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0화 (11/13)

종장.

흑도무림의 중심, 흑천에서는 만마의 수장이라 불리 사내가 골치가 아프다는 듯 관자놀이를 누르고 있었다.

“그래서 지금……. 이런 노래가 저자에 돌아다니고 있다고?”

그 질문에 일총관 서문금령은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곤혹스러운 얼굴로 긍정했다.

“예.”

“둘째 녀석이…….”

흑천에 마음을 붙였다기보다는 그저 흘러갈 이유를 찾지 못했기에 머물러 있다는 것 정도는 알았다.

십만대산으로 돌아가 일월신교를 재건할 의사도 없는 아이가 신강으로 가버린 이유를 알고 나니 그렇게 기가 막힐 수가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제 사형을…….”

차마 말을 잇지 못하는 주군을 보며 서문금령의 낯은 더욱 착잡해져 갔다. 어떻게 진랑이 들인 제자 셋이 전부 집을 나가 버렸는지 생각하면 함부로 위로조차 꺼낼 수 없었다.

“……쓸데없는 노래는 가사를 적당히 뭉개도록.”

한숨을 토해내며 미간을 짚은 진랑이 덧붙였다.

“그리고, 잠시 자리를 비울 준비를 하도록.”

***

“내가 모용세가로 돌아가기 싫다고 했다고 나를 마두로 만들어?”

유운은 노발대발했다.

납치당할 때, 이 사제가 사기꾼이라는 걸 간과했다. 정신을 차렸다가 자신이 있는 곳이 신강의 십만대산이라는 걸 알게 되고 얼마나 놀랐던가.

세월이 묻어나는 지독하게 큰 건물들을 보며 압도당한 유운은 대체 여기가 어디냐고 캐물었다가 진실을 알게 되고 혼절할 뻔했다.

“아이 사형 이 부족한 사제를 도와준다고 생각하시고…….”

눈을 희번덕 뜬 유운은 승한을 노려봤다.

‘진짜 죽여버려야…….’

천마신교 출신이라는 건 그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그렇다고 냉큼 신강으로 와 버릴 줄은 몰랐다.

자신이 스스로를 이 구렁텅이에 처박았으니 새삼 후회는 하지 않는다. 돌이키려고 시도할 생각도 없었다.

하지만 열이 받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내가 아무리 그래도 모용세가의 마지막 남은 직계인데 천마신교에 들어오다니…….”

흑천주의 제자가 된 것보다 수백 배는 아찔하다. 유운은 치밀어오르는 노기에 삿대질하며 외쳤다.

“백도무림과 마교는 양립할 수 없는 사이란 말이다!”

“저 소박맞는 겁니까?”

충격이라는 듯 눈을 크게 뜬 승한의 말에 유운은 이를 갈았다.

“소박? 지금 소박이라고 했느냐? 이동 중에도 밤낮없이 옷에 손을 집어넣던 놈이 소박맞으면 뭐 어떻단 말이야?”

“아이참. 사형도 좋아하시지 않았습니까? 나중엔 먼저 옷을 벗고 기다려 주시기도 했으면서.”

“그건 너 때문에 옷이 젖어서……!”

힘이 넘치는지 나무로 된 목욕통을 자기가 옮기다가 그 물이 튄 까닭에 갈아입으려고 벗었던 거였다.

“다 해독되어 더는 치료할 필요도 없는데 거부 한번 안 하시기에 제가 밤일에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고 생각―”

“뭐라고?”

유운의 목소리가 삽시간에 쉬어버렸다.

승한이 매일 밤 침상으로 들어오는 걸 눈감아줬다. 그에겐 치료라는 아주 좋은 핑계가 있었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아랫배를 괴롭히던 뜨거운 열기가 잠잠해지긴 했으나 승한의 손이 닿을 때면 발정이라도 난 듯 열렬히 반응하는 온몸의 감각에 그저 꾸준하게 풀어주고 있는 덕이라고만 생각했다.

체력도 서서히 붙어서인지 처음처럼 마냥 힘들진 않았다. 아니, 오히려 좋았다.

“해독이 끝났다니?”

“빙정 말입니다. 빙정. 그날 화언장원에서 드신 게 빙정으로 만든 약이었습니다.”

진득하게 몸을 섞던 때, 승한이 입술로 넘긴 차가운 것이 떠올랐다. 그때는 열락에 머리가 어떻게 된 바람에 뭘 먹인 거냐고 따져 묻지도 못했다.

“대사형이 혼자 그 파렴치한 자들을 만나러 간다는데 바로 따라가지 못해서 얼마나 발을 동동 굴렀는지 모릅니다. 하지만 야소가 약을 짓는 데는 시간이 필요했고……. 그녀의 작업이 끝난 후에는 누구보다도 빠르게 사형에게 전달할 사람이 필요했거든요.”

“뭐…….”

아연실색한 얼굴을 마주한 승한은 눈을 빛냈다.

“그동안 저랑 하신 건 그냥 좋아서 하신 거라는 소립니다. 약 기운 같은 거 때문이 아니라.”

히죽히죽 웃는 승한의 모습에 유운은 그의 입술을 찰싹찰싹 때렸다.

“아야, 아. 아야!”

어린아이처럼 부득이 소리를 내서 고통을 호소하는 승한의 눈은 여전히 웃고 있었다.

“내가…… 진짜…… 대체 왜 이런 놈을…….”

유운은 허탈한 웃음을 내뱉다가 제 머리를 쥐어뜯었다. 그때 승한이 처음으로 유운의 손목을 감아오며 그를 제지했다.

“뜯을 거면 제 머리카락을 뜯으세요. 아프지 않습니까?”

어서 하라는 듯 유운의 손을 자기 머리 위에 올려놓고 충성스러운 개처럼 웃는 낯이 그렇게 뻔뻔할 수 없었다. 백번 양보해도 변덕스러운 고양이 같은 놈이 무슨.

“오냐. 알았다.”

호되게 힘을 준 유운은 그의 머리채를 잡고 끌어당겨 입을 맞췄다.

순식간에 질척해지는 호흡이 두 사람 사이에 뒤섞였다.

“그 잘한다는 밤일이나 해 보거라. 만족스럽지 않으면 화를 풀지 않을 거고 앞으로 보름 동안 밤에는 곁에 얼씬도 못 하게 할 줄 알아.”

“세상에.”

승한이 부끄럽다는 듯 얼굴을 붉혔다.

“낮에만 해 보고 싶다는 말을 이렇게 열렬하게 고백해 주시면 제가 너무 설레지 않습니까.”

입술을 꿰매 놔야 한다.

무심코 떠올렸으나 좋은 발상처럼 느껴지는 통에 유운은 머리가 지끈거렸다. 아마도 평생을 이 재앙 같은 주둥아리를 가진 놈과 아옹다옹하며 살아야겠지.

자신은 떠나지 못할 테고, 승한은 질린다는 게 뭔지도 모르는 인간이니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함께해야 한다는 것보단 나았다.

유운은 더는 흑천주도, 모용세가의 가주도 되고 싶지 않았다. 비록 돌고 돌아 마교의 터인 십만대산에서 살아가게 되었으나, 눈앞의 납치범이 호언장담하였듯이 이곳에서는 저 너머의 아무것도 염려할 필요가 없었다.

무림의 규율도, 지난해진 관계도, 그리고 무거운 짐까지도.

“닥치고 옷이나 벗어.”

유운이 으름장을 놓자 승한은 방긋 미소 지었다.

“분부 받듭니다.”

-외전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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