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이상한 기류
“으음.”
나른한 잠기운이 서서히 깨기 시작한다. 기억하고 있던 꿈의 잔상들이 흐릿하게 뭉개졌다. 현실의 경계에서 느릿하게 눈이 떠졌다. 어째선지 문 앞에 서 있는 태오가 놀란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느리게 눈을 깜박이다가 녀석을 쳐다봤다. 분명 학교에 있어야 할 녀석이. 어째서 여기에 있는지 이해가 안 갔다.
“너 방금 뭐라고 했어?”
녀석이 대뜸 물었다. 당황한 기색이 물든 얼굴로 성큼 다가왔다. 지금 놀랄 사람이 누군데.
“방금 나 불렀잖아.”
“내가 널 미쳤다고 불러?”
“…….”
“병신아, 잠꼬대겠지.”
또 안 좋게 감정이 나간다. 물과 기름처럼 섞일 수 없는 관계. 아버지가 아줌마와 사이가 나빠져 이혼을 하든지, 얼른 졸업을 하고 내가 이 집을 뜨든지. 둘 중 하나 하지 않으면 매번 똑같을 것이다. 뭐가 불만인지 한숨을 내쉰 녀석이 나를 쳐다본다.
“야, 너 왜 여기 있냐. 누가 허락 없이 들어오래?”
태오가 들고 있던 가방을 내려놓고 테이블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그리곤 뭔가가 담긴 트레이를 들고 내 쪽으로 다가와 내 앞에 내려놓았다.
“죽 가져왔어….”
아무래도 내 방에 온 목적은 저 죽이었던 모양이다. 그럼 그렇지, 기태오가 내 방에 들어올 일이 뭐가 있다고. 분명 윤 여사가 가져다주라고 부탁해 가져온 것일 테지. 여자에겐 약하니까 거절도 못 하고 병신같이 여길 들어왔을 것이다.
“일어나, 약 먹어야 하잖아.”
담담한 얼굴이 나를 내려다본다. 나는 마지못해 상체를 일으키고 앉았다. 코피를 쏟은 후로 몸이 좋지 않은 모양인지 현기증이 치밀었다. 침대 헤드에 몸을 기대고 녀석이 건네준 트레이를 받았다.
“학교에서 아는 척 안 할게.”
“…….”
“좀, 정신이 없었어.”
“…….”
“화나게 만들어서 미안.”
가만히 숟가락을 들었다. 부드러운 죽을 한 입 떠 먹었다. 윤 여사가 끓인 죽은 항상 뜨거워서 자주 입을 데곤 하는데, 어째선지 이건 알맞게 식어 있었다. 아마도 죽이 식기를 기다렸다가 나를 깨운 모양이다. 성질부리고 욕한 건 난데. 참 이상한 새끼다. 그렇게 모질게 굴었는데, 저 얼굴로 또다시 나를 쳐다본다. 길 잃은 짐승 새끼처럼, 측은한 눈동자가 이상하게 나를 흔들어놓고 있었다.
“알았으니까.”
“…….”
“나가.”
녀석이 바닥에 떨어진 제 가방을 주워 밖으로 나갔다. 나는 들고 있던 숟가락을 가만히 내려놓았다. 언제였더라. 저 녀석이 저런 눈동자를 하게 됐던 게. 가만히 눈을 감았다. 처음 녀석을 봤던 때를 떠올렸다. 지금보다 어리고. 더 재수 없던, 기태오를.
아마, 중학교 3학년 학기 초였을 것이다. 나는 성적표를 아무렇게 구겨 가방에 집어넣고 교문을 빠져나왔다. 봄이라고 하기엔 바람이 매서웠다. 아직도 긴 겨울 어귀에 있는 것처럼 교복 안으로 찬 공기가 파고들었다. 평소라면 학원에 가야 했지만 나는 버스정류장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막 코너를 돌아 들어오기 시작한 버스 구석에 아무렇게 몸을 실었다. 어둠에 삼켜진 세상 위로 인위적인 불빛들이 도로를 채우고 있었다. 노선을 따라 버스가 속력을 내다가 정체 구간을 지날 땐 제자리걸음처럼 느리게 움직였다. 나는 무료한 얼굴로 서서 창밖을 쳐다봤다. 도무지 움직일 것 같지 않던 버스가 다시 움직이고 얼마 안 돼 사거리 정류장에 멈춰 섰다. 빽빽하게 서 있던 사람들이 한꺼번에 내렸다.
나는 한산해진 버스 뒤쪽으로 자릴 옮겨 빈자리에 지친 몸을 구겨 넣었다. 목적지를 향해 달려가던 버스가 신호 대기에 걸렸는지 낡은 엔진 소리를 내며 덜덜거렸다. 나는 차창 밖을 쳐다봤다. 색색의 간판들이 새하얗게 불을 밝히고, 어디로 향하는지 목적지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횡단보도 앞을 지나쳐 갔다. 누군가 전화를 하고 누군가 반가운 사람을 만나고. 누군가는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는 누군가를 기다리고…. 덜컹거리는 버스 안에서 나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가로등 불빛이 비껴간 투명한 유리 차창으로 내 얼굴이 비춰들었다. 무감한. 텅 빈 눈동자와 부딪혔다.
며칠 전 아버지는 소개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고 내게 털어놨다. 알고 싶지 않아도 아버지의 여자관계라면 체온이 닿을 때마다 시시콜콜한 것들까지 보고받았었다. 만나는 사람이 자주 바뀌기도 했고 일정 기간 솔로의 생활을 유감없이 즐기기도 했던 아버지에게 몇 달 전부터 꽤 진지하게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걸 알았다. 심심찮게 만나는 사람이 있을 때도 내게 일말의 언급도 없던 아버지가 함께 저녁을 먹자는 제안을 했을 땐 좀 당황스러웠다.
나에게 소개하고 싶다는 건 그 사람과 지금과는 다른 관계를 원한다는 뜻이었다.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고 싶을 만큼 대단한 사랑에 빠진 게 분명했다. 아버지의 인생에 어떤 걸림돌이 되고 싶은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단지 생활 환경이 바뀌는 것이 별로 달갑지 않았다. 아버지와 나 이외의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은 지금껏 생각해본 적이 없던 문제였다.
‘아버진, 네 의견이 가장 중요해. 규호야.’
손을 잡고 나를 바라보는 눈동자는 호소 짙은 목소리만큼 간절했다. 내 의사가 얼마나 절실한지 아버지의 다정한 눈동자에 여실히 드러났었다. 아마 나는 그 눈동자를 저버릴 수 없었던 것 같다. 머리 위로 떠오른 수많은 진심이 어느 때보다 진지하게 나를 파고들었다.
나는 기로에 서 있는 기분이었다. 수많은 선택지를 놓고 볼 때. 어떤 선택은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초래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 미래를 가늠할 수 없는 인간이 가장 쉽게 저지르고 마는 실수 중 하나가 생각 없이 미래를 결정하는 것이었다. 삶의 축이 될 중요한 순간을 만들 땐, 함부로 판단해선 안 됐다. 나는 아마 그것을 간과했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고른 선택지가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 아무것도 모른 채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엄마 없이 자라온 나를 얼마나 안타깝게 여기는지 잘 알고 있었다. 무엇보다 아버지의 행복에 걸림돌은 되고 싶지 않았다. 그 간절한 부탁을 거절할 만큼 모질지도 못했다.
기태오는 첫인상부터가 불쾌했다. 싸구려 향수 냄새를 풍기는 아줌마를 봤을 때와 비슷한 기분이었다. 우습게도 기태오는 경계심 가득한 눈초리로 나와 아버지를 노려봤다. 낯빛에 짜증스러움과 불만이 가득했다. 자리에 앉아 주머니에 손을 꽂은 채 인사랍시고 고갤 까닥하곤 말았다.
셰프의 추천요리가 테이블 위에 세팅되는 동안 나는 녀석을 눈으로 훑었다. 딱 봐도 머리에 든 거 없이 자존심만 센 타입 같았다. 어머니를 닮아 눈이 시원스럽게 큰 것 빼고. 골난 얼굴은 참, 봐주기 힘들었다. 뭣하면 적당한 약점이나 잡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순간, 눈이 마주치자 나만 들리도록 기태오가 입술을 달싹였다.
“뭘 봐, 이 씹새야.”
이 자리가 어떤 자리인지 알면서 이러는 건. 자신의 엄마에게 화가 났거나 우리 가족이 불만족스럽거나. 아님,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에게 짜증이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나는 접시에 담긴 음식들을 나이프로 사정없이 조각내고 있는 녀석을 가만히 바라봤다. 이런 아들을 낳고 저 아줌마는 미역국을 잘도 먹었나 보네, 하면서. 속으로 아줌마와 녀석을 싸잡아 욕하고 있었다.
시선 끝에 아버지 잔에 와인이 비어 있는 게 보였다. 나는 반사적으로 손을 내밀었다. 녀석 옆, 와인 병을 건네달라는 의미였는데, 녀석이 나와 손을 번갈아 보더니 덥석 잡아왔다. 길쭉한 손가락이 무방비하게 내 손에 감겨왔다. 멍청해도 유분수지. 설마 내가 악수라도 청한 줄 안 걸까. 그러다 녀석의 머릴 쳐다봤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떤 마음을 숨기고 있는지 다 까발려주고 싶었다.
감정의 색을 입은 수다스러운 문장들이 벌써 차고 넘치게 흘러나오고도 남을 시간인데, 단어 하나 없이 깨끗했다. 나는 얼른 손을 빼냈다. 고요하던 심장이 불온하게 흔들렸다. 순간 사고가 정지하는 것 같았다. 어떤 생각도 떠오르지 않았다. 놀란 얼굴로 녀석을 바라보자, 금세 시선이 부딪혔다. 얼른 녀석의 시선을 피해 고갤 돌렸다.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심장이 제멋대로 뛰고 있었다. 생각이 보이지 않는 사람을 태어나 처음 만난 순간이었다.
아직도 기억한다. 그때의 충격을. 이루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나를 엄습해왔다. 벌써 아버지가 재혼하고 3년 가까이 되어가는데 나는 여전히 녀석이 적응되지 않았다. 마음을 읽을 수 없는 사람과 산다는 건 굉장히 피곤하고 예민해지는 일이라는 걸 그 녀석 때문에 알게 됐다. 내가 하는 행동을 쓸데없이 의식해야 했고, 녀석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 없어 답답했다. 나는 태오와 함께 있는 시간을 견디는 게 힘들었다. 생수병을 따고 약부터 입에 밀어 넣었다. 쓴 약을 삼키고 생수를 들이켰다. 식도를 타고 흘러들어 간 약이 고스란히 느껴지는 것 같았다. 어째선지 힘이 하나도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잠들지 못하고 몇 번이고 몸을 뒤척였다. 낮잠을 잔 탓도 있었지만, 기태오의 상처 입은 얼굴이 떠올랐다. 꼭 몹쓸 짓을 저지른 것만 같아서 기분이 좋지 못했다. 몇 번이고 몸을 뒤척이다 결국 일어났다. 적어도 이런 불안정하고 이상한 감정을 안고는 잠들 수 없을 것 같았다. 나는 천천히 침대에서 일어나 밖으로 빠져나왔다.
방문을 열고 어둠에 익은 눈으로 녀석의 방 앞으로 다가갔다. 고갤 숙여 발가락 끝을 내려다봤다. 자고 있을지도 모를 텐데. 그냥 갈까. 이게 뭐라고 문 앞에서 호흡을 가다듬었다. 지금이 아니면 이 마음이 모두 흩어질 것만 같았다. 손등으로 천천히 노크를 했다.
그 순간.
마치 나를 기다리기라도 한 듯 방문이 벌컥 열렸다. 기태오가 단숨에 내 손목을 잡아 끌어당겼다. 모든 게 단편처럼 흘러갔다. 어둠 속에서 더듬거리듯 눈동자가 자꾸 부딪혔다. 마주한 시선이 평소의 기태오 같지 않았다. 네가 고갤 내 쪽으로 숙이고 뭔가 속삭였다. 야릇한 감촉이 귓바퀴를 나른하게 감돌았다. 이상했다. 그냥 입술이 귓불에 닿는 것뿐인데 야릇한 기분이 들었다. 목덜미를 감싼 손이 꾸욱 나를 누르는 게 느껴졌다. 시야가 흐릿하게 흔들리면서 힘이 한꺼번에 쭈욱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눈을 뜨자, 지그시 나를 내려다보던 녀석이 내 턱을 당겼다. 쿵쿵 뛰는 심장 소리가 다 들릴 것처럼 몸 안에서 울렸다. 녀석이 맹목적으로 내 입술에 입술을 부딪쳤다. 네 혀가 나를 핥는 게 느껴졌다. 마치 과즙을 으깨기라도 하듯 내 입술을 빨고 깨물고, 안달 난 듯 나를 빨았다. 호흡이 자꾸만 가빠졌다. 허벅지에 단단하게 발정 난 녀석의 성기가 느껴졌다. 더럭, 겁이 났다. 이래도 되는 걸까. 그 때 녀석이 잠옷 상의 밑으로 손을 집어넣더니 맨살을 만지는 게 느껴졌다.
“하지…마.”
얼른 녀석의 손을 그러쥐었다. 지금 그만두지 않으면 멈추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입술의 감촉과 허벅지에 닿은 낯선 감각이 나를 자꾸 들뜨게 했다. 녀석이 입술을 겹쳐왔다. 지금과는 다른 방식으로 나를 삼키기 시작했다. 손가락으로 턱을 잡고 양쪽 볼을 눌러 강제로 입술을 벌렸다. 뜨거운 혀가 거침없이 입안을 헤집고 들어와 숨이 막힐 듯이 나를 더듬었다. 심장이 어떻게 될 것 같았다. 두 개의 혀가 질척거리며 음란하게 얽혀들 때마다 하반신이 점점 달아올랐다. 하아, 형…. 나를 부르는 네 소리에, 심장 끝이 조여들었다.
몽롱한 기운이 혈관을 타고 떠다니는 것 같았다. 어째선지 나는 알몸으로 침대에 누워 있었다. 어떤 저항도 없이 가만히 누워 녀석을 올려다봤다. 녀석이 눈을 맞추며 빙긋 웃었다. 저렇게 웃었던가. 호흡을 내쉴 때마다 몸이 점점 달아오르는 기분이 들었다. 속눈썹을 내려 내 아래쪽을 슬쩍 쳐다보면서 녀석이 속삭였다.
“되게 잘 어울려.”
상체를 약간 일으켰다. 실오라기 하나 없이 매끈한 몸 아래로 뭔가가 눈에 들어왔다. 한 번도 본 적 없던 것이 내 거기에 꽉 조이듯이 채워져 있었다.
“이, 이게 뭐야?”
내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 몸 안에 감돌고 있는 기묘한 흥분감에 자꾸 아래에 힘이 들어가는 게 느껴졌다. 녀석이 손을 뻗어 구속구가 채워져 있는 게 내 성기를 건드렸다. 나는 마른침을 삼켰다. 몸을 움직이려고 했지만 조금도 허락되지 않았다. 오로지 녀석이 건든 곳이 얼얼하게 달아오르고 있을 뿐이었다. 태오가 속눈썹을 느리게 깜박이면서 나를 쳐다봤다. 손가락으로 이마를 덮고 있는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넘겨주면서 눈을 맞추었다. 큼지막한 눈동자가 천진난만하게 웃고 있었다.
“형.”
“…….”
“정조대 찼으니까.”
“…….”
“오늘은 엉덩이만으로 가는 거야.”
손가락으로 내 얼굴을 부드럽게 쓸면서 부끄러운 말을 아무렇지 않게 지껄였다. 차가운 구속구 안에 갇힌 성기가 꿈틀거리는 게 느껴졌다. 탁한 숨이 입술 밖으로 쏟아져 나왔다. 가슴이 멋대로 오르내렸다. 녀석이 재밌다는 얼굴로 손가락을 미끄러지듯 턱 아래로 가져갔다.
“여기, 젖꼭지 선 거 보여?”
“읏 으….”
녀석이 푸스스 웃으면서 손가락으로 젖꼭지를 만졌다. 그러면서 천천히 원을 그리듯이 문질렀다. 속눈썹을 내리깔고 음란한 눈으로 뭉개지고 있는 내 젖꼭지를 내려다봤다. 혀로 제 입술을 한 번 핥더니, 나를 쳐다봤다.
“확실히 알겠어.”
“…….”
“여기 만지면, 내 좆이 커지는 거 같아.”
“…으읏.”
녀석이 혀를 내밀어 내 입술을 핥아 올렸다. 나는 눈동자만 깜박거렸다. 전혀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인데 녀석이 만질 때마다 자극이 생생해서 성기가 아플 정도로 부풀어 오르고 있었다. 정조대 안이 꽉 찬 느낌이라 꼭 터질 것 같았다.
양쪽 젖꼭지를 잡고 느릿하게 당기면서 입술에 쪽 소리가 나게 입을 맞춰왔다. 호흡이 가빠지기 시작했다. 뜨겁게 맞닿아 당겨지고 있는 젖꼭지가 야릇하게 아리기 시작했다. 입술이 몇 번이고 녀석의 입안에서 빨렸다. 녀석의 혀가 질척하게 내 혀에 비벼졌다. 능숙하게 나를 삼키고 나를 흥분시켰다. 뺨에 입을 맞추더니 귓불을 머금었다. 은밀하게 달아오른 살을 앞니로 살짝 깨물면서 뜨거운 숨결과 함께 속삭였다.
“선규호.”
“…….”
“넌 왜 여기도 빨고 싶게 생겼냐?”
축축한 혀를 내밀어 귓불을 건드렸다. 녀석의 혀가 닿는 곳마다 뜨겁게 열꽃이 피어오르는 것 같았다. 나는 숨을 헐떡거리면서 고갤 흔들었지만, 목석처럼 굳은 몸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온전히 자극해오는 태오의 손길에 민감한 살결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이번엔 녀석이 내 젖꼭지를 세게 비틀었다. 그러면서 귓불을 함께 깨물었다.
“젖꼭지도 아니면서.”
“…….”
“존나 말랑해.”
빳빳하게 발기된 성기가 그 안에서 푸릇푸릇하게 멍들고 있는 것만 같았다. 나는 숨을 헐떡였다. 정조대인지 뭔지. 내 성기가 그 안에서 터져버릴지도 모른단 불안이 엄습해왔다. 태오는 아는지 모르는지 그쪽엔 손도 안 댔다. 말 그대로 내 성기를 투명인간 취급했다. 눈을 감았다. 이 모든 게 차라리 꿈이라면 좋겠다고 생각한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무겁게 짓눌린 눈꺼풀이 갑작스럽게 떠졌다. 몽롱한 의식 너머 내 방 천장이 눈에 들어왔다. 가슴께가 심하게 울렁거렸다. 쏟아지는 호흡이 거칠었다. 나는 인상을 찡그렸다.
약 기운 탓이었을까. 어느 틈에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식은땀으로 흠뻑 젖은 채 폐부에 남은 설익은 숨을 쥐어짜 냈다. 마치 가위에 눌린 사람처럼 몸에 힘이 하나도 없었다. 거칠게 쏟던 호흡이 조금씩 느슨해질 쯤 상체를 일으켰다. 습관처럼 손을 내려 잠옷 바지를 살폈다. 다행히 몽정은 하지 않았다. 대신 땀에 축축하게 젖은 속옷이 찝찝했다. 빨리 샤워하고 싶었다. 새벽인 줄 알았는데 시계를 보니, 아직 열한 시도 채 지나지 않은 시간이었다. 침대에서 내려와 갈아입을 옷가지를 챙겼다.
“와도 아는 척 안 할 건데?”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오자 태오의 목소리가 들렸다.
“곧 알게 되겠지.”
누군가와 통화를 하는지. 몰라. 아니. 어. 따위의 말을 늘어놓더니. 곧이어 전화가 끊겼다. 2층 발코니에 서서 통화를 하던 녀석이 이쪽으로 몸을 돌렸다. 안으로 들어온 녀석과 시선이 부딪혔다. 엿듣고 있었던 건 절대 아닌데 괜히 오해하는 건 아닐까 싶었지만, 녀석은 곧바로 제 방문 쪽으로 걸어갔다. 힘줄이 자리 잡은 단단한 팔뚝이 새삼스레 시선을 끌었다. 근육이라곤 찾을 수 없는 빈약한 내 것과는 확연하게 다른. 같은 것을 먹고 마셔도 이렇게 다르게 성장한다는 게 좀 억울하기까지 한 그 팔뚝에 둔 시선을 느꼈는지. 녀석이 뒤돌아 나를 쳐다봤다. 그러면서 막 생각났다는 듯이 피식거렸다.
“아. 또 팬티 빨러 가는 건가?”
“뭐 이 새끼야?”
“화내는 거 보니까 딱 걸렸네.”
“아니라고.”
날 선 목소리로 소리치자, 좀 전까지 화를 돋우던 녀석이 차분한 얼굴로 입을 열었다.
“알아. 아닌 거.”
“…….”
“아팠잖아.”
“…….”
“잘 자. 형.”
녀석은 곧장 방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열릴 일 없는 문을 바라보고 있다가 시선을 거두었다. 좀 전 불같이 타오르던 울분은 어디로 사라지고, 녀석의 말 한마디에 울렁이던 가슴이 가라앉았다. 나조차도 가늠하기 힘든 감정변화가 적응되지 않았다. 대체 기태오는 왜 저러는 걸까. 나는 서둘러 욕실 문을 열었다. 생각할수록 머리가 울렁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