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필로그
타락자의 죽음으로부터 비센티아의 멸망이 시작되었다.
그러나 테이든은 알았다. 멸망은 그 이전부터 이미 시작되었다는 것을.
흑마법사는 마약 소굴을 드나들며 황성의 골칫덩이가 되었다. 수하들은 변해버린 헤베를 보고 있기가 괴로웠다. 그들 사이에서도 균열이 일어났다. 누군가는 헤베를 성에서 내보내 휴양하게끔 하려 했고, 누군가는 스스로 성을 떠났고, 누군가는 묵묵히 곁에 남았다.
수하들의 반목과 갈등 속에서 헤베는 피폐해졌다.
테이든은 모든 상황을 방치했다.
절박하고 절실해서….
멀어져가는 그를 붙잡고 싶은 나머지 잘못된 판단을 했다. 혼자가 된 그가 기대오는 게 좋아서 어긋나는 상황을 방조한 것이다.
그들이 모든 비밀을 알게 된 건 헤베가 죽은 지 한 달 되던 날이었다. 테이든은 연구일지를 불태웠다. 헤베의 명예를 되살리려는 시도는 할 필요가 없었다. 어차피 세상은 멸망할 테니까.
테이든은 흑마법을 받아들이고 실드를 파괴했다. 마계의 출입구가 열리며 분노에 휩싸인 마물들이 쏟아져 내려왔다. 뮨의 친위대와 헤베가 키운 마물이 인간 학살의 선봉장이 되었다. 테이든의 계획을 들은 이들은 악마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테이든은 멸망해가는 세상에서 헤베를 끌어안았다.
내리깐 눈꺼풀과 살짝 벌린 입술, 창백한 피부. 그저 자는 것처럼 아무 움직임이 없었다.
다만 마법이 풀린 시신은 점점 차가워졌다….
계획이 성공한다면 신은 우리를 과거로 돌려보낼 것이다. 그러면… 다른 방법을 선택하자. 이번엔 반목과 갈등을 방조하는 게 아니라 모두와 함께 헤베를 살릴 방법을 찾자.
문득 그는 시선을 느끼고 고개를 들었다.
아주 그립고도 따스한 감각이었고… 순식간에 사라졌다.
테이든은 미소 지었다.
예상대로 되리라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었다. 어쩌면 오랫동안 반복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상관없다…. 그렇게 해서 그와 행복해진다면.
무너지는 성에서 그는 시신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보드랍고 차가웠으며… 사랑스러웠다. 창백한 뺨에 눈물이 떨어져 흘러내렸다.
과거에서 만나요.
사랑하는 헤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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