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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25화 (26/143)

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25화

어째선지 멤버들은 며칠간 수겸을 피하는 듯했다. 그나마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예전처럼 되돌아오기는 했지만, 완전히 회복되지는 않는지 순간순간 묘한 어색함이 찾아들었다.

그리고 그때마다 어째선지 네 사람의 시선이 수겸의 앞섶을 향하는 듯했지만, 아마 기분 탓일 것이다.

그러는 사이 시간은 성큼성큼 잘도 지나갔고 마침내 수겸이 기다리던 공포 체험 예능 촬영 날이 되었다.

산 한가운데 있는 폐가가 메인 촬영지였고, 본 폐가 체험을 하기에 앞서 연습 게임으로 담력 테스트를 해야 했다.

담력 테스트의 룰은 간단했다. 그룹을 A팀, B팀, C팀 셋으로 나누어서 각각 정해진 코스에 있는 깃발을 최대한 빨리 가져오는 팀이 우승을 하는 식이었다.

순위에 따라 야식 메뉴가 달라지는, 전형적인 방송국 놈들이 짜놓은 방식의 프로그램이었다.

“어? 근데 저희 다섯 명인데 세 팀이면…….”

“한 분은 혼자 가셔야 해요.”

태원의 물음에 메인 PD가 대꾸했다.

“헉.”

“네?”

“혼자요?”

“와…….”

“혼자요? 어떡해……. 혼자서 어떻게 가요. 난 안 돼, 절대 안 돼.”

PD의 말에 멤버들은 제각각 충격에 빠진 리액션을 취했다.

사전에 받은 대본에도 단순히 ‘사전 담력 테스트 진행 후, 야식 먹방’식으로만 간략하게 나와 있어서 한 사람은 혼자 담력 테스트를 해야 한다는 것은 미처 몰랐다.

물론 전생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수겸만 빼고 말이다.

하지만 수겸은 아무것도 몰랐던 사람인 척, 심지어 유피트 5명 중 가장 과장되게 반응했다.

“알파벳 C가 나오신 분은 혼자 가시면 돼요.”

당황한 멤버들과 달리 메인 PD는 담담하기만 했다. 수겸은 속으로는 PD를 욕하면서도, 겉으로는 그저 걱정스러운 연기만 했다.

“저 진짜 겁 많단 말이에요.”

수겸이 우는소리를 내었다. 물론 귀신보다 망돌이 되는 편이 백번도 더 무섭기는 했지만, 그렇다고 담력 테스트를 혼자 하고 싶은 마음은 추호도 없었다.

수겸은 딱히 겁이 많은 편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없는 편도 아니었다. 그래, 딱 평균이었다.

물론 본인이 평균이라는 건 어디까지나 수겸 혼자만의 생각에 불과하지만 말이다.

“제가 혼자 갈게요.”

훌쩍거리는 수겸의 눈치를 살피던 유찬이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 바람에 유피트 멤버들은 물론, 전 스태프들의 시선이 모두 유찬에게로 쏠렸다.

솔직히 수겸으로서는 홀로 가주겠다고 하는 유찬이 고맙고 멋있어서 눈물이 다 나올 지경이었지만, 방송 분량을 위해서라도 그가 이렇게 혼자 가겠다고 하는 걸 허락해서는 안 되었다.

재빠르게 방송 분량을 계산한 수겸이 당장에라도 울 것 같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아니야, 유찬아. 어떻게 그래. 공평하게 제비뽑기하자.”

“아니에요, 형. 그냥 제가 혼자 갈 테니까…….”

아오, 자식이 왜 이렇게 눈치가 없어?

수겸은 재차 혼자 갈 것을 주장하는 유찬 때문에 속으로 이를 갈았다.

물론 담력 테스트를 혼자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방송 분량까지 날려먹고 싶은 마음은 없었다.

지금 이 순간, 수겸에게는 이 프로그램의 성공이 다른 무엇보다 중요했다.

실제로 전생에서는 유찬이 부득불 우겨서 혼자 갔다. 그리고 긴장감도 없이 진행된 제비뽑기는, 물론 사전 담력 테스트까지 깔끔하게 편집당하고 말았다.

편집당한 만큼 비어버린 공백은 폐가 체험을 길게 늘리는 것으로 방송되었는데, 당연히 억지로 분량을 늘린 만큼 재미는 반감되었다.

결국 유피트는 고정을 꿰차지 못했고, 고정 예능의 꿈은 물 건너가고 말았다.

이번 생에서도 같은 짓을 반복할 수는 없다, 절대로.

수겸은 이처럼 재차 다짐하며 남몰래 이를 갈았다.

“아냐. 네가 여기서 혼자 간다고 하면 우리가 뭐가 돼.”

“맞아, 유찬아. 그건 아닌 것 같아.”

수겸의 말에 한솔까지 거들고 나섰다. 그 역시 유찬이 혼자 가는 것은 원치 않는 듯했다.

반대에 부딪힌 유찬이 무어라 말할 기세로 입을 벌렸다. 물론 수겸이 더 빨랐다.

“그럼 내가 먼저 뽑을게!”

수겸은 유찬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제작진이 준비한 제비뽑기 통에 손을 넣었다. 통 안에는 동그란 탁구공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수겸은 제발 혼자 가는 최악의 상황만 면하게 해달라고 빌면서 공 하나를 집었다.

“나 안 봤어, 아직 안 봤어! 빨리 다들 뽑아!”

수겸은 조금이나마 긴장감 있는 연출을 위하여 부러 탁구공을 바로 확인하지 않고, 멤버들이 다 뽑을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다행히 멤버들 역시 수겸을 따라 하나씩 뽑은 공을 확인하지 않고 꼭 쥐고 있을 뿐이었다.

“우리 하나, 둘, 셋 하면 동시에 카메라에 대고 보여주자.”

“좋아.”

“그래, 그러자.”

“알았어.”

“네.”

멤버들이 차례로 대꾸하자, 유찬 역시 마지못해 대답했다.

다섯 사람은 모두 한 손에 공을 하나씩 쥐고서 카메라를 마주 보며 바로 섰다. 나름대로 팽팽한 긴장감이 오갔다.

“하나.”

“둘.”

“셋.”

수겸의 ‘하나’를 시작으로 멤버들이 모두 입을 모아 숫자를 세었다. 유피트는 약속한 대로 ‘셋’을 외치는 동시에 카메라를 향해 쥐고 있던 공을 내보였다.

“어떻게 됐어? 어어, 앗싸! 나 A다!”

먼저 카메라가 확인할 수 있도록 알파벳이 적힌 탁구공을 보여준 후, 수겸은 얼른 제 공을 확인했다. 다행히 공에는 A라는 알파벳이 큼지막하게 적혀 있었다.

수겸은 진심으로 뛸 듯이 기뻐했다.

솔직히 말해서 무서웠다. 그것도 그냥 무서운 게 아니라 대단히 무서웠다. 아주 많이, 정말로, 진짜.

만에 하나 C를 뽑았다면 고정이고 나발이고 못 하겠다고 나자빠졌을지 모를 만큼 무서웠다.

“형 A야? 나도 A야!”

“와, 대박! 솔이 너 A야? 솔아, 나 지켜줘야 해.”

한솔의 말에 수겸은 냉큼 그의 옆에 붙어 서며 재잘거렸다. 가녀리고, 청초하고, 겁이 많은, 공식 수로서의 역할에 충실한 대사였다.

“앗싸, 나는 B다.”

“저도 B예요.”

태원의 말에 유찬이 대꾸했다. 두 사람이 B인 탓에 더 확인할 필요도 없이 자연스럽게 차이겸이 C가 되어 혼자 담력 테스트를 하게 되었다.

“차이겸, 혼자 가는 거야? 어떡해, 우리 이겸이…….”

수겸은 카메라를 의식한 채로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사실 차이겸이야 뭐, 혼자 담력 테스를 하든 말든 별로 걱정도 되지 않는 인간이었다.

하지만 ‘우리 이겸이’라고 말한 것만으로 팬들은 좋아할 터였다.

수겸은 가볍게 ‘겸겸’ 떡밥을 던져 놓고는 다시 한솔의 옆에 바짝 붙었다. 이 역시 카메라를 의식한 행동이었다.

“오케이, 잠깐 끊고 갈게요.”

메인 PD의 말에 수겸은 슬그머니 한솔의 옆에서 떨어졌다.

촬영 중도 아닌데 필요 이상으로 붙어 있을 필요는 없었으니까.

“이겸아, 너 진짜 괜찮겠어?”

“어, 뭐. 괜찮아.”

태원의 물음에 이겸은 대수롭지 않게 대꾸했다. 수겸은 담담한 그의 태도에 혀를 내둘렀다. 역시 걱정할 필요가 없는 인간이었다.

“쟤가 걱정이지 뭐.”

“맞아, 나도 내가 걱정돼.”

차이겸이 고갯짓으로 자신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차린 수겸이 맞장구쳤다. 그러자, 태원 역시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수겸이 진짜 어떡하냐. 기절하는 거 아냐?”

“끔찍한 소리 하지 마. 말이 씨가 된다고.”

수겸은 퉁명스레 대꾸했다. 안 그래도 무서운데, 주변에서 공포심을 더 부추기는 것 같아 불안함이 배가되었다.

실제로 전생에서 수겸은 거의 반쯤 기절할 뻔했다. 눈을 반은 감고 갔고, 작은 소리에도 놀라 혼비백산하느라 바빴다. 덕분에 담력 테스트의 코스가 어땠는지는 조금도 기억나지 않았다.

“형, 정말 괜찮겠어요?”

“안 괜찮을 것 같지만, 뭐…… 솔이가 어떻게든 해주겠지. 솔이만 믿고 간다!”

유찬의 걱정스러운 물음에 수겸은 옆에 있는 한솔을 들먹거렸다.

실제로 수겸이 믿을 것은 한솔뿐이었다. 다행히 한솔은 그리 겁이 많은 편이 아니었으니, 그에게 찰싹 붙어 움직이면 그나마 괜찮을 터였다.

“유피트, 준비할게요!”

막내 PD의 말에 유피트는 짧은 휴식 시간을 마치고 다시금 카메라 앞에 모였다.

수겸은 잔망스럽게 카메라를 바라보며 양팔로 크게 슬레이트를 쳤다.

이로써 촬영이 시작되었다.

“A팀 출발할게요!”

“최단 기록 세우고 오겠습니다!”

수겸이 무서운 마음을 달래려 부러 쾌활한 목소리로 카메라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러자 한솔 역시, 환하게 웃으며 손으로 브이 자를 그렸다.

담력 테스트는 그 흔한 VJ 한 명 없이 진행되었다. 당연히 조명이고 뭐고 있을 리 만무했다.

새카맣기만 한 길의 끝을 마주하니, 수겸은 절로 마른침을 삼키게 되었다.

“형, 가자.”

“으, 응…….”

수겸은 한솔의 말에 불안하게 대꾸하며 슬그머니 그의 팔을 붙잡았다. 이쯤 되니 겁을 먹은 게 연기인지 아닌지 수겸 본인조차 모를 지경이었다.

수겸은 먼저 걸음을 떼는 한솔을 따라 천천히 발걸음을 옮겼다.

산의 밤공기는 더없이 차가웠다. 스산하기까지 한 공기에 수겸은 절로 몸이 부르르 떨렸다. 아무리 전생의 기억을 더듬어 대비해 보려고 해도 무서움에 떨던 것만 떠오를 뿐, 도움이 될 만한 게 떠오르지 않았다.

그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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