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화 (18/18)

2.

-먀앙.

-삑삑삑?

-빽. 빽빽빽.

-먕. 먀앙.

-삐익….

-빽빽. 빽빽.

마물 세 마리가 헤베의 방 앞에서 퍽 심각한 분위기로 대화를 나눴다. 먕먕이가 삑삑이, 빽빽이를 앞에 두고 야단치는 구도였다. 멀찍이서 사용인들이 그 모습을 보고 푸흐흐 웃으며 지나갔다. 헤베에게 가까이 다가가지만 않으면 마물들도 이를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사용인들도 마물들을 나름 귀여워하고 있었다.

그렇게 인간들이 복도 끝으로 사라져도 마물들은 대화를 이어 갔다.

-먕!

먕먕이가 크게 울자 삑삑이와 빽빽이가 움츠러들었다.

사실 지금 셋은 굉장히 심각한 대화 중이었다.

-먕! (큰 주인이 옆을 비웠을 때 한 마리는 반드시 작은 주인 옆에 있어야 한다고 말했지? 둘 다 떨어지면 어떡해!)

바로 이 일 때문이었다.

먕먕이가 오전 순찰을 마치고 돌아와 보니 작은 주인 곁에는 아무도 없었고, 작은 주인 혼자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이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얼마 안 되어 큰 주인이 오긴 했지만 잠깐이라도 작은 주인을 혼자 뒀다는 사실에 극대노한 먕먕이는 삑삑이, 빽빽이를 불러서 기합을 주고 있었다.

-먕! 먀앙! 먕! (작은 주인 호위가 장난인 줄 알아? 이런 식으로 할 거면 저택 떠나서 혼자 살아!)

-삐익. (나는 빽빽이한테 있으라고 하고 나왔어. 빽빽이가 잘못한 거야….)

-빽빽. 빽빽빽빽. (삑삑이가 나가고 얼마 안 돼서 큰 주인이 들어오길래 나도 나갔어. 큰 주인이 자리를 비운 거야.)

-삐이익. (큰 주인이 잘못했어. 큰 주인을 물어뜯자.)

-먀앙? (큰 주인이 왜 작은 주인을 혼자 두고 나왔지?)

먕먕이가 고개를 갸웃했다.

세 마리가 일제히 헤베의 방을 쳐다봤다. 지금 방 안에는 낮잠 자는 헤베와 그 옆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는 테이든이 있었다.

-빼액? (설마 싸운 건가?)

-삑! (큰 주인을 물어뜯자!)

-빽빽빽. (보나 마나 작은 주인이 잘못했을 텐데 왜 큰 주인을 물어뜯어?)

-삐익! (작은 주인이 잘못하게 둔 큰 주인이 잘못한 거니까!)

-빼액. (그렇구나. 큰 주인을 물어뜯자.)

-먕. 먕먕. 먀앙. (주인들은 절대 싸우지 않아. 무슨 일이 있었겠지.)

삑삑이와 빽빽이는 쉽게 흥분했으나 주인들과 함께한 시간이 긴 만큼 먕먕이는 성숙했다.

-먕먕. (아무튼 알았어. 그래도 앞으로는 조심하도록 해.)

-삑. (응.)

-빼액. (응.)

-먀아앙. (그럼 오후 순찰 시작하자.)

먕먕이가 턱을 치켜들고 앞서 걷기 시작하자 삑삑이와 빽빽이도 머리를 치켜들고 뒤를 따랐다. 마물 세 마리의 순찰 일정은 하루 세 번으로 오전, 오후, 새벽에 진행된다. 저택이 넓기 때문에 한번 순찰하는 데 두 시간은 걸리므로 생각보다 빡센 스케줄이었다.

-삑. 삐익. (대장, 그런데 굳이 우리가 이렇게 열심히 순찰할 필요가 있을까?)

-빽. (맞아. 어차피 인간들은 우리한테 고마워하지도 않잖아.)

인간들은 자기들끼리 저택을 안전하게 지키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사실 이 저택이 안전한 건 마물들 덕분이었다.

정원 자작나무에 작은 주인이 귀여워하는 하얀 새 가족이 사는데, 그 새 가족을 노리던 나쁜 뱀을 해치운 게 바로 마물들이었다.

어제는 작은 주인이 좋아하는 분홍색 꽃을 어떤 살쾡이가 뜯으려고 하길래 혼쭐을 내줬고, 그제는 작은 주인이 즐겨 가는 산책길에 두더지 녀석들이 돌멩이를 옮겨 놨길래 그걸 하나하나 다 치운다고 고생했다.

마물들은 이렇게 하루하루가 바빴다.

-먀앙. 먕. 먀아앙. (인간들이 우리의 수고를 알든 모르든 상관없어. 우리는 주인들만 안전하게 지키면 돼. 우리한테 중요한 건 주인들뿐이야. 알았지?)

-삑!

-빽!

듬직한 먕먕이의 말에 삑삑이와 빽빽이 또한 결연하게 대답했다.

그렇게 마물 세 마리가 오늘의 오후 순찰을 시작했다.

순찰할 때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우선, 순찰하다 보면 저택 곳곳에 빵 바구니가 딱 손 닿기 좋은 높이에 놓여 있는데, 이 빵들은 작은 주인을 위한 거니까 먹으면 안 된다는 것. 그리고 둥근 덮개를 살짝 열고 냄새를 킁킁 맡아서 상했는지, 혹은 상해가는지 판별하는 게 마물들의 몫이었다.

-먀앙. (어때? 안 상했어?)

-빽빽. (오늘 아침에 새로 뒀나 봐. 냄새가 괜찮네.)

-삑! (먹어 보자! 먹어 봐야 확실하게 알지!)

빽빽이는 업무에 충실한 편인데 삑삑이는 유혹에 약하다. 먕먕이가 크르… 하면서 노려보자 삑삑이가 꼬리를 말았다.

-삐익…. (그냥 해 본 말이었어….)

-먕. (자, 계속하자.)

마물 세 마리는 그렇게 저택 곳곳의 바구니 속 빵 냄새를 맡고 다녔다. 중간중간 인간들과 마주치면 날카로운 눈빛을 쏘아보는 것도 잊지 않았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상한 빵을 발견한 적 없는데, 먕먕이는 그 이유가 바로 자신들의 감시 때문이라는 걸 알았다. 두려운 마물들이 감시하고 다니니 인간들도 철저하게 빵을 갖다 놓는 것이다. 만약 이 감시를 멈추면 바로 해이해져서 빵이 상해도 모르고 그냥 두겠지.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다.

***

빵 바구니 검사를 마치고 저택을 나왔다. 두 번째 임무는 정원 순찰이었다. 독이 든 뱀을 쫓아내고, 작은 주인이 좋아하는 하얀 새 가족이 잘 있는지 살펴보고, 산책길이 깨끗한지 살피는 중요한 임무다.

그런데 오늘따라 유난히 산책길에 돌멩이가 많이 떨어져 있었고, 진흙으로 지저분했다. 주위를 두리번거리던 삑삑이가 짜증을 냈다.

-삑. 삐익. 삑삑. (인간들이 저기에서 땅을 파고는 여기다 갖다 놓고 있어. 왜 인간들은 한 번씩 이상한 짓을 하는 거야? 안 되겠어. 물어뜯자.)

-빼액. (멍청한 인간들. 어쩔 수 없지. 우리가 치우는 수밖에.)

-먕먕먕먕. (삑삑이는 왼쪽부터. 빽빽이는 오른쪽부터.)

-삐익? (너는?)

-먕먕. (나는 인간들한테 경고해야겠어.)

큰 주인과 작은 주인은 하루에 한 번은 꼭 나와서 이 길을 걷기 때문에 먕먕이는 이 길을 어지럽힌 인간들에게 화가 났다.

분수인가 뭔가를 만든다고 어수선한 인간 무리에 가까이 가자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데, 데이지 집사장님. 마물이 우리한테 다가오고 있는데….”

“먕먕이? 먕먕이가 왜?”

큰 인간과 작은 인간이 신뢰하는 나이 든 인간이 겁도 없이 먕먕이에게 다가왔다.

-먕먕먕.

먕먕이는 데이지 앞에 앉아서 꼬리로 땅을 탕탕 쳤다.

“이런. 뭔가에 화가 났나?”

-먕먕먕먕먕먕먕먕.

먕먕이가 공사 현장에 굴러다니는 돌멩이를 앞발로 툭 쳤다. 그리고 삑삑이와 빽빽이가 정리 중인 산책길을 가리키고는 크르르 하며 이빨을 드러냈다.

“아, 무슨 말인지 알겠어. 앞으로는 조심하마.”

데이지가 떨떠름하게 말했다. 어차피 두 분이 나오기 전 치울 예정이었으나 마물이 그 사정을 알겠는가.

-먀앙!

무시무시한 경고를 남긴 먕먕이가 총총총 산책길로 돌아왔다. 이 정도면 알아들었기를 바라야지. 매일 산책길을 정돈하느라 고생이지만 멍청한 인간이 그 사정을 알겠는가.

그렇게 산책길을 깨끗이 청소하면서 저택을 한 바퀴 다 돌았다.

이다음 임무는 어떤 의미에서는 가장 중요한 일이었다. 너무 중요한 일이기에 마물들은 인적이 드문 저택 뒤편으로 향했다. 인간들이 지나다니지는 않는지 살피고는(이 시간쯤 마물들이 이곳에 모인다는 걸 알아서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먕먕이가 심각한 어조로 말했다.

-먕먕. (이제 각자 연마한 애교를 보여 봐.)

그렇다. 애교.

먕먕이가 어린 삑삑이와 빽빽이에게 가장 먼저 가르친 게 바로 애교였다. 그 당시에는 작은 주인이 갑작스레 아파할 때가 많았다. 하얀 피부에 검고 징그러운 게 돋아났는데, 시간이 갈수록 면적이 넓어졌다. 가슴을 쥐어뜯으며 고통을 호소하는 작은 주인 옆에서 귀여운 애교를 부리면 그나마 나아지고는 했으므로 셋은 부지런히 애교를 연마했다. 애교 다음으로 알려준 건 작은 주인 아파할 때 큰 주인한테 이르는 법이었는데 큰 주인이 늘 작은 주인한테 붙어 있어서 쓸 일은 거의 없었다.

-삑! (나부터 할게!)

삑삑이가 먼저 나섰다. 삑삑이는 발라당 드러누워서 배를 드러내고는 삐익삐익 귀여운 소리를 내며 울었다.

-빼액. (나도.)

빽빽이는 먕먕이에게 몸을 부빗부빗하면서 빼액, 빼애앵, 빼애액 귀여운 울음소리를 냈다. 꼬리로 몸을 감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먕먕이는 둘의 애교에 퍽 만족스러웠다.

-먕. 먕먕. 먕먕. (다들 잘했어. 작은 주인이 조금이라도 침울해하면 바로 이렇게 하는 거야.)

-삑! (먕먕이 애교도 보고 싶어!)

-빼액. (맞아. 보여 줘.)

-먀앙. (귀찮지만 보고 싶다면 어쩔 수 없지.)

먕먕이는 도도하게 말하고는 자세를 바꿨다.

앞발을 세우고 앉아서 꼬리를 흔들며 “먀앙…….” 미약하게 울고는 눈을 깜빡깜빡하면서 위를 올려다봤다. 그저 평범하게 앉아서 올려다볼 뿐인데도 귀여움이 흘러넘쳤다. 심지어 2m에 달하는 몸집이 순간 손바닥만 한 앙증맞은 사이즈로 보이는 착시 현상까지 일으켰다.

-삐익. 삐익삑! (역시 먕먕이는 대단해! 완벽해!)

-빽빽빽! (너무 귀여워서 털을 핥아 주고 싶어!)

삑삑이와 빽빽이가 야단법석을 떨었다. 먕먕이는 칭찬을 듣고도 별로 뻐기지 않았다. 왜냐하면 자신이 대단한 게 당연하니까.

작은 주인이 아주 어렸을 때부터 내 애교에 끔뻑 넘어갔단 말이지. 우리 작은 주인은 우울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도 내가 애교 부리면 바로 배시시 웃고는 했어. 그러면서 하얀 털을 쓰다듬거나 통통한 배에 뽀뽀하거나 아니면 나를 제 가슴 위에 올려놓고 넋 놓고 구경했다고.

‘먕먕이. 너무 귀여워. 먕, 하고 울어 봐.’

-먕.

‘으응. 귀여워. 사랑스러워.’

-먀앙.

작은 주인을 웃게 한 애교니 대단한 게 당연하지.

그렇게 한바탕 애교 연습을 하고 나자 배가 출출해졌다. 저택으로 돌아가서 인간들한테 밥 달라고 하면 싱싱한 고기를 주겠지만, 먕먕이는 오늘따라 사냥을 하고 싶어서 날개를 활짝 펼치고 저택 담벼락 위로 날아올랐다.

이 근방은 사냥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었다. 과일도 많고, 짐승도 많고. 마물들은 손쉽게 사냥에 성공해서 각자 한 마리씩 뜯어 먹었다. 먕먕이는 주인들한테도 이 맛있는 걸 먹여 주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인간은 따로 먹는 게 있다는 걸 알고 있으므로 실천에 옮기지는 않았다.

배부르게 해치우고 나니 하얗고 보드라운 털에 붉은 피가 튀어 있었다. 이대로 돌아가면 작은 주인이 까무러칠 것이다. 걱정받는 기분은 좋지만, 먕먕이는 성숙해서 그런 유치한 짓은 하지 않는다.

-먀아앙. (다들 저기서 씻고 가자.)

-삑.

-빽.

마물들은 계곡물에 몸을 담그고 깨끗이 씻었다. 삑삑이와 빽빽이는 나이는 어디로 먹었는지 물에 뛰어들자마자 물장구치면서 장난쳤다. 먕먕이는 성숙하므로 몸만 씻고 나왔다. 하지만 삑삑이와 빽빽이가 먕먕이한테도 물을 끼얹는 바람에 복수를 위해서 같이 어울려 주는 수밖에 없었다.

신나게 물장구를 친 마물들이 부르르 몸을 흔들고 털을 핥으며 물기를 말리기를 한참. 어느새 하늘은 붉어지고 저택으로 돌아갈 때가 되었다. 큰 주인과 작은 주인이 식사하는 동안 지켜 줘야 하기 때문이었다.

-먕! (이제 돌아가자!)

-삐익.

-빽!

마물 세 마리가 서둘러 저택으로 돌아갔다.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식당으로 들어가자 이미 앉아 있는 인간들이 보였다.

작은 주인과 큰 주인, 머리카락이 긴 인간과 늙은 인간이 테이블 앞에 앉아 있었다. 작은 주인이 해맑게 웃었다.

“먕먕이랑 애들이다. 애들아, 너네 밥 먹었어?”

-먀앙.

먕먕이가 귀엽게 울면서 작은 주인의 발치에 다다랐다.

“왜 털이 축축하지. 또 계곡에서 물놀이 했어?”

-먕.

“응, 잘했어.”

먕먕이는 작은 주인이 앉은 의자 다리에 꼬리를 감고는, 쓰다듬기 쉽도록 몸을 일으켰다. 작은 주인은 하얀 털을 마구마구 쓰다듬었다.

그사이 인간들은 부지런히 테이블로 식사를 날랐다. 큰 주인은 살풋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은은하게 풍기는 피 냄새를 맡은 것이다. 인간들의 신체 능력은 마물들에 비해 하찮은데 이 큰 주인은 정말 인간 같지 않았다.

-삐익삐익.

-빽.

삑삑이와 빽빽이도 작은 주인 근처에 털썩, 털썩 앉자 작은 주인이 말했다.

“데이지, 마물들 식사도 갖고와 주세요.”

“아, 헤베. 아까 마물들이 고기 뜯는 모습을 봤어요. 지금은 배부를 거예요.”

“아까 언제? 너 계속 나랑 같이 있었잖아.”

“아까 창문으로 봤어요. 배부르게 먹던데요.”

“응, 뭐. 네가 그렇다면 그런 거겠지. 데이지, 안 줘도 돼요.”

“알겠습니다.”

마물들은 큰 주인과 작은 주인이 식사를 하는 동안 주위를 감시하고 경계했다.

“그러고 보니 이 녀석들 오늘 집사장에게 이를 드러냈다더군.”

“애들이요? 무슨 일 있었나요?”

“분수대 만든다고 길을 엎어 놔서 성질을 낸 모양이야. 이 녀석들이 산책길을 관리하고 있으니까.”

“하하. 오늘도 길이 깨끗했는데 애들 덕분이었네요.”

헤베가 활짝 미소 지으며 먕먕이를 쓰다듬었다. 먕먕이가 고롱고롱해지자 삑삑와 빽빽이도 쓰다듬어 달라고 삑빽거렸다. 헤베가 차례차례 쓰다듬었다. 가만히 보던 진이 일어나서 수건에 따뜻한 물을 적셔 왔다. 진은 그것을 테이든에게 건넸고 테이든이 수건을 들고 헤베에게 말했다.

“헤베, 손 줘요. 애들 밖에서 놀다 와서…. 닦아 줄게요.”

“응.”

테이든이 헤베의 손을 꼼꼼히 닦아줬다.

먕먕이는 자신이 혀로 핥아주는 게 더 깨끗해질 것 같아서 슬쩍 눈치를 살폈지만 저 큰 주인이 양보할 리 없으니 포기했다.

인간들이 식사를 시작했다.

마물들은 실컷 먹고 물놀이까지 하고 와서 그런지 자꾸 눈이 감겼다. 스르르 내려앉는 눈꺼풀에 삑삑이, 빽빽이는 저항하지 못했지만 먕먕이는 꿋꿋이 버텨 냈다. 식사 중인 인간들을 지켜야 하기 때문이었다.

식사를 마친 인간들이 일어나자 먕먕이가 먕! 하고 두 마물을 깨웠다.

-삐익. 삐이익…. (나 졸아 버렸어…. 도저히 졸음을 참을 수 없었어.)

-빽빽? (먕먕이는 안 잤어? 어떻게 안 졸 수가 있어?)

-삑삑삑. (역시 먕먕이는 다르다. 어른스럽고 성숙해.)

-먀앙. (당연하지. 내가 바로 먕먕이야.)

먕먕이가 거드름을 피우며 헤베의 뒤를 따랐다. 삑삑이와 빽빽이는 잘한 것도 없으면서 꼬리를 꼿꼿이 세우고 따라갔다.

***

작은 주인의 방은 저택에서 가장 넓다. 특히 침대 크기가 어마어마한데 그 이유는 큰 주인이 제 방이 따로 있으면서 맨날 여기 와서 자기 때문이다.

방 곳곳에는 커다란 방석이 세 개 놓여 있는데 바로 마물들의 자리였다. 마물들이 취침하는 방이 따로 있지만,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게 헤베의 옆이고, 헤베는 방에서 머무를 때가 많으므로 이렇게 푹신한 방석을 갖다 놓았다.

저녁 식사 후는 주인들한테 열심히 연습한 애교를 선보이고 마음껏 예쁨받는 시간이다.

-먀아앙.

“아우, 귀여워. 우리 먕먕이. 누가 이렇게 귀여우래?”

-삑삑.

“테이든, 이 오동통한 배 좀 봐. 엄청 말랑말랑해.”

“네, 귀엽네요.”

-빼액. 빽.

“빽빽이 꼬리 살랑살랑 흔드는 것 좀 봐. 정말 사랑스럽지 않아?”

“사랑스러워요.”

먕먕이, 삑삑이, 빽빽이는 헥헥 숨이 찰 만큼 애교를 부렸고 작은 주인은 맑게 웃으며 그 모습을 귀여워해 줬다. 큰 주인은 작은 주인의 물음에 재깍재깍 대답은 하는데, 시선은 작은 주인만 향해 있었다.

사실 먕먕이도 큰 주인에게 쓰다듬 받고 싶은 생각은 딱히 없으므로 다행이었다.

큰 주인과 먕먕이는 공적인 관계였다. 서로가 서로에게 ‘작은 주인을 웃게 해주는 용도’, ‘헤베를 우울하지 않게 하는 용도’.

그렇게 한 차례 애교 타임이 끝나자 주인들은 함께 욕실로 들어갔다.

마물들은 작은 주인의 방에 혹시 뱀이나 돌멩이가 있지는 않은지 쿵쿵대며 검사했다.

안전을 확인하고 주인들이 나오기를 기다리는 그때 욕실에서 쏴아아 하는 물소리와 함께 평범하지 않은 소리가 들렸다.

“하앗, 으응. 테이든….”

“헤베, 못 참겠어요.”

“잠깐만…. 하윽. 나, 나도 하고 싶으니까….”

“여기 핥아도 돼요? 된다고 말해요.”

“아읏. 응, 간지러워…. 흣. 아.”

마물들이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삑삑! (큰 인간이 또 작은 주인을 괴롭혀. 물어뜯자!)

-빼액빽? (어제도 괴롭히더니, 또야?)

-먀앙. (다들 침착해. 이거 괴로워하는 목소리 아니니까.)

-삑삑. 삑삑삑? (그럼 이게 좋아하는 목소리야?)

-빽빽. 빽. (내 눈으로 확인해야겠어.)

욕실 문을 뜯으려는 빽빽이의 꼬리를 먕먕이가 덥석 물면서 말렸다.

-빼액빼액. (왜 말리는 거야. 확인만 하겠다는데.)

-먕먕. (확인할 필요 없어. 곧 큰 주인이 작은 주인을 품에 안고 나올 거야.)

이런 일이 벌써 몇 차례나 반복되었는데도 삑삑이와 빽빽이는 항상 이렇게 흥분하고는 했다. 성숙한 먕먕이가 아니었다면 큰 주인과 작은 주인은 좋은 시간을 보내지 못했을 것이다.

잠시 후 먕먕이의 예언대로 정말 큰 주인이 흰 가운에 푹 싸인 작은 주인을 품에 안고 나왔다.

큰 주인은 세 마물들의 시선을 받으며 작은 주인을 침대에 조심스레 눕혔다.

“테이든….”

물기에 젖은 목소리가 큰 주인을 불렀다. 큰 주인은 웃으며 작은 주인의 얼굴 곳곳에 입 맞췄다.

“잠깐만요, 헤베. 애들 내보내고요.”

“으응.”

작은 주인의 목소리가 해롱해롱했다.

“자, 들었지? 다들 나가자. 그리고 내일까지 들어오지 마.”

큰 주인이 빙긋 웃으며 마물들을 내쫓았다. 삑삑이가 크르르, 하면서 안 나가려고 버티자 뒷덜미를 한 손으로 쥐고는 가볍게 들어서 문밖으로 옮겼다.

“제 발로 나가는 법이 없군.”

큰 주인은 두 번째로 빽빽이에게 손을 뻗었다. 먕먕이는 그 틈을 타 얼른 작은 주인의 상태를 살폈다. 푹신한 이불에 감싸인 작은 주인은 몽롱한 얼굴이었다.

-먀앙.

먕먕이가 침대에 얼굴을 턱 올리고서는 작게 울자 작은 주인이 미소 지으며 손을 뻗었다. 먕먕이는 그 손이 닿기도 전에 귀를 뒤로 착 접고 기다렸다. 곧 이어진 작은 주인의 부드러운 손길에 먕먕이가 만족스럽게 그르릉거렸다.

“우리 먕먕이….”

-먀앙먀앙.

“우웅. 먕먕이 너무 커서 이젠 내가 못 안아 줘.”

-먕먕.

“으응. 귀여워. 나도 좋아해, 먕먕아.”

먕먕이는 작은 주인이 제 이름을 부를 때가 가장 좋았다.

‘헤베. 이것 보세요. 전장에서 주웠어요.’

‘이게 뭐야? 어…. 마물이네.’

‘네, 새끼인 듯해요.’

‘어…. 나 줘 봐. 아. 너무 가볍다. 정말 어린 새끼야.’

기억의 첫날, 먕먕이는 큰 인간의 손에 달랑 들려서 여러 인간 앞에서 품평을 받다가 작은 인간의 손으로 옮겨졌다.

동글게 몸을 만 채로 파르르 몸을 떨자 작은 인간은 어린 마물을 죽이는 대신 품에 끌어안는 것을 택했다.

‘먕먕이’라는 이름을 붙여주고, 품에 안고 다니면서 이쁘다 해주고 귀엽다 해줬다.

얼마 안 되어서 먕먕이는 작은 인간이 자신의 동족을 사냥한다는 걸 알아챘다. 그런데 이상한 건 사냥에 성공해도 작은 인간은 기뻐하지 않는다는 점이었다.

내가 사냥에 대성공했다면 이것보다 훨씬 기뻐할 텐데….

작은 인간은 날이 갈수록 울적해했고, 대체 무엇을 생각하는 건지 모르겠는 텅 빈 얼굴로 먼 곳을 바라볼 때가 많았다. 그러나 먕먕이가 애교를 부리면 기쁜 얼굴로 ‘우리 먕먕이’ 하면서 기운을 내고는 했다. 먕먕이는 작은 주인의 ‘우리 먕먕이’ 하는 목소리가 좋았고, 부드럽고 다정한 손길이 좋았고, 따뜻한 품이 좋았고, 행복하게 웃는 얼굴이 좋았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부터 작은 주인이 가슴을 부여잡으며 고통을 호소할 때가 많아서 애가 탔는데….

또 어느 순간부터 그런 모습이 사라졌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큰 주인이 작은 주인 곁에 꼭 붙어 있기 시작했을 무렵부터였다.

“먕먕이도 이제 나가야지.”

큰 주인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먕.

먕먕이는 삑삑이와 빽빽이처럼 떼쓰지 않는 성숙한 마물이었다. 먕먕이가 몸을 일으키자 작은 주인이 웃었다.

“잘 자, 먕먕아.”

-먀앙.

먕먕이는 작은 주인의 손을 혀로 몇 번 핥은 다음 방을 빠져나왔다. 큰 주인이 문을 닫았다.

마물 세 마리가 멀뚱히 문 앞에 섰다.

근무 원칙 중 하나.

큰 주인이 문 닫고 들어가면 문을 긁거나 창문으로 뛰어들지 않는다. 작은 주인이 아파하는 소리 들려도 아파하는 거 아니니까 참는다.

근무 원칙을 지키느라 아무것도 못 하고 그냥 서 있기만 하는 것이다.

-삐익. 삑. (요즘 우리를 쫓아낼 때가 너무 많아.)

삑삑이의 꼬리가 불만스럽게 바닥을 퉁퉁 때렸다.

-빽빽. 빼액. (둘이서만 신나게 물놀이를 하는 게 분명해. 나도 같이 하고 싶어.)

-먕. (물놀이 아니야. 이제 우리도 자러 가자.)

마물은 보통 야행성이지만, 인간은 밤에는 잠을 잔다. 먕먕이는 처음에는 인간 생활에 적응하느라 힘들었는데 이제는 익숙해졌다. 삑삑이와 빽빽이에게는 조기 교육을 시켜서 이제 둘에게 밤은 당연히 취침 시간이었다. 들어가서 몇 시간 자다가 새벽에는 또 순찰을 나가야 한다. 인간들은 우리가 이렇게 고생하는 걸 알까.

-빼액.

-삑삑.

-먕.

잘 자라는 인사를 건네고 각자 집 안으로 들어갔다. 테이든이 직접 뚝딱뚝딱 지어준 마물들의 집은 저택 안에 있었다. 예전에는 한 방에서 모여 잤지만 지금은 마물들이 워낙 커졌기 때문에 각자 방을 하나씩 차지했다.

먕먕이는 포근한 보금자리에 누웠다.

예전에는 작은 주인의 품에 안겨서 잤는데 이제는 그럴 수 없다. 가끔은 작은 주인의 손바닥에 폭삭 안겨서 사랑받던 시절이 그립기도 하다.

하지만 그때는 작은 주인이 지금만큼 웃질 않았다. 열심히 핥아 줘도 아파하고 괴로워했다. 그러니까 떨어져서 자더라도 작은 주인이 행복한 지금이 낫다.

먕먕이는 눈을 감았다. 어제랑 오늘은 내가 참아준다. 내일도 이렇게 일찍 내쫓으면 작은 주인한테 애교를 부려서 못 내쫓게 해야지.

하얀 털의 마물은 내일도 귀여움받을 생각을 하며 행복하게 잠들었다.

뮨의 그늘 외전 완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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