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 물과 기름처럼 (2/37)

1. 물과 기름처럼

“태오야, 들어가자.”

아마 중학교 3학년 때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웬일로 저녁을 사준다는 엄마의 말에 학교가 끝나자마자 집으로 갔었다. 해진 운동화 끈이 몇 번이나 풀렸지만, 모처럼 엄마랑 밥을 먹는다는 생각에 좀 들떠 있었다. 그 무렵, 엄마는 새벽같이 일하러 나갔다가 밤 열두 시가 넘어야 집에 들어오곤 했었다. 대체로 내 끼니는 컵라면이나 편의점 빵 쪼가리가 다였다. 없는 살림에 외식은 꿈도 못 꿨던지라 근처 분식집이나 전전할 줄 알았는데, 엄마가 이끈 곳은 번화가의 고급 레스토랑이었다. 나는 직감적으로 엄마에게 새로운 남자가 생겼다는 걸 알았다.

“선희 씨 왔어요?”

엄마를 보고 좋아 어쩔 줄 모르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지금껏 엄마를 거쳤던 실속 없던 사내들이랑은 분위기가 달랐다. 입고 있는 옷. 신발. 시계. 아무것도 모르는 내 눈에도 값어치가 꽤 나가는 것들임을 알 수 있었다. 사람 좋은 얼굴로 연신 웃고 있는 남자는 엄마 취향과는 거리가 멀어 보였다. 이런 말 하면 실례가 되겠지만, 도마 위에 올려놓고 부위별로 살을 발라내면 몇 달을 먹고도 남을 고기가 나올 것 같았다. 나는 인사를 하는 둥 마는 둥 성의 없이 자리에 삐딱하게 앉았다.

“제 아들 규호예요.”

남자가 자랑스럽게 입을 열었다. 시선이 자동으로 남자 옆에 서 있는 그에게 옮겨갔다. 태양 아랠 누벼본 적 없을 것 같은 새하얀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차분하게 정돈된 머리카락 밑으로 냉소적인 눈동자가 똑바로 우릴 쳐다봤다. 사내새끼가 맞나 싶게 왜소한 몸은 조금만 힘을 주면 바스라질 듯 가냘프게 보였다.

“처음 뵙겠습니다. 선규호입니다.”

조용하고 차분한 음성이 귀에 꽂혔다. 시선이 맞닿자, 단정한 얼굴이 미묘하게 일그러졌다. 아주 잠깐이었지만, 멸시의 시선이 나를 훑었다. 녀석을 노려보자,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가소롭다는 듯 비웃는 웃음이 기분 나빴다. 누군 좋아서 여기 이러고 있나. 활짝 웃고 있는 엄마만 아니었으면 벌써 자릴 박차고 나갔을 것이었다. 남자를 바라보는 엄마의 눈동자엔 즐거움이 가득했다. 생기가 감도는 엄마의 웃음소리가 낯설었다. 정말 저 비대한 남자를 좋아하기라도 하듯이. 이 자리에 어떤 의미가 존재하는 것처럼. 엄마나, 저 남자나. 나를 노려보고 있는 이 새끼까지. 짜증스러웠다.

“규호야, 네가 태오보다 생일이 두 달 빠르구나.”

남자가 재밌는 사실을 발견한 것처럼 와인 잔을 내려놓으며 입을 열었다. 하. 무슨 서열 정하려고 모였나. 괜히 담배가 말렸다. 맛집 칼럼에 몇 번이고 소개된 레스토랑치곤 제값을 못하는 것 같았다. 차라리 집에서 끓여 먹는 라면이 나을 지경이었다. 나는 음식이 나올 때마다 신경질적으로 나이프를 휘둘렀다. 와인 몇 잔에 취한 엄마가 실실거리며 주책을 부리고 있었다.

“어머, 태오가 그럼 형이라고 불러야겠네요?”

“그렇군요, 규호한테 태오처럼 듬직한 동생이 생기다니 든든한데요? 선희 씨!”

발그스름하게 달아오른 얼굴로 호탕하게 웃자, 엄마가 따라 웃었다. 가만히 나를 보고 있던 선규호가 갑작스럽게 손을 내밀었다. 뜬금없이 악수를 청하는 건지, 나를 향해 뻗어 있는 다섯 개의 손가락을 쳐다봤다. 사내 손이 맞나 싶게 단정한 손가락이 새하얗게 빛났다. 하여간 저 뚱보나 교양 떨고 있는 이 새끼나 존나, 재수 없었다. 가장 꼴값하고 있는 건 모친 되시겠지만.

“어서.”

선규호가 거만하게 턱짓을 했다. 나는 그대로 선규호의 손을 잡았다. 힘으로 꽈악 눌러 기선제압을 하려고 했는데, 손가락이 겹쳐진 순간, 전류가 살갗을 타고 흘렀다. 생경한 감각이 짜릿하게 혈관을 타고 몸 안을 빠르게 돌았다. 맥박이 의지와 상관없이 자꾸 빨라졌다. 놀란 눈동자로 나를 쳐다보던 선규호가 다급하게 내 손을 놓았다.

정전기인가. 그렇다기엔, 좀 전의 느낌은 기묘했다. 내 시선을 피해 고갤 돌린 선규호가 좀 이상했다. 거만하게 여유를 부리던 눈동자는 어디로 사라지고, 당혹감을 감추지 못한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무언가 놀란 것 같기도 하고 당황한 것 같기도 했다. 빤히 쳐다보자, 긴 속눈썹을 접으면서 내 눈을 외면해버렸다. 귓불 아래로 드러난 흰 목선, 가파르게 오르내리는 가슴, 어쩔 줄 모르고 방황하는 손가락. 이상하게 심장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상견례 비슷한 걸 끝낸 그날 이후 엄마와 아저씨의 재혼 준비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 없는 엄마가 하는 일이라곤 아저씨의 돈을 물 쓰듯 쓰는 것이 전부였지만, 아저씨는 조금도 개의치 않았다. 뭐가 좋다고 군식구나 다름없는 내게도 방을 만들어주었다. 근사한 2층 선규호 방 옆에 내 방이 생겼다. 게스트룸으로 사용하던 곳이었다는데 안에 든 세간살이를 전부 치우고 새로운 가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말만 하면 다 들어주는 ‘지니’처럼 아저씨는 필요한 건 다 들어줄 기세였다. 도무지 적응이 되질 않았다.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커다랗고 쾌적한 집에 내 방이 존재하는 것도, 식사 시간마다 정성스럽게 준비된 요리들이 올라오는 식탁도, 큼지막한 욕조에 몸을 담그는 일조차, 신기했다. 돈이 많으면 이렇게 사는 건가, 싶었다. 근사한 방에 혼자 덩그러니 앉아 있을 때면 옥탑방에서 챙겨온 낡은 내 짐처럼 스스로가 한없이 초라해 보였다.

“야.”

삐딱하게 문에 기댄 선규호가 나를 노려보면서 말했다. 이 집에 들어와서 제일 적응이 안 되는 것이 있다면 바로 선규호였다. 아주 살짝만 스쳐도 사람을 파렴치한처럼 쳐다봤다. 노골적으로 싫어하는 티를 냈다. 한주먹 거리도 안 되는 게 집주인 행세는 다 하려고 했다. 꼭 제 아빠의 모든 관심을 엄마가 다 뺏어갔다고 생각하는지, 나만 보면 괴롭히지 못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딱 한 번 말할 거니까 잘 들어.”

“…….”

“앞으로 어디서든 날 아는 척하지 마, 말 걸지도 말고 닿지도 마. 알았냐?”

“왜?”

선규호가 내 물음에 같잖다는 듯이 한숨을 쉬면서 고갤 흔들었다. 정말 몰라서 묻냐며 나를 쳐다봤다.

“너한테서 존나 역겨운 냄새 나는 거 모르지?”

“…….”

“시궁창 같은 네 냄새 옮을까 봐 겁나서 그래.”

얼굴이 확 달아올랐다. 생선 파는 엄마 때문에 비린내 나는 냄새가 매일 따라붙었다. 뜨거운 물도 나오지 않아 겨울이면 잘 씻지도 못했다. 한 푼이라도 더 벌려고 새벽같이 나가는 엄마가 집안일에 소홀한 건 어쩔 수 없었고 대부분 내가 해결해야 했다. 꾀죄죄한 옷이나 운동화에서 벗어나본 적이 별로 없었다. 우습게도 코를 틀어쥐고 말하는 선규호에게 뭐라 반박할 수가 없었다.

나한테서 이상한 냄새가 나는 것 같았다. 틈만 나면 몸을 씻었다. 몇 시간이고 비누칠을 하고 때가 나오지도 않는 몸을 밀어댔다. 옷을 당겨 냄새를 맡아 땀 냄새가 나는지 확인하는 게 버릇이 되었다. 하지만 선규호는 여전히 똑같은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더럽고 냄새나는 쥐새끼를 보듯이 경멸에 찬 시선으로 나를 쳐다봤다. 극도로 예민하고 신경질적이어서 나도 부딪히고 싶지 않았다. 되도록 거릴 두려고 했지만, 툭하면 선규호와 부딪혔다.

“만지지 마, 미친 새끼야.”

“꺼져. 씨발놈아.”

“넌 멍청한 거야? 병신인 거야?”

“존나. 눈치도 없냐? 닿지 말라고 몇 번을 말해?”

발작처럼, 선규호는 나만 보면 소릴 지르고 화를 냈다. 뭘 잘못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싫은 거였다. 정말, 극도로 재수 없는 놈이 아닐 수 없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면서 선규호는 나를 더욱 무시했다. 투명인간 취급하고 마주 보는 것조차 싫어했다. 대체로 무관심으로 일관했다. 욕하고 화내는 것보다 더 기분이 나빴다. 더는 선규호를 참아줄 수가 없었다.

벌컥, 방문을 열었다. 익숙하게 안으로 들어와 방문을 닫았다. 저벅저벅 형이 누워 있는 침대로 다가갔다. 부드럽게 내려온 머리카락 아래로 곱게 감긴 눈꺼풀이 눈에 들어왔다. 긴 속눈썹이 어둠 속에서도 가지런했다. 아름답고 가련한 얼굴이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나는 능숙하게 형의 침대 위로 기어 올라갔다. 잠든 형의 손을 끌어당겼다. 힘없이 딸려온 다섯 개의 손가락이 가늘고 길다. 나는 내 손가락 사이사이 그것을 겹쳐 잡았다. 스르륵 시야가 암전됐다. 앞으로 벌어질 일은, 나 이외에 아무도 알 수 없을 것이다.

내 특기 중 하나는 최면이다. 어떤 사람이든 손가락으로 타인의 목덜미를 누르면, 그는 최면상태에 걸리게 된다. 몸은 깨어 있어도 의식은 깊게 잠들어 있는 상태. 최면에 빠지면 그 사람은 온전히 내 지시를 따르게 된다. 내가 하는 말을 절대적으로 신임하고 그것을 무리 없이 받아들인다. 물론 이 모든 건 꿈에서만 가능하다. 타인의 꿈에 무리 없이 들어가면 그 안의 모든 것을 내 입맛대로 설계할 수 있다. 등장인물들을 고르고, 어떤 상황이나 에피소드를 만들어 꿈을 꾸게 만든다. 때에 따라 나의 특기를 이용하기도 한다.

나는 천천히 눈을 떴다. 형의 꿈 안으로 들어오는 건 꽤 익숙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 들락거리기 시작했으니까, 벌써 몇 년은 된 셈이었다. 몸을 일으켜 잠든 형을 내려다봤다. 날을 세우고 죽일 듯이 나를 노려보는 선규호가 이렇게 잠들어 있는 걸 보면 기분이 묘했다. 몸을 일으켜 손가락을 까딱거리자, 부드럽게 바닥을 뚫고 올라온 세 개의 문이 눈에 들어왔다.

세 개의 문 중 하나는 형이 실제로 꾸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내가 설계한 꿈이다. 그리고 마지막 문은 형의 기억에서 지워진 꿈이 모인 공간이다. 나는 내가 설계한 문 앞으로 다가갔다. 눈을 깜박이자 중앙의 문이 천천히 열렸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문 안으로 들어갔다.

눈앞에 복도가 들어온다. 나는 느긋하게 긴 복도를 따라 걷었다. 투명하게 닦인 유리창 안으로 잘 익은 태양 볕이 넘어 들어왔다. 오늘이 무슨 요일인지, 지금이 몇 교시인지, 사실 아무런 관심도 없다. 나는 복도를 따라 걷다가 3학년 9반 앞에서 잠깐 멈춰 섰다. 큼지막한 유리창 너머 수업 중인 아이들이 눈에 들어왔다. 천천히 뒷문을 열었다. 수업 중이라 자리에 앉은 아이들은 조용하다. 교탁 앞에 선 선생이 뭐라고 설명을 하자, 유인물에 뭔가를 끄적이는 아이들이 보였다. 평소 교실 풍경과 별다를 것 없다. 나는 성큼성큼 교실 안으로 들어갔다. 창가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일 분단 네 번째 줄. 펜을 쥐고 단정한 얼굴로 문제를 풀고 있는 선규호가 눈에 들어온다. 속눈썹을 내리고 숫자를 좇고 있는 얼굴이 사뭇 진지했다. 나는 아무런 거리낌 없이 교탁 앞으로 다가갔다. 마네킹처럼 서 있는 수학 선생님을 향해 손가락을 튕기자, 그가 먼지처럼 사라지는 게 눈에 들어왔다. 갑자기 선생님이 사라져도 누구도 관심 없는 눈치다.

나는 교복 바지와 팬티를 잡아 한꺼번에 밑으로 내렸다. 발목에 걸린 옷을 벗어 아무렇게 던져놓고 대범하게 교탁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천천히 다릴 벌렸다. 음모 아래 발기한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두 팔을 뻗어 교탁을 받치고 상체를 뒤로 기울였다. 다리를 좀 더 벌린다. 창턱을 타고 넘어온 바람이 형의 머리카락을 헝클어뜨렸다. 나른하게 형이 눈을 감았다가 떴다.

“선규호!”

형이 소리가 나는 쪽으로 고갤 든다. 시선이 부딪힌 순간, 반 아이들이 동시에 나를 쳐다보는 게 느껴졌다. 금세 교실 안이 술렁거린다. 여기저기서 괴성이 새어 나왔다. 나는 오른손으로 단단히 커진 성기를 위아래로 느릿하게 움직이면서, 형을 불렀다.

“이리 와봐, 형.”

음란한 짓을 저지르고 있는 건 난데, 형의 귓불이 시뻘겋게 물들어가고 있었다. 놀란 얼굴로 얼른 몸을 일으킨다. 당황한 표정이 얼굴 가득 물드는 게 우습다. 서둘러 내가 있는 쪽으로 다가오면서 바닥에 벗어놓은 옷가지를 빠르게 주워들었다. 형이 화가 잔뜩 난 목소리로 소릴 질렀다.

“너, 미쳤어? 돌았냐?”

새까만 동공 가득 내가 들어찬다. 평소엔 일절 무시로 투명인간 취급하는 선규호가 이렇게 열을 내고 나를 쳐다보고 있다니, 심장 밑이 간질간질했다.

“애들이 보는 거 안 보여?”

사랑스러웠다. 양 볼까지 곱게 물들이고. 저렇게 화난 얼굴 되게 오랜만인데, 그보다 좀 더 다양한 선규호의 얼굴이 보고 싶었다. 절대 보이지 않을. 누구에게도 허락한 적 없는 선규호의 얼굴이 궁금했다. 나는 능숙하게 그의 목을 감싼 채 내 쪽으로 끌어당긴다. 코앞으로 다가온 선규호가 날뛰듯이 나를 밀어내려고 했다. 나는 빠르게 감싸고 있던 경추 뼈를 꾸욱 눌렀다.

“쉬이. 곧 재밌어질 거야.”

윤기가 감돌던 검은 눈동자가 금세 흐릿해졌다. 호흡을 내뱉듯이 그의 눈꺼풀이 스르륵 감겼다. 머지않아 감긴 눈꺼풀이 천천히 올라갔다. 초점을 잃은 두 눈동자가 허공 어딘가에 멈춰 있었다. 지금부터 선규호는 내 명령에만 반응할 것이다. 형의 귓가에 속삭였다.

“나, 지금 네 구멍에 박고 싶은데.”

완전히 발기한 성기를 툭툭 건들면서 말하자, 반 아이들이 경악을 금치 못하는 얼굴로 우릴 쳐다봤다. 누군가는 휘파람을 풀고, 누군가는 야유와 함께 변태 새끼라고 욕을 했다. 남자끼리 무슨 짓이냐며 혐오스런 표정을 감추지 못하는 새끼들도 더러 있었다. 손가락으로 튕기면 사라질, 엑스트라들 주제에 호들갑이 심하다. 나는 잠자코 형을 쳐다봤다.

혼돈의 도가니 속에 유일하게 침착한 건 형이었다. 마치 당연한 일을 하듯, 교복 넥타이를 잡아당긴다. 새하얀 손가락이 흰 단추를 하나씩 풀기 시작했다. 가느다란 손가락이 단추를 건들 때마다 벌어진 틈으로 연한 속살이 눈에 들어왔다. 나도 모르게 고인 침을 삼켰다.

명령에 충실한 충견처럼 형은 하복 상의를 벗어 바닥에 떨어뜨렸다. 빛을 받은 상체가 눈에 들어왔다. 계집애보다 새하얀 살결이 눈밭처럼 눈부셨다. 목선, 쇄골의 뼈. 어깨선이나 팔꿈치. 살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마른 몸이 은근하게 색정적이었다. 노골적인 내 시선이 그의 가슴에 가 닿았다. 농익은 복숭아 속살처럼 여린 핑크빛 젖꼭지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바라보며 혀로 입술을 축였다. 어젯밤 형의 꿈에 들어가 몇 번이고 젖꼭지를 물고 빨면서 좆을 사정없이 박아댔던 게 생각났다. 그 감각을 기억하기라도 하듯 성기 끝이 아릿하게 당겼다. 투명한 쿠퍼액이 축축하게 귀두 끝에 고였다.

최면에 걸린 형은 무감한 얼굴로 벨트를 천천히 풀어 헤쳤다. 지퍼를 내리자 헐거워진 교복 바지가 발목 밑까지 쑥 내려가는 게 보였다. 형은 망설임 없이 팬티 양쪽 끝을 잡고 밑으로 내렸다. 발목에 걸린 옷을 모두 벗고 천천히 상체를 일으켜 세웠다. 군더더기 없이 매끈하게 빠진 몸이 시야를 점령했다. 흥분을 자극하던 젖꼭지를 핥듯이 바라보다가 곧바로 시선을 내려 형의 성기를 바라봤다. 무욕 상태의 페니스. 내 좆을 사정없이 발기시켜놓고, 청렴결백하다는 듯이 말랑하게 늘어져 있는 형의 성기가 순진무구하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교탁에서 빠르게 엉덩이를 떼고 내려와 형에게 다가갔다. 우릴 지켜보고 있던 아이들은 자리를 이탈해 원을 그리듯 모이기 시작했다. 가만히 허공을 응시하고 서 있던 형이 천천히 눈을 깜박였다. 나는 단숨에 형의 뒤로 다가갔다. 옆구리 밑으로 손을 넣어 말랑말랑한 형의 성기를 움켜쥐자, 금세 주변이 소란스럽다. 손아귀에 쥔 성기를 야릇하게 쓰다듬으면서 귀두 끝을 자극했다. 형의 얼굴이 조금씩 일그러지는 게 느껴졌다. 온기를 품고 있는 선량한 페니스를 좀 더 괴롭힌다. 형의 호흡이 조금씩 빨라졌다. 말랑말랑한 성기가 점점 발기하는 게 느껴진다. 힘이 들어가기 시작한 성기를 음란하게 어루만지면서 형의 목에 입술을 박았다. 달콤한 살결을 빨면서 엉덩이 가까이 몸을 바짝 겹쳤다.

“씨발 존나 꼴려!”

누군가 흥분을 참지 못하고 크게 소리쳤다. 나는 커다랗게 발기한 성기를 형의 엉덩이에 비벼대면서 혀로 살결을 핥았다. 부드러운 생크림을 핥듯이 몇 번이고 목덜미를 음미한다. 바짝 갖다 댄 좆을 엉덩이에 문지르자, 형의 입술이 벌어졌다. 완전하게 발기한 형의 성기를 흔들면서 귓가에 입술을 붙였다.

“형, 내 손에 좆 커진 거 알아?”

형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로 눈을 질끔 감았을 뿐이었다. 귀두 끝만을 엄지손으로 비비면서 흥분감을 부추기자, 참지 못하고 야릇한 신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으읏, 으아. 하읏….”

형의 입안에 손가락을 넣고 혀를 지분거린다. 검지에 닿는 질척질척한 감촉과 간헐적인 형의 신음 탓에 사정할 것만 같았다. 반 아이들이 뚫어질 것처럼 나와 형을 쳐다봤다. 경멸과 호기심이 뒤엉킨 시선을 고스란히 받으면서 나는 형의 귓불에 입을 맞췄다. 춥, 추읍. 살결에 닿는 소리가 야릇하게 교실 바닥으로 떨어졌다. 최면상태의 형은 아무것도 모른 채 내가 주는 쾌락에 헐떡이기 시작했다.

입안에서 손가락을 빼냈다. 침으로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을 좆으로 비벼대던 엉덩이 사이에 넣고 문지른다. 내 쿠퍼액과 형의 침이 자연스럽게 섞여들기 시작했다. 입구를 지분거리던 손으로 형의 다리 한쪽을 잡아 올렸다. 가느다란 다리가 벌어지자 말랑말랑한 입구가 훤히 드러났다. 불그스름하게 물든 좁은 구멍을 손가락으로 어루만진다. 형이 흠칫 허릴 떨면서 내게 등을 기대왔다. 실실 웃으면서 형을 농락했다.

“내 좆 먹고 싶어?”

선규호가 고개만 돌려 나를 쳐다본다. 혼탁한 눈동자가 눈에 들어왔다.

“먹고 싶으면 키스해봐.”

형은 스르륵 눈을 감고 내 입술에 자신의 입술을 맞댔다. 어떤 감정도 없는 기계적인 입맞춤이 입술에 머물다 떨어져 나갔다. 입구를 느긋하게 놀리던 손가락을 안으로 밀어 넣었다. 말끔하게 손가락 하나가 입구 안으로 삼켜졌다. 꽉 조이는 안을 느끼면서 손가락을 하나씩 늘린다. 쫀쫀한 살결이 내 손가락을 조이면서 모두 삼켰다. 찌걱, 찌걱. 음란한 소리가 형의 하반신에서 울리는 게 느껴졌다.

“선규호 씹 구멍. 장난 아니다.”

“태오 새끼, 진짜 규호 따먹는 거냐?”

“이거 근친상간 각인데!”

부드럽게 이완된 구멍에서 한꺼번에 손가락을 빼낸다. 축축하게 젖은 손가락들이 오후의 햇살을 받아 번들거렸다. 나는 그걸 벌어진 형의 입술에 천천히 밀어 넣었다.

“빨아.”

형은 양 볼을 붉게 물들이고 혀로 내 손가락을 할짝거렸다. 간질간질한 감촉과 들끓은 흥분 탓에 심장이 빠르게 뛰었다.

“미친 새끼들, 니들 호모냐?”

“존나 더럽게.”

“토 쏠려! 씨발.”

불쾌감을 드러내는 녀석들이 대놓고 욕했다. 턱밑으로 형의 목을 감싸면서 뺨에 입을 맞췄다. 쪽, 쪼옥. 귓불로 입술을 옮겨 혀로 핥으면서 녀석들을 향해 손가락을 튕겼다. 욕하던 새끼들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별것도 아닌 새끼들이 같잖았다. 느슨하게 눈꺼풀을 내려 형을 내려다본다. 작게 헐떡이는 입술과 오르내리는 가슴이 시선 끝에 걸렸다. 아래로 손을 뻗어 내 좆을 잡았다. 힘줄이 툭툭 튀어 오른 기둥을 위아래로 쓸면서 형의 엉덩이에 문질렀다. 말캉한 살결에 비벼지는 촉감에 어금니를 물었다. 나는 주저 없이 엉덩이 양쪽을 쥐고 힘껏 벌려 축축하게 젖은 구멍에 충혈된 귀두를 맞췄다. 입구 안으로 꾸욱 성기를 밀어 넣었다. 페니스 사이즈가 큰 편에 속해선지 좀처럼 입구 안으로 진입하지 못하고 미끄러져 내렸다.

나는 바짝 형에게 몸을 밀착해 다시 한 번 성기를 맞추고 힘을 줬다. 느릿하게 내 좆이 구멍 안을 파고드는 게 느껴진다. 강렬하게 압박해오는 형의 구멍에 뿌리까지 성기를 박아 넣었다. 빨려 들어간 좆이 빠듯하게 조여오기 시작했다. 가슴께로 호흡이 치고 올라오는 게 느껴졌다.

나지막이 폐부의 숨을 몰아내면서 형을 바짝 끌어안았다. 그리곤 형의 목덜미를 가볍게 눌렀다. 최면이 풀린 형이 어떤 반응을 보일지 내장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서서히 의식이 돌아오기 시작한 형이 눈꺼풀을 깜박였다. 처음엔 전혀 인지하지 못하고 있다가 서서히 시야가 트이는지 순간적으로 형이 내 것을 조였다.

“하으. 앗. 이게, 흡. 이게 뭐야?”

놀란 형의 엉덩이가 꿈틀거렸다. 팔다리를 허우적거리며 버둥거리는 통에 잔뜩 박고 있던 좆이 빠질 것만 같았다. 나는 뒤에서 팔을 감아 목을 꽉 틀어쥐었다. 긴장하고 있는 목을 힘으로 누르면서 입을 열었다.

“선규호.”

“…….”

“네 구멍에 내 좆 박힌 거 느껴져?”

* * *

‘…느껴져?’

아득한 목소리가 안개처럼 흐릿하다.

“하아, 하아!.”

누군가 심장을 움켜쥔 것 같은 통증에 별안간 눈이 떠졌다. 놀란 눈으로 주변을 더듬거렸다. 호흡이 제대로 쉬어지지 않아 자꾸만 헐떡였다. 익숙한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잠에서 깼다는 걸 알아차렸다. 쿵쿵 울리는 심장을 진정시키려고 여러 번 숨을 골랐다.

대체, 무슨 꿈을 꾼 걸까.

가까스로 상체를 일으켜 세우고 손을 뻗어 핸드폰을 낚아챘다. 액정화면의 시계를 확인해보니 새벽 네 시가 넘어가고 있었다. 얼마나 식은땀을 흘렸는지 젖은 몸이 꿉꿉했다. 이상한 느낌이 하체에서 느껴졌다.

설마 싶은 마음에 손을 내려 속옷을 살폈다. 팬티 끝을 잡아 벌리자, 정액으로 흠뻑 젖은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절로 눈살이 찌푸려졌다. 한심해서 말도 안 나왔다.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이 상태로 다시 잠을 자는 건 무리였다. 침대에서 내려와 옷장을 열고 속옷을 챙겨 방을 빠져나왔다.

세면대에 물을 세차게 튼다. 정액으로 얼룩진 팬티를 빨면서 한숨이 나왔다. 대체, 무슨 꿈을 꾼 걸까. 몽정한 팬티를 남몰래 빨면서 기억나지 않은 꿈을 떠올리려 애를 썼다. 하지만 머릿속은 캄캄했다. 도무지 기억나는 게 없었다. 비누 거품이 잔뜩 묻은 팬티를 내려다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대체 이게 몇 번째인지, 모르겠다.

나는 요즘 행방이 묘연한 꿈에 시달리고 있었다. 아스라이 스치는 묘한 감각이 심장을 헤집어놓는 것만 같았다. 몽정할 정도로 욕구 불만인가. 대체 꿈에서 무슨 짓을 하고 있었을까. 막연하게 기억도 안 나는 꿈을 생각하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수능이 코앞인데. 태평하게 세면대에서 정액이 잔뜩 묻은 팬티나 빨고 있다니. 한심했다. 세차게 물을 튼다. 말끔하게 빨린 속옷의 물기를 꽉 짜냈다.

욕실을 빠져나와 조용히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고요한 거실을 가로질러 세탁실 문을 조심히 연다. 빨랫감이 담긴 보관함을 열고 방금 빤 속옷을 슬쩍 밑에 놓았다. 이러면 누구도 눈치채지 못할 것이다. 나는 긴 하품을 하면서 2층 내 방으로 돌아왔다. 등 위로 피곤이 한 겹 더 얹어진 기분이었다.

침대에 모로 누워, 스르륵 눈을 감았다. 억겁 같은 졸음이 한꺼번에 쏟아졌다. 까무룩 잠이 끼어든다. 어둠 속에서 방문 손잡이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눈을 뜨려고 애썼지만, 피곤한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누군가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오는 게 느껴진다. 누군지 확인해볼 새도 없이 깊은 잠에 빠져버렸다.

눈을 깜박였다. 난잡한 소음과 함께 낯익은 풍경이 시선 가득 들어왔다. 아마 여긴 우리 반 교실 같았다. 눈동자를 굴리자, 벌겋게 달아오른 반 아이들이 아무렇게 눈에 들어왔다. 하나같이 과장된 표정으로 기분 나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상하게 답답했다. 손으로 가슴께를 더듬자, 뭔가가 만져졌다. 괴롭다고 생각했는데 누군가 나를 바짝 끌어안고 있었다. 놀라서 몸을 움직였지만, 얼마나 힘이 센지 도무지 꿈적할 수가 없었다. 안간힘을 써봐도 두 팔로 허공을 휘저을 뿐이었다. 고갤 숙이자, 거뭇거뭇한 음모 아래 잔뜩 발기한 성기가 눈에 들어왔다. 이제야 내가 알몸이란 걸 깨달았다. 놀라서 어쩔 줄 모르는데, 훅 하고 가학적인 통증이 엉덩이골을 타고 찌르르 울렸다.

“…형.”

낮고 끈적한 목소리가 나를 불렀다. 기태오라는 걸 확인한 순간, 온몸의 솜털이 곤두섰다. 믿기지 않았지만, 등 뒤에서 나를 발가벗겨 강간하고 있는 건 태오였다. 은밀한 곳이 잔뜩 벌어져 녀석의 성기가 들락날락하는 걸 모두가 쳐다보고 있었다. 수치스러워 도무지 어디에 눈을 둬야 할지 몰랐다. 그 때 형준이가 눈에 들어왔다. 심장이 뜨끔했다. 도무지 마주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알고 지내온 녀석에게 이런 모습을 보이다니 정말 죽고만 싶었다.

머릿속이 엉망으로 망가지고 있는데, 깊게 박힌 녀석의 성기가 짜릿하게 나를 건드렸다. 흥분으로 달아오른 하체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우습게도 저릿저릿한 통증이 한순간 쾌감으로 바뀌었다. 참기 힘든 뭔가가 나를 달뜨게 했다. 녀석이 건들기만 해도 자지러질 것 같은 곳을 자꾸만 비비댔다. 견딜 수 없는 사정감이 긴박하게 차올랐다. 허리 짓을 할 때마다 내 성기 끝에서 선액이 뚝뚝 흘러나왔다. 예민해진 몸이 견디지 못하고 바들바들 떨렸다. 나는 질끈 눈을 감았다. 뭐가 즐거운지 납작한 배를 쓰다듬으며 기태오가 속삭였다.

“박을 때마다 내 좆이 볼록하게 나오는 거 보여?”

뒤에서 성기를 꾸욱 뿌리까지 눌러 박자 마른 배가 녀석의 모양대로 솟아오르는 게 보였다.

“존나 배 터질 것 같지 않냐?”

“대박, 미친.”

“씨발, 나도 박고 싶다.”

같은 반 녀석들이 아무렇게 지껄이는 말에 얼굴이 화끈거렸다. 수치스러웠다. 목덜미에 닿는 혀가 징그러웠다. 입술로 살결을 빨고 덧그리듯 울혈이 맺힌 곳을 혀로 더듬거렸다. 그러면서 쉼 없이 허릴 놀렸다. 느리게 은밀한 곳을 쓸고 지나가다가 빠르게 치고 올라오길 반복했다. 허벅지가 잘게 떨렸다. 차라리 고통만 느꼈으면 나았을 텐데, 혼미할 정도로 짙은 쾌감이 나를 떨게 했다. 꼼짝없이 뇌를 흔들었다.

“하아, 존나 예뻐.”

기태오가 들뜬 호흡을 내뱉으며 나직하게 지껄였다. 나는 저항하면서 소리쳤다. 당장 놓으라고, 안 그러면 죽여버리겠다고 목청껏 고함을 질렀다.

“아읏, 으아앗. 하아, 핫!”

하지만, 목에서 나온 건 생경한 소리였다. 낯 뜨거운 신음이 입술 밖으로 흘러내렸다.

“들었어?”

“와, 무슨 여자도 아니고 존나 신음 죽이네?”

“선규호 완전 섹규호네.”

반 아이들이 하는 말에 얼굴이 시뻘겋게 달아올랐다. 하지만 녀석은 뭐라고 지껄이든 상관없다는 태도로 나를 사정없이 들쑤셨다. 오른팔로 나를 감아 옴짝 못하게 만들고 흉측하게 발기한 성기를 빠르게 움직였다. 그러면서 내 턱을 그러쥐고 자신을 보게 했다. 열락에 잠긴 눈동자가 나를 씹어 삼킬 것 같았다. 그대로 입술을 내 입술에 부딪혔다. 싫다고 고갤 흔들었지만, 녀석은 가차 없이 턱을 짓누르고 혀를 밀어 넣었다. 질척한 혀가 움직일 때마다 음란한 소리가 귓가에 닿았다.

뒤로 박히면서 강제로 키스를 당하는 동안 터질 듯한 절정감이 나를 위협했다. 기태오의 성기가 깊숙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마구 비벼지고 있던 곳이 울컥했다. 앞쪽은 만지지도 않았는데, 희뿌연 정액이 왈칵 쏟아졌다. 음란한 쾌감이 혈관을 타고 흘러내렸다. 순간 뇌가 통째로 날아가는 것 같았다. 절정을 맞이한 엉덩이 안쪽이 멋대로 경련하는 게 느껴졌다. 녀석이 나를 바짝 당겨 깊게 성기를 찔러 넣었다. 귓가에 뜨거운 숨결이 간헐적으로 쏟아져 내렸다. 싫어. 싫어. 안 돼. 하지 마. 목소릴 내려고 애썼지만, 신음 소리만 무성할 뿐이었다. 녀석이 나를 꽈악 조여 안았다. 뒤로 빠졌던 성기가 단박에 꽂혀 들었다. 몸 안으로 무언가가 확 끼쳐졌다. 깊게 박힌 성기가 들썩거리면서 뭔가를 내 안에 토해내고 있었다.

“하아, 선규호.”

사정한 성기를 박은 채 녀석이 나를 불렀다. 녀석이 싸질러 놓은 정액이 샜는지 이상한 촉감이 허벅지를 타고 흐르는 게 느껴졌다.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정말 딱 죽고 싶다고 생각한 순간, 녀석이 내 목을 손가락으로 꾸욱 눌렀다. 눈앞이 흐릿흐릿해졌다. 뭐라 형용할 수 없는 감각이 나를 덮쳤다. 순간 몸이 추욱 늘어졌다. 머릿속이 새까맣게 얼룩지는 것 같다가 고요해졌다. 나는 그대로 의식을 잃었다.

‘굿모닝, 빠빠빠 빠빠ㅡ’

알람 소리가 시끄럽게 고막을 흔들었다. 새하얗게 타오르는 아침 태양 볕에 인상이 구겨졌다. 신경질적으로 이불을 당겨 머리끝까지 덮었다. 잠을 푹 잔 것 같은데, 몸이 여기저기 쑤시는 기분이었다. 감은 눈 밑으로 흐릿한 몇 개의 장면만이 빛바랜 흑백사진처럼 스쳤다. 설핏, 형준이가 나왔던 것 같기도 하고, 태오가 나를 불렀던 것 같기도 했다. 그러나 곧 의미 없이 생각 속에서 사라졌다. 빨리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해야 했다.

뭉그적거리며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방에서 빠져나오자 욕실에서 막 나온 태오가 보인다. 나는 기분 나쁘다는 듯이 녀석을 쏘아보며 미간을 구겼다. 허리춤에 목욕 타월을 감싼 채 녀석이 나를 쳐다봤다. 젖은 머리에선 물이 뚝뚝 흘러내린다. 운동으로 다져진 보기 좋은 상체가 눈에 들어왔다. 근육이라곤 하나도 없는 빈약한 내 몸과 비교가 됐다. 일부러 저러고 돌아다니는 건가, 재수 없는 새끼.

“엄마가 밥 먹으러 내려오래.”

녀석이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털며 말했다. 나는 뾰족하게 눈을 세우고 녀석을 노려봤다.

“안 먹어.”

“그럼 먹는 척만 하든가.”

녀석이 무뚝뚝하게 나를 지나쳐 제 방으로 들어가 버렸다. 오늘따라 유난히 냉소적이다. 꼴불견이다. 언제까지 저 녀석을 참고 견뎌야 할까. 빨리 대학생이 됐으면 좋겠다. 그럼 저 새끼와 더는 같은 집에서 살지 않아도 될 텐데. 욕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치약을 짜낸 칫솔을 입에 넣고 거울을 들여다봤다.

‘이게 뭐지?’

손으로 왼쪽 쇄골을 매만져봤다. 붉은 흔적이 맺혀 있는 곳을 더듬었지만, 아무 느낌이 없었다. 벌레한테 물린 건가. 지난번에도 같은 자리에 비슷한 자국을 발견한 적이 있었다.

‘여기 잘 숨겨, 키스 마크.’

그때 녀석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이 자국이 녀석이 말한 그런 종류의 것은 아니겠지만, 또 생긴 걸 보니 기분이 묘했다. 신종벌레인가. 세스코를 불러야 하나. 머릿속으로 쓸데없는 생각을 하다가 머릴 흔들었다. 이게 다 기태오 때문이다. 걘 왜 이상한 말을 해서 사람을 심란하게 만드는지 모르겠다. 면박을 주고 무시를 하면 좀 찌그러져 있어야지, 되려 내 말을 무시하고 툭하면 협박 거릴 찾아와 괴롭히고 있어 피곤했다.

“윤 여사, 여기 반찬 좀 더 내오고….”

잘 차려 놓은 아침 식탁과 마주한다. 녀석의 말처럼 먹는 척만 하려고 내려왔다. 그렇지 않으면 괜히 짜증 날 일만 늘어 적당히 맞춰주는 게 일과가 됐다. 무의미하게 밥알을 젓가락으로 세다가 가만히 내려놓는다. 여름만 되면 식욕이 뚝 떨어져 아침은 정말 먹기가 힘들었다. 나는 유리컵에 가득 따라놓은 생수를 조금 들이켰다. 맞은편에 앉아 기세 좋게 밥 한 공기를 다 비우고 두 그릇째 밥을 먹고 있는 태오가 눈에 들어왔다. 괜히 얄미워 없던 입맛마저 싹 달아나는 것만 같았다. 고갤 돌리자, 아줌마와 눈이 마주쳤다.

“더 먹지 않고. 토스트라도 만들어줄까?”

싸구려 향수 냄새를 풍기던 첫인상에 비하면 반전이다, 싶게 세련된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천박한 화장은 언제부터 안 했더라. 가만히 얼굴을 보면서 생각하다가 가녀린 목으로 시선이 옮겨졌다. 생일이었나. 결혼기념일이었나. 아버지가 선물한 다이아몬드 목걸이가 그녀의 목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었다.

“아뇨.”

식사를 끝낸 나는 의자에서 일어섰다. 아줌마가 얼른 나를 따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공부해야 하는데, 배곯으면 안 돼! 하면서 윤 여사를 다시금 불렀다. 빨리, 뭐라도 챙겨 달라는 눈치였다. 손으로 굳이 만지지 않아도 뭘 생각하는지 빤히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대체로 그런 사람들은 단순하고. 행동에 악의는 없지만. 지금처럼 필요 이상으로 피곤하게 군다.

“규호야, 이거 먹고 가.”

“…….”

“아니다, 들고 가면서 태오랑 먹을래?”

참 난감하다. 그다지 아줌마를 좋아하진 않지만, 버릇없이 굴고 싶지는 않았다. 그렇다고 저걸 길거리에서 녀석과 먹을 생각은 더더욱 없었다. 때마침 밥을 다 먹었는지, 식탁 의자에서 태오가 일어났다. 길쭉한 팔을 뻗어 아줌마 손에서 냉큼 바나나를 낚아챘다.

“형은 아침에 바나나 안 먹어.”

“어머! 그랬어? 그럼 뭐 다른 거 줄까?”

녀석이 아무렇게 바나나를 던져놓고 성큼성큼 내 앞으로 걸어와 단숨에 내 손목을 그러쥐었다.

“갔다 올게.”

“다, 다녀오겠습니다.”

녀석의 손에 끌려가다시피 거실로 나왔다. 맞닿은 체온 아래 맥박이 빠르게 뛰는 것 같았다. 냉큼 손목을 빼려는데, 녀석이 놔주지 않고 나를 향해 몸을 돌렸다. 날렵한 눈꺼풀을 내리깔고 녀석이 나를 내려다봤다.

“씨발, 안 놔?”

눈에 힘을 주고 녀석을 노려봤다. 기세 좋게 나를 내려다보는 눈동자를 본 순간 화가 치밀어 올랐다.

“만지면 닳아서 없어지나?”

“뭐, 이 새끼야?”

아. 맞다, 하고 방금 막 생각난 것처럼 녀석이 입술을 달싹였다.

“세탁실에서 젖어 있는 형 팬티 봤는데.”

“…….”

“몽정했나 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감춘다고 했는데, 어떻게 그게 들통이 났는지 의아했다. 녀석은 건수 하나 제대로 물었구나 싶은 얼굴로 비릿하게 웃었다.

“걱정 마. 아무한테도 말 안 할게.”

“…….”

“대신, 조건이 있는데.”

뻔뻔스러운 얼굴로 잘도 나를 협박하고 있었다.

“형, 목 만져봐도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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