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3화
만약 나랑 배우님이 결혼한다면 이렇게 시간 날 때 마트에 들러서 함께 장도 보고, 맛있는 것도 해 먹고 또 집에 가면 꼬물꼬물 아기다람쥐들이 아빠들 오셨냐고 우릴 환영해 주겠지.
그 아기다람쥐들이 어떻게 생겨났냐고? 그건 다 절차가 있는 법. 하늘에서 황새가 떡하니 물어다 주는 게 아니지!
다율의 상상이 엉뚱한 곳으로 뻗어 나갔다.
“다율아. 너 왜 갑자기 얼굴이 빨개?”
“네? 아무것도 아니에요.”
다율은 야릇한 상상력을 발휘하는 제 머리를 쥐어박고 싶었다. 아무래도 단둘이 3박 4일간 한 공간에 갇혀 있는다고 생각하니 이런저런 상상이 드는 게 사실이었다.
“음… 역사는 이루어지는가.”
“33만 5천6백 원입니다.”
“아! 잠시만요. 제가 낼게요.”
망상에 빠져 있던 다율이 계산원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렸다. 다율은 주머니를 뒤져 자신의 카드를 꺼내 멋지게 계산을 하려 했다.
“어? 차에 지갑 두고 내렸다.”
하필이면 이럴 때 어설프게 굴었네. 머쓱해하는 다율 대신 권지하가 카드를 내밀었다.
“다음엔 꼭 제가 살 거예요!”
“그래. 또 놀러 오자.”
권지하는 두 손 무겁게 짐을 들고 나와 차에 짐을 실었다. 뒷좌석에 오리와 마트 봉투를 담으니 차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가평 시내에서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간 곳에 풀 빌라가 위치해 있었다. 오가닉을 컨셉으로 지은 것인지 나무와 대형 타일, 벽돌만을 이용해 심플하게 구성한 건축물이 다율의 눈을 사로잡았다.
모던하면서도 자연의 미를 살린 디자인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다. 또한 안내인조차 없는 조용함과 독립성도 다율을 흡족하게 했다.
“완전히 독채네요?”
“응. 오늘부터 나흘 동안 우리 말고 다른 사람은 안 와. 내가 그렇게 해 달라고 했거든.”
권지하라고 해서 꿍꿍이가 없는 건 아니었다. 아니, 다율보다 차고 넘쳤으면 넘쳤지 결코 덜하지 않았다.
독채 건물 안은 깔끔한 펜션 식으로 꾸며져 있었다. 총 3층의 건물 중 1층에는 주방과 거실이, 2층에는 아늑하고 널따란 침실이 있었으며 3층에는 루프탑이 있었다.
그리고 다율이 가장 기대한 프라이빗 풀은 1층 정원에서 바로 이용할 수 있도록 이어져 있으면서도 집 안에서도 접근이 가능했다. 쉽게 말해 물놀이를 하고 싶으면 어디서든 첨벙 뛰어들 수 있는 구조였다.
“와, 물 너무 시원해요.”
짐을 거실 한가운데 벗어 던지고, 다율은 곧장 풀로 향했다. 살짝 손을 담가 보니 어른 가슴 높이만큼 올 정도로 깊은 물이 딱 기분 좋게 차가웠다.
“저 샤워하고 올게요. 같이 들어가요.”
“샤워실도 같이 들어가면 안 될까?”
“또 그 소리. 그건 아직 안 된다고 했죠.”
“나중엔 되는 거지?”
다율이 대답 대신 권지하를 흘기고 1층 욕실로 들어갔다. 쾅! 문은 닫았지만 사실은 가슴이 떨렸다.
오늘이야말로 외진 곳에서 단둘이서만 보내는 하루. 도수 높은 와인도 있고 찰랑거리는 수영장도 있고, 대나무로 만든 울타리는 두 사람의 사생활을 완벽하게 지켜줄 것이다.
“후우….”
다율은 일부러 찬물로 샤워하며 자기 뺨을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짐승처럼 굴지 말자고 스스로를 다잡은 다음, 다율은 하얀 반팔 티셔츠에 반바지 스타일의 수영복을 입고 나섰다.
“악!”
그런데 욕실에서 나오자마자 헐벗고 수영복 하나만 걸친 권지하와 마주치고 말았다. 다른 욕실에서 씻고 나왔는지 머리며 온몸이 흠뻑 젖은 게, 무슨 화보 촬영장 같았다.
“왜 그렇게 놀라.”
“수영복 차림이잖아요.”
“수영하는데 수영복 안 입으면 뭐 입는데.”
“그거야 그렇지만….”
“다율이는 그 옷 안 불편하겠어?”
권지하가 가까이 다가와 다율의 티셔츠 자락을 말아 올렸다. 무방비하게 옷이 쑥 올라가자 다율이 꽥 소리를 냈다.
“뭐 하는 거예요!”
“왜? 수영하는데 이런 옷 입으면 물 머금어서 무겁단 말이야. 그럼 수영 자세도 안 나오고 힘들어. 벗고 하자.”
“아니에요! 저는 괜찮습니다. 옷 입고도 잘 배울 수 있어요!”
다율이 박박 우겨 권지하는 다율의 배만 살짝 만지고 물러나야 했다.
흠. 아쉽네. 어떻게 해야 저 옷을 벗길 수 있을까.
권지하는 곰곰이 생각에 잠겼다가 일단은 다율을 물 안에 넣기로 했다.
“자, 그럼 들어갈까? 내 손 잡고. 그렇지.”
“와, 차갑다.”
다율은 권지하의 손을 잡고 풀장 안으로 들어갔다. 물살이 출렁이며 다율의 티셔츠를 빵빵하게 부풀렸다.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경쾌한 음악이 흘러나오고 머리 위로는 태양이 비추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여름의 냄새를 풍겼다.
“너무 신나요!”
“좋지?”
“네!”
다율은 몇 번 팔다리를 허우적대며 물속에서 첨벙첨벙거리더니, 본격적으로 권지하에게 수영 강습을 받기 시작했다.
“일단 물에 뜨려면 몸에 힘을 빼야 돼.”
“몸에 힘을… 어떻게 빼지?”
“다율이가 스펀지라고 생각하면 돼. 내 몸에 체중이 있다 이런 사고를 하지 말고 그냥 자연스럽게 팔다리에 긴장을 풀어 봐.”
권지하가 시범을 보였다. 덩치가 커다란데도 물에 가뿐하게 뜨는 그를 보며 다율이 박수를 쳤다.
“우와. 저도 해 볼래요.”
“내가 잡아 줄 테니까 한번 연습해 봐.”
권지하가 다율의 가슴과 골반을 받쳐 주기로 약속했다. 다율은 몸에 힘을 뺀답시고 빼고 물에 두둥실 떠오르려 노력했다. 하지만 꼬르륵 가라앉는 몸뚱어리에는 답이 없었다.
“다율아, 잠수함 말고 스펀지.”
“아… 아는데… 다시 해 볼게요.”
다율은 여러 번 물에 뜨는 연습을 해 보았지만, 이렇다 할 성과가 없었다. 맥도 못 추고 풀장 바닥에 고꾸라지려는 걸 권지하가 반복해서 건져낼 뿐이었다.
“다율아. 아무래도 네 티셔츠 때문에 물에 못 뜨는 것 같아.”
“네? 그게 듣던 중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예요.”
“진짜야. 티셔츠 하나가 물을 머금으면 몇 킬로그램은 될걸? 네가 티셔츠 벗고 연습하면 훨씬 좋아질 수 있어.”
권지하가 다율에게 다가와 물에 젖은 티셔츠를 쇄골에서 가슴, 그리고 허리까지 쓸어내렸다. 그 바람에 옷이 몸에 찰싹 달라붙어 속살이 다 비쳤다.
“앗.”
자기 가슴팍을 내려다본 다율이 당황하며 몸을 가렸다. 하지만 이미 권지하가 다율의 뽀얀 속살을 실컷 음미한 뒤였다. 다율 역시 그 시선을 느꼈기에 자꾸만 입이 바싹 마르고 얼굴이 달아올랐다.
특히나 권지하의 시선이 가슴의 돌기를 향했을 때, 다율은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옷과 마찰해 돌기가 톡 튀어나왔다는 사실은 자신이 더 잘 알고 있었으니까.
“그렇게 부끄러워만 하지 말고 벗어 봐. 벗으면 몸이 가벼워진다니까.”
권지하의 손이 은근슬쩍 다율의 가슴께를 스쳤다. 살짝 옷을 걷어 올리며 은근슬쩍 가슴으로 향하는 손길 때문에 다율은 오소소 소름이 끼쳤다.
“간… 간지러워요!”
“옷을 벗으면 안 간지러울 거야.”
말도 안 되는 소리였으나, 다율은 이미 권지하의 손에 녹아나고 있었다. 살살 어루만지고 또 쓰다듬었다가, 길게 손가락을 내서 덧그리듯이 배회하는 손길. 다율은 권지하가 조종하는 대로 움직이는 인형이 따로 없었다.
하필이면 블루투스 스피커에서 흘러나오는 음악도 막 끈적한 곡으로 넘어간 참이었다. 다율의 영어 실력은 참담했지만 뉘앙스라는 게 있지 않은가.
딱 들어 보니 사랑에 빠진 커플이 대충 물속에서 이렇게 저렇게 사랑을 확인하고 싶어 안달이 났다, 나는 지금 너를 유혹하고 있다. 이런 내용의 노래 같았다.
“다율아, 어떻게 할래?”
권지하가 놀리듯 물었다. 노곤노곤 녹아내리는 와중에 다율은 열이 받았다. 늘 자신만 휘둘리고 권지하는 여유만만한 게 억울했다.
나라고 해서 늘 끌려만 다녀야 하나? 그건 아니지! 나도 한다면 하는 수인이다!
다율은 자신도 한번 주체적이고 적극적으로 권지하를 유혹해 보기로 결심했다.
“어?”
“이리 와요!”
다율은 다짜고짜 권지하의 목에 팔을 휘감고 입술을 그대로 돌진했다. 권지하의 입술에 제 입술을 한번 문댄 다율은 눈을 질끈 감고 권지하의 몸을 사정없이 터치했다. 애무라기보다는 안마에 가까운 행동이라 권지하는 그저 웃음이 났다.
다율은 단단하기 이를 데 없는 권지하의 목덜미, 쇄골, 가슴을 차례로 다 짚었다. 그러고도 광활한 등짝과 탄탄한 복부가 남아서 손이 바쁘게 움직였다.
나름대로 열심히 권지하의 이곳저곳을 만진 다율은 스스로가 대견했다. 나도 스킨십을 리드하는 수컷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 스텝이었다. 이 이후의 단계에서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지 전혀 감이 잡히지 않았다.
“어… 어떻게 해야 하지.”
자기도 모르게 마음속 생각을 뱉어 버린 다율은 뻘뻘 땀을 흘렸다. 손과 입술이 허공을 맴돌며 방황하자, 권지하는 결국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왜 웃어요. 빈정 상하게.”
“너무 귀여워서.”
권지하가 다율을 와락 끌어안고 소리 내 웃었다. 다율은 입술을 뾰루퉁하게 내밀고 시무룩한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래도 안 되겠네. 난 짝짓기 공부를 좀 해야겠어.
***
다율의 지식 부족으로 진도를 빼지 못한 두 사람은 다시 수영을 하며 놀았다. 풍덩풍덩 요란한 소리를 내며 연습한 끝에, 다율은 드디어 물에 뜰 수 있게 되었다.
“떴다!”
“고마우면 형한테 뽀뽀해.”
권지하가 수영 강습료라며 입술을 내밀었다. 다율은 아끼지 않고 강습료를 지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