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0화
“내 거였구나, 고마워.”
유찬의 예상치 못한 행동에 수겸은 샐쭉 웃으며 물병을 건네받았다.
쫍쫍, 한동안 아무 말도 없이 빨대로 물만 빨아 마시던 수겸이 만족스럽게 웃었다.
“아, 살겠다.”
충분히 수분을 보충한 수겸은 옆에 있는 유찬을 보았다.
어깨도 넓고 팔다리가 길쭉길쭉 잘 뻗은 유찬은 뭘 입어도 모델 같았다. 수겸은 매일 보는 유찬임에도 불구하고 새삼 그의 외모에 감탄했다.
“너 한복 잘 어울린다.”
“형도 잘 어울려요.”
“고마워.”
깔창이 없는 바람에 오늘따라 유난히 눈높이가 높은 유찬을 바라보며 수겸이 싱긋 웃었다. 그러자, 유찬 역시 수겸을 따라 웃었다.
좀처럼 웃는 모습을 잘 보여주지 않는 그였기에 수겸의 눈이 휘둥그렇게 커졌다.
“이야, 수겸이 장가가도 되겠네.”
“놀리지 말아요.”
“꼬마 신랑 같아.”
“아, 놀리지 말라니까요!”
어디선가 나타난 매니저 민성이 웃음기 어린 목소리로 말했다. 말투에서부터 벌써 장난기가 가득한 것을 알아차린 수겸이 경고했지만, 민성은 아랑곳하지 않고 수겸을 놀렸다.
원망 섞인 표정으로 그를 노려보는데, 민성은 킬킬 웃음을 터뜨리기만 했다.
“수겸아, 너 그거 같아.”
“뭐요? 아니, 대답하지 말아요, 그냥.”
“학예회에서 꼭두각시 춤추는 애기 같아.”
“……한 번만 더 놀리면 물 거예요. 저 강냉이 튼튼합니다.”
민성의 말에 수겸이 싸늘하게 대꾸하며 가지런한 하얀 이를 내보였다. 그러나 민성은 그런 수겸의 말에 시원하게 웃기만 했다.
그런데 더 충격인 것은 옆에 있는 유찬까지 작게 웃고 있었다.
“야, 넌 왜 웃어!”
“안 웃었어요.”
“안 웃기는, 지금도 웃고 있는데!”
“기분 탓이에요, 기분 탓.”
“이게 어떻게 기분 탓이야?!”
수겸이 씩씩거리는 치와와처럼 유찬을 향해 왈왈거렸다. 그 모습에 유찬이 더 웃음을 터뜨린다는 걸 알 리 없는 수겸은 저보다 한참 큰 유찬을 올려다보며 으르렁댔다.
“수겸이 왜 그렇게 화났어?”
“태원이 형! 아, 민성이 형이랑 유찬이가 자꾸 나 놀려!”
“민성이 형이야 그렇다 치고, 유찬이가?”
태원의 등장에 수겸은 구세주라도 만난 듯, 당장 그에게로 조르르 달려가서 고자질을 하기 시작했다. 얘기를 들은 태원은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아, 그러니까! 키 좀 크다고! 사람을 막 괄시하고! 나 평균이야, 이거 왜 이래?! 억울해 죽겠네, 아이고. 아이고.”
수겸은 이때다 싶어 태원의 옆에 찰싹 들러붙어 과장스럽게 억울함을 토로했다. 그러자, 태원의 입가에도 슬그머니 미소가 번졌다.
“유찬이가 나빴네. 왜 자라다 만 수겸이를 놀리고 그래. 아직 성장기라 그런 건데.”
“뭐?”
자라다 만?! 지금 자라다 말았다고 했어?!
수겸의 눈이 다시금 뾰족해졌다. 물론 원망 섞인 수겸의 눈빛에도 태원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계속해서 수겸의 속을 긁는 말을 해댔다.
“우리 수겸이 6㎝만 더 크면 180이야. 딱 기다려.”
“6㎝가 아니라 5.8㎝야. 내 키는 174가 아니라 174.2라고! 0.2 빼지 마!”
소수점 자리까지 연연하는 수겸의 모습에 태원은 기어코 크게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수겸이 야무지게 그러쥔 주먹으로 태원의 어깨를 두어 대 때렸지만, 수겸의 자그마한 솜 주먹에 몇 대 맞는다고 타격이 갈 리 없었다. 오히려 수겸의 행동은 태원을 더욱 웃음 짓게 만들었다.
수겸의 저런 모습이 더 놀려주고 싶은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인데, 이 사실을 모르는 수겸은 언젠가 이 수모를 갚아주리라 다짐하며 속으로 이를 갈았다.
* * *
화보 촬영은 수월했다. 팬카페와 보도자료에만 쓸 용도이기 때문에 상업용 화보 촬영에 비해 부드러운 분위기에서 빠르게 진행되었다.
수겸에게는 다행이게도 송하의 말대로 촬영의 대부분은 앉아서 이루어졌다. 물론 중간에 잠깐 서 있는 부분도 있기는 했다. 그때면 수겸은 최대한 허리를 곧추세우고 살짝 발뒤꿈치도 들어서 키를 늘려 찍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촬영 끝을 알리는 인사가 곳곳에서 터져 나왔다. 수겸을 비롯한 멤버들도 촬영을 도와준 스태프들에게 감사 인사를 했다.
멤버들은 곧바로 소속사로 이동했다. 애초에 한복 촬영 이후에 생중계 방송을 할 수 있게끔 동선을 짧게 짜두었기 때문에, 금세 소속사에 도착할 수 있었다.
“와, 정신없다.”
한솔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벤에서 내렸다.
수겸 역시 그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했다. 아무리 촬영이 수월했다고는 하지만, 어쨌든 예쁘게 보여야 하기에 긴장이 되었다. 그리고 이어서 바로 생방송에 들어간다고 생각하니 더욱 떨렸다.
무대 생방송은 차라리 그리 떨리지 않았지만, 팬들과의 소통이 생방송으로 진행되는 것은 언제나 긴장되었다. 혹시나 말실수라도 하게 되면 돌이킬 수 없기 때문이었다.
수겸은 떨리는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멤버들을 따라 걸었다.
“자, 다들 자리에 앉아. 메이크업 좀 고치자.”
생중계 방송을 할 회의실에 들어가자, 메이크업을 담당하는 윤경이 기다렸다는 듯이 외쳤다.
윤경은 메이크업 도구를 들고 서둘러 멤버들 사이를 돌며 메이크업을 고쳐주었다. 다행히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았다. 빠르게 수정이 끝나자, 윤경은 짐을 챙겨 물러났다.
어느덧 팬들과 약속한 시간이 다 되어가고 있었다.
수겸은 머릿속으로 미리 할 말을 준비했다.
우선 신년 인사는 당연히 해야 했다. 그리고 어제 본 커뮤니티 반응을 떠올렸다.
아마 팬들은 그림자 키스 퍼포먼스에 대해 가장 많이 물어볼 터였다. 그 다음은 성년이 된 유찬에 대해서도 물어볼 것 같았다.
몇 개의 예상 질문을 추리는 사이, 방송 시간이 도래했다.
“집중들 하시고, 이제 방송 들어간다.”
민성의 말에 수겸은 깊게 심호흡을 하며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물론 미소를 머금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송이 시작되는 동시에 리더인 태원이 인사말을 건넬 터였다. 수겸은 타이밍을 놓치지 않기 위해 정신을 집중했다.
그런데 그 순간 번뜩 어떤 생각 하나가 떠올랐다.
때마침 방송이 시작되었고, 태원이 입을 열었다.
“What’s this planet?”
“안녕하세요, 우리는 유피트입니다!”
태원의 선창을 따라 멤버들이 동시에 그룹명을 외쳤다.
이때 원래는 ‘유!’를 강조하면서 팬들을 손바닥으로 가리켰다. 그러나 수겸은 손가락으로 총 모양을 만들어 차이겸을 가리켰다.
차이겸은 놀란 듯 눈을 크게 떴지만, 수겸은 아무것도 모르는 척 눈가를 접어가며 웃었다.
덕분에 방송 시작과 동시에 댓글 창이 폭발했다.
[뭐야? 방금 뭐였어?]
[핑겸이가 흑겸이 가리킨 거 맞지??]
[오메 뭐야뭐야 귀여워]
[앞으로 인사 이렇게 하면 안 돼? 너무 귀엽다]
[꺄~~~ 유피트 사랑해요♥♥♥♥♥♥♥♥♥♥♥]
[I love U-PITE : )]
[gjr 시작됐다]
[오빠들 기다렸어요!!!!!>
[핑겸이 한복 혼자 핑크색인거 귀여워 돌겠다 나 진짜]
[이래서 핑겸핑겸하는구나... 이 정도면 수겸핑크라는 이름으로 핑크색 하나 뽑아줘야 하는 거 아니냐]
[얘들아 안녕]
[새해 복 많이 받아ㅏㅏㅏㅏㅏㅏㅏ]
빠르게 올라가는 댓글 창에 눈이 핑핑 돌았다. 워낙 빨라서 잘 보이지는 않지만, 수겸의 손짓을 귀여워하는 반응이 많은 것 같아 흐뭇했다.
“수겸이가 기분이 좋은가 봐요. 혼자 인사 방법을 바꿨어요.”
“맞아요, 저 기분 좋아요. 그래서 이겸이를 가리켜 봤어요.”
태원의 말에 수겸이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근데 왜 이겸이야? 손마디장갑 님께서도 지금 ‘수겸아, 왜 하필 이겸이야?’라고 물어봐 주셨어.”
“아, 그냥 저도 모르게 그랬어요. 이겸이가 앞에 있어서 그랬나? 이상하게 눈이 가더라고요.”
수겸은 다분히 겸겸커플 추종자들을 위해 한 행동이었지만, 너무 대놓고 말하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수 있다는 것을 알기에 시치미를 떼었다.
그러자 댓글 창은 또다시 난리가 났다. 모호한 답변이 상상력을 자극한 모양이었다.
[이상하게 눈이 갔다니...]
[그거 사랑이야 수겸아..]
[대박]
[핑겸아 흑겸이는 네 앞이 아니라 옆에 있었어... 그냥 네 본능이 이끌었다고 말해]
[핑겸이의 갑작스러운 애정 표현에 놀란 흑겸이 ㄱㅇㅇ]
[겸겸이들 오늘도 한 건 햇다]
수겸은 댓글 반응에 번지는 미소를 애써 참은 채 아무것도 모른다는 표정을 지었다.
힐끔 차이겸을 쳐다보니, 그는 여전히 당황한 듯했지만 내색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게 보였다.
“마리아드 님께서 어제 퍼포먼스 너무 예뻤다고, 누구 아이디어냐고 물어보시는데 이거 이겸이 형이랑 수겸이 형 퍼포먼스 말씀하시는 거겠죠? 대답해 주시죠.”
한솔이 댓글 창을 읽다가 두 사람에게 물었다. 예상했던 질문이었다.
수겸은 민망한 듯 웃는 연기를 하고는 차이겸의 어깨를 툭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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