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16화
“송수겸이…… 그랬다고?”
차이겸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두 사람을 번갈아 쳐다보았다.
“어, 완전 미친놈이야.”
“아, 미친놈이라니! 형이 먼저 시작한 거잖아.”
태원이 여상하게 대꾸하자, 수겸이 발끈하며 대화에 끼어들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렇게 다 보이는 곳을 물어?”
“형이 나한테 한 짓은 생각 안 해? 눈에는 눈, 이에는 이거든.”
“그게 어떻게 눈에는 눈, 이에는 이야?”
“형이 먼저 막 만지고, 침대에 내던지고 그랬잖아.”
“야, 말은 바로 해라. 내가 언제 널 침대에 내던졌어?”
대화가 이어질수록 점점 더 분위기는 걷잡을 수 없이 기묘하게 흐르고 말았다.
태원과 수겸 두 사람만 알고 있는 사건의 전말은 다른 세 사람의 머릿속에서 점점 이상한 방향으로 흘렀다.
“형, 정말 형이 그랬어요……?”
“응, 내가 했어. 내가 보기보다 더 화끈한 타입이거든.”
유찬의 물음에 수겸은 당당하게 대답했다. 수겸의 입장에서는 간밤의 승리를 자랑하고자 한 말이었지만, 그 말을 들은 유찬의 표정은 충격으로 물들었다.
“화끈한 게 아니라 이상한 거야, 수겸아. 보통 사람은 침대에서, 아니, 어디서든 다른 사람을 깨물지 않아.”
“어제는 좀 그럴 만한 상황이었어.”
태원의 정정에도 수겸은 뻔뻔하기만 했다. 수겸은 주변 분위기를 하나도 읽지 못한 채 아무렇지 않게 대꾸하며 미역국을 먹는 데에 열중했다.
이겸과 한솔, 유찬은 혼란스러운 듯 두 사람을 번갈아 보더니 차례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어차피 수겸이 올 때부터 세 사람의 식기는 이미 바닥을 드러내고 있던 중이었다. 수겸은 세 사람이 식사를 마치고 일어났구나 싶어 이상한 것을 느끼지 못했다.
그렇게 수겸은 태원과 연신 투덕거리며 식사를 마쳤다.
비록 내내 옥신각신하고는 있었지만, 태원은 수겸이 사랑니를 발치한 환자이니 설거지는 자신이 하겠다고 선언했다. 덕분에 수겸은 홀가분한 마음으로 홀로 방으로 들어섰다.
“솔아, 왜 그러고 있어?”
수겸은 방 가운데에 서 있는 한솔을 발견하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가 애매한 위치에 서 있는 것도 서 있는 것이거니와 표정 또한 심상치 않아 보였다.
본래 한솔은 유들유들한 성격만큼 평소에도 잘 웃는 얼굴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웃음기라고는 조금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솔아……?”
한솔에게서 대답이 돌아오지 않자, 수겸이 슬그머니 그의 눈치를 살폈다. 한솔은 수겸의 부름에 혼란스러운 듯 입술을 몇 번이나 달싹거렸다. 그러다가 깊게 한숨을 내쉬며 신경질적으로 제 머리를 흩뜨렸다.
“왜 그래, 솔아. 무슨 일 있어?”
심상치 않은 그의 반응에 수겸은 초조해졌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걸까? 전생에서 한솔과 관련된 사건이 떠오르자, 수겸은 더럭 겁이 났다.
늘 다정하고 사람 좋아 보이기만 하던 한솔이 한 예능 프로의 스태프에게 폭언을 하고, 심지어는 폭행까지 저질렀다.
수겸은 잘 웃고, 모두에게 친근하게 굴던 한솔이 사람을 때렸다는 게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폭행 현장을 목격한 사람도 많았고, 심지어 CCTV에까지 폭행 장면이 촬영되었다.
두 눈으로 CCTV 영상을 보고 나서야 수겸은 한솔이 사람을 때렸다는 사실을 인정했다.
전생에서도 그 이유를 끝끝내 알지는 못했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마냥 착하고 올바르기만 한 것 같던 한솔이 그런 짓을 저질렀는지 말이다.
이유를 모르기에 지금 한솔의 태도에 수겸은 더더욱 불안해졌다.
수겸은 여린 볼살을 씹으며 떨리는 눈으로 한솔을 바라보았다.
“……형, 아까 태원이 형이 말한 거 진짜야?”
“응? 어, 어…… 진짠데. 왜?”
심각한 이야기가 이어질 것이라 생각한 것과 달리 한솔의 물음은 너무나 평범한 것이었다. 아까 식사 자리에서 나왔던 간밤 태원과의 장난에 관련된 이야기였으니까 말이다.
의외의 질문에 안심하면서도, 그가 왜 이런 걸 물어보는지 의아하기는 했다.
수겸은 커다란 눈을 깜빡이며 한솔이 할 다음 말을 기다렸다.
“아니, 나 지금 이해가 안 돼서 그러는데…… 둘이 대체 뭐야?”
“뭐가?”
한솔의 물음에 수겸은 고개를 갸우뚱했다.
결과적으로 보면 둘이 생각하는 것은 같았다. 침대에서 수겸이 태원의 목덜미를 깨물었다.
그러나 그 뉘앙스만큼은 전혀 달랐으니,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였다.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해?”
“뭘 어떻게 받아들여?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는데?”
“……하, 도대체 언제부터 그런 건데.”
“어? 어제…… 그런 건데? 어제가 처음이야.”
이제껏 태원과 투덕거리기는 많이 투덕거렸지만, 그를 깨문 것은 어제가 처음이었다. 그렇기에 태원도 충격에 빠져서 자신에게 더 뭐라고 한 것이었다.
수겸은 여전히 한솔의 저의를 알아차리지는 못했지만, 묻는 대로 순순히 답은 해주었다.
“어제 갑자기 그런 거야? 뭐 징조라도 있었을 거 아냐.”
“그런 거 없었는데……. 그냥 어제 그런 거야. 그게 뭐…… 징조가 필요한가?”
“뭐?”
“그냥 상황이 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지.”
“상황이 그러니까 그렇게 된 거라고?”
“응…….”
기가 막힌다는 한솔의 반응에 수겸은 혼란스러워졌다.
태원과는 서로 장난을 친 것에 불과한데 거기에 어떤 징조가 필요하단 말인가. 그저 장난치며 놀다 보니 그렇게 된 것이었다. 작정하고 태원을 물었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었다.
한솔은 깊게 한숨을 내쉬더니 마른세수를 했다. 그러더니 무언가 결심한 듯 수겸을 똑바로 쳐다보았다.
“그러면…… 나랑도 상황이 그렇게 되면 그럴 거야?”
“어……?”
“나랑도 상황이 그러면 할 거냐고.”
수겸이 되묻자, 한솔은 흔들림 없이 말했다. 그러나 단단한 목소리와 달리 눈동자만큼은 떨리고 있었다.
사실 수겸은 한솔과 친하기로는 둘째가라면 서러웠지만, 태원과의 관계처럼 장난이 심하게 오가지는 않았다.
아무래도 한솔이 동생이기도 하고, 또 한솔이 친근하게는 굴지만 나름대로 선은 지켜서 행동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애초에 한솔과는 태원처럼 몸싸움을 치며 장난을 할 일은 없을 터였다.
그렇기에 수겸은 한솔의 물음에 곧바로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런 상황 자체가 상상이 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혹시 앞으로 한솔의 태도가 달라져서 태원처럼 제게 장난을 걸어온다면, 수겸 역시 충분히 태원에게 하던 것처럼 한솔에게도 장난을 칠 의향은 있었다.
“뭐…… 솔이 네가 그러고 싶다면?”
“……내가 그러고 싶다면…… 한다고……?”
한솔은 수겸의 말이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이었다.
한솔이 당황한 듯하기는 했지만, 아까처럼 정색을 했다거나 굳은 얼굴은 아니었기에 수겸은 한결 마음이 놓였다.
안도한 수겸은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응, 못 할 게 뭐가 있어. 나는 태원이 형도 좋아하고, 너도 좋아하는데.”
“뭐……?”
그 말에 삽시간에 한솔의 얼굴이 무서울 정도로 싸늘하게 굳었다.
일순간 차가워진 공기에 수겸은 마른침을 삼켰다. 분명 방금까지만 해도 한솔의 기분이 나아진 것 같아 보였는데, 착각에 불과했을까? 수겸은 그저 이 상황이 당혹스러웠다.
머릿속으로 자신이 한 말을 반추해 보았지만, 도무지 어떤 부분에서 한솔의 기분이 상한 것인지 짚이는 구석이 없었다.
굳이 따지자면 한솔의 표정이 굳은 시점이 자신이 그를 좋아한다는 말을 하자마자였다.
설마…… 내가 좋다고 한 게 불쾌했나……?
여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더더욱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 제게 친근하게 굴고, 다정했던 솔이였다. 누구보다 자신을 좋아한다고 생각했던 그였기에 자신의 좋아한다는 말에 정색을 하는 그를 이해할 수 없었다. 단순히 납득이 되지 않는 수준을 넘어서서 상처가 되기까지 했다.
“그렇게…… 싫어?”
“……좋겠어, 그럼?”
조심스러운 수겸의 물음에 돌아온 대답은 냉정하기만 했다.
그에게서 들으리라 생각해 본 적 없는 목소리였기에 수겸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침울하게 고개를 숙였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솔이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 무겁게 내리깔리는 한숨에 수겸의 고개는 더더욱 아래로 내리박혔다.
“……미안해. 너무 혼란스러워서 그랬어. 형한테 화를 내려던 건 아닌데. 형이 그런 연애관을 지닌 사람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 물론…… 그래, 취향일 수 있지. 그럴 수 있는 건데…… 내가 같은 멤버가, 그것도 다른 사람도 아닌 형이 그렇다고 하니까 너무 당황스러워서…….”
“잠깐, 그런 연애관이라니?”
잠자코 한솔의 변명처럼 늘어지는 이야기를 듣던 수겸은 귀에 박히는 ‘그런 연애관’이라는 말에 번쩍 고개를 쳐들었다.
아니, 그가 갑자기 왜 연애관까지 운운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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