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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8화 (9/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8화

“……정말 몰라서 물어보는 거야?”

잠시간 아무 말이 없던 태원은 기가 막힌다는 듯이 물었다. 그 반응에 민망해진 수겸은 어색하게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웃었다.

“그, 그렇다고 그렇게 반응하면 내가 좀 민망하잖아, 형. 하하. 하하하.”

수겸은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과장되게 말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태원은 짧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겸이 너 예뻐. 너무 예뻐서 가끔은 이게 뭔가 싶을 정도야. 됐어?”

“어, 어? 으, 응.”

너무 예뻐서 이게 뭔가 싶다는 게 도통 무슨 뜻인지 모르겠지만, 태원의 단호한 말투에 더 이상 물어볼 수는 없었다. 대신 머쓱함에 콧잔등을 쓸었다.

그리고 그런 수겸을 보는 태원의 눈동자는 흔들림이 없었다. 그의 새카만 눈동자에 담긴 자신만 어쩔 줄 모르고 있는 게 보여서, 수겸은 새삼 억울하기까지 했다.

“만 번을 물어도 만 한 번 예쁘다고 대답할 정도야.”

“어, 어…… 고마워.”

수겸은 짧은 고민 끝에 감사 인사를 했다. 고맙다는 말을 하는 게 맞는 상황인지 잘 모르겠지만, 달리 할 말이 없었다.

어쨌든 예쁘다는 말도 칭찬이기는 하니까 말이다. 무려 만 번을 물어봐도 만 한 번 예쁘다고 대답할 정도라니, 이 정도면 정성을 다한 칭찬일 터였다.

“진짜야. 그러니까 괜히 입 아프게 그런 거 묻지 마.”

“응, 알았어.”

다정한 목소리에 수겸은 고개까지 붕붕 끄덕거렸다.

얼추 얘기가 일단락되어서, 수겸은 괜스레 민망해진 가슴을 달래며 침대에 바로 누웠다.

“불 끈다.”

“응…….”

태원의 말에 대답하자, 이내 방 안에는 어둠이 찾아왔다.

사위가 캄캄해진 공간 속, 태원의 숨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같은 공간 안에 있다는 것을 일러주는 듯이.

수겸은 정면에 있는 이층침대 위층을 바라보았다.

처음 숙소가 정해지고, 이층침대에서 자야 한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수겸은 당황했다. 아무래도 이 층에서 자면 오르락내리락하기도 귀찮고, 불편한 탓이었다.

그러나 공정하게 잠자리를 정해야 하기에, 당시의 수겸은 최대한 싫은 내색을 하지 않으려 애썼다.

그때 한솔이 먼저 자신은 이층침대 위층이 좋다며 침대 위로 올라갔다. 덕분에 수겸은 별다른 절차 없이 자연스럽게 아래층 침대에서 자게 되었다.

처음에는 태원이 차이겸과 유찬이 쓰는 방을 함께 썼기에 수겸은 한솔과 단둘이서 방을 썼다. 그러다가 본래 방 크기가 저쪽 방이 좁다는 이유로 태원이 수겸네 방으로 이사를 오면서 셋이서 한방을 쓰게 되었다.

수겸은 어둠 속에서 고개를 돌려 태원을 바라보았다. 옆으로 누운 태원의 실루엣이 보였다. 분명 넓은 어깨 탓에 베개를 몇 개나 겹쳐 베고 있을 터였다.

칠흑 속에서도 선명히 보이는 것 같은 그의 모습에 수겸은 소리 없이 웃었다.

그렇게 얼마의 시간이 흐른 후, 문이 조용히 열렸다. 문틈으로 한 줄기 빛이 스며 들어왔다.

수겸은 반사적으로 문가를 쳐다보았다. 그곳에는 한솔이 서 있었다.

“왔어? 얼른 자. 늦었다.”

“응. 알았어. 형도 얼른 자. 피곤할 텐데.”

수겸은 한솔이 민망해할까 봐 아무렇지 않은 척했다. 그러자, 한솔 역시 아무 일도 없던 것처럼 대답해 주었다. 한솔의 목소리가 약간 떨리기는 했지만, 수겸은 모른 척해주기로 했다.

자신에게는 한 번도 직접 말한 적 없지만, 다른 사람에게 자신이 예쁘다고 말하고 다녔을 한솔을 생각하니 귀여웠다.

한솔이 사다리를 통해 침대에 올라가자, 철제 이층침대가 살짝 흔들거렸다가 이내 안정을 찾았다.

수겸은 그가 누워 있을 곳을 가만히 올려다보다가 나지막하게 입을 열었다.

“한솔아.”

“응.”

“그거 알아?”

“뭐를?”

“나 연습생 때 너 처음 보고 집에 가서 엄청 잘생긴 애 들어왔다고 이야기했었다?”

“……진짜?”

“응, 진짜.”

정확히는 잘생겼는데 귀여운 애라고 했지만, 굳이 덧붙이지는 않았다. 솔이는 전생에도 스스로의 귀여운 얼굴에 콤플렉스가 있었으니까.

“사실 나도…… 나도 그랬어.”

“진짜?”

한솔의 말에 수겸은 그가 민망해하지 않도록 처음 듣는 것처럼 되물었다.

물론 태원의 말에 따르면 그는 수겸이 잘생겼다고 한 게 아니라 예쁘다고 말하고 다녔다고는 하지만 말이다.

“응, 진짜.”

“너랑 나랑 같은 마음이었잖아. 우리 운명이다, 그치?”

“……어?”

“그렇잖아. 서로 같은 생각 하고, 그런데 그걸 서로한테 말하지는 않고 숨기고 있고.”

“어…… 그건 그렇지.”

수겸은 한솔의 대답에 기분 좋게 웃었다.

한솔이 듣기 좋은 목소리로 나긋나긋하게 말을 하고 있어서일까, 졸음이 밀려들기 시작했다. 많은 일이 있었던 하루였다.

수겸은 쏟아지는 잠을 거부하지 않고 스르륵 눈을 감았다. 길고 숱 많은 속눈썹이 엇갈리며 닫혔다.

“잘 자.”

아련하게 다정한 목소리가 꿈결처럼 들려왔다.

* * *

“송수겸, 일어나.”

아득하게 들리는 귀에 익은 목소리에도 수겸은 깨지 않았다. 오히려 노란색 이불을 머리끝까지 끌어 올리며 이불 속에 얼굴을 감추었다.

“일어나, 아침 먹으라고.”

“으, 응, 응…….”

수겸을 깨우는 목소리가 조금 더 커졌다. 누구의 목소리인지 대충 감이 왔지만, 졸음에 함락당한 수겸은 우물우물할 뿐이었다.

“이불 뺏는다.”

“안 돼애…….”

잠이 덕지덕지 붙은 탓에 말꼬리가 길게 늘어졌다. 그러자, 말을 한 상대인 차이겸이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수겸은 잠에 취한 와중에는 그 웃음소리가 듣기 좋아서 옅게 웃었다.

그리고 그 순간, 수겸이 머리꼭지까지 덮고 있던 이불이 끌어 내려졌다.

없어진 이불에 당황할 틈도 없이, 차이겸은 수겸을 어깨를 잡아 일으켜 앉혔다.

“조금만…… 조금만 더 잘래……. 스케줄도 없잖아.”

오늘 스케줄이라고는 오후에 있을 팬들과 생방송으로 소통하는 프로그램이 다였다.

물론 그 전에 한복도 차려입고 메이크업도 해야 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아침부터 일어날 필요까지는 없었다.

“지금이 몇 시인 줄 알고 그래?”

“으, 음…… 일곱 시……?”

“열한 시거든.”

“벌써 그렇게 됐어?”

“어. 그러니까 일어나, 얼른.”

시간을 듣게 된 수겸이 불만스럽게 입술을 삐죽거리다가 이내 느릿하게 침대 밖으로 나왔다.

그의 말대로 아침 11시면 일정에 차질이 생길 만큼 늦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계속 침대에 누워 늦장 부릴 여유는 없었다.

수겸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억지로 떼며 부엌으로 향했다. 식탁에는 이미 태원과 한솔, 유찬 세 사람이 앉아 아침을 먹고 있었다.

“잘 잤어요?”

유찬이 미소 띤 얼굴로 물었다. 평소에는 가볍게 묵례 정도나 하던 유찬이었기에 수겸은 놀란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유찬의 달라진 인사 탓에 내내 붙어 있던 잠도 떨어지는 느낌이었다.

“응, 유찬이 너는?”

“저도 잘 잤어요.”

수줍게 웃으며 대답하는 유찬의 모습에 수겸은 ‘우리 유찬이가 달라졌어요!’ 하고 세상에 소리치고 싶을 지경이었다.

인사치레라도 먼저 말을 건네는 법이 없고, 잘 웃지도 않는 유찬이 제게 잘 잤냐고 묻는 것은 물론 웃으며 대답까지 해주었다.

새해가 되면서 마음가짐이라도 달라진 것일까?

유찬이 왜 갑자기 달라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좋은 현상이었다. 수겸은 괜스레 벅차오르는 가슴을 달래며 빈자리에 앉았다.

대접에 소복하게 담긴 떡국에는 달걀노른자와 흰자로 만든 고명은 물론, 잘게 찢은 소고기 고명까지 예쁘게도 올라가 있었다.

물론 새카만 김 가루 역시 넉넉하게 올라가 있었다. 김 고명을 좋아하는 수겸의 취향을 십분 반영한 플레이팅이었다.

“와, 맛있겠다.”

수겸은 숟가락을 들고 고운 때깔의 떡국을 바라보며 눈을 반짝거렸다.

고양이 혀인 수겸은 뜨거운 것을 잘 먹지 못했다. 그렇기에 아무리 맛있어 보이는 음식이 있더라도 뜨끈한 열기가 식고 나서야 먹을 수 있었다.

이번에도 어김없이 떡국이 식기를 기다리며 침만 뚝뚝 흘리고 있던 참이었다.

“안 기다려도 돼. 다 식었어.”

“진짜?”

“어, 그래서 너 마지막에 깨운 거잖아.”

“헉, 대박. 그런 것까지 신경 써주다니. 감동이야.”

수겸은 차이겸을 향해 진심으로 감동했다는 듯, 눈매를 샐그러뜨리며 웃었다. 그걸로도 부족해서 차이겸의 너른 어깨를 칭찬이라도 하듯 부드럽게 쓸었다.

“캬, 몸 좋은 것 봐. 요리도 잘하고, 노래도 잘하고, 몸까지 좋고. 정말 나만 가지면 완벽하겠다, 너는.”

“…….”

언젠가 팬들이 했던 말을 떠올리며 아무렇지 않게 주접 멘트를 날린 수겸은 숟가락을 집어 들다가 묘해진 분위기를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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