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이물질은 이물질에서 벗어난다 7화 (20/29)

7.

“수환 씨, 정신 차려 봐요. 수환 씨?”

“으…….”

바 테이블 위에 그대로 엎어져 버린 수환의 몸을 흔들던 윤현이 난감한 얼굴로 그를 내려다봤다.

“이거 어쩌지?”

윤현과 수환은 약속대로 퇴근한 다음 같이 밥을 먹었다. 속이 좋지 않다고 투덜거리던 수환은 막상 밥이 나오자 걸신들린 듯이 음식을 해치웠다. 일주일은 굶은 사람처럼 먹는 모습에 윤현이 피식 웃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좋아져서 집에 간다는 수환을 꼬셔서 바까지 데려왔다. 안 그럴 것같이 생겨서 어둑하고 모던한 분위기의 바를 연신 두리번거리던 수환은 술은 절대 마시지 않을 거라고 펄쩍 뛰었다.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수환에게는 논알코올 칵테일을, 자신은 평소 즐겨 마시던 진토닉을 주문했다. 수환은 맛있다며 논알코올 칵테일을 홀짝홀짝 마셨다.

그러다가 다음 술을 주문하고 윤현은 화장실이 급해 자리를 비웠는데, 다녀와서 보니 수환이 논알코올이 아닌 자신이 주문한 다른 칵테일을 마시고 쓰러져 있었다. 당황한 윤현이 다가와서 정신을 못 차리는 수환을 막 흔들고 있었던 참이었다.

“아니, 이거 한 잔 마셨다고.”

“으으응.”

물론 그가 마시는 칵테일은 다른 것들보다 알코올 함량이 좀 높긴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취할 정도는 아니었다. 맥주 몇 캔 마신다고 취하는 사람들이나 할 법한 행동이었다.

역시 소문이랑 너무 다르단 말이지. 처음 인턴 했을 때와도 분위기가 너무 다르지 않나?

한참 전부터 품던 의문에 고개를 갸웃거리던 윤현이 한숨을 내쉬고 종업원에게 물 한 잔을 부탁했다. 차가운 얼음물이 곧바로 테이블 위에 올라왔다.

“수환 씨, 물 한 모금만 마셔 봐요. 응?”

“으응, 시러.”

“한 모금만 마셔 보라니까요.”

마치 아이를 달래듯 부드럽게 말한 윤현이 수환의 입가에 물잔을 대주었다. 멍하니 눈을 깜박이던 수환이 초점 없는 눈으로 윤현을 바라보았다.

“승혀나.”

“승혀… 승현? 약혼자분 말하는 거예요?”

“나 너무… 힘들어.”

“으음.”

울음을 터트리며 칭얼거리는 수환을 윤현이 난감한 눈으로 내려다봤다. 어쩐다. 빨리 집에 돌려보내야 할 것 같은데. 집 주소도 모르고, 물어 봤자 말해 주지도 못할 것 같고.

끙, 하고 잠시 고민하던 윤현이 물잔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사과하며 수환의 품을 뒤졌다.

“미안해요. 잠시만.”

“으응.”

양복 포켓 안쪽에 딱딱한 게 만져졌다. 윤현이 그걸 얼른 꺼냈다. 바로 수환의 핸드폰이었다. 잠금만 풀면 어떻게든 그의 약혼자와 연락을 취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응?”

그런데 핸드폰을 손에 쥐자마자 맹렬하게 진동이 울리기 시작했다. 화면을 보니 누군가에게 전화가 오고 있었다.

[승현이♡]

그 약혼자가 확실하겠군. 윤현이 피식 웃으며 전화를 받았다.

“여보…….”

―형, 지금 어디예요?

“…….”

―형?

딱딱한 목소리에 윤현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러다가 간신히 정신을 차리며 대답했다.

“아, 이승현 씨 맞죠? 저는 수환 씨 회사 동료인 차윤현입니다. 전에 한 번 뵀었죠?”

―…….

“이승현 씨?”

침묵하는 승현에게 의아해하며 재현이 소리 높여 물었다. 아무래도 바 안이 어수선해서 자신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았나 싶었다. 하지만 곧 낮은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흘러나왔다.

―형은요?

“아, 그게, 수환 씨가 지금 좀 취해서요. 데리러 와 주셔야 할 것 같은데.”

―…취했다고요.

“네, 여기가 어디냐면…… 어?”

위치를 알려 주려던 윤현은 전화가 뚝 끊기자 당황하며 핸드폰을 뺨에서 뗐다.

뭐지? 전화가 끊겼나? 지하에 있는 곳이라 전파가 불안정한 건가?

나가서 다시 연락해 보려던 윤현은, 그러나 문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그대로 제자리에 우뚝 섰다. 묘하게 익숙한 사람이 막 바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어… 이승현…… 씨?”

놀란 눈으로 자신을 쳐다보며 손가락으로 가리키는 윤현을 승현이 무심한 얼굴로 응시했다. 그리고 곧바로 시선을 돌리며 윤현을 지나쳤다.

“형, 일어나 봐요.”

“으… 으윽.”

수환에게 다가간 승현이 손을 올려 창백하게 질린 뺨을 툭툭 쳤다. 하지만 이미 한껏 취해 제정신이 아닌 수환은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고 괴로운 신음만 흘렸다. 승현이 그 모습을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자, 어서 집에 가요.”

“흐으.”

하는 수 없이 억지로 수환을 일으킨 승현이 자신의 몸에 기대게 했다. 지켜보던 윤현이 얼른 곁으로 다가왔다.

“혼자서는 힘드실 텐데, 제가 도와드릴…….”

“됐습니다.”

냉정하게 말한 승현이 수환의 엉덩이를 손으로 받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수환이 무의식중에 신음하며 승현의 목에 팔을 둘렀다. 묘하게 서로 익숙해 보이는 모습이었다.

“어어.”

분명 넘어질 거라고 생각했건만, 승현은 윤현에게 핸드폰을 되돌려 받은 다음 그 상태로 앞으로 척척 걸어갔다. 약혼자가 분명 오메가라고 하지 않았나? 뭐 저렇게 힘이 세지?

윤현이 어이없는 눈으로 사라지는 두 사람을 쳐다봤다.

바에서 나오자마자 승현은 이를 으득 갈았다. 안 그래도 페로몬 조절 약으로 인해 불안정한 그의 페로몬이 사방으로 튀었다. 그러자 그가 안고 있는 몸이 움찔거리며 잘게 떨었다.

“제길.”

욕설을 짓씹은 승현이 페로몬을 갈무리했다. 남자가 남자를 안고 걸어가는 기묘한 모습을 사람들이 놀라 쳐다봤지만, 승현은 개의치 않으며 계속 걸어갔다.

“후…….”

집에 도착해 수환을 침대에 눕힌 승현이 참았던 숨을 길게 내쉬었다. 요즘 들어 체력이 더 붙은 것 같긴 했지만, 그래도 알파인 수환을 안고 다니는 건 꽤 힘에 부치는 일이었다. 몸을 일으킨 승현이 침대에 비뚜름하게 누워 있는 수환을 내려다봤다.

“으음.”

술에 취한 수환은 완전히 곯아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몸을 꽉 조인 양복이 불편한 듯 투정 섞인 신음을 내뱉으며 몸을 비틀었다. 승현이 그 모습을 보다가 다시 한숨을 내쉬었다.

“하…… 진짜.”

고개를 숙인 승현이 수환의 넥타이를 잡아당겼다. 손쉽게 풀어내 옆에 두고 정장 재킷을 벗겼다. 그리고 셔츠의 단추도 하나둘씩 풀기 시작했다.

지금 상황이 승현도 어이가 없었다. 오늘은 하필 늦게까지 시험이 있어서 가뜩이나 정신이 없었는데, 회사 동료와 밥 먹고 오겠다는 메시지를 보자 저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그래, 그럴 수 있다. 자신도 시험 기간이라 소홀해졌고, 페로몬 문제 때문에 수환이 저를 꺼리는 느낌이 나서 거리를 두려고 했던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술에 떡이 되도록 회사 동료와 마시는 걸 묵인해 줄 생각까진 없었다. 수환의 옷을 벗기던 승현이 또다시 으득, 하고 이를 갈았다.

역시 그 인간이 마음에 안 든다. 차윤현 대리라고 했었나. 어떻게든 그놈을 수환에게서 떼어놓을 방법이 필요했다. 승현의 눈이 위험하게 빛났을 때였다.

“응… 승혀… 나.”

“형.”

정신을 차린 수환이 느릿하게 눈을 깜박였다. 그리운 향기가 코끝을 스쳤다. 무의식적으로 손을 뻗은 수환이 승현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 내렸다.

“하아… 승혀나.”

“읏… 형.”

승현의 목에 얼굴을 파묻은 수환이 킁킁거리며 짐승처럼 냄새를 맡았다. 폐 속까지 들이차는 페로몬에 눈앞이 아찔해졌다.

그리웠다. 정말 너무 그리웠다. 매일 온몸이 잠식되도록 이 페로몬을 맡았었는데, 며칠에 지나지 않지만 떨어져 있어서 너무 속상했다. 다시는 떨어지고 싶지 않았다. 수환이 애타는 마음으로 승현의 몸을 꽉 끌어안았다.

“승혀나… 내가 다 잘못해써.”

“…뭘 잘못했다는 건데요?”

“그게… 흣.”

“응? 말해 봐요.”

수환이 취해서 횡설수설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승현은 저열한 질투와 독점욕으로 엉망이 되어 가는 머릿속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 승현이 손을 뻗어 수환의 한쪽 손을 잡아 침대 위에 내리눌렀다.

“내가 바쁜 틈을 타 다른 남자랑 술 마신 거? 취해서 뻗은 모습 보인 거?”

“흣.”

“나랑 안 되니까 그 알파한테 박아 달라고 부탁하려 했어요?”

“아… 아니, 읏.”

사나운 페로몬이 수환의 몸을 찔렀다. 수환은 숨도 제대로 쉬지 못하고 괴로워했다. 그런 수환을 내려다보며 승현이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말했잖아요. 난 절대로 형이랑 헤어질 생각 없다고. 내가 빈말한 줄 알았어요?”

“아!”

콰득, 입을 벌린 승현이 이빨로 수환의 목을 콱 깨물었다. 강렬한 통증에 수환이 눈을 크게 뜨며 신음했다. 승현은 아랑곳하지 않으며 수환의 목 주변에 계속해서 이를 박았다.

고작 며칠 지났다고 자신이 새긴 흔적들이 옅어지고 있었다. 자신은 수환과 달리 취하지도 않았는데, 마치 이성을 잃은 사람처럼 눈앞이 새하얘졌다. 만약 취해서 쓰러진 수환의 몸에 다른 놈이 만든 흔적이라도 있었다면 자신이 무슨 짓을 했을지 알 수가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그 알파가 두 번 다시는 접근하지 못하게 만들고, 수환이 절대 이 방에서 나가지 못하게…….

“흣, 승혀나. 아파.”

“……!”

고통에 몸을 비트는 수환을 보며 승현이 두 눈을 크게 떴다.

방금 자신이 무슨 생각을 한 거지. 식은땀이 도르륵, 승현의 이마에서 흘러내렸다.

그리고 그제야 조금 정신이 들었다. 질투심에 사로잡혀 추한 생각을 하고, 취해서 제정신이 아닌 수환을 겁박하려 들었다. 속으로 혀를 찬 승현이 몸을 일으키려고 했다.

“오늘은 이만 자요. 형, 윽!”

그러나 다시 밑으로 잡아끄는 손길에 속절없이 엎어지고 말았다. 승현이 당황한 눈으로 수환의 얼굴을 쳐다봤다.

“시러, 가지 마…… 승혀나.”

“형.”

“키스해 줘, 빨리…….”

승현의 옷을 붙잡은 수환이 달뜬 얼굴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수환을 바라보는 승현의 눈이 욕망으로 물들었다. 자신 역시 본의 아닌 금욕이 달가웠을 리 없었다. 한 달 넘는 시간 동안, 매일같이 수환을 안았다. 수도 없이 그와 키스하고 몸을 만졌다. 그리고 마음껏 욕망을 분출했다. 수환을 안지 못한 며칠은 지난 인생에서 제일 괴로운 시간이었다.

아니, 다 핑계였다. 그저 수환이 자신의 곁에 있으면 모든 게 다 상관없었다. 그의 옅은 페로몬이 미치게 그리웠다. 승현 역시 참지 못하고 수환의 입술에 제 입술을 부딪쳤다.

“흣, 흐읏.”

“하아, 제길.”

숨 쉴 틈 없이 맞닿은 서로의 코가 형편없이 눌릴 정도로 격정적인 키스였다. 승현은 숨도 잘 쉬지 못하는 수환의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불분명한 발음으로 욕설을 짓씹은 승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의사가 했다는 경고가 순간 그의 머릿속을 스쳤다. 계속 이렇게 관계를 이어 나가면 몸에 어떤 이상이 올지 알 수 없을 거라는 말.

그럼에도 눈앞에 있는 유혹을 거부할 수 없었다. 힘겨워하는 수환의 입술을 제 입술로 크게 덮으며 마음껏 혀를 밀어 넣었다.

“흐읏, 승혀…….”

“하… 혀엉.”

잔뜩 뭉개진 발음이 서로의 입안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혀를 문지르며 질척거리는 소리가 대신했다. 승현은 그저 호응하기 급급한 수환의 혀를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게 옭아맸다.

빈틈없이 맞댄 수환의 혀에서 알싸한 알코올 맛이 느껴졌다. 하지만 이내 달콤한 맛에 짓눌려 사라졌다. 갈수록 그의 혀는 단맛만을 지독하게 맛보게 되었다. 목이 마른 사람처럼 게걸스럽게 수환의 입속을 탐했다.

“흐으, 흐.”

수환은 힘겨운 듯 고개를 비틀었다. 하지만 얼마 가지 못하고 뺨이 붙들려 다시 억지로 입을 맞췄다.

입을 맞출수록 더 갈증이 났다. 이상한 일이었다. 만족감을 느끼긴커녕 더욱 욕심만 커지니 말이다. 그동안 어떻게 이걸 참고 살았을까. 고작 며칠이지만, 과거의 자신이 미친놈처럼 느껴졌다.

이제 머릿속에서 보내는 위험 신호도 점점 희미해져 갔다. 애초에 수환과 자신이 서로를 피하게 된 복합적인 이유도 생각나지 않았다.

빨리 자신의 아래에 깔린 알파를 제 것으로 만들어야 했다. 여린 목덜미를 깨물고 핥아서, 온몸 구석구석에 다시 자신의 흔적을 잔뜩 새겨야 한다. 그리고 미약하게 저항하는 다리를 벌려, 이 안을 자신의 체액으로 가득 채워야만 한다.

“읏!”

거기까지 생각한 승현이 순간 뿜어져 나오는 페로몬을 자제하지 못하고 눈살을 찌푸렸다. 방 안에 짙게 깔린 페로몬이, 마치 무의식중에 생각한 걸 따르기라도 할 것처럼 흉흉하게 수환의 몸을 짓눌렀다. 그 기운을 느낀 승현이 급하게 수환의 입에서 제 입술을 뗐다. 멀어진 입술 사이로 투명한 실이 길게 이어졌다.

“헉, 윽.”

머리가 지끈거렸다. 시간이 지날수록 몸이 자신의 의지를 벗어나고 있는 것 같았다. 이렇게 계속 수환을 망가트릴 수는 없었다. 승현은 겨우 한 줌의 이성을 필사적으로 그러모았다.

한 손을 수환의 얼굴 옆에 짚고 천천히 숨을 몰아쉬었다. 더 행위를 이어 가서는 안 된다. 의사가 했다는 말을 의식적으로 머릿속에서 계속 반복했다.

“승혀나.”

“하… 안 돼요.”

조르는 듯한 말에 승현이 고개를 내저으며 제법 단호하게 말했다. 일부러 딱딱한 말투로 재차 말했다.

“더 안 할 거예요. 그러니까 어서 자요.”

“…….”

“얼른.”

물기 어린 눈으로 올려다봐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승현은 망아지처럼 뛰쳐나가려는 페로몬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이 정도도 못 참으면 짐승 새끼지. 그렇게 되뇌며 몸을 일으켰다. 아니, 일으키려고 했다.

“흐읏.”

“……?”

수환이 셔츠 안으로 손을 넣어 제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승현이 놀란 눈으로 그 모습을 내려다봤다.

“지금, 무슨.”

“하아… 으응, 승혀나.”

“……!”

반쯤 풀어놓은 셔츠 안으로 손을 집어넣은 수환이 제 가슴을 만졌다. 키스만으로도 바짝 솟은 유두를 만지며 으응, 하고 신음을 흘렸다. 붉은 유두를 덧그리는 손가락은 서툴렀지만, 그만큼 욕망에 충실했다. 붉어진 얼굴로 수환이 허리를 비틀었다.

그 모습을 보는 승현의 눈가도 불긋해졌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자위하는 수환의 모습에서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수환의 손이 점점 더 밑으로 내려갔다. 거추장스러운 바지를 벗어서 옆으로 치우자, 하체가 적나라하게 승현의 눈앞에 드러났다. 길게 뻗은 다리는 여전히 탄력적이고 매끈해 보였다. 적당히 붙어 있는 근육이 꿈틀거리는 허벅지 안쪽에는 승현이 새긴 흔적이 연한 색으로 남아 있었다.

“아아, 응.”

수환은 한 손으로 반쯤 선 성기를, 그리고 남은 손으로 주름진 애널을 더듬었다. 자위하기 편하도록 두 다리를 벌렸기 때문에, 그 모습이 모두 승현의 눈앞에 환히 보였다.

제길. 아찔한 풍경에 승현이 입술을 깨물었다. 피가 나도록 깨물며 자위하고 있는 수환을 흉흉한 눈으로 쳐다봤다.

“아, 흐, 좋아. 승혀나.”

자신의 이름을 부르며 발정 난 페로몬이 확 퍼지자, 더는 참을 수가 없었다.

승현은 인정했다. 자신은 짐승 새끼가 확실했다.

“하아, 형.”

“으읏, 아!”

수환의 검지가 애널 안으로 반쯤 파고들었을 때, 승현 역시 제 검지를 수환의 안에 푹 집어넣었다. 손가락 두 개가 수환의 애널 안을 헤집었다.

“계속 움직여요.”

“흐, 흐읏.”

다른 손가락의 침범에 놀라, 수환의 검지는 반쯤 파고든 채 멈춘 상태였다. 성기를 훑던 손도 멈추고 몸을 떨었다. 넓게 벌린 허벅지가 흠칫거렸다.

승현은 수환의 안에 파고든 손가락을 거침없이 찌르며 움직임을 종용했다. 멈칫하던 수환이 승현에게 휩쓸려 손가락을 더 안쪽으로 찔러 넣었다. 안으로 파고드는 손가락이 계속 늘어났다.

“하으, 조아, 조아아.”

취기로 머리가 둔해진 상태에서도 수환은 쾌감을 느끼며 몸을 비틀었다. 힘이 풀어진 혀가 불분명한 발음으로 연신 기분 좋은 신음을 내뱉었다.

“하, 내가 안 박아주니까, 맨날 혼자 이랬어요? 응?”

“흐으, 흣!”

“말해 봐요, 형.”

한 손으로 수환의 허벅지를 잡아 벌리고, 입술을 내려 바짝 선 유두를 깨물었다. 그러자 자지러지는 소리가 수환의 입에서 터져 나왔다. 승현은 더욱 거칠게 수환의 안을 손가락으로 쑤셨다.

“말해, 보라니까.”

“흐읏, 아앙!”

수환의 몸 곳곳에는 다시 새빨간 흔적들이 새겨졌다. 가슴에는 선명한 이빨 자국이, 목덜미에는 짙은 멍 자국이, 허벅지에는 빨간 손자국이 남겨졌다.

“하아, 제길.”

“하읏!”

승현은 수환의 안을 찌르던 손가락을 거칠게 빼냈다. 그의 손가락은 알 수 없는 애액으로 젖어 있었다. 무작정 손가락을 집어넣어 젤도, 아무 윤활제를 바르지 않았는데도 승현과 수환의 손가락은 젖어서 번들거리고 있었다. 그러나 지독하게 흥분한 승현은 이상한 점을 전혀 알아채지 못했다.

“내 자지 받아먹고 싶어요?”

“흐…….”

비워진 아래에 허전함을 느낀 수환이 다시 손가락을 더듬거렸다. 승현이 그 손을 치우고 귀두 끝을 구멍에 맞췄다. 뜨겁고 축축한 게 아래에 닿자, 수환은 또 흠칫하며 몸을 움츠렸다.

하지만 그 반대로 꾹 닫혔던 애널 구멍은 스르륵 열렸다. 붉은 구멍이 귀두 끝을 스스로 물며 빨아들였다. 마치 더 안쪽으로 들어오라는 듯이. 그걸 보는 승현의 눈이 어둡게 가라앉았다.

“하, 씨발.”

“흐으, 빨리… 아……!”

승현의 것이 단번에 아래를 꿰뚫었다. 처음에는 수환의 입이 벙긋거리기만 하고 아무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러다 승현이 허리를 뒤로 물려 다시 한번 퍽, 하고 치자 긴 비명을 내질렀다. 머리를 한껏 뒤로 젖힌 채, 입가에는 투명한 침이 흘렀다.

“아앙, 앗, 아……!”

“후우, 흣.”

광포하게 흘러나온 페로몬이 방 안에 짙게 깔렸다. 승현은 무의식적으로 페로몬을 내뿜어 수환의 몸을 채웠다. 페로몬 샤워를 받은 몸이 형편없이 뒤흔들렸다. 수환은 온몸을 잠식하는 열기에 헐떡이며 허리를 흔들었다.

“흐으, 아앙, 조아, 조아앗……!”

“읏, 잠깐.”

드문드문 끊긴 기억이 표표하게 승현의 머릿속에 내려앉았다. 몸은 실컷 열락에 빠져들면서도, 머리 한구석에서는 필사적으로 생각했다. 실낱같은 이성이 외쳤다. 수환의 안에 정액을 퍼부어서는 안 된다고.

이미 자제가 되지 않아 수환에게 독이 되는 우성 페로몬을 잔뜩 묻히고, 또 성기를 박아 넣었다. 본능을 거스르는 행위였다. 필시 수환의 몸을 망칠 게 뻔한 짓이었다.

아직, 아직은 되돌릴 수 있다. 수환을 만족시켜 준 다음에 페니스를 꺼내 다른 곳에 사정하면 된다. 이를 악물고 사정감을 참으며 승현이 끝없이 되뇌었다.

“아아앙……!”

“하아.”

다행히도 수환의 페니스가 먼저 세차게 정액을 내뿜었다. 크게 튄 정액이 승현의 몸에도 잔뜩 묻었다. 승현은 가차 없이 조이는 내벽에 다시 이를 악물며 간신히 사정감을 참았다. 그리고 천천히 허리를 뒤로 뺐다.

“윽!”

“으응, 가지 마.”

그때, 승현의 허리 옆에서 달랑거리던 두 다리가 허리를 휘감았다. 그리고 제 쪽으로 승현의 몸을 끌어당겼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며, 승현은 수환의 안에 페니스를 박아 넣은 채 얼굴을 찌푸렸다.

“읏, 이거 놔요. 형.”

“시러어.”

“어서… 윽.”

“안에 싸 줘, 하읏.”

안에 싸 달라니. 수환이 취하지 않았다면, 절대 스스로 할 말이 아니었다. 그리고 승현은 그 말에 다시 지독하게 흥분하고 말았다.

이를 악문 승현이 뒤로 물린 허리를 힘껏 밀었다. 퍽, 하고 승현의 허벅지가 수환의 치골을 때렸다.

“하, 진짜. 주정뱅이가.”

“싸 줘, 제발, 하앙!”

“그렇게 내 정액, 후, 먹고 싶어요?”

“먹고, 싶… 아, 아앙!”

아직 사정도 하지 않았는데, 찰박거리는 소리가 시끄럽게 방 안을 울렸다. 그러나 흥분한 두 사람에게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몸을 숙인 승현이 수환의 손을 잡아 깍지를 낀 다음 침대 위에 꾹 눌렀다. 몰려오는 쾌감에 온몸을 움찔거리던 수환은 행위를 이어 갈수록 승현의 손을 꼭 마주 잡았다.

모든 신경이 아래에 쏠려 있는 것만 같다. 승현은 미친 듯이 허릿짓을 했다. 굵은 성기가 안을 빠르게 들락거렸다. 안쪽의 내벽이 승현의 허리를 감싼 두 다리처럼 페니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꽉 조였다. 추삽질을 계속할수록 머릿속이 하얗게 날아가는 것 같았다.

이윽고 수환의 안쪽 깊은 곳까지 페니스를 꽂아 넣은 승현이 몸을 가늘게 떨었다.

“흣.”

“아, 아아.”

뜨거운 물줄기가 안을 적셨다. 수환은 무언가가 배 속을 가득 채우는 것을 느끼며 계속해서 몸을 떨었다. 이루 말할 수 없는 만족감이 그를 지배했다.

사정을 끝낸 승현이 넋이 나간 수환의 얼굴을 훑었다. 진득한 시선이 헐떡이는 입술 위에 내려앉았다. 깍지를 끼지 않은 손으로 비스듬히 숙이고 있는 수환의 뺨을 쥐고 입을 맞췄다. 으응, 콧소리를 내며 수환도 기운 없는 팔을 들어 승현의 목에 둘렀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다리에 힘을 줘 승현의 허리를 꽉 붙들었다. 긴 다리가 탄탄한 허리를 X자로 휘감으며 꽉 끌어당겼다. 빈틈도 없이 이어진 하체가 딱 달라붙어 마치 한 몸처럼 보이게 했다.

“흐으, 아… 계속, 해 줘… 으응.”

“하아.”

입을 맞추던 승현이 눈을 가늘게 떴다. 발정기가 온 것도 아닌데, 흥분한 머릿속이 뜨겁게 끓어올랐다. 더는 아무것도 그의 머릿속에 남지 않았다. 진지한 말투로 경고하던 의사의 목소리도, 겁을 먹으며 울먹이던 수환의 목소리까지, 욕망으로 가득 찬 머리가 모든 걸 지워냈다.

“응, 내 정액으로 가득 채워 줄게요.”

“아응……!”

“다시는 내 냄새가 지워지지 않게.”

의식도 하지 못하며 집착적인 말을 한 승현이 그대로 허리를 움직였다. 다시 퍽퍽 박아대는 승현의 움직임을 따라 수환도 기뻐하며 허리를 흔들었다.

긴 밤 내내 방 안에서는 신음과 우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

“으…….”

눈을 뜬 수환이 무거운 신음을 흘렸다. 곧바로 일어나려고 했지만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팠다.

“으윽.”

머리를 부여잡고 웅크리고 있던 수환은 한참 지나고 나서야 겨우 몸을 일으켰다.

익숙한 침실의 풍경이 보였다. 마지막 기억은 분명 윤현과 퇴근 후에 밥을 먹고 들어간 바에서 칵테일을 마셨을 때였다. 빙의하고 처음 들어가 보는 어둑한 술집에 괜히 긴장했던 기억이 났다.

술을 못 마신다고 하니, 윤현이 웃으며 논알콜 칵테일을 주문해 줬다. 그게 이름이 뭐였더라. 피나콜라다였나? 열대 과일의 맛과 달달한 코코넛 맛도 났는데, 맛있어서 그런지 정신없이 마셨었다.

그리고 윤현이 화장실에 가고 나서 다른 칵테일이 나왔다. 하지만 칵테일을 잘 모르는 수환은 뭐가 자신의 것인지 잘 몰랐다. 윤현이 돌아오면 물어보고 마셨어야 했는데, 방금 마신 칵테일이 너무 맛있어서 감으로 찍은 걸 홀짝 마셔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 후의 기억이 흐릿했다.

“하아.”

그래도 집까지 무사히 온 것 같으니, 큰 문제는 일어나지 않은 모양이었다. 한숨을 내쉰 수환이 숙취로 지끈거리는 머리를 손으로 눌렀다.

“응?”

고개를 돌리자 협탁 위에 물과 종이, 그리고 숙취 해소제가 놓여 있었다. 놀란 눈으로 그것들을 보다가 종이를 들어 올렸다.

<물 먼저 마시고 숙취 해소제 먹어요. 오늘은 일찍 올게요.>

어디를 어떻게 봐도 승현이 쓴 것이었다. 수환의 하얗게 질린 얼굴이 더 창백하게 변했다.

뒤늦게 드문드문 끊긴 기억이 머릿속에 떠올랐다. 욕구불만이라 그런 꿈을 꾼 줄 알았는데, 그게 다 실제로 일어났던 일인 것이다. 그것도 바로 어젯밤에 말이다.

“또, 승현이랑…….”

의사의 경고가 무색하게, 또 승현과 잘못된 관계를 맺고 말았다. 욱신거리는 아래가 지난밤의 일을 여실히 알려 주고 있었다.

“하아, 미쳤어. 정말.”

고개를 내저은 수환이 자괴감 어린 얼굴로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 자신의 몸은 어떻게 되어도 좋지만, 승현은 안 된다.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쾌락에 젖어 승현과 그런 짓을……. 도저히 자신을 용서할 수가 없었다.

드르륵.

“헉!”

협탁 위에 올려둔 핸드폰에서 진동이 거세게 울렸다. 수환이 놀라며 쳐다보다가, 화면에 떠오른 이름을 보고 서둘러 전화를 받았다.

“대, 흠, 대리님.”

―수환 씨, 몸 괜찮아요?

“흠, 괜찮아요.”

형편없이 갈라지는 목소리에 민망함을 느낀 수환이 헛기침하며 대답했다. 그러다가 시간을 확인한 수환이 깜짝 놀라며 외쳤다.

“어, 지금 시간이……!”

출근해야 할 시간이 훌쩍 넘어 있었다.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하는 수환의 목소리를 들으며 윤현이 웃음을 터트렸다.

―하하, 괜찮아요. 회사에는 내가 잘 말했으니까.

“하… 감사합니다.”

―수환 씨 약혼자분도 회사에 전화했던 모양이던데요?

“승현… 이가요?”

―네, 그러니 안심하고 느긋하게 와요. 아무도 뭐라고 안 하니까.

“네.”

승현이가 회사 전화번호를 어떻게 알았을까? 아니, 번호를 안다고 해도 부서에 어떻게 전한 거지? 부서 이름을 말한 적이 있었나?

의아해하던 수환은 윤현이 이어서 하는 말에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래도 오후에는 와야 해요. 오늘 회장님 취임식 있는 날이니까.

“아!”

화련의 회장 취임식. 그러고 보니 그게 오늘이었구나.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었다. 수환은 전화를 끊고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났다.

“끄응.”

오랜만에 민망한 부위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그래도 승현이 준비했을 물과 숙취 해소제를 마시고 나니 머리가 아픈 건 좀 괜찮아지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묘하게 몸 상태도 나쁘지 않았다. 특히 며칠 전부터 소화 불량이 빈번하던 배 속이 조금 편안한 느낌이 났다.

고개를 갸웃하던 수환은 시간을 확인하고 다시 급하게 몸을 움직였다.

4권에 이어서.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