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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23화 (24/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23화

삽시간에 공기가 얼어붙었다. 차이겸의 표정 역시도.

수겸은 평소 이겸의 성격대로라면 ‘미쳤냐?’라고 말하면서 질색을 한 뒤에 ‘어휴, 됐다 됐어. 마음대로 해’라고 말할 줄 알았다.

그런데 정작 찾아온 것은 예상외의 정적이었다. 이쯤 되자 수겸도 무언가 잘못되었음을 느꼈다.

수겸은 커다란 눈알을 이리저리 굴리며 눈치를 살폈다.

“야, 장난이야, 장난. 그렇다고 그렇게 쳐다보면 내가 너무 수치스럽지 않겠니?”

수겸은 민망함에 뒷덜미를 만지작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러나 차이겸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이 뚫어져라 수겸을 바라볼 뿐이었다.

“야, 야. 왜 그렇게 봐. 그냥 장난이라니까? 아, 미안해. 알았어, 이런 장난 안 칠게. 뭐, 남자끼리 그럴 수도 있지. 너 생각보다 되게 보수적이구나?”

민망함이 밀려들자 수겸은 결국 이겸을 탓하게 되었다. 그의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걸 알면서도, 부끄러움을 감당할 수 없다 보니 괜스레 탓할 곳이 필요해서였다.

“송수겸.”

“응.”

“너 진짜…….”

“아, 알았어. 미안하다니까?”

수겸은 차이겸의 말에 언성을 높였다. 부끄럽기도 하고, 그렇게까지 정색할 일인가 싶어 이겸이 원망스럽기도 하고, 괜한 말을 했나 싶어 자책이 되기도 했다. 여러 감정이 복합적으로 뒤엉켰다.

한꺼번에 올라오는 감정을 표출할 길이 없는 수겸은 괜스레 입술만 삐죽거렸다.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아, 안 해. 안 해. 그리고 내가 너니까 이런 말도 하는 거지. 설마 다른 데 가서 하겠어? 미치지 않고서야 안 그러지.”

진지하기까지 한 차이겸의 말에 수겸은 부러 더 정색하며 응수했다. 그러자, 차이겸은 무어라 더 말을 하려는 듯 입을 열었다.

“아, 됐어. 말하지 마.”

하지만 수겸이 더 빨랐다. 들어봤자 좋을 말은 아닌 것 같아서 재빠르게 그의 말을 차단했다.

그러자 차이겸은 어이가 없는 건지, 아니면 화가 나는 건지 눈을 감고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겸아.”

“응?”

잠자코 있던 태원의 부름에 수겸은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가 무슨 말을 할지는 알 수 없지만, 이대로 이겸과 민망한 대화를 이어가느니 태원과 대화를 하는 편이 백번 낫다는 판단이 빠르게 섰다. 수겸은 그가 이 순간에 자신을 불러준 것에 감사하며 태원을 바라보았다.

“너 진짜 어디 가서 그런 말 하지 마.”

“아, 형! 안 한다니까? 형까지 왜 그래?”

믿었던 태원마저 타박을 해오자, 수겸은 과거로 돌아가서 자신의 주둥이를 틀어막고 싶어졌다.

그냥 가벼운 장난을 친 것뿐이었는데, 이 정도의 여파가 올 줄은 미처 몰랐다. 알았더라면 결코 그런 장난은 하지 않았을 터였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억울하기까지 했다. 아니, 같은 멤버들끼리 그 정도의 장난도 못 친단 말인가. 진짜 키스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고, 그냥 말만 해본 건데. 미치지 않고서야 정말로 같은 멤버에게 키스를 갈기기야 하겠느냔 말이다.

게다가 어디 가서 그런 말을 하지 말라고 하는데, 막말로 차이겸이 상대니까 그런 말을 하지, 다른 사람에게 이런 장난을 칠 리가 있겠는가.

도대체 사람을 뭘로 보는 건지 서운할 지경이었다.

“내가 죽을죄를 지었으니까 다들 이제 그만해, 진짜로.”

“그런 말은 나한테만 해.”

수겸의 말에 태원이 짤막하게 덧붙였다. 그 말에 수겸은 놀라서 고리눈을 떴다가, 이내 픽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일종의 안도의 웃음이었다.

괜한 말을 했다고 타박하는 줄 알았더니, 그 역시도 자신처럼 장난을 치고 있는 모양이었다. 수겸은 그 말을 듣고서야 안심이 되어 놀란 가슴을 쓸어내렸다.

“아, 뭐야! 웃겨, 진짜. 쫄았잖아!”

“쫄긴 왜 쫄아?”

“형이 정색하니까 쫄았지. 형은 모르나 본데, 형 정색하면 되게 무서워. 알아?”

“내가 언제 정색했다고 그래? 아무튼 약속해.”

“어이구, 알았어. 이런 장난은 형한테만 칠게.”

그의 말에 완전히 긴장이 풀린 수겸이 생긋생긋 웃었다.

그런데 장난스럽게 따라 웃을 줄 알았던 태원이 의외로 진지한 표정이었다. 생각지 않은 반응에 수겸은 자신이 무언가 놓친 것이라도 있나 싶어 고개를 갸웃거렸다.

“마셔.”

그러나 수겸의 고민은 오래가지 않았다. 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차이겸의 허락이 떨어진 덕분이었다. 그는 여전히 불만스러운 표정이기는 했지만, 결국 수겸이 원하던 대로 술을 마셔도 된다는 허락을 해주었다.

“헐, 대박. 무르기 전에 시켜야지.”

수겸은 진짜냐고 되묻지도 않았다. 혹여나 되물었다가 이겸이 자신이 한 말을 철회할까 봐 지레 걱정이 된 탓이었다.

더 생각할 것도 없었다. 수겸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곧바로 벨을 눌러 직원을 불렀다.

“필요한 것 있으세요?”

“술이요! 어, 그, 레몬 든 술 있잖아요.”

“하이볼이요?”

“네, 네! 맞아요, 그거! 그거 일단 여섯 잔 주시고요. 복분자주도 주세요.”

수겸은 자연스럽게 제 몫으로 두 잔의 하이볼을 시키고, 복분자주도 시켰다.

회귀 전 일이다 보니 까마득한 옛날이지만 아무튼 달달하니 맛있는 술들이었다.

사실 전생에서 유피트가 공중 분해된 후로 수겸은 소주와 꽤 친근한 삶을 살았다. 달콤한 술만 먹었던 연예인 시절과는 달리, 쓰디쓴 소주가 더 어울리는 삶이었다.

비록 소주가 입에는 썩 맞지 않았지만, 당시 수겸에게는 그보다 더 어울리는 술이 없었다. 적어도 그때는 그렇게 생각했다.

수겸은 문득 떠오르는 지난 과거에 쓰게 웃었다.

“형, 왜 그래요?”

쓴웃음은 찰나에 불과했는데, 유찬은 용케도 그 모습을 본 모양이었다. 걱정스러운 그의 목소리에 수겸은 가볍게 도리질을 쳤다.

“아무것도 아니야.”

수겸의 대꾸에도 유찬의 어두워진 표정은 밝아질 줄을 몰랐다. 그 잠깐의 쓴웃음이 여전히 마음에 걸리는 모양이었다.

그의 걱정을 한 몸에 받고 있으려니 괜스레 미안해진 수겸은 부러 환하게 웃었다.

“에이, 진짜 아무것도 아니래도. 우리 유찬이는 형이 너무 좋은가 봐, 그치? 이렇게 걱정해 주는 거 보면. 형아는 아주 감동이야. 우리 유찬이가 형아 생각을 많이 해줘서.”

“아이 취급하지 말아요.”

“어어, 아이 취급이라니? 진심인데?”

유찬의 말에 수겸이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물론 말투에 장난기를 섞기야 했지만, 결코 유찬을 아이 취급하려고 한 것은 아니었다. 놀리려던 것도 아니었고 말이다. 외려 그의 걱정을 덜어주고자 한 나름의 배려였다.

“거짓말.”

“에이, 거짓말이라니. 나는 그런 거 못 하는 사람이라니까.”

수겸은 언젠가 유찬에게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자신은 마음에 없는 소리는 하지도 못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며 불안해하던 그를 안심시켜 주었었다.

지금도 그와 비슷했다. 수겸은 그때의 기억을 되살리며 유찬을 달래주고자 노력했다.

다행히 수겸의 노력이 빛을 발한 것인지, 유찬의 표정이 조금은 밝아졌다. 수겸은 그 변화를 보고 나서야 안심이 되었다.

“형, 그거 어디 있어?”

“그거라니?”

“꼬리.”

“꼬리?”

한솔이 불쑥 뚱딴지같은 소리를 하는 바람에 수겸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갑자기 웬 꼬리 타령이란 말인가. 무슨 의미인지 열심히 고민해 보아도 감도 오지 않는 대화의 흐름이었다.

“응. 꼬리가 백 개쯤은 될 거 같은데, 보이지가 않네.”

“아, 뭔 소리야!”

수겸의 고민이 무색하게도 한솔의 말은 영양가가 없는 잡소리에 불과했다.

수겸은 고민한 게 아까워서 열과 성을 다해서 한솔을 노려보았다. 그러나 한솔의 표정은 진지하기만 했다.

“나한테 꼬리가 왜 있어?”

“없는 게 이상할 정도야.”

“무슨 소리야, 그게.”

“형만 빼고 다 아는 소리야.”

“엥?”

나만 빼고 다 안다고?

생각지도 않은 말에 수겸이 박 터지는 소리를 내는 찰나, 노크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직원이 주문한 술을 들고 모습을 드러냈다.

여전히 한솔의 말뜻이 궁금하기는 했지만, 그보다는 당장 제 눈앞에 있는 술이 더 급한 수겸은 밀려드는 궁금증을 고이 접어두기로 했다.

“두 잔은 내 거야.”

“알아. 그럴 거 같았어.”

차이겸은 담백하게 대꾸하며 두 개의 하이볼을 들어 수겸의 앞에 놓아주었다. 수겸은 오랜만에 보는 반가운 하이볼의 자태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캬, 오랜만이다.”

“오늘도 내 등에 토하면 죽는다, 너.”

“알았어, 명심할게.”

그때의 일은 백번 사죄해도 모자란 일이기에 수겸은 순순히 대답했다. 그러고는 지난날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않기 위해 천천히 잔을 비우기 시작했다.

하지만 천천히 마신다고 해결될 주량이 아니었다. 노력이 무색하게도 원체 주량이 약한 수겸은 오래지 않아 한 마리의 강아지가 되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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