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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연시 주인공이 나를 공략한다-110화 (110/150)

110화

나는 숫자 ‘3’이 싫다. 원래는 별 감정 없었는데 오늘부터 싫어하기로 했다. 어디선가 그런 말을 주워들었던 것 같다. 3은 완벽한 숫자라고. 하나, 둘도 아닌 세 개의 점을 연결함으로써 처음으로 삼각형이라는 도형을 만들어 낼 수 있고 신화나 이야기 속 인물들은 세 명이 묶여서 나오는 경우가 많으며 음과 양 그리고 사람까지 더해 천지인이 어쩌고저쩌고, 아무튼 세상은 3을 좋아한다.

망할… 뭐가 완벽한 숫자냐. 한우주, 서연준, 나. 이 세 명의 조합이 이토록 지랄 맞았던가? 마치 숫자 3이 만들어 낸 삼각형의 모서리에 계속해서 쿡쿡 찔리는 것 같은 기분이다. 심기가 불편하다 못해 돌아가시겠다. 그냥 둘을 떨쳐 내고 하나가 되고만 싶다.

“오늘따라 왜 이래…. 너 이런 거 싫어하잖아.”

“별로? 싫어한 적 없어. 그러는 너야말로 연서한테 이런 거 위험하기만 하고 하나도 재미없다고 하지 않았나?”

“그건 연서가 키도 작고 탈 나이가 안 되는데 자꾸 고집을 부리니까….”

“아, 그러니까 연서한테 거짓말을 했다?”

“와, 한우주 하얀 거짓말이라는 말 몰라?”

울고 싶다. 개 같은 롤러코스터. 3이 완벽한 숫자라면, 모든 기구의 좌석을 삼 인석으로 만들었어야지. 어째서 셋이 나란히 탈 수 없게 해 놓은 걸까? 그보다 쟤네는 진심으로 저러는 건가? 유치해서 못 봐 주겠다. 도대체 저 대화에 어떻게 끼어들어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어서 입 다물고 있다 보니 어느새 대기 줄이 전부 사라졌다. 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입을 열었다.

그래, 그냥 하나를 없애자. 그러면 모든 게 해결된다.

“한우주, 서연준.”

둘이 동시에 나를 돌아봤다.

“너희 둘이 타.”

“현우야?”

“뭐? 싫어.”

서연준은 당황했고, 한우주는 대놓고 인상을 구기며 거절했다. 나는 분노를 담아 입꼬리를 올리며 말했다.

“나 갑자기 두통 와서 못 타겠거든. 그냥 나 빼고 즐겨.”

이제 무슨 말을 할지는 뻔했다. 아픈 사람 어떻게 혼자 두냐, 길게 헛소리 늘어놓다가 결국 셋 다 안 타는 불상사나 벌어지겠지.

“우리 여기 얼마나 오래 서 있었는지 알아? 대기 시간 엄청나게 길었어. 설마 안 타겠다거나 그런 말은 하지도 마. 그러면 미안해서 바닥에 머리 박고 쓰러질 거 같거든?”

그래, 우리는 가장 줄이 긴 놀이기구부터 타기로 했고 그 결과 무려 40분을 삼 인석도 없는 이 망할 기구 앞에 서 있었다. 그 말인즉 나는 40분 동안, 이 바보 같은 말씨름을 듣고 있었다는 거다. 인내심이 한계에 다다른 나의 입이 제대로 뚫려 버렸다.

“둘이 타. 난 너희 구경할래. 그게 더 재밌을 것 같아.”

“…….”

“혀, 현우야. 화났어?”

“아니. 내가 왜 화가 나? 됐으니까 그냥 너희끼리 좀 즐겨.”

“으응….”

나는 그대로 줄에서 이탈해 팔짱을 끼고 둘을 노려봤다. 한우주와 서연준은 마지못해 기구에 올랐다. 요즘 들어서 내 성격이 점점 더 나빠지는 것 같다. 기껏 놀이공원까지 와서, 그것도 가장 대기가 긴 롤러코스터에 나란히 앉아 무표정한 얼굴로 서로 다른 곳을 보고 있는 두 사람의 꼴을 보니 왠지 즐거워 웃음이 새어 나왔다.

롤러코스터가 출발하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가파른 경사 위를 올랐다. 마침내 가장 높은 곳에 도달하여 떨어지는 순간의 긴장감이란, 보는 나까지 손에 땀을 쥐게 했다. 나는 롤러코스터가 레일 위에서 360도로 회전하는 모습을 보며 정말로 안 타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솔직히 말하자면 바이킹은 타 본 적 있어도 롤러코스터는 타 본 적 없다. 딱히 무서워서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줄도 길고… 그 시간에 다른 걸 타지, 싶어서…….

롤러코스터의 속력이 다시 느려지고 제자리로 돌아올 즈음 나는 출구 쪽에서 둘을 기다렸다. 그리고 터덜터덜 나오는 두 사람을 보자마자 정말로 웃음이 터져 버리고 말았다. 쟤들은 자기들이 얼마나 낡고 허탈해 보이는지 모를 거다. 날 이상한 사람 보듯 하는 한우주의 눈길까지 웃겼다. 두 사람이 힘 빠진 걸음으로 나를 향해 걸어왔다.

“수고했어. 그리고 너희 둘 다 머리 완전 엉망이야.”

“아… 진짜?”

서연준이 급하게 제 머리를 정리했다. 한우주도 머리를… 정리하려는 건가? 그런 것 같긴 한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뭐 하는가 싶을 정도로 건성이다. 하늘을 향해 뻗친 몇 가닥 머리가 주인의 손길에 닿지 못하고 처량하게 솟아 있었다.

“한우주, 거기 말고 오른쪽.”

“뭐… 여기?”

“아니. 너무 갔어. 좀 더 왼쪽에… 아 진짜. 그냥 이리 와 봐.”

한우주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헛다리만 짚었다. 답답함에 한우주의 머리카락을 정리해 주려 손을 뻗었는데, 다른 이의 손과 부딪히고 말았다. 서연준이었다.

“이럴 때 보면 한우주도 참 칠칠맞아. 그렇지?”

“어? 어… 응.”

나는 뻘쭘하게 손을 거두었다. 뒤늦게 내가 하려던 일을 자각하곤 얼굴에 열이 올랐다. 뻗치면 뻗친 대로 두면 될 것을 한우주가 뭐가 예쁘다고 머리를 만져 주냐…. 어쨌든 한우주의 솟은 머리카락은 서연준의 손길에 안정을 되찾았다. 한우주가 서연준의 손을 툭 치우며 말했다.

“뭐 하냐. 징그럽게.”

“내가 뭘?”

“아, 진짜. 너희 오늘따라 왜 이래? 한우주 너는 친구한테 징그럽다는 말이 뭐냐?”

한우주가 불만을 터트리자 40분의 악몽이 되살아났다. 기껏 돌아온 기분을 다시 망치기 싫어서 얼른 말리고 들었다. 한우주는 조금 삐친 것처럼 보였지만 다행히 말을 더 얹지 않았다.

한우주와 서연준은 참 나쁜 추억을 쌓았다는 듯 얼른 자리를 벗어나고 싶어 했다. 그걸 굳이 붙잡아 사진 부스로 끌고 갔다. 기껏 놀이공원에서 사진까지 찍어 주는 걸 보지도 않고 가려 들다니. 나는 두 사람이 롤러코스터의 정점에서 떨어져 내려오는 순간이 포착된 사진을 보곤 말 그대로 박장대소를 했다.

“야, 진짜… 흑, 너희 진짜 뭐야? 아, 웃겨서 짜증 나….”

“뭐가 그렇게 웃겨?”

“너희는 안 웃겨? 난 너무 웃긴데…. 이거 사진 뽑아 가자.”

둘은 질색을 했지만 어떻게든 박박 우겨 사진을 딱 한 장 인화했다. 이것도 다 추억인데. 한우주는 익숙하니 그렇다 치겠는데, 서연준 얘도 생각보다 낭만이 없다. 두 사람은 그런 사진 가질 생각 없다며 한사코 거절해 대기에 어쩔 수 없이 내가 가졌다. 덕분에 방금까지 있던 짜증이 전부 날아갔다.

거의 도망치듯 떠나는 한우주와 서연준의 뒤를 따르며 사진을 다시 흘끔 쳐다봤다. 어쩌면 롤러코스터를 타는데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지? 한우주는 앞머리가 다 까진 채로 마치 수양을 온 사람처럼 무표정하게 있었다. 서연준은 눈이 반쯤 감겨 있었는데, 어쨌든 둘 다 웃겼다. 원래 이런 사진은 웃기게 나와야 좋은 건데. 쟤들이 뭘 몰라도 너무 모른다. 나는 조금 신나서 두 사람 사이의 넉넉한 틈에 끼어 들어가 보폭을 맞추어 걸으며 말했다.

“연준아, 한우주. 나 배고파. 아침도 안 먹고 왔단 말야.”

서연준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대답했다.

“아, 정말? 그럼 뭐 식사라도 할까?”

“음… 아니. 식사는 괜찮고….”

나는 아직 놀이기구 하나도 못 탔는데, 지금 밥을 먹어 버리면 놀이기구를 어떻게 타겠어. 적당히 요기를 때울 정도면 충분하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에 한우주를 보며 짓궂게 웃어 보였다. 한우주가 한쪽 눈썹을 까딱였다. 나는 다시 서연준 쪽을 보고 물었다.

“군것질하고 싶어. 연준이 너 추로스 좋아해?”

“응? 좋아하지. 그럼 추로스 먹을까?”

“뭐야. 왜 나한테는 안 물어봐?”

한우주의 입가가 삐뚜름해졌다. 안 좋아할 게 뻔해서 묻지 않은 건데.

“아… 한우주 너 추로스 좋아해…?”

예의상 한 번 묻자, 한우주가 인상을 구기며 말했다.

“어. 좋아해.”

***

“오늘 미세먼지 농도 봤어?”

“아니. 그건 왜?”

“안 좋더라.”

“아하.”

“이렇게 야외에서 팔면 어떻게 해. 여기 묻은 설탕보다 반죽에 섞인 미세먼지가 더 많을걸.”

미치겠네. 한우주는 정말이지, 내가 어제 상상한 그대로 굴었다. 얘는 우리가 추로스를 어디 실내 카페에서 사다 먹으려는 줄 알았나 보다. 야외에서 음식을 파는 행태에, 거기에 먼지가 붙기 쉬운 초콜릿 시럽까지 묻히는 걸 보곤 저런 게 위생법에 안 걸리느냐며 경악을 했다. 덕분에 먹던 추로스를 뿜을 뻔했다.

한우주는 결국 추로스를 먹지 않겠다 선언하더니 내 옆에서 자꾸만 꿍얼거렸다. 그에 내가 웃을 때마다 영문을 전혀 모르겠다는 듯이 표정을 굳힌 채 나를 지그시 바라보기만 했다. 나는 한우주의 말에 적당히 대꾸만 하며 웃다가 마지못해 제대로 된 한마디를 건넸다.

“응…. 나는 당장 이거 먹고 행복하게 단명할 거니까 한우주 너는 건강한 것만 먹고 오래오래 잘 살아.”

말에는 웃음기가 실려 있었고, 누가 들어도 농담이었다. 그런데 한우주가 걸음을 멈췄다.

“한우주 왜 그래?”

나와 서연준도 따라서 걸음을 멈추며 한우주를 돌아봤다. 한우주는 나를 한껏 노려보더니 척척 걸어와 허리를 숙여 내 손에 들린 추로스를 두 입이나 먹어 버렸다.

이… 이게 무슨….

내 추로스의 3분의 2가 사라졌다. 나 얼마 먹지도 못했는데……. 억울함에 눈물이 찔끔 다 났다.

“한우주 너 뭐한 거야!”

한우주는 입 안 가득한 추로스를 오물오물 야무지게 씹어 삼키느라 말이 없었다. 이 도둑놈. 있는 자식이 더 한다고들 그러더니, 진짜였어.

“내 추로스!”

“아니… 한우주, 너 왜…. 현우야. 내가 새로 하나 사 줄게.”

꿀꺽, 입 안 가득했던 추로스를 순식간에 삼킨 한우주가 말했다.

“안 돼. 오늘은 밖에서 파는 거 먹지 마.”

“뭐?! 그럴 거면 놀이공원을 왜 오냐!”

“몰라. 아무튼 먹지 마. 너 사는 것마다 내가 다 뺏어 먹을 테니까 그렇게 알아.”

“와씨, 나쁜 새끼. 진짜 나쁜 새끼….”

이런 극악무도한 놈을 봤나? 밥도 못 먹고 나온 사람 간식을 이런 식으로 뺏어 먹는다고? 허망하게 있는 동안 한우주는 내 손에 들린 작고 소중한 추로스까지 가져가 버렸다.

“야!!!”

나는 놀이공원이 떠나가라 소리를 질렀고, 결국 우리는 적당한 카페에 들어가 비싼 과일 와플을 세 개 시키고 음료수까지 사서 마셨다. 당연하게도 계산은 전부 한우주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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