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돌의 공식 수가 되겠습니다 26화
“으아아아아!”
나무 사이에서 난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놀란 수겸이 비명을 내지르며 휘청거렸다. 다행히 옆에 있던 한솔이 얼른 잡아준 덕분에 넘어지는 것만은 피할 수 있었다.
“뭐야, 뭐야, 뭐야! 방금 뭐냐고!”
“새였어, 형. 새.”
“새……?”
“응, 새.”
“아…… 새…….”
민망함이 밀려들었다. 수겸은 큼큼 헛기침을 했다. 그러자 지켜보던 한솔이 시원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수겸은 그런 한솔이 얄미워 등짝을 한 대 때려주고는 성큼성큼 앞서 걸었다.
“길이 어디지?”
오래지 않아 어둠 속에서 마주친 갈림길에 수겸은 제자리에 멈춰 섰다.
물어볼 스태프는 한 명도 없었다. VJ조차 없이 가슴에 단 액션캠이 전부인 상황이니, 어디로 가야 할지 혼란스럽기만 했다.
“내가 무전해 볼까?”
“어어, 아냐. 내가 해볼게.”
한솔의 물음에 수겸이 만류하고는 재빨리 먼저 나섰다.
“안녕하세요! 저 A팀 송수겸인데요, 갈림길이 나와서요. 어디로 가야 해요?”
수겸이 발랄한 목소리로 물었다. 그러자 무전기가 연결되어 있는 한솔이 큭큭 웃음을 터뜨렸다. 수겸은 그런 한솔을 뾰족한 눈매로 흘겨보았다.
-왼쪽으로 가세요.
무전기와 연결된 이어폰에서 희미한 여자 스태프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주의 깊게 듣지 않으면 잘 들리지 않을 목소리였다. 아무래도 산이라 그런지 무전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는 모양이었다.
수겸은 콩닥거리는 가슴을 하고서 용케도 이 소리를 들었다 싶어 스스로에게 뿌듯함을 느끼며 왼쪽으로 몸을 틀었다.
“어, 왼쪽이야?”
“응. 방금 안내 멘트 들었어.”
“그래? 난 못 들었는데. 산이라 잘 안 터지나?”
한솔의 물음에 수겸이 제 귀에 꽂힌 이어폰을 가리켰다. 그러자 한솔은 고개를 갸웃거리면서도 왼쪽으로 앞장서 걸었다.
“야아, 같이 가.”
“알았어, 알았어.”
겨우 한솔이 두어 발자국 멀어졌을 뿐인데, 수겸은 기겁하며 한솔의 옷자락을 붙잡았다. 고목에 들러붙은 매미처럼 찰싹 한솔의 너른 등짝에 붙은 수겸이 두근거리는 가슴을 달랬다.
그런데 갈수록 길이 점점 험해졌다. 아무리 공포 체험이 컨셉인 방송이라지만, 달조차 보이지 않는 깊은 밤에 이렇게 험한 산길로 가라고 하다니, 해도 해도 너무했다.
방송국 놈들을 향한 분노가 치밀었지만, 프로페셔널한 방송인이 꿈인 만큼 불만스러운 모습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수겸은 거친 길에 덩달아 거칠어지는 호흡을 달래며 힘겨운 걸음을 뗐다.
“형, 진짜 여기 맞아?”
“어…… 분명 아까 왼쪽으로 가라고 했는데…….”
길이 보통 험한 수준이 아니게 되자 한솔 역시 너무하다고 느꼈는지 결국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 그의 물음에 수겸 또한 덩달아 자신감이 없어져서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대꾸했다.
“형이 그렇게 들었으면 맞겠지, 뭐.”
“소, 솔아. 내, 내가 앞장설까……?”
“그럴래?”
“어, 어?”
괜스레 미안한 마음에 예의상 물어보았는데, 한솔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꾸했다. 예상치 못한 답에 당황한 수겸이 놀라 되물었다. 그러자 한솔이 허리까지 접어가며 시원스레 웃음을 터뜨렸다.
“아하하하하.”
“왜, 왜 웃어?”
“장난이야, 장난. 내가 어떻게 형한테 먼저 가라고 하겠어? 형이 그렇게 말하니까 한번 장난쳐본 거야. 괜찮아, 내가 앞에서 갈게.”
“야이 씨! 넌 뭐 그런 걸로 장난을 치냐! 비켜, 내가 앞장설 수 있어!”
“아이고, 됐거든요. 뒤따라오기나 해. 하여간, 귀여워 죽겠다니까.”
한솔의 말에 수겸은 민망함에 얼굴이 빨개지고 말았다. 동생인 그에게 잔뜩 겁먹은 게 들킨 것 같아 부끄러워서였다.
“너, 너는 형한테 귀여워 죽겠다니까가 뭐냐?”
수겸이 괜스레 버럭 성을 내고는 붉어진 얼굴을 하고서 한솔을 밀쳐내고 앞장서 걷기 시작했다. 부끄러움 때문에 어서 이 상황을 벗어나고 싶어서였다.
플래시 불빛에 의지하여 칠흑 같은 어둠을 헤쳐 걷던 그 순간이었다.
“형!”
한솔의 다급한 부름이 들리는가 싶더니, 그와 동시에 몸이 뒤로 홱 당겨졌다. 한솔이 뒤에서 수겸을 와락 끌어안은 것이었다.
“왜, 왜 그래? 아…….”
놀라서 묻던 수겸은 금세 한솔이 왜 그렇게 행동했는지 깨달았다.
수겸은 캄캄한 어둠 속, 깎아지른 듯이 이어지는 절벽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한솔이 자신을 조금만 늦게 잡았더라면 저 절벽 아래로 떨어지고 말았을 터였다.
끔찍한 일을 겪을 뻔했다는 생각에 등골이 섬찟하고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다.
“형, 괜찮아……?”
“어, 어…….”
사실은 조금도 괜찮지 않았다. 오금이 저리고 숨이 막혀올 지경이었다.
도대체 왜 아까 무전을 보낸 스태프는 제게 이런 위험한 길로 가라고 했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내가 무전해 볼게. 일단 여기서 나가자.”
한솔이 수겸에게 손을 내밀었다. 수겸은 떨리는 손으로 그의 손을 잡았다. 한솔 역시 적잖이 놀랐는지 손이 차갑게 식어 있었다. 두 사람은 손을 꼭 붙잡고 왔던 길을 되돌아갔다.
“A팀의 정한솔인데요, 길이 막혀 있어서요. 어느 쪽으로 가면 될까요?”
절벽에서 조금 멀어져 무전을 한 한솔은 잠시 조용히 있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더니, 수겸을 바라보았다.
“형, 내 무전 들렸어?”
“응. 나는 들렸어.”
“그런데 답이 없네. 저쪽에선 안 들리나 봐. 너무 멀리 온 건가? 일단 돌아가자.”
“응. 알았어.”
수겸은 여전히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며 한솔의 손을 꼭 잡고 앞으로 걸었다. 그때였다. 수겸의 귀에 꽂힌 이어폰이 작게 지직거리는가 싶더니…….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더 갔어야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더 갔어야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더 갔어야지! 더 갔어야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더 갔어야지. 아깝다.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아깝다.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더 갔어야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왜 돌아와? 더 갔어야지!
“아악!”
수겸이 기겁하며 이어폰을 뽑아 내던졌다. 공포에 질려서 바들바들 떠는 수겸을 본 한솔이 놀라 그의 마른 어깨를 붙잡았다.
“형, 왜 그래?”
“바, 방금, 무전기에서…… 솔아, 너 못 들었어?”
자신이 들은 소리를 설명하려던 수겸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듯한 한솔의 반응에 물었다.
분명 무전기는 모두와 이어져 있으니, 제게 들린 소리라면 솔이에게도 들렸어야 했다. 그런데 그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다.
수겸은 그제야 아까 왼쪽으로 가라는 여자의 무전을 자신만 들었던 게 이해되었다. 그 역시 귀신의 목소리였다.
무슨 일이 벌어졌던 것인지 사실을 깨닫고 나자 수겸은 다리가 풀려서 그대로 주저앉고 말았다.
“형!”
“솔아…….”
“응, 괜찮아? 왜 그래? 무전기에서 왜, 무전기에서 뭐 이상한 소리라도 들렸어?”
그의 물음에 수겸은 울컥 눈물이 치밀어 올랐다. 그는 자신을 따라 앉아 눈높이를 맞추고 있는 한솔을 저도 모르게 와락 끌어안았다.
“형……?”
“어헝헝, 솔아, 나 너무 무서워.”
수겸은 부끄러움도 잊고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이번 생에서는 파일럿 프로그램에서 눈도장을 찍어서 정규 프로그램 고정 멤버 자리를 꿰차고 말겠다던 다짐도 모두 무너져 내리고 말았다.
‘당장 내가 무서워 죽겠는데, 고정이고 나발이고가 무슨 상관이야!’
수겸은 내심 저리 생각하며 한솔의 탄탄한 가슴팍에 얼굴을 묻었다.
한솔은 고양이처럼 제게 얼굴을 비벼오는 수겸의 동그란 머리통을 연신 쓸어주며, 다른 한 손으로는 마른 등을 토닥거려 주었다.
그렇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수겸의 떨림도 조금씩 찾아들고 눈물 역시 멎었다. 그러나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문제가 하나 있었다.
“쿨쩍, 솔아.”
“응, 말해.”
“나 좀 업어주라. 다리에 힘이 풀려서 못 일어나겠어.”
부끄럽기는 한지 수겸이 작게 웅얼거렸다.
어린 동생에게 업혀 간다는 것 자체가 너무도 쪽팔린 일이었지만, 뭐 어쩌겠는가. 한시라도 빨리 이 자리를 벗어나고는 싶은데 다리가 말을 듣지 않는 것을.
“하하하, 알았어. 업혀.”
“웃지 마.”
“알았어, 안 웃을게.”
“웃지 말라니까!”
“안 웃어, 안 웃어.”
여전히 큭큭거리는 한솔을 불퉁한 시선으로 노려보면서도 수겸은 그가 내민 등에 제 몸을 맡겼다.
한솔은 수겸이 무겁지도 않은지 수겸을 업고 가뿐하게 자리에서 일어나 험한 산길을 걷기 시작했다.
“안 무거워?”
“전혀. 너무 가벼워서 속상할 정도야.”
“치, 내가 가벼운데 왜 네가 속상해? 날 좋아하기라도 해?”
수겸의 물음에 한솔이 멈칫하며 멈춰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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