지 않고선 못 하겠는데. 바로 곁의 서연준을 본다.

…얘한테는 조금 떠봐도 괜찮지 않을까. 그냥, 한우주 관련해서 어떤 소문이 돌고 있는지라도 알 수 있으면 좋겠는데.

“저, 연준아.”

“응?”

“…잠깐 시간 내 줄 수 있어?”

수업 시작까지 남은 시간은 5분. 촉박하지만 몇 마디 주고받기에는 충분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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