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감정
“손대지 마.”
부모님이 재혼하고 한 집에 살게 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였다. 뾰족하게 눈을 세우고 선규호가 성깔을 부렸다. 잔뜩 털을 곤두세운 성난 고양이같이 부딪히기만 해도 버럭버럭 소릴 질러댔다. 내 꺼야, 만지지 마, 꺼져. 선규호 입에서 나오는 말은 욕 아니면 저 세 마디뿐이었다. 솔직히 말해, 부모님의 재혼은 뜻밖이었다. 엄마가 선규호 아버지와 새 삶을 시작할 줄은 몰랐다. 금세 질릴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닌 모양이었다. 두 분은 좋아 죽고 못 살겠지만, 고작 얼굴 두어 번 본 사람과 가족이 되다니. 퍽이나 억지스러웠다.
“내가 만졌냐? 그냥 부딪힌 거지?”
“꺼져. 씨발.”
계집애같이 하얗게 생긴 게 유독 못되게 굴었다. 거의 몇 달은 말도 못 붙이게 했다. 행여 제 물건을 만지기라도 하면 극도의 짜증이란 짜증은 다 부렸다. 한주먹도 안 되는 게 나만 보면 불안정하고 심약한 얼굴로 나를 노려봤다.
좀 잘 지내보려고 말을 붙여도 투명인간 취급하거나 욕을 했다. 핥으면 달콤한 맛이 날 것 같은 입술로 ‘씨발, 좆까.’ 같은 말을 서슴없이 지껄였다. 도무지 짐작할 수 없는 괴상한 성격이었다. 나와 스치기만 해도 으르렁거렸다. 거의 반년을 넘게 나는 선규호를 참아줬던 것 같다. 우습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선규호의 온갖 까칠함을 받아주고 있었던 건 순전히 엄마 때문이었다. 자신의 제2의 인생에 흠집이 날까 봐, 혹은 내가 무슨 사고라도 칠까 봐 틈만 나면 나를 단속하기 바빴다.
형이랑 잘 지내라. 아저씨 기분 거슬리게 하지 말아라. 싸우면 안 된다. 건들면 안 된다. 안 된다. 안 된다. 다 안 된다….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다 안 된대. 짜증이 치밀었다. 반지하나 옥탑방 같은 곳을 전전하며 거지 같은 인생을 살다가 호구 하나 제대로 물어 호화스러운 삶을 살다 보니 놓치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더는 비린내 나는 생선을 팔지 않아도 되고 틈만 나면 돈을 갈취하고 손찌검하던 사내새끼들에게 시달리지 않아도 됐다. 더는 시궁창 인생이 아니었다. 아저씬 끔찍하게 엄마를 아꼈고 군식구나 다름없는 나 역시 하나의 인격체로 존중해주었다. 엄마는 이 생활에 완전히 적응해 나가고 있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그날도 비슷비슷한 이유로 시비가 붙었다. 선규호의 노트북을 잠깐 썼는데, 그거 가지고 노발대발 신경질을 부려대기 시작했다. 만진다고 닳는 것도 아닌데, 선규호는 나를 노려보며 온갖 말들을 쏟아냈다.
“기생충 같은 새끼.”
가만히 참고 넘어가 줄 수도 있었지만, 그날 선규호는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뭐, 이 씹새끼야?”
“왜. 딱 네 별명이네.”
순식간에 눈이 돌아갔다. 정신을 차렸을 땐 도무지 되돌릴 수 없는 상태였다. 그날 밤, 선규호는 병원에 실려 갔다. 바닥에 떨어진 핏자국을 보면서 내가 어떤 짓을 저질렀는지 실감했다. 아저씨는 애들이 크면서 싸울 수도 있는 거라며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차라리 화를 내고 따귈 맞았다면 속이 편할 것 같은 위로였다. 옆에서 엄마가 눈을 흘기고 나를 노려봤지만, 어쩔 수 없었다. 병실에 누워 있던 선규호가 며칠이 지나도 깨어나지 않았을 땐 더럭 겁이 났다. 영영 일어나지 않을까 봐 초조했던 그날 밤. 나는 녀석의 꿈속에 잠입했다.
선규호는 잔잔하게 흘러가는 호수가에 엉덩이를 대고 앉아 있었다. 빛을 머금은 물결이 잔잔한 윤슬을 만들고 있었다. 평화롭고 조용한 곳이었다. 산뜻한 공기가 맡아졌다. 나는 녀석 옆으로 다가가 같은 자세로 앉았다.
“며칠째 이러고 있냐?”
“…….”
“덩치. 아니, 네 아빠가 너 걱정해.”
“…….”
“암튼, 난 깨우러 온 거니까.”
아무 말 없던 선규호가 고갤 돌려 나를 쳐다봤다. 애처롭고 어딘가 처연한 눈매로 녀석이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러면서 들릴 듯 말 듯 입술을 놀렸다.
“네가 죽었으면 좋겠어.”
“…….”
“너같이 이상한 새낀 없어졌으면 좋겠어.”
“넌 뒈지게 맞고도 그런 소리가 나와?”
화를 못 이기고 멱살을 낚아채자, 느슨한 환자복이 아무렇게 뜯어졌다. 흰 목선과 쇄골이 적나라하게 보였다. 지나치게 아름다운 눈동자가 나를 무감하게 쳐다봤다. 나는 녀석에게 참으로 하찮은 존재라는 걸 그 순간 알아버렸다. 울분과 함께 가학적인 심술이 났다. 그렇게 내가 싫다면, 나도 똑같이 대갚음하고 싶었다. 선규호는 나를 자꾸만 악랄하게 만들고 있었다.
* * *
“규호야, 괜찮냐?”
형준이가 앞자리 의자를 빼고 앉아 물었다. 아침부터 기분이 별로였다. 약을 먹고 나오면서도 몸 어딘가가 묘하게 열이 오르는 기분이었다. 제대로 잤다고 생각했는데, 그렇지 않은 모양인지 몸이 찌뿌둥했다. 이런 날은 정말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다.
“새끼. 존나 신경 쓰여.”
손가락으로 내 머리카락을 만지작거리면서 형준이가 나지막이 속삭였다. 나는 가만히 형준이를 쳐다봤다. 녀석의 머리 위로 마음들이 문장이 되었다가 사라지는 게 보였다. 많이 아팠나. 코피 한 번 쏟았다고 얼굴이 반쪽이네. 밥을 굶은 건 아니겠지…. 알아온 시간이 길어서일까. 형준이만큼 나를 챙기고 아끼는 녀석도 없었다.
“너 병원은 갔다 왔냐? 박사님한테 가봐야 하는 거 아냐?”
“코피 조금 쏟은 건데 뭐.”
“병 키울까 봐 그래.”
나는 피식 웃으면서 그렇게 약골은 아니야, 하고 대꾸했다. 때마침 교실 안으로 경민이가 들어왔다.
“왔냐?”
가방을 내려놓고 자리에 앉은 경민이가 나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형준이를 보고 인상을 구겼다.
“규호 닳겠다. 그만 좀 만져.”
“내가 뭘 어쨌다고 아침부터 시비냐?”
“존나 게이 새끼.”
“이게 또 지랄이지. 이리 와, 너도 만져줄 테니까.”
형준이가 장난스럽게 손을 뻗더니 머릴 잡아 뽑을 기세로 잡아당긴다.
“야야, 아퍼, 새꺄.”
비명을 지르다시피 악을 쓰던 경민이가 급기야 주먹으로 형준이를 퍽퍽 때린다. 하여간 이것들은 만나기만 하면 서로 못 잡아먹어서 난리다. 나는 슬쩍 기태오 자릴 쳐다본다. 아직 학교에 오지 않았는지 녀석의 자리는 깨끗하게 비어 있다.
“개새끼! 머리 뽑힌 거 봐.”
“게이 손맛을 보니까 어때? 흥분되지?”
“규호야, 이 새끼 진짜 미친놈 같지 않냐?”
엉망으로 망가진 머리카락을 손바닥으로 쓸어 넘기며 경민이가 인상을 구긴다. 그에 질세라 형준이가 내 턱을 그러쥐고 자길 보도록 눈을 맞춰온다.
“저 새끼 말 듣지 마.”
“초딩이냐? 니들 둘 다 똑같거든.”
손을 뿌리치며 한심하다는 듯이 대꾸하자, 또다시 시끄럽다.
“어딜 봐서 내가 초딩인데.”
“생긴 걸로 보면 네가 초딩이지.”
“맞아. 선규호 이 초딩 새끼야.”
한숨이 차오른다. 나는 문제집을 꺼내 든다. 생각해보니 어제 아프다는 핑계로 공부를 하나도 못 했다. 인강이라도 들었어야 했는데, 맥없이 자고 말았다. 심을 채운 샤프를 그러쥐고 문제집을 펼친다. 과외 선생이 어제 못 왔으니, 보강 시간을 다시 잡아야 했다. 이번 주는 학원 시간이랑 겹쳐서 어려울 것 같고. 다음 주에 연이어서 과외를 받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스터디카페 갈 건데, 규호 닌?”
“…봐서.”
주관식 문제를 읽으면서 대충 대꾸한다. 그 때 뒷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반사적으로 시선이 뒷문으로 옮겨붙는다. 태오가 무표정한 얼굴로 안으로 들어오는 게 보인다. 나는 눈으로만 녀석을 쫓는다. 평소처럼 이쪽은 쳐다보지도 않고 자리에 가 앉는다. 어디서 뭘 하고 왔는지, 가방을 내려놓고 곧장 책상에 엎어진다.
“기태오, 쟨 또 자냐?”
형준이가 태오를 바라보면서 한마디 한다. 경민이가 고갤 돌려 시선을 보탠다. 그러면서 슬쩍 입꼬릴 당기며 목소리를 죽이고 중얼거린다.
“존나 밤에 딸쳤나 보지.”
“아, 미친!”
형준이가 낄낄거리며 경민이 등을 퍽 친다.
“내 말 들어봐.”
“…….”
“진짜 장난 아니라니까. 내가 화장실에서 봤는데….”
좀 전까지 치고받고 난리 치던 녀석들이 화제가 바뀌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킬킬댄다. 어째서 기태오가 도마에 올랐는지 알 수 없지만 둘이 신나서 떠들기 시작한다.
“뭘 처먹고 자랐는지 그게 존나 커.”
“미친 그건 또 어떻게 봤어?”
녀석들이 악의를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안다. 쓸데없는 농담 같은 거라는 걸. 웃고 지나가면 그만일 잡담. 나도 딱 그 정도 웃고 지나치면 될 일인데, 이상하게 기분이 언짢다.
“그냥 보였다고. 미친 존나 큰 게. 코브라마냥. 아 씨발.”
“그걸로 어떻게 딸을 쳐?”
“존나 흔들겠지. 두 손으로 이렇게 붙잡고. 한 번으론 만족 안 돼서 새벽까지….”
“하지 마, 토 쏠려. 미친 새꺄.”
웬만하면 가만히 있으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언성이 높아졌다.
“야, 말 좀 가려. 니들만 있냐?”
“진짜라니까. 좆이 존나 팔뚝만 하게 커서….”
경민이가 자기 팔을 들어 과장되게 흔들면서 킥킥거린다.
“그만하라고 새끼야.”
나도 모르게 목소리가 엇나간다. 내 욕을 하는 것도 아닌데 기분이 확 잡쳐버린다. 형준이가 뭘 그런 거로 정색을 하냐며 한마디 했지만 똑같은 새끼라고 욕을 해줬다. 짜증이 치민다. 왜 이런 기분이 드는지 모르겠다. 나는 자릴 박차고 일어나 교실 밖으로 빠져나왔다.
* * *
종례가 막 끝났을 즈음이었다. 담배가 간절했다. 엉망진창으로 어지럽혀진 사물함을 열고 몰래 꿍쳐 두었던 담배와 라이터를 손에 쥐었다. 바지 뒷주머니에 슬쩍 넣고 밖으로 빠져나왔다. 내 뒤를 귀신같이 따라 나온 건 다름 아닌 임주한이었다. 녀석은 고등학교에 입학하면서 알게 된 녀석이었다. 장래 희망이 웹툰 작가라고 했던가. 하는 짓이 좀 괴짜였다. 틈만 나면 연습장에 그림을 그리곤 했었는데, 하나같이 남자 알몸뿐이었다. 쉬는 시간이건 수업시간이건 남자들이 엉켜 있는 야릇한 그림들을 그렸다. 하나같이 색정적이고 야한 것들뿐이었다.
“나도.”
“뭔 줄 알고 나도래?”
“빨러 가는 거잖아.”
“하나밖에 없어.”
“같이 빨면 되지.”
임주한이 하얗게 치아를 드러내며 웃었다. 떼어내기도 귀찮고 해서 옥상으로 가는 계단을 함께 올랐다. 5층 계단 끝에 서서 철문을 능숙하게 열고 안으로 들어갔다. 내리꽂히는 태양 빛에 눈이 부셨다. 얼굴이 저절로 찡그려진다.
“어우, 더워.”
녀석이 눈살을 찌푸리면서 옥상 난간에 몸을 기댔다. 태평한 구름이 느릿하게 하늘 위를 배회하고 있었다. 강렬한 태양 밑으로 기어 나와 나도 난간에 팔을 걸쳤다. 간간이 어디선가 흘러들어 온 바람이 머리칼을 헝클어뜨린다. 나는 뒷주머니에서 얼른 담배를 빼 다급하게 불을 붙였다.
“쓰읍, 하아.”
폐부에 감도는 아찔한 연기가 뇌를 갑작스럽게 확장시키는 것 같았다. 나는 다급하게 한 모금 더 깊게 빨아 당겼다.
“야, 이거 봐봐?”
내 입에 물린 담배를 뺏어 제 입으로 가져가 한 모금 빨면서 임주한이 나를 툭 쳤다. 핸드폰을 꺼낸 녀석이 액정화면을 내게 들이밀었다.
“요즘 내가 보는 비엘이 있는데.”
“비엘, 그건 또 뭐냐?”
“내가 웬만하면 충격이란 단어를 모르고 살았는데.”
“과장 떨지 말고.”
“존나 성진국은. 말이 필요 없어. 이건 그냥 봐야 해.”
내가 꿈에서 형에게 저지르는 변태 짓의 팔 할은 대부분 임주한에게 보고 배운 거나 마찬가지다. 이 새낀 다방면으로 참 다채로운 놈이었다. 이번엔 또 무슨 괴상한 짓으로 나를 놀라게 할지 흥미로웠다.
나는 핸드폰을 건네받으면서 녀석이 내 입에 물려준 담배를 빨았다. 부옇게 피어오르는 연기가 따끔따끔하게 눈을 찔렀다. 혼탁한 공기가 폐부를 훑고 새어 나왔다. 한껏 빤 담밸 녀석에게 넘기곤 핸드폰 화면을 넘겼다.
만화 어플을 열어놓았는지 단편 만화가 눈에 들어왔다. 수려한 외모의 의붓아버지가 아들 두 명에게 신명 나게 뒤가 털리고 있었다. 아흑, 안 돼. 우린 가족이야. 따위의 말풍선이 덕지덕지 붙은 화면을 넘기며 나는 어이가 없었다. 앞뒤로 붙어먹고 있는 아들들에 비해 절규하고 있는 아버지는 너무 곱상했다. 페이지를 넘기자 가관이었다. 잔뜩 발기한 두 개의 성기가 아버지의 입구를 동시에 찌르고 있었다. 뾰족하게 선 젖꼭지와 매끈한 엉덩이. 아들 둘이 아버지를 끌어안고 성기를 박고 있는데, 임주한 이 새낀 이런 걸 어디서 찾아서 보는 건지 그게 더 신기했다.
“여기, 눈썹이랑 눈매 보여? 표정 존나, 살아 있지? 이 선을 아래로 그렸으면 또 이미지가 달라지거든. 작가가 이 페이지에선 구도를 위에서 내려다보는 시각으로 잡아서….”
녀석은 오로지 그림을 보고 있었다. 내가 야하다고 느끼는 내용과 스토리가 아니라, 섬세하게 터치된 기법이나 그림체의 개성 같은 걸 감탄하고 있었다. 임주한이 뭐라고 설명을 이어가고 있었지만, 그림엔 문외한이라 그닥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나는 핸드폰 화면 속 음란하게 울부짖고 있는 의붓아버지를 쳐다보면서 형을 떠올렸다. 울려보고 싶게 생긴 게, 어딘가 선규호를 닮을 것 같았다.
“어, 저거 선규호 아냐?”
임주한이 다 빤 담배꽁초를 바닥에 버리면서 입을 놀렸다. 나는 고갤 돌려 운동장을 내려다본다. 썰물처럼 다 빠져나가고 하나둘 하교하고 있는 아이들 틈에 선규호가 보였다. 종례가 끝나고 청소라도 한 건지. 하교 시간이 꽤 늦어졌다. 멀리서도 새하얀 목선이 눈에 들어왔다. 반팔 아래로 내려온 팔꿈치나 가느다란 손목에 시선이 갔다. 형은 형준인가 준형이가 하는 새끼랑 나란히 하교하고 있었다.
“맞다.”
핸드폰을 바지 뒷주머니에 넣으며 임주한이 막 생각난 것처럼 입을 열었다.
“아침에 형준이랑 경민이가 존나 네 좆 크다고 까더라.”
어이가 없다. 뭐가 어째?
“팔뚝만 하게 커서 한 번으론 만족 못 하고, 밤새도록 딸친다고. 큭큭.”
“아 이 씹새끼들이.”
인상을 쓰면서 침을 바닥에 뱉었다. 내 앞에선 한마디도 못 할 새끼들이 겁도 없이 깝치고 있었다.
“근데, 의외였어.”
“뭐가.”
“선규호가 말 가려서 하라고 성질내더라.”
“……”
“박차고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와, 개 오졌어.”
점점 멀어져 가는 선규호에게 시선을 던졌다. 형이 고갤 옆으로 돌리는 게 보인다. 이마를 타고 내려온 콧날과 입술선이 멀리서도 선명하게 드러났다. 내쉬는 숨결이 묘하게 흔들렸다. 그사이 선규호가 새까만 교문을 성큼 빠져나가 버렸다. 나는 시선을 떼지 못하고 형이 사라지고 없는 교문을 쳐다봤다.
그날 밤 성급하게 형의 꿈속으로 들어갔다.
심장이 욱신거렸다. 선규호가 예쁘게 울 때마다 집요하게 파고들었다. 철저히 길들이고 싶다는 나쁜 생각을 했다. 하얀 엉덩이의 탄력적인 살결을 움켜쥐고 양쪽으로 벌렸다. 잔뜩 빨아서 흥건하게 젖은 입구가 붉게 충혈된 게 보였다. 정조대가 채워진 성기가 아플 만큼 부풀어 올라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나는 일부러 그쪽은 건들지 않고, 입구를 진득하게 물고 간질였다.
“형.”
“…….”
“지난번에 교실에서 했던 거 기억나?”
“……으읏.”
“여기, 이 구멍에 내 좆 박고 있는 거 보여줬잖아.”
형은 고갤 흔들었다. 마치 꿈을 기억하고 있는 것처럼 뺨을 붉혔다. 사실 형이 지난번 꿈을 기억하든 말든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어차피 꿈 밖으로 나가면 모두 지워질 텐데 적당히 수치심을 자극할 만한 분위기를 냈다. 그러다가 나는 꽤 재밌는 생각을 떠올렸다.
눈을 감고 김형준의 생김새를 떠올렸다. 실제 김형준을 꿈 안으로 불러들이는 건 내 능력 밖이라 불가능하지만, 이미지 정도는 그럴듯하게 만들어낼 수 있었다. 이미지를 내 입맛대로 설정할 수도 있지만, 대부분 꿈을 꾸는 사람의 등장인물로 움직이는 게 보통이었다. 이미지를 생각하면서 눈을 뜨자, 김형준이 바로 눈앞에 들어왔다. 녀석은 멍청하게 멍하니 서 있었다. 형과 어릴 때부터 친하게 지내던 사이라는 건 알고 있었다. 의외로 형이 김형준을 신뢰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 죽마고우처럼 지내던 선규호가 팔뚝만 하다고 놀려대며 웃던 상대에게 꿰뚫리는 걸 보게 될 텐데. 김형준의 표정이 어떨지 궁금했다.
형은 엎어져서 엉덩이를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정조대를 채운 성기가 곤혹스럽게 움찔거렸다. 하얗고 탐스러운 엉덩이를 손바닥으로 쓰다듬었다. 착 감기는 촉감에 나도 모르게 잇새로 낮은 숨을 토해냈다. 벌름거리는 구멍 안으로 빨리 성기를 처박고 싶었다. 고갤 들어 김형준을 노려봤다.
“야, 김형준.”
이름을 부르자, 녀석이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제야 상황 파악이 된 모양인지 녀석의 눈이 크게 떠졌다.
“이 개새끼가 지금, 누굴 데리고!”
녀석이 이쪽을 향해 고함을 질러댔다. 당장이라도 죽일 듯한 기세로 거침없이 달려들었다. 가소롭다는 듯이 나는 손가락을 튕겼다. 이쪽으로 내달리던 김형준은 유리 벽에 세차게 부딪혀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나동그라졌다. 김형준은 얼른 몸을 일으켜 다시 자신의 몸을 유리 벽에 세게 부딪혔다. 자신의 힘으로 깨부술 수 있다고 믿는 모양이었다. 김형준은 멈추지 않고 주먹으로 격하게 벽을 때렸다. 김형준이 과격하게 날뛰기 시작했다.
“씨발, 규호 건들기만 해라!”
목에 핏대를 세우고 녀석이 소릴 질렀다. 그러면서 발로 유리 벽을 내리쳤다. 끄떡없는 유리 벽에 온몸을 내던져 부딪혀왔다. 화가 치밀어 오른 표정이 가관이었다. 나는 천천히 성기를 끄집어냈다. 위아래로 어루만지면서 녀석을 향해 끝까지 발기한 성기를 보여주었다.
“하루에 몇 번 자위하는지 궁금하다고?”
핏대 선 성기를 느리게 쓸어 올리며 김형준을 노려봤다. 험악하게 일그러진 표정의 녀석이 눈을 부릅뜨고 나를 쳐다봤다. 나는 피식 웃었다. 곧바로 다른 손을 뻗어 형의 엉덩이골을 따라 손가락을 늘어뜨렸다. 입구 쪽으로 손가락이 자연스럽게 미끄러졌다. 불그스름하게 부풀어 오른 선규호의 입구를 문지르면서 좁은 틈에 손가락을 넣었다 뺐다 자극했다. 엉덩이를 쳐들고 있던 선규호가 흠칫 놀라는 게 느껴졌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일부러 깊게 손가락을 밀어 넣자 안쪽이 꿈틀거리며 손가락을 조이기 시작했다. 역겨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있는 김형준을 바라보며 나지막이 입을 열었다.
“어쩌냐? 난 자위 따윈 안 하는데.”
“…….”
“그냥 선규호랑 섹스해!”
김형준이 보는 앞에서 들락거리던 손가락을 뺐다. 잔뜩 풀어져 말랑말랑한 입구에 커다랗게 커진 성기를 능숙하게 맞추었다. 깊게 성기를 밀어 넣었다. 형의 안이 빠듯하게 내 것을 물어오는 게 느껴졌다. 그 간절한 조임에 호흡이 헝클어졌다. 꽉 닫힌 내벽을 가르면서 성기를 더욱 깊이 밀어 넣었다. 나는 잘 보이게 형의 엉덩이를 벌려 구멍에 박힌 성기를 녀석에게 보여주었다. 그것을 확인한 녀석이 나를 향해 악에 받쳐 소릴 질렀다.
“기태오 이 개새끼. 죽여버릴 거야!”
김형준이 발광할수록 형의 안은 나를 강하게 조였다. 김형준에게 섹스하는 모습을 보인다는 사실이 수치스러운 듯 자꾸만 고갤 흔들었다. 가냘픈 등이 벌겋게 물들어갔다. 나는 등에 상체를 바짝 붙이고 속삭였다.
“형, 흥분했어? 정조대를 채웠는데, 사정하면 어떡해?”
* * *
어딘가에 있을 가로등 불빛이 미세하게 스며들고 있는 내 방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풀다가 만 문제집이 놓인 책상, 학습용 의자. 모터가 도는지 낮은 기계음을 내는 에어컨. 어두 컴컴한 방 안을 더듬거리던 눈을 몇 번이고 깜박였다. 진정되지 못한 숨이 뜨겁게 토해졌다. 마른 손으로 얼굴을 쓸었다. 축축하게 젖은 땀으로 손바닥이 금세 흥건해졌다.
악몽인가. 가위였나. 대체 이런 음란한 꿈을. 그것도 형준이가 보고 있는데 완전히 발가벗겨져서 어떻게 거기에. 거기에….
몸을 일으켰다. 좀 전까지 당하고 있던 느낌이 꿈이었는데도 생생했다. 내 엉덩이를 만지던 손길이나, 음란하게 벌어진 입구에 드나들던 성기의 감촉이 진짜 같아서 아직도 배 속이 얼얼한 기분이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바지 속을 살폈다. 아래를 빠듯하게 조이던 구속구는 없지만, 정액으로 질펀하게 젖은 성기가 번들거렸다. 몽정을 한 성기가 아직도 빳빳하게 서 있는 게 눈에 들어왔다. 절로 미간이 찌푸려졌다. 짜증스럽게 이불을 걷어내고 몸을 일으켰다.
설마, 몽정할 때마다 이런 꿈을 꿨나.
좀 전의 꿈을 떠올리려 애썼지만 나를 능욕하던 상대의 얼굴은 떠오르지 않았다. 깨끗하게 얼굴만 도려낸 듯 도무지 기억나지 않았다. 서둘러 옷장 서랍을 열고 속옷을 챙겼다. 아직도 심장은 꿈 안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처럼 빠르게 뛰고 있었다.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기태오의 방문 틈으로 불빛이 새어 나오는 게 보였다.
이 시간까지 공부할 타입도 아니고. 게임이나 하고 있겠지. 괜히 내 상황을 들킬까 봐 얼른 욕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문을 닫기가 무섭게 잠금장치부터 걸었다. 축 처진 기분으로 옷을 몽땅 벗고 샤워 부스 안으로 들어갔다. 일부러 찬물을 틀었다. 수능이 코앞인데, 이따위 저질 꿈이나 꾸고 있는 내가 한심했다. 쏟아지는 물줄기에 몸을 맡긴 순간 온몸이 얼얼해졌다. 빨리 딱딱하게 선 성기가 쪼그라들었으면 좋겠다.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난 후 남중, 남고를 연달아 다니고 있어 딱히 이성을 만날 기회가 적었다. 생각해보면 내 또래의 여자애와 이야기를 해본 적이 별로 없었다. 학교에 있는 여선생들은 죄다 결혼한 유부녀였고 교생실습으로 왔던 교생조차 얼굴에 여드름을 매단 남자 교생뿐이었다. 시커먼 사내새끼들과 부대끼고 있어, 성적 성향에 혹시 문제가 생긴 게 아닐까. 그렇지 않고선 엉덩이에, 그게 들어가는 꿈을…. 그것도 형준이가 보는 데서. 하. 생각할수록 기가 찼다.
샤워를 끝내고 나서도 기분은 최악이었다. 방금 빤 속옷을 들고 빠르게 세탁실로 내려갔다. 기태오에게 몽정한 팬티를 또 들키긴 싫어 세탁물들과 함께 팬티를 세탁기에 처넣었다. 아무렇게 세제를 넣고 전원 버튼을 눌렀다. 위이잉, 돌아가는 드럼세탁기를 바라보고 있다가 밖으로 빠져나왔다.
2층으로 올라오자, 아직 불이 켜져 있는 녀석의 방이 보였다. 문틈으로 새어 나오는 빛이 또렷해서 나도 모르게 녀석의 방문 앞으로 다가갔다. 손을 들어 가볍게 노크를 했지만, 답이 없었다. 나는 손잡이를 잡고 천천히 문을 열었다. 열린 문틈으로 안을 바라봤다.
스탠드 불빛이 은은하게 감도는 내부가 눈에 들어왔다. 평소엔 거의 들어올 일 없는 기태오의 방을 살폈다. 내 방과 비슷한 가구들이 구조만 다르게 배치되어 있었다. 난잡하고 더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로 정리정돈이 잘되어 있었다. 문틈을 비집고 안으로 들어왔다. 저절로 시선이 침대 위로 옮겨갔다.
아무렇게 누워 잠들어 있는 녀석이 눈에 들어왔다. 더위를 타는 모양인지 알몸에 드로즈 차림으로 자고 있었다. 새까만 곱슬머리 아래로 감긴 눈꺼풀이 보였다. 오르내리는 숨이 규칙적이었다. 한눈에 봐도 쉽게 깰 것 같지 않았다. 목울대, 넓은 어깨선, 탄탄한 복근 같은 게 눈동자를 굴릴 때마다 눈에 들어왔다. 같은 남자 몸인데도 나와 차이가 심했다. 괜히 겸연쩍어 시선을 돌렸다.
순간 활짝 열린 창문이 눈에 들어왔다. 조금 덥다고 생각했는데, 에어컨 대신 창문을 열어놓은 탓이었다. 새벽공기를 묻힌 바람이 머리카락을 스치듯 불어왔다. 미약한 바람 탓에 열이 오르는 것 같았다. 얼른 불만 꺼주고 나가자 싶어 고갤 돌리는데, 어디선가 짤막한 알림음이 울렸다. 녀석 옆에 함께 뒹굴고 있는 핸드폰이 깜박거렸다. 누군가로부터 메시지가 온 것 같았다. 저절로 핸드폰 쪽으로 시선이 갔다.
[보고 싶다, 기태오.]
누군가가 보낸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그 뒤로 연달아 울리는 메시지들.
[빨리 만나고 싶다.]
[서울 도착하면, 마중 나와줄 거지?]
누굴까. 사실 기태오의 인간관계에 대해서 아는 바가 별로 없었다. 메시지만으론 상대가 누군지 알 수 없지만, 보고 싶다고 말하는 걸 보면 여자애일 것이다. 야심한 시간에 톡을 남길 정도면 꽤 친한 사이일지도 모른다. 기태오가 여자애들이 좋아할 타입이라는 건 누구도 반박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같은 남자가 봐도 잘생긴 얼굴이라는 걸 부정할 수 없으니까. 그런 녀석이 누군가 만난다고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시선을 옮겨 기태오를 내려다봤다. 감긴 눈꺼풀 밑으로 속눈썹이 가지런했다. 곧은 콧날과 부드럽게 다물린 입술이 묘하게 자극적이었다. 목울대와 쇄골. 상의를 탈의하고 있는 단단한 가슴팍, 운동으로 다져진 복근. 그리고 불룩한 드로즈. 눈가가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나는 불 끄는 것도 잊어버리고 서둘러 녀석의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왔다. 흔들리는 숨결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상하게.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